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지리산 종주-비내리는 천왕봉에서

林 山 2004. 8. 3. 10:18

7월 13일[토] 아침 8시경 일어나다. 3박 4일로 예정된 지리산맥 종주일정 중 둘째날이다. 밥을 지어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출발준비를 마치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비가 오지않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천왕봉을 향해 떠난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법천계곡을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귓가에 시원하다. 물이 참 맑고 깨끗하다. 순간 옷을 훌훌 벗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녹음이 우거진 산기슭에서는 이름모를 새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빨치산 아지트를 지난다. 안내판에는 북한 인민군을 '북괴군'이라고 지칭한 표현이 보인다. 북한 인민군을 '북괴군'이라고 한다면 저들은 국군을 '미국의 남한 괴뢰군'이라고 해서 '남괴군'이라고 하지않을까?

빨치산을 '공비'라고 표현한 부분도 그렇다. 그들은 엄연히 남노당의 유격부대인 남부군소속이다. 그런데도 공산주의 도적떼란 뜻의 '공비'란 표현은 어딘가 부적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지금은 남북한간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때가 아닌가! 우리가 진정 통일을 이루려면 반세기이상 지속되어온 적대와 반목을 화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바꿔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산리 계곡 칼바위에서

왼쪽부터 정구호 박사, 필자, 정두용 박사

 

칼바위를 지난다. 마치 장검처럼 날카롭게 각진 두 개의 바위가 삐쭉이 솟아있다. 칼바위를 지나면서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길은 계곡을 따라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길은 법계사를 거쳐 곧장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지리산맥 종주를 하려면 오른쪽길을 선택해야 한다.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르고 험한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배낭이 제법 무거운데다가 가파른 돌계단길을 오르려니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옷은 벌써 땀에 흠뻑 젖었다. 모자에서는 땀물이 연신 뚝뚝 떨어진다. 이 길은 벌써 여러 번째 오르건만 전망도 좋지않고 거기다 가파른 돌계단길이어서 별로 매력이 없다. 하지만 지리산맥 종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길을 가야만 한다. 우리네 인생길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살다보면 험한 고비길이 있게 마련이다. 험한 고비길을 넘었을 때 찾아오는 희열이야말로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그래 가자.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가지. 천왕봉이 제 아무리 높다 한들 한갓 하늘아래 뫼일 뿐이지 않은가!

 

*망바위에서

왼쪽은 정두용 박사

 

*망바위에서

왼쪽부터 정두용 박사, 필자, 정구호 박사

 

망바위에 올라선다. 전망이 매우 좋다. 연하봉에서 중산리를 향해 거침없이 치달려가는 능선이 장쾌하다. 법천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은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구름속에 잠긴 천왕봉이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 비가 오기 마련이다. 서둘러 천왕봉을 향해 길을 떠난다.

 

*지리산 운해 


한참 바위길을 더위잡아 일출봉에 오른다. 지도에는 그 이름이 나와 있지도 않지만 동쪽 벼랑끝에 누군가 한문으로 '일출봉'이라 새겨놓았다. 일출봉은 망바위보다도 전망이 더 뛰어나다. 거침없이 뻗어가는 산능선들과 깊은 계곡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본다. 이렇듯 천지자연은 의연한데 어찌하여 나는 홀로 백팔번뇌에 끄달리고 있는가! 일출봉에 서서 '산노을'이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본다.

먼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 산울림 내 마음 울리네
다가왔던 봉우리 물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을 '찡'하고 울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노랫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구름이 점점 더 몰려들고 있다. 아무래도 기어코 비가 오려나보다.

땀을 흘리며 바위길을 한참 올라 로터리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보았던 대피소의 모습은 간데 없고 산뜻하게 새로 지어져 있다. 민간인이 운영하던 대피소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인수하여 새로 지었다고 한다. 대피소 바로 위에 있는 샘물로 마른 목을 축인다.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목이 말라봐야 물이 귀한 것을 아는 법이다.

샘터에서 지척거리에는 또 법계사가 있다. 이 절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600m]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진흥왕 9년[548년]에 연기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법계사는 15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중산리에서 법계사까지 3.4km,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는 2km의 거리다. 그러니까 법계사는 중산리 등산로 입구에서 거의 3분의 2쯤 되는 지점에 있다. 그래서 법계사는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객들에게 좋은 쉼터역할을 한다.

