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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23) 한서 남궁억을 왜곡하다(2) : 사상의 조작 - 조현래

林 山 2020. 9. 15. 15:02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조현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 이 주장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박정희 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조현래는 주장한다.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林 山>

 

<사진1> 태극기와 무궁화(경기도)

​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23)] 한서 남궁억을 왜곡하다(2); 사상의 조작(한서 남궁억은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 

 

 

[두 얼굴의 무궁화] 남궁억의 애국사상을 접한 홍천 모곡리 일원의 일부 기독교 감리교계 목사와 신자들은 1933년 4월 하순 '공존공영의 지상천국 건설'을 목표로 십자가당을 결성했다. 십자가당 결성 직후 점조직을 통해 비밀리에 신규 위원을 늘려 나가고 있던 중*미주156) 11월 4일 홍천 주재소 일본 경찰들이 남궁억과 그 주변 인사들을 체포하여 심문하였다. (p.200)

 

*미주156) 1930년 7월 22일 京城高秘 제5006호 문서제목 共産黨員 保釋出獄者 病死에 관한 건 남궁억 선생을 공산당원으로 분류 (p.406)

 

 

 

[두 얼굴의 무궁화] 필자가 입수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1930년 7월 22일 경성 본정(本町, 중구) 경찰서장이 경성지방법원 검사정(檢事正, 검사장)에게 보낸 비밀문건(京本高秘) 제5006호 문서제목 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은 남궁억 선생을 공산당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p.200) 

 

 

 

[두 얼굴의 무궁화] 1939년 4월 20일 강원도 경찰부장이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에 보낸 비밀문건(강원비 제826호)*미주159)에 따르면 남궁억 남천우 이윤석은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이었고, 유자훈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십자가당은 기독교,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3가지 상호 이질적인 종교와 사상을 기독교의 삼위일체식으로 합일시켜 '공존공영의 천국'을 지상에 건설하고자 했다. 이들은 이러한 3가지 사상을 융화시켜 일본제국주의에서 한민족을 해방시키고 기독교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종교운동가 사회개혁가로 남감리교를 통일한 요한 웨슬레,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한 레닌 등을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로 꼽았다. (p.208)

 

*미주159) *경성지방검사국 문서 소화 13년 1939년 12월 23일 강원도 치안상황보고서 사상에 관한 정보철 제7책 사상에 관한 정보(도경찰부장) 문서번호 : 江源道秘 제826호. 문서제목: 춘천중학교 맹휴배후관계사건에 관한 건(상록회, 무명그룹), 발신자: 강원도경찰부장, 수진자: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발신일 1939년 04월 20일. (p.407) 

  

 

 

《fact check(1) : 남궁억 선생이 공산당원으로 분류한 문헌이 있다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진2> 경성본정경찰서장,'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 경본고비( 京本高秘) 제5006호(1930.7.22.)

  

▷ 경성본정경찰서장이 작성한 경본고비(京本高秘) 제5006호(1930.7.22.)에 남궁억 선생을 공산주의자로 분류하였다고?

 

-경성본정경찰서장,「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 경본고비(京本高秘) 제5006호(1930.7.22.)는 <사진2>의 자료이다.

-이 문서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료로 '국사편찬위원회'가 홈페이지(http://www.history.go.kr)에 게시하고 있는 자료이다. 

-독립운동가 송무영이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벌이다 체포된 후 폐결핵에 걸려 보석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경성본정경찰서장이 단순 보고하는 내용이다.

-여기 문서 어디에 남궁억 선생을 공산주의자로 언급한 내용이 있는가? 공산주의자는 커녕 남궁억의 '南'도 없다! 

  

《참고(1)『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필자가 입수" 운운하고 있으나, 개뿔!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는 자료이고 누구나 볼 수 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헌을 마치 자기가 독자적으로 입수한 듯한 뉘앙스로 글을 적고서는 같은 페이지 안에서 한번은 미주(尾註)로 사용하고 또 한번은 본문에 게재하고 있다. 도대체 "주제가 주제인 만큼 학술논문보다 깊고 정확하게 쓰려고 애썼다"(p.20)고?! 도대체 어떤 학술논문이 이 따위 장난질을 한단 말인가? 

 

《참고(2)송무영(1896~1930)은 평안남도 평양 대찰리 출생으로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군관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8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간부로 선임되었고 1929년 국내에 잠입해 일제에 맞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서 예심을 받다가 폐결핵에 걸려 보석으로 석방되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지만, 1930년 7월 22일에 35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공산주의자였으나 동시에 민족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에 애족장을 추서했다.

