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립의 내전, 시급한 민주 시민 교육 길찾기 - 배이상헌
얼마 전 광주의 A 고등학교 축제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고 있는 극우 유튜버의 축사가 진행된 사실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또 광주의 B고등학교와 C중학교의 축제에서 유튜브 영상 나락퀴즈를 모방하여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퀴즈가 전체 학생에게 발표된 사실도 함께 소개되었다.
<신남성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는 극우 유튜버는 5.18 희생자 관련 왜곡, 폄훼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로 ‘가짜 5·18유공자론’을 주장하며 광주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니 이를 전해들은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염려할 만도 하다. 실제로 많은 민원이 학교랑 교육청에 쏟아졌고 해당 학교는 공식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상황까지 갔다고 한다.
이 사건을 어쩌다 발생한 해프닝처럼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발생한 일이니 더욱 놀랍지만, 이런 일은 전국 어느 곳이나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광주가 아니라서 드러나지 않고 저변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더욱 걱정할 일이다. 가십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십거리로 삼고 넘어갈 일 또한 결코 아닌 것이다.
2월15일 광주 금남로에선 탄핵찬성과 반대가 대립한 채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고, 전국의 언론이 광주 집회를 조명했다. 집회 참가 규모는 언론사의 입맛대로 약간씩 다르게 전해지지만 어떻든 양쪽 다 ‘1~3만’의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로 이날의 집회기억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결코 작지 않을 듯하다. 반대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상당수는 외지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일 금남로와 충장로를 무리지어 행진하면서 선교하듯이 탄핵반대를 외쳤다.
많은 이들은 탄핵정국이 끝나고 혹은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때도 이런 대립의 정치형세가 끝나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염려한다. 즉 윤석열의 탄핵 여부를 넘어서 이렇듯 부정선거론에 몰입된 폐쇄적 정치세력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한다. 그것의 극단적 돌출 형태는 1.19 법원청사 파괴세력들이고 지속적인 일상 형태는 대형교회나 일부 기독교세력과 연결된 극단적 배타 혐오세력들이다. 이들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차별금지법’이 20여년이 다 되도록 삽을 뜨지 못하는 것에서 헤아려진다.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을 부단히 고민한 처지에서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위태롭게 비친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대립구조가 일시적 정치현상이 아닌 대한민국의 고정적 정치지형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즉 박정희-전두환 이래 파시즘 세력의 주류들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상층 기득권 엘리트들의 담합구조를 넘어서서 지역정당적 뿌리와 극우파시즘 추종의 대중운동을 장착한 견고한 구조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우파들이 낙태반대와 동성애반대 등을 앞세워 대중운동에 다가갈 때, 그것의 전개는 공교육 학교의 교육과정과 진보교육운동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대립하는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파시즘 기득권 카르텔이 우파 대중운동과 연결되고 확산되는 과정은 이념, 세대, 성, 인종 갈라치기와 순혈주의를 앞세운 혐오 정치를 심화하고 정당화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것의 일차적 표적은 다름 아닌 공교육 학교일 텐데, 문제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수차례의 교육개혁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 교육기본법 제2조가 밝히고 있는 공교육의 목표이자 존재이유로서 <민주시민교육>이 여전히 미숙하고 가장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교육감직선제 시대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학교혁신운동이 활발했지만 수업혁신이나 교육과정혁신 등에서 그 성과들이 보고되는 것과 달리 생활교육혁신이나 학생자치·정치교육에선 갈 길을 못 찾고 있고 관심 또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극우세력 또는 우파 대중운동이 표적으로 삼는 흔한 목표물은 통상 공교육의 교육과정으로서 교과서 또는 교사의 수업이었다. 이념대립이 극심해지는 현실에서 교과서나 교사의 수업을 목표물로 삼아 희생물을 만드는 일은 이미 전국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더욱 확산되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공격은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내부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학생들 스스로가 단편적 논리에 치우쳐 극단화된 인터넷 공간에 영향 받으며 협소한 이념적 편견으로 교사와 학교, 교과서를 재단하고 공격하는데, 이것은 학생·학부모의 참여주권이 발휘된 학교자치방식의 해결보다는 입시교육체제에 상응하는 소비자 주권과 그에 따른 민원처리방식으로 해결의 길을 찾는다. 이제 ‘선생님에게 물어보자~.’라는 식의 정답 찾기는 옛말일 뿐이다. 오히려 교사의 말을 꼬투리 삼고 직접적인 질의응답보다는 자신들의 인터넷 공간에서 답을 찾고 규정하면서 교사와 교과서를 공격하는 방식이 훨씬 현명하며 수월하다고 평가된다. 학생들은 침묵한다. 교사는 답하고 평가받을 뿐이다. 세상의 축소판 같은 다양성의 교실에서 각각의 다양한 의견들이 소통되고 공론을 찾는 교육개혁이나 학교혁신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념대립이 격화되는 현실에서 공교육의 민주시민교육 역량을 제고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학교는 하늘에서 삶의 정답을 내려 보내주는 통로가 아니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으로서 보통사람들의 다양하고 극단적인 생각들을 소통하고 스스로 조율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옹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집단 정치력을 체험하고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시민교육이고 그것이 학교의 존재이유임은 어느 정파의 주장이 아니고 1949년 대한민국 제헌국회의 최초 교육법이 교육목표로 제시한 내용(‘공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이다.
