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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난 여행(1)-대천해수욕장

林 山 2004. 8. 26. 20:20

2003년 2월 13일. 장 백 화백과 바다를 본다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없이 차를 몰고 충주를 떠나왔다.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역마살이 다시 도진 것이다. 문득 서해안으로 해서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까지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장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여행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다는 목적도 있으리라. 여행이 끝나고 나서 장화백의 화폭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이번 '바다로 떠난 여행'은 대천 앞바다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음성과 증평을 거쳐 청주를 지난다. 멀고 가까운 산기슭에는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이제 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충북과 충남의 도계가 되는 다리를 건너면 조치원이다. 조치원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공주로 향한다. 군 헬리콥터 기지가 왼쪽으로 보인다. 헬리콥터 두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어디론지 날아간다.

공주 신시가지를 지나 금강변을 따라서 달린다. 강건너 공산성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공산성은 벚꽃이 필 무렵에 오면 아주 낭만적이다. 70년대 후반 대학에 다닐 때 두어 번 와본 적이 있다. 그 때 공산성 앞 백사장에서 자라를 한 마리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곰나루를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재를 넘는다.

공주를 지나면 바로 청양이다. 칠갑산이 저만치 바라다 보인다. 칠갑산을 오르는 재를 넘을 때는 '칠갑산'이란 노래가 절로 나온다. 장화백과 함께 '칠갑산'이란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 본다. 지금은 칠갑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렸다. 전에 못보던 터널이다. 원래는 고개를 넘으려고 했는데 아차하다가 그만 터널로 들어가고 말았다.

터널을 빠져나와 넓다란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칠갑산을 감상한다. 바로 앞에 있는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칠갑산 정상이다. 이리저리 뻗은 능선이 사방팔방으로 치달려 나간다. 충북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한 대 와서 멎는다. 두 젊은 부부가 탔는데 아마 우리처럼 여행중인가보다.

보령에 사는 최백순씨와 통화가 되어 시내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웹디자이너인 최백순씨는 인터넷 웹진 '진보누리'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의 추천으로 나는 '진보누리'에 '임종헌의 삶과 산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보령시내에서 최백순씨와 전기웅,박태석씨를 만났다. 전기웅씨와 박태석씨는 보령화력발전소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최백순씨의 소개로 그들과 반갑게 수인사를 나눈다. 보령은 와본 지 10년도 더 된 것 같다. 그것도 대천해수욕장엘 가느라고 지나쳐 버린 곳이다. 모든 것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다.

 

▲ 대천 앞바다에서.왼쪽부터 최백순씨,필자,박태석씨,장백 화백
ⓒ2003 임종헌


모두 함께 내 차를 타고 대천 앞바다로 나갔다. 마침 해가 서서히 바다밑으로 가라않고 있었다. 해가 떠 있는 곳에서 내가 서 있는 곳까지는 석양이 바다물결에 반사되어 마치 금비단을 펼쳐놓은 듯 눈이 부시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낙조를 배경으로 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들이 그림같다. 서해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여행을 떠나오기를 참 잘했다.

황혼의 바다를 배경으로 백사장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백사장이 참 드넓다. 바다에 지는 해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다본다. 얼마만에 보는 바다던가! 어릴 적에는 돛단배를 타고 오대양을 누비는 꿈을 꾸었었는데..... 낙조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는다. 황혼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음에 틀림없다. 해가 수평선에서 한뼘 가량 떠 있을 때 백사장을 떠난다.

최백순씨의 안내로 바닷가에 있는 '황해횟집'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대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럭회를 안주로 곡차례를 가졌다. 반찬도 갖가지로 많이 나오고 회도 신선하다. 최백순씨와 소주를 주고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그의 부인도 참석을 하였다. 이미지가 스마트하면서도 상당한 미인이다. 그녀는 보령의 주간신문사에서 편집일을 맡아보고 있다고 하는데, 뛰어난 미모에 걸맞게 주량도 상당하였다.

여기서 평소 내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최백순씨가 '진보누리'에서 아이디를 '개골목'으로 정한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가 다니던 대학교 앞이 바로 술집골목이었단다. 그 골목에서는 누구나 한 번 쯤은 술에 취해서 '개'가 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런 역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디를 '개골목'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 대천 앞바다에서.왼쪽부터 최백순씨,필자,박태석씨,전기웅씨.
ⓒ2003 임종헌

 

한밤이 이슥해서야 횟집을 나왔다. 전기웅씨와 박태석씨는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최백순씨 부부와 함께 숙소인 '하얀쉼터'로 갔다. 백사장 거의 끝자락에 있는 모텔이다.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고 파도소리까지 들리는 듯 한 전망이 좋은 곳이다. 대천에서 유일하게 성수기에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곳이라고 최백순씨의 칭찬이 자자하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숙소에서 두번째 곡차례를 가졌다. 최백순씨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겠다. 그의 부인이 너무 늦었다면서 자리를 파하자는 제안을 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아쉬운 작별을 할 시간이다. 그들 부부를 떠나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최백순씨 부부의 따뜻한 환대에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다음 행선지는 군산 앞바다다.

2003.2.13. 대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