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지리산 기행-만복대에서

林 山 2004. 7. 22. 16:21

아침 7시 37분에 일어나다. 스팀이 나가 대피소 안에는 냉기가 흐른다. 대피소 직원이 들어오더니 지리산 일대에 통제령이 내려졌으니, 대피소에 머물러 있거나 하산을 하라고 전한다.

우리는 일단 취사장으로 가서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눈보라는 여전하다. 어제 약속한 대로 우리는 대피소 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기로 하였다. 홍완선 선생은 노고단 정상까지만 올라 갔다가 화엄사로 도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직원의 감시를 피해서 정재현, 홍완선 선생과 함께 배낭을 메고 취사장을 재빨리 빠져나와 노고단 정상으로 향했다. 눈이 종아리까지 차서 산을 오르기가 몹시 힘들다.

 

*노고단 돌탑을 배경으로. 왼쪽이 필자 오른쪽은 정재현 선생

 

*노고단에서

왼쪽부터 신건준, 필자, 정재현, 홍완선 씨

 
10시경 노고단 정상에 오르다. 흰 눈에 덮인 반야봉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정선생이 노고단 통문을 빠져 나가려고 눈길을 헤치니 바람에 날려온 눈이 한길도 넘게 쌓였다.

 

*노고단 통문에서 러셀을 하고 있는 정재현 선생.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했으나 허리 이상 쌓인 눈으로 인해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은 사람들이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순간 그들이 대피소 직원들에게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선생과 나는 우리 둘만이라도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히말라야도 가는데 이까짓 눈좀 내린 것을 가지고 종주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고 있는데 대피소 직원이 부르러 올라왔다.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노고단 대피소로 내려오니 취사장에 다 붙잡혀 있다.

 

*노고단 정상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내려오는 돌계단길에서. 왼쪽이 필자


우리는 일단 하산을 하기로 하고 대신 성삼재에서 고리봉,만복대를 거쳐 정령치로 빠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타기로 했다. 정승기,이미정씨는 대피소에서 통제가 풀릴 때까지 하루나 이틀 더 기다려 보겠단다. 홍완선 선생은 성삼재까지만 동행을 하고 천은사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우리 일행 셋과 상명대 심민우, 박서진군, 시흥의 박주관씨, 천안의 이은환씨 등 도합 일곱명은 끝까지 산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남은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대피소를 출발하여 성삼재로 향했다. 무넹기를 조금 지났을 때, 두 사람이 앞에서 눈을 치워 길을 만들면서 지프차 한 대가 올라오고 있다. KBS 보도차량이었다. 지리산 일대에 내려진 폭설주의보를 취재하러 오는 모양이었다.

12시경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홍완선 선생은 여기서 천은사 쪽으로 하산하고 우리는 만복대로 가는 능선에 올랐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오른쪽부터 홍완선, 천안의 이은환, 박주관, 신건준, 필자, 정재현, 박서진 씨

 

산행은 처음부터 어려움에 부딪쳤다. 시작부터 허리높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두에서 러셀을 붙었다. 그러나 단 몇십미터도 못가서 기진하고 말았다. 점심도 굶은 채 산행을 하니 기력이 이만저만 딸리는 것이 아니다. 정선생이 내 뒤를 이어 러셀을 해 나간다. 눈이 조금이라도 덜 쌓인 곳이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정선생이 지치자 박주관씨가 뒤를 이어 러셀을 해 나간다. 가끔 사람키로 한길도 넘게 눈이 쌓인 곳이 나타난다. 그럴 때면 눈길을 뚫느라 시간이 몹시 지체되곤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제 정령치에 닿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탈출로도 아까 지나온 한 곳을 제외하고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더라도 정령치까지 가야만 한다.