현실의 이념대립은 교육기본법이 공교육의 목표로 규정한 ‘민주시민양성’조차 이념적 언어로 공격하고 배척하는 지경이다.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이 명시한 ‘민주시민교육’을 정치적 파당의 언어라고 공격하면서 그것 대신 ‘인성교육’을 교육정책의 기본가치로 표현하는 무모하고 허황된 대립구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오해는 우파만의 문제가 아니며 진보적 이념이나 가치의 전파라고 생각하는 진보진영의 오해 역시 만만치 않은 방해물일 것이다. 특히 2010년 이후 민주시민교육은 진보진영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느낌이기도 하다. 개념이나 실천 방도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판에 박은 텍스트를 옮기고 또 옮기며 변주하는 혁신교육의 아이템으로 위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자치(정치,운동)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학생을 대상화하는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의 학교는 200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매주 학급회의도 사라진 채 학생자치는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어른들의 민주화와 인권의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을 대상화 하는 것은 민주주의로 치장된 또 다른 노예교육이다. 민주시민은 머리에 주입된 언어로 양성되지 않으며 민주시민교육은 학교사회의 집단적 시민정치활동을 통해 지·정·의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인간의 변화이다.
입시교육으로 전도된 공교육이 민주시민 양성의 터로 변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다양한 자치활동이 활성화되고 집단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이 학생에게 주어져야 한다. 관료적 교육행정의 말단조직 학교의 관리대상으로서 학생이 아닌 학교자치의 토대 위에 자연스레 작동하는 ‘학생사회’의 정치적 주체로서, 학교 공간에서의 삶의 방식과 배움의 방식에 대한 학생회의 결정권 행사를 위해 다양한 학생집단들이 서로 경쟁하고 토론하는 학교사회의 정치과정에서 민주시민은 탄생한다. 교사는 학교사회의 정치 규칙을 지원하고 합리적으로 발전하게끔 기여하는 존재이다.
학교 학생사회의 체험은 시민의 삶과 성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학교공간에서의 삶 체험과 정치 체험이 곧 민주시민 체험일 것이다. 현실의 학교는 삶도 정치도 없다. 학원이거나 고시원처럼 개별 학생의 실력양성만 외칠 뿐 학생사회의 성장에 대한 고민은 전혀 문외한인 것이 현실의 학교이다.
진보적 이념과 가치를 전달하는 대상으로 학생을 바라보는 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이 아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1976년 통일 전 서독에서 합의한 정치교육의 원칙. ▷교화주입금지 ▷논쟁 재현 ▷학습자 이해 관계 고려 등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을 소개하며 토의, 토론의 활성화를 말하지만, 민주시민양성을 위해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은 학생의 참여권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학생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 학교의 시민질서를 뒤집는 일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구호와 퍼포먼스만 있을 뿐 시민도 정치도 부재한 한국의 학교현실에서 극우적 이념대립과 갈등은 학교를 더욱 짓밟을 것이고 학교는 이념전쟁의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인권과 참여, 평등의 아름다운 가치들을 계몽적 구호나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는 민주시민교육 퍼포먼스는 이제 그만 멈추자. 학생시민이 민주적 삶을 체험하는 공간으로서의 배움터,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공교육이다.
글쓴이 배이상헌 광주교육연구소 소장
원문 https://playgwangju.co.kr/bbs/board.php?bo_table=vodgallery&wr_id=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