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최기종 시집 '만나자' - 시로 읽는 한국 현대사

林 山 2024. 10. 18. 11:35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발칸 여행에서 돌아오니 새로 나온 최기종 시인의 8번째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 10. 8)가 우편으로 날아와 있었다. 겉봉투 주소란에 적혀 있는 '최기종'이라는 이름부터 반갑게 다가왔다.  

최기종 시인

 

최기종 시인은 1989년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부르짖으며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동지이기도 하다. 또, 최 시인은 노태우 군부독재정권이 자행한 국가 폭력과 인권 탄압으로 대량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이 결성한 교육민주화동지회(교민동)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민동에서 미디어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최 시인과 동지적 교류를 하고 있는 사이기에 그의 시집 상재가 더없이 반갑고 기쁘다.     

'만나자'라는 시집 제목부터 묵직하게 다가온다. '만나자'는 남북통일과 5월광주, 제주 4·3과 여순사건, 대구항쟁과 촛불혁명, 이태원·세월호 참사 등 방대한 역사가 한 권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는 음지에 가려진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정면으로 응시한 최 시인의 결기가 거침없이 드러나 있다. 그만큼 시인은 오늘의 현실을 절박하게 바라보고 있다.  

'만나자'를 두고 최기종 시인은 "한반도 비하인드 근현대사가 펼쳐지는 듯하다. 동학년에서 기미년으로 그리고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던 인걸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렸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거대 담론이 흘러들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화도 성토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물론 당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시들이다."라고 전제하고, "시가 언어의 묘미나 비유적 수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시적 아님을 드러내면서 거칠고 투박한 것들도 분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문학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집 '만나자' 표지

 

만나자
일 없어도 만나자
좋은 사람 좋은 사람끼리 
그리운 사람 그리운 사람끼리
못내 만나서 그날이 되어 보자

만나자
어느 때라도 만나자
추석도 설일도 단오도 좋다
봄꽃처럼 북상하며 만나자
단풍처럼 남하하며 만나자

만나자
톡 까놓고 만나자
그러면 아픈 사랑 피어나겠지
척진 사랑도 맺힌 사랑도 풀어지겠지
못내 두근두근 없는 사랑도 생겨나겠지

만나자
어디에서라도 만나자
서울도 좋다 평양도 좋다
동파랑도 졸다 서파랑도 좋다
기미년의 아, 조선의 자주민으로 만나자

- 시 '만나자' -

KBC광주방송의 박준수 기자는 '만나자'에 대해 "'통일하자'는 마땅한 그 말이 더 이상 당위로 실감되지 않는 현실을 시인은 '내미는 손'과 '던지는 돌'을 통해 환기시킵니다. 이러한 어조와 어법으로 시인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노래합니다. 차츰 잊히는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을 북돋고 해방 이후 대구항쟁에서 제주 4·3, 여순사건으로 이어진 민중들의 아픔과 여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줍니다. 2부 '광주를 노래하다'에서는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죽은 자 중심에서 산 자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와 이태원의 비극, 팔레스타인과 미얀마의 비극을 저항의 연대로 풀어냅니다. 역사 왜곡 문제가 파다한 요즈음 대한민국 현대사를 직시하고 그 방향을 숙고하고 제시해 내는 최기종의 이번 시집은 수천 쪽의 역사서를 한 권으로 담아낸 축약서이자 주목할 만한 가집(歌集)이라 할 만합니다. 미사여구 대신 평범한 언어가 자아내는 절실한 현실은 상황 그 자체로 독자의 마음을 일깨웁니다."라고 보도했다.   

통일하자는
그 절절한 말이 다가오지 않는다
통일하자고
너무 오래 소원하다 보니
이젠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통일하자는
그 마땅한 말이 왜 이럴까
통일하자고
내미는 손의 온도가 달라서 그러는가
던지는 돌의 무게가 적어서 그러는가

- 시 '그래도 통일이다'에서 -

권순긍 교수는 해설에서 "최기종 시인의 언어는 구수하고 인정이 넘치지만 메시지는 명쾌하고 시어의 전개는 거침이 없다. 그의 시도 그렇게 내지르는 힘이 있다. 세련된 기교보다도 '역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두드러진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동백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고 평했다. 

나종영 시인은 표사에서 "이번 시집은 우리 민족 현대사에 대한 질곡의 기록이며 시인으로서 부끄럽고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민중의 역사에 대한 '죽비'이며 묵시록임이 분명하다"라고 했다. 

최기종 시인은 1956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당봉리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1982년부터 교단에 섰고,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에 시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전교조 목포지회장을 맡아 교육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1989년 노태우 군부독재정권의 국가 폭력, 인권 탄압으로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현재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교민동 감사를 맡고 있다.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슬픔아 놀자', '목포, 에말이요'가 있다. 

2024. 10. 18. 林 山
#최기종 #만나자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