눈을 뒤집어 쓴 크고작은 나무들이 온갖 기기묘묘한 형상들을 하고 서 있다. 꼭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온갖 동물 모습이 다 있다. 온 지구상의 만물상이 다 갖추어져 있다. 나무에 피어난 설화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동화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눈은 계속해서 퍼부어 댄다. 박주관씨가 지치자 이번에는 심민우군이 러셀을 맡았다. 네명이서 번갈아 가며 러셀을 해도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는다. 쏟아지는 눈 때문에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다.

고리봉을 지났다. 고리봉 정상을 오르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우회로를 탔다. 고리봉을 내려와서 바람이 잠잠한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 모두들 말은 하지않고 있지만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에게 나는 이제 얼마 남지않았다는 말로 위로를 해 본다. 이번 산행은 내가 제안해서 이루어졌기에 자연스레 나는 종주대장을 맡았다. 성삼재에서 정령치까지 4시간이면 가는 것을 지금은 그 반에도 못미치고 있었다. 사방은 벌써 어둑어둑하다.

만복대가 1km 남았다는 표지를 보고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그러나 만복대를 오르는 능선길에 오르자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 온다. 바람에 날려오는 눈가루가 얼굴을 때릴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수염은 얼어붙어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눈썹도 얼어붙었다. 등산로 양쪽에 말뚝을 박고 밧줄을 매어놓은 것으로 간신히 길을 분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은환, 박서진군은 다리가 아프고 신건준군은 산행경험이 부족한 탓으로 저만치 뒤에 처져서 따라오고 있다.

5시 30분.드디어 만복대(1433m) 정상에 오르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몸이 날려갈 것만 같다. 정상에 있는 돌탑에는 온통 하얀 새의 깃모양을 한 설화가 가득 피어 둘러싸고 있다. 자연이 빚어내는 조화는 인간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령치까지는 이제 2km가 남았다. 조금 있으면 곧 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서둘러야만 한다. 내가 다시 러셀을 맡았다. 허리이상 쌓인 눈과 씨름하느라 금방 기진맥진이다. 그나마 위아래에는 윈드자켓과 바람막이옷을 입고 스패치를 했기에 속으로 눈이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어텍스 등산화도 이번에 처음으로 신고 왔는데 눈녹은 물이 새지 않아 안심이 된다. 장갑을 두켤레나 끼었는데도 손이 시려 온다. 양손을 번갈아가며 주머니에 넣어야 견딜 수 있다.

갈림길에 닿았을 때 날은 캄캄해졌다. 헤드랜턴을 켜서 길을 밝혀야만 했다. 오른쪽 길이 정령치로 가는 길이다. 정선생이 다시 러셀을 맡았다. 눈이 아까 지나온 길보다 더 많이 쌓여 있다. 모두들 탈진 일보직전이다. 그러나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허기마저 잊어버렸다. 아침 한끼만 먹은 채 하루종일 버틴 것이다. 그렇다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물은 눈을 녹이면 된다지만 시간도 급하고 바람이 거세어서 버너에 불을 붙일 수가 없다. 행동식으로 허기를 달랠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얼마만큼 내려 왔을까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간혹 보이는 표지기와 나의 백두대간 종주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왔는데......... 우리는 각자 흩어져 표지기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표지기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기억을 되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이젠 동물과 같은 감각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정신을 모아 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어느 순간 '길이다'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길이다!"

나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이때 나의 헤드랜턴이 나가버렸다. 그래서 정선생에게 길 확인을 하게 했다. 몇 십미터 정도 눈을 헤치고 가더니 그가 소리친다.

"길이 맞아! 꼬리표도 붙어 있어!"

이 길을 먼저 간 사람이 달아 놓은 표지기가 우리를 살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훼손한다고 표지기 붙이는 것을 반대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사람 목숨을 여럿 살린 생명의 은인이다. 한낱 꼬리표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그러나 길을 찾았다는 반가움도 잠시 또 다시 사람키만큼 쌓인 눈길이 계속 나타난다. 일행이 가지고 있던 헤드랜턴이 거의 다 나가버리고 이젠 단 두개 밖에는 남지 않았다. 누군가 뒤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이번 산행은 아마 죽기 전까지 평생 못잊을거야."