 

<사진3> 경성본정경찰서장,'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 경본고비( 京本高秘) 제5006호(1930.7.22.)

▷ 경본고비(京本高秘) 제5006호(1930.7.22.)를 안내하는 홈페이지 화면자료가 남궁억 선생이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뜻한다고?!

 

-국사편찬위원회는 「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이라는 자료가 일본어로 된 문서이기 때문에, 해당 문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 설명하고 있다(사진3 참조). 

-이 화면에서 상단에 있는 원문 이미지를 누르면 <사진2>에 게재된 문헌을 볼 수 있다.

-이 화면 하단부에 색인어로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에 남궁억(南宮億)이 기재되어 있다.

-「공산당원 보석출옥자 병사에 관한 건」은 <사진2>가 문서의 전부이므로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가 남궁억 선생을 공산주의자 운운하는 것은 저 색인어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색인어에는 안재홍, 송진우, 김병로, 안희제 등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족주의자의 이름이 같이 보인다.

-심지어 색인어에는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간 친일파 최린의 이름도 보인다.

-저 화면을 근거로 남궁억 선생이 공산주의자로 분류된 것이라면 안재홍, 송진우, 김병로 및 안희제도 공산주의자로 분류된 것이며 심지어 최린도 공산주의자인 셈이다.

-그 색인어는 일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가 연구 목적으로 임의로 부여한 것이다(아마도 1930년도 독립운동사를 개괄하는 자료로 활용하거나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주제 예컨대 재판제도의 연구 등을 위한 것으로 추론된다). 

-독립운동사의 기초도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인가?

 

 

《fact check(2)  남궁억 선생이 민족적 사회주의자?!- 전혀 실이 아니다.

 

<사진4> 강원도경찰서장, ' 춘천중학교 맹휴배후관계사건에 관한 건(상록회, 무명그룹)', 강원비(江源秘) 제826호

▷1939년의 강원비 제826호 문건도 남궁억 선생을 공산주의자(또는 사회주의자)로 언급하지도 그렇게 분류하지도 않았다!.

 

-강원비 제826호 「춘천중학교 맹휴배후관계사건에 관한 건(상록회, 무명그룹)」이라는 문건은 춘천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일제에 반대하며 동맹휴학 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배후 조직으로 상록회라는 그룹을 지명하고 상록회 멤버를 검거한 내용을 보고한 것이다.

-상록회는 남궁태 등이 조직한 것으로 강원도경찰서장이 작성한 문건의 내용 전체에 남궁억 선생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역시 오로지 국사편찬위원회의 색인어에 남궁억(南宮億) 선생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 전부이다.

-이를 이유로 남궁억 선생이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로 분류된 것이라면, 같이 이름이 올라간 이광수와 최남선도 공산주의자인 셈이다.

-심지어 이 색인어에는 단군, 나폴레옹, 장개석과 손문도 있는데, 이들 모두가 공산주의자로 분류되거나 공산주의자였단 말인가?

 

<사진5> 경성지방법원검사국, '치안상황(1938, 강원도)', 1938.12.23. 편철

 

<사진6> 경성지방법원검사국, '치안상황(1938, 강원도)', 1938.12.23. 편철

『치안상황(1938, 강원도)』이라는 문건에도 남궁억 선생을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로 언급하지도 그렇게 분류하지도 않았다!.

 

-『두 얼굴의 무궁화』, p.407에서 *미주159)로 기록된 경성지방법원검사국, 『치안상황(1938, 강원도)』, 1938.12.23. 편철 자료는 <사진4>에서 소개한 강원도경찰서장, 「춘천중학교 맹휴배후관계사건에 관한 건(상록회, 무명그룹)」, 강원비(江源秘) 제826호(1939.4.20.)와는 작성 주체도 작성 날짜도 다른 별개의 문서이다(사진5와 사진6 참조).

-『치안상황(1938, 강원도)』은 경성지방법원검사국에서 1938.12.23.에 강원도 지역의 치안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불온불순한 강원도 지역 독립운동의 각 흐름을 취합하여 분석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치안상황(1938, 강원도)』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 세력은 '민족운동',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 세력은 '사회주의운동-공산주의운동'을 별도로 분리하여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사진5 참조).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창가와 무궁화 재배 등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 사건은 '민족운동'으로 분류되어 전체 9페이지 중 p.8에 그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사진6의 왼쪽 참조).

-반면에 유자훈이 주도가 된 십자가당 사건은 '사회주의운동-공산주의운동'으로 분류되어 전체 23페이지 중 p.16에 그 내용이 별도로 정리되어 있다(사진6의 오른쪽 참조).

