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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긁게 살다 간 남로당 마지막 지도자 김삼룡 - 엄정면지

林 山 2021. 9. 30. 22:48

본관 : 경주(慶州)

 

1910년 4월 9일~1950년 6월 28일 

본적 :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 470

출생 및 생장지 : 상 동

부 용서와 모 전운계 사이에 6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학력(學歷)

 

1928년 엄정초등학교 제10회 졸업

 

경력(經歷)

 

남조선 노동당 최고 책임자

 

가족사항

 

처 이순금(또는 옥숙)과 사이에 3녀(경애, 영애, 해산)를 두다.

현재 북한에 거주하다.

호적에는 이승렬(1916년 5월 17일생. 충남 아산군 인주면 밀두리 242번지 호주 이병남으로 부 이종학과 모 김씨로 되어 있음)로 되어 있으며 김삼룡과 1945년 8월 7일 혼인신고일로 등재됨.

이승렬(李承烈)이 본명이며 좌익 활동 시 순금으로 가명을 사용하였고, 지금 북한에서는 리옥숙으로 사용하고 있음.

 

부친을 일찍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큰형(쌍룡)은 담배농사를, 작은형(복룡)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선원으로 가계를 꾸려 나갔다. 

집은 현 엄정농협과 오성식당, 미곡상, 모정식당으로 꽤 넓은 터였다.

13세(1922년)에 엄정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여 19세로 졸업을 했다. 당시는 만학이 보통이었다. 천석꾼의 자제인 동창생 이효승, 이희승도 같은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학교를 다녔다.

1학년 때 민족주의자인 이형재(李亨栽) 선생을 만나 지주와 소작인, 양반과 상놈, 일제의 수탈에 저항의식을 느껴, 1928년 3월 졸업 후 바로 선생을 따라 서울 효자동에 있는 고학생 자활단체인 칼토페(고학당)에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흥미를 갖고 좌익 문헌을 섭렵했다.

당시 좌익 서적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범죄 행위로 배재고등학교 김병선과 독서회를 조직한 것이 문제가 되어 1930년 1월 서대문경찰서 에 검거되어,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첫 복역을 하게 된다. 형무소 수감 중 학도들의 동경의 대상인 유명 혁명가인 이재유를 만나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출소 후 엄정으로 내려와 형의 농사일을 돌봤다. 당시에 일본 순사들은 감시가 심했다. 엄정 주재소와는 50여 미터 거리이라 행동의 부자유를 느껴 4개월 후 인천 부두의 하역 인부로 취직했다가, 1936년 12월 15일 이재유가 체포되자 다시 귀향을 했다.

1939년 1월 이관술이 누이동생(순금, 후일 김삼룡과 결혼)과 함께 엄정으로 내려와 조직책임을 맡겨 상경하여 경성방직, 용산철도공작소 등에서 노동조합의 세포 조직을 복구하며 조직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40년 12월 일제에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8.15 해방 다음날 출감했다. 박헌영과 만나 옛 경성콤 동지들을 모아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중앙당 조직국의 부책임자 겸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아 조직의 명수로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1946년 2월 조선공산당을 대표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 대의원을 지냈으며, 11월 남조선 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46년 박헌영이 월북하자 남조선 노동당을 책임 지도하다가 1950년 3월 27일 아현동 은신처에서 체포되었다. 6.25 개시 직전 북한은 김삼룡, 이주하와 조만식을 교환하자고 제의하기도 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6.25 직후 이주하와 함께 사형(남산 또는 한강 백사장)당했다.

사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조선 혁명가 반열에 올려주고 조국통일상(1990년)과 공화국 영웅 칭호(1993년)를 수여했으며, 묘비는 평양시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다. 

 

내가 본 김삼룡

 

이효승(1910년생 초등학교 동창, 엄정면장, 초대 도의원) 

 

"나와는 1, 2등을 다퉜지. 삼룡이 그놈 키는 작고 땅땅했지만 공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거든. 두뇌가 아주 명석하고 한곳에 집착력이 강했고 우직할 정도로 뚝심이 있었어."

 

우병훈(1919년생, 신명학원 이사장, 엄정면장, 2대 도의원)

 

"형무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창백한데도 담배 잎을 한 지게 잔뜩 지고 가다 넘어졌는데 주섬주섬 담아 다시 지고 가는 것을 보았지. 집념이 대단한 선배였어."

 

김삼룡 처 리옥숙 수기

 

"1950년 6.25 전쟁 때 김일성 주석이 직접 차를 보내 나와 세 딸을 월북시키고 최고 사령부 근처에서 살도록 해주었다. 

김 주석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93년 1월 나와 세 딸을 초대하여 오찬을 베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주석은 1990년 남편의 80회 생일상을 보내줬으며, 나의 70돌과 80돌 생일상도 선물했다. 현재 평양시 중구역에 살고 있으며 세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정권기관의 주요 직책에 근무하고 있다. 

나는 충남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서 태어나 지금 나이가 90세이다.

 

편집자 후기

 

6.25의 상흔이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나 2000년 6월 13일~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하며 화해 무드를 조성하였다.

대립의 각을 세운 주의와 이념도 평화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봄 눈 녹듯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남로당의 마지막 지도자로 전국을 풍미하던 시대의 풍운아가 바로 엄정 출신이기에 미화할 것도 폄하할 것도 없이 각종 문헌을 참고로 하여 40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 그에 대한 족적을 더듬어 보았다.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했지만, 이제는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게 중론임을 첨언하며, 기재된 내용은 이미 언론에 공표된 내용을 정리하였음도 밝혀 둔다. 

 

2008년 3월 엄정면지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