법계사를 떠나 가파른 바윗길을 오를 무렵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히 비옷을 꺼내 입고나서 배낭이 젖지않게 덮개를 씌웠다. 비옷을 입은 채 산길을 오르려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방은 구름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서자 비로소 경사가 완만한 길이 나타난다. 천왕샘이 가깝다는 증거다.

천왕샘에 도착하니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먼저 와서 쉬고 있다. 표주박으로 물을 떠서 목을 축인다. 샘물이 참 달고 시원하다. 천왕샘은 바위틈바구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다. 지리산이 명산이라고 일컬음은 바로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샘물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천왕샘은 천왕봉을 오르기 전 마지막 쉼터다. 배낭을 벗어놓고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힌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천왕봉이 이제 바로 저기다. 가파른 바위너덜지대를 오르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밧줄을 잡아야만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다. 한바탕 땀을 흘린 뒤에 대원사로 가는 갈림길에 올라서자 모습을 드러내는 천왕봉! 마침내 천왕봉에 오른 것이다.

언제나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던 천왕봉 정상에 올라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얼마나 그리워 했던가 천왕봉! 그런 천왕봉과 반가운 해후를 한다. 천왕봉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봉우리다. 정상에는 1.5m 높이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앞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글씨를 새겨놓았다.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짙은 구름뿐, 궂은 비만 무심히 내린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찬 바람까지 불어온다. 날이 좋을 때 천왕봉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덕유산과 가야산, 서쪽으로 반야봉과 노고단, 남쪽으로 백운산과 남해바다, 동쪽으로 진주시가 다 바라다 보이는데 오늘은 영 운이 닿지를 않는다. 아쉽기 짝이 없다.

뒤쳐진 정구호 박사를 기다리느라 찬 비를 맞으며 한시간 가량 기다려야만 했다. 그 때 지리산 관리소 직원이 올라오더니 지리산일대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고 하면서 왔던 길로 도로 산을 내려가라고 한다. 그의 말에 정상에 있던 등산객들이 서둘러 산을 내려간다. 그러나 정두용 교수와 나는 비록 비가 오기는 하지만 산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여 정상에서 정박사를 기다리기로 한다.

지리산 관리소 직원까지 모두 다 산을 내려가고 정상에는 정교수와 나 둘만 우두커니 남았다. 점심때를 훨씬 지났지만 식량을 정박사가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쫄쫄 굶을 수 밖에 없다. 얼마후 정박사가 정상에 도착했다. 그를 잠시 쉬게 한 다음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하산하기로 한다.

통천문을 지나는데 철계단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통천문은 '하늘로 오르는 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꾸로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통천문은 수직암굴로 되어 있어 사다리가 없으면 지나다닐 수가 없다.

통천문을 지나서 바로 아래 가파른 비탈길에 놓인 철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구름이 활짝 걷히더니 뭉게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이 나타난다. 이 무슨 자연의 조화런가! 언제였던가 싶게 구름은 한순간에 물러나고 사방으로 치닫는 지리산맥의 산줄기와 계곡들이 눈에 콱 박히듯 들어온다. 이런 장관을 보여주려고 구름은 그렇게 지리산을 감추었나보다.

법천계곡에서 일어난 안개가 골바람을 타고 보여주는 운무가 현란하면서도 기기묘묘하다. 모두들 눈앞에 전개되는 운무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함께 가던 서너명의 사진작가들도 셔터를 눌러대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운무는 처음 본다. 아까 지리산 관리소 직원의 말을 듣고 산을 내려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분개를 할까? 호우주의보가 내렸으면 가까운 장터목 대피소로 대피를 시키는 것이 마땅하거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제석봉[1806m]에 올라서도 운무는 계속된다. 모자를 날릴 듯한 바람을 타고 운무는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면서 칠선계곡쪽으로 날려간다. 제석봉은 천왕봉, 중봉에 이어 지리산에서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는 옛날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제석봉은 10여만평에 이르는 구상나무 고사목지대로 유명하다. 앙상한 가지를 남긴 채 듬성듬성 서 있는 고사목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을 연출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구상나무는 수난의 우리 민족사를 묵묵히 지켜 보았으리라.

오후 4시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호우주의보 때문인지 산행객들이 별로 없다. 대피소에 배낭을 들여놓고 밥을 지어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대피소로 들어가 침낭을 펴고 휴식을 취한다. 오늘 산행은 비록 비를 흠뻑 맞기는 했지만 멋진 운무를 보았으니 그 보상은 충분히 받은 셈이다. 내일 산행이 기다려진다. 내일은 연하천까지 갈 예정이다. 맑은 날씨를 기대해 본다.

 

2002.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