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단풍이 곱게 수를 놓은 금수산!
오늘은 공휴일. 고등학교 동창이 근무하는 충주세관 직장산악회로부터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금수산 등반안내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제 탄금대 마라톤 연습전용도로에서 10km 정도 달리기를 했더니 다리에 알이 통통 배고, 근육이 땅겨 산행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지만 나는 쾌히 승락을 하였다.
물을 가득 담은 충주호 호반도로를 따라 일행을 태운 차는 달린다. 맑고도 고운 가을하늘을 담은 충주호가 푸르른 물빛으로 다가온다. 벼들이 익어가는 가을 들녁은 온통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월악나루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월악영봉이 반갑게 맞는다. 월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의 감나무에는 감들이 바알갛게 익어가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자 저 멀리 금수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청풍이 수몰되기 직전에 관아를 비롯한 문화재들을 옮겨다 놓은 곳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청풍대교를 건넌다. 청풍대교는 지금 한창 보수공사중이다. 드넓은 호수에는 유람선이 한가로이 오고간다. 하늘에는 관광객을 태운 작은 수상비행기 한 대가 날아다니고 있다.
등산로가 있는 학현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송이채취지역 입산금지'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 놓았다. 학현 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하자 송이채취꾼으로 보이는 마을주민 한 사람이 나타나서는 산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송이를 따러 온 것이 아니라 등산을 하러 왔다고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도 그는 막무가내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제천산림조합에 전화를 걸어 금수산일대가 송이채취 입찰지역인가를 묻자 직원이 그렇다고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디까지가 입찰구역인가를 재차 묻자 그것은 제천시 관할이라고 한다. 산림조합은 송이수매만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본 마을주민은 그제서야 송이밭에는 들어가지 말고 산행을 하라고 당부하면서 길을 터준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금수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에는 활짝 핀 연한 보라색의 쑥부쟁이꽃이 가을정취를 물씬 자아낸다. 저만치 노오란 달맞이꽃 한송이가 외로이 피어 있다. 산밤나무에는 밤송이가 벌어져 알밤이 드러나 보인다. 단풍나무, 다래덩굴, 붉나무 잎새는 벌써 울긋불긋 곱게 물들고 있다. 산기슭의 뙈기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꼬리가 빠알간 고추잠자리가 머리위에서 맴을 돈다. 어디선가 때늦은 매미울음 소리가 고요한 가을정적을 깨뜨린다.
올해는 도토리가 유난히도 많이 열렸다. 도토리 풍년이다. 아람이 벌어져 땅위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등산로에도 도토리가 무수하게 떨어져 있어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발에 밟힌다. 묵집을 하는 사람들은 도토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물푸레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산기슭에는 군데군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기상도 좋게 서 있다. 이마에는 벌써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한참을 더위잡아 능선에 올라서자 신선봉과 미인봉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이 미인봉으로 가는 길인데 금수산을 오르려면 신선봉쪽으로 가야만 한다.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암릉길이다. 전망이 뛰어난 바위봉우리에 올라서자 드넓은 충주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발밑으로는 능강리 리조트에서 금수산까지 이어지는 능강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바로 앞에는 망덕봉이 눈앞에 바짝 다가선다.
가파르고 험한 바위능선길이 연달아 나타난다. 밧줄을 매어놓지 않았으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도 있다. 밧줄을 놓치면 영낙없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판이다. 조심조심해 가면서 암벽길을 타고 오른다. 마지막으로 제일 가파르고 험한 암벽을 오르고 나서야 평탄한 능선길이 나타난다. 오솔길에 쌓인 낙엽을 밟으면서 산길을 걷는다. 낙엽의 부드러운 감촉이 발밑으로 전해져 온다.
신선봉(845m)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아담한 돌탑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금수산 2.5km, 학현리 2.8km'라고 쓰인 표지석이 보인다. '금수산 산악마라톤 대회'가 끝난 지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빈 물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신선봉에서 싸가지고 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금수산으로 향한다. 울창한 숲사이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신선봉과 높이가 비슷한 산봉우리를 하나 넘었다. 이제 이 능선길만 오르면 금수산이다. 산기슭에는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많이 보인다. 어쩌면 단풍이 저리도 고운지!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한바탕 땀을 흘린 뒤에 금수산정상(1016m)이 바로 앞에 건너다 보이는 바위봉우리에 올라선다.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동쪽으로는 소백의 연봉들이 도솔봉에서 죽령재를 건너뛰어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을 향해 치달려 간다. 남쪽으로는 월악영봉이 장엄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황금물결을 이룬 적성면의 들녁이 참으로 목가적이다. 강건너로 구단양의 옛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금수산정상 바위절벽에는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비단에 수를 놓은 산' 금수산(錦繡山)이다!
금수산은 가을산이다. 가을에 올라야 금수산의 진수를 볼 수가 있다. 또 금수산은 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는 얼음골이 있어 유명하다. 돌무더기가 쌓인 서렁의 돌무더기를 들추면 얼음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다. 여름에도 발견되는 얼음은 금수산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백악산이었다고 한다. 금수산은 조선 중기 단양군수로 재직했던 퇴계 이황 선생이 붙여 준 이름이다. 당시 이황 선생이 이 산에 올랐을 때 뛰어난 경치에 감탄한 나머지 금수산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으려니 언뜻 석이버섯이 눈에 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석이버섯은 맛이 좋아 송이보다도 훨씬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석이버섯은 높은 산 가파른 바위벽에서만 자라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석이버섯을 따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도 힘이 든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손길이 쉽게 닿는 곳에 석이버섯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잠깐사이에 작은 비닐봉지로 하나 가득 뜯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이토록 풍요로운 것이다!
금수산정상으로 가는 길은 줄도 매여있지 않은 릿지코스가 있다. 충주세관 직원들에게 더 가겠느냐고 묻자 그만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몹시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정상을 50m쯤 남겨두고 왔던 길을 되밟아서 하산길에 오른다. 금수산정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경치를 본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돌아설 줄 아는 것도 또한 산악인의 미덕인 것이다.
학현리로 내려가는 길섶에는 자주색의 용담꽃이 청초하게 피어나 있다. 노오란 색의 들국화도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내에게 주려고 용담꽃과 쑥부쟁이꽃, 들국화, 그리고 달맞이꽃을 한옴큼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다발이 제법 보기가 좋다. 단양 매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학현리로 내려오는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색색으로 피었다. 빨간색, 하얀색, 분홍색으로.....노오란 색의 해바라기꽃도 활짝 피었다.
학현리로 내려와 마을가게에서 라면으로 새참을 먹었다. 가게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더덕동동주로 하산주도 한 대포씩 했다. 갈증이 나던 차라 술맛이 일품이다. 동동주가 금방 동이 난다. 나는 우리나라의 동동주가 세계에서 최고의 술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동동주를 좋아한다. 나는 한 대포를 더 마셨다. 금수산의 아름다운 가을경치를 가슴에 담은 채 충주로 가는 귀로에 오른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꽃다발을 불쑥 내민다.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금수산에서 담아온 내 마음일쎄."
아내는 꽃다발을 받아들고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내는 물을 받은 유리컵에 꽃다발을 꽂아서 화장대 위에 올려 놓고는 한참을 들여다 본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나는 또 마음이 흐믓해진다. 아! 벌써 가을이 깊었네!
20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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