"평생은 무슨 평생,지금 당장 여기서 죽게 생겼는데......."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런 말을 다 할까! 러셀을 하던 정선생이 지쳐 나가떨어지자 심민우군이 앞장을 선다. 우리들 일곱명은 어느새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있었다.

한동안 내리막길이 이어지다가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이 봉우리만 넘으면 정령치라는 판단이 선다.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볼 때 정령치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전에 와 봤을 때 정령치에는 휴게소가 있었다. 그곳에 닿기만 하면 따뜻한 난로와 먹을 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산불 감시초소가 서 있다. 여기서 또 길을 잃었다. 일행을 기다리게 해 놓고 나는 작년 백두대간 종주경험을 되살려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다. 중간쯤 내려가자 불빛이 어렴풋이 보인다. 모두들 환성을 지른다. 이제는 살았다는데서 오는 기쁨의 외침이다.

밤 10시 30분.드디어 정령치에 도착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가 보았던 불빛은 휴게소가 아니라 가로등불빛이었던 것이다. 휴게소는 문에다 못질까지 해놓고 텅텅 비어 있었다. 겨울에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휴게소 한 귀퉁이 바람이 잠잠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 낙심천만한 일행을 구슬리고 추스려서 고기3거리로 내려가기로 했다.

밤 11시.정령치를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고개마루에 희미한 가로등만이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강풍이 시도때도 없이 불어와 눈가루를 뿌려댄다. 도로에도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 내리막길인데도 걷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한참을 내려오니 고기3거리가 6.3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헤드랜턴은 다 꺼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젠 한짝이 언제 벗겨져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기리 마을 불빛이 보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종아리와 장딴지는 쥐가 나기 일보직전이다. 허리까지 뻐근하게 아파온다. 일행이 쉴 때는 눈쌓인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않는다. 그럴 때면 몰려오는 졸음........ 작년 겨울 소백산에서 죽었다는 두명의 등산객도 아마 탈진하여 졸다가 당했을 것이리라.

밤 12시 30분.고기3거리로 내려왔다. 길가의 불켜진 식당에 들어가 물어보니 영업이 끝났단다. 민박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밤중에 어디서 잠자리를 구할 것인가! 지리산 종주시 대피소에서 묵으려고 했기 때문에 텐트는 아예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그때 운봉이 집이라는 젊은 사람이 소형트럭을 몰고가다가 우리를 보고는 멈춘다. 우리 사정을 듣더니 배낭을 뒤에 싣고 타라고 한다. 쉴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지.......그도 산악인이라 했다. 자신도 산행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도로는 완전히 빙판길이다.

새벽 1시 30분.운봉과 인월 중간쯤에 있는 [옥계 타운]이라는 모텔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다 준 사람의 주소와 연락처를 물으니,그는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모텔을 떠난다. 모텔에 15인용 방을 하나 잡아 7명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방은 뜨끈뜨끈 절절 끓는다. 배낭을 벗어놓고 우선 샤워부터 하니 날아갈 것만 같다.아! 이 기분........

운봉읍에 있는 야식집에서 왕족발과 보쌈,그리고 소주를 시켰다. 어려운 일을 겪고나면 그것이 곧 무용담이 되는 것이다. 조금전까지 죽느냐사느냐 하는 고비를 넘긴 일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우리는 소주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밤을 지샜다. 비록 힘든 산행이었지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나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뿌듯하다.

그렇다. 사람은 어렵고 힘든 일을 이겨내야 그만큼 더 성숙해지는 법이다. 나도 내 생전에 이렇게 많이 쌓인 눈을 본 적이 없다. 이번 산행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한 바 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러한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이다.

새벽 5시 30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다. 꿈속에서도 보이는 것은 눈,눈,눈 뿐......................

 

2002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