-『치안상황(1938, 강원도)』그 어디에도 남궁억 선생을 사회주의자나 기독교적인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십자가당의 일원으로 정리하고 있지 않다.

-『치안상황(1938, 강원도)』중 '민족운동', p.8은 남궁억 선생을 구속하고 탄압했던 일을 '무궁화재배사건'으로 명명하여 그 실체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사진6의 왼쪽 참조).

 

▷남궁억 선생이 '기독교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가졌다고 운운한『두 얼굴의 무궁화』의 출처는 어디일까?

 

 

의의와 평가

 

남천우와 이윤석은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이었고, 유자훈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십자가당은 기독교,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3가지 상호 이질적인 종교와 사상을 기독교의 삼위일체식으로 합일시켜 ‘공존공영의 천국’을 지상에 건설하고자 했다. 이들은 이러한 3가지 사상을 융화시켜 일본제국주의에서 한민족을 해방시키고 기독교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종교운동가 겸 사회개혁가로서 남감리교를 통일한 요한 웨슬레,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한 레닌 등을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로 꼽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십자가당사건(十字架黨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위 글은 '네이버지식백과'에서『한민족대백과사전』에 실린 '십자가당사건'을 소개하는 내용 중에 있는 하나의 부분이다.

-위 글은『두 얼굴의 무궁화』. p.208에 실린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 즉, 『두 얼굴의 무궁화』, p.208의 글은 '네이버지식백과'의 글을 베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두 얼굴의 무궁화』. p.208에는 위 글에 없는 내용으로, "1939년 4월 20일 강원도 경찰부장이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에 보낸 비밀문건(강원비 제826호)*미주159)에 따르면"이라는 문구와 '남궁억'이라는 이름이 추가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강원비 제826호 문건에 남궁억 선생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단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삽입한 색인어에 이름이 있을 뿐이라는 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네이버지식백과'에서 제공하는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십자가당사건'에는 직접적 구성원으로 남궁억 선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얼굴의 무궁화』. p.208은 남궁억 선생의 독립운동에서 '무궁화재배사건'을 제외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십자가당사건'에 남궁억 선생의 이름을 삽입한 것이다.

-이것이 왜곡과 날조가 아니라면 무엇을 달리 왜곡과 날조라고 하겠는가?

《결론 : 왜곡과 날조! 

 

남궁억 선생은 애국계몽운동의 토대 위에서 비타협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였을 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남궁억 선생은 무궁화 창가와 무궁화 재배 그리고 조선화(朝鮮話)의 저술 등을 통해 모곡중학교의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보안법 위반으로 피소되었다.

-남궁억 선생을 무궁화 재배 등의 이유만으로 탄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일제는 조사과정에서 입수한 김복동의 일기장을 이유로 하여 '십자가당'이라는 조직운동으로 비화하여 탄압을 확대한 것이 사건의 실체이다.

-일제는 유자훈 등을 '십자가당사건'으로 탄압을 확대하면서 남궁억 선생의 연관 여부를 조사했으나 그 내용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궁억 선생은 보안법위반, 유자훈 등은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서로 다른 죄명으로 기소하고 재판하였다(이에 대해서는 ['두 얼굴의 무궁화'에 대한 비판(22)] 중  <사진3> 검사의 '예비심사청구서' 참조).

   

▷왜곡과 조작 그리고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두 얼굴의 무궁화』는 남궁억 선생의 독립운동에서 무궁화를 제거하기 위하여 엉뚱한 서류의 내용을 왜곡하여 남궁억 선생을 공산주의자 또는 (민족) 사회주의자로 둔갑시켰다.

-『두 얼굴의 무궁화』에 따르면 무궁화는 일본의 혼네(本音)의 꽃이자 일제가 헌병과 관헌을 시켜 암암리(몰래)에 심기까지 한 꽃이다. 그런데 '남궁억, 겉으론 무궁화 보급, 속으론 비밀결사 독립운동'(p,195)이라고 하여 마치 남궁억 선생이 그러한 꽃을 식재하여 일제의 정책에 협조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남궁억 선생은 비밀결사운동(십자가당)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처음도 끝도 무궁화를 가르쳤고, 무궁화를 통해 민족이 단결하고 독립하여야 함을 깨우치고자 했다.

-일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다.

 

-그러한 남궁억 선생을 일제의 협조자(!)로 둔갑시키는 것은 논리조작과 사실 왜곡을 넘어 명백한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