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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서문 -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총독부 소속기관인가?

林 山 2022. 10. 22. 16:52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총독부 소속기관인가?'라는 제목의 글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이 쓴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I.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의 서문이다. 하지만,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책의 출간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왜일까?  

 

서문을 보면 한국학진흥사업단장이자 이른바 뉴라이트였던 역사학자라는 자가 공개 학술회의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다.'라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서문은 또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라는 국가기관의 전신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원)인데, 그 초대 원장이 만주국 협화회 위원을 지낸 친일파 이선근이었다고 폭로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부르짖었다. 바로 우리에게 해당되는 경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은 이덕일 저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I.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의 서문 전문이다.<林 山> 

 

이덕일 저&nbsp;'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I.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 표지

1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1945년 8월15일 이 나라, 이 민족이 광복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을 조금 더 공부해보면 그 때 과연 광복을 되찾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날 광복이 되고 일본인들이 물러갔으면 일제 식민지배와 목숨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친일 매국노들에 대한 처단이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상황은 거꾸로 갔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물러갔지만 미 군정과 뒤이은 이승만 정권에서 친일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전래되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친일세력들과 그 후예들이 득세했고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예들은 일제강점기 때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정치계, 법조계를 비롯한 다른 분야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양화되면서 친일구조가 해체되어 갔지만 역사학 분야만은 아직도 독야탁탁(獨也濁濁) 조선총독부 역사관이 교리 수준으로 기세등등하다.

 

2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라는 국가기관이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종말로 치닫던 1978년 6월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학 연구 및 계승, 창조"라는 명분으로 만든 한국학 연구 국가기관이다. 첫 이름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었는데, 초대 원장이 만주국 협화회 위원을 지낸 친일파 이선근이다. 이선근의 이력은 화려하다. 진단학회 발기인,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육군본부 정훈감, 성균관대학교ㆍ동국대학교 총장,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200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중연 내에 한국학진흥사업단이 있다. 연간 300억원 정도의 국가예산을 쓰는 조직이다. 지난 정권 때 한국학진흥사업단장이자 이른바 뉴라이트였던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회의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다"라고 망언했다. 다른 석상에서 그랬으면 큰 문제가 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학회에 참석했던 어느 학자가 사석에서 분노하면서 전해준 풍경이다.

 

3

 

한중연 한국학진흥사업단에서 진행했던 사업 중의 하나가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 연구'라는 것이다. 2013년 5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수행했던 연구과제였다. 한 독립운동가 후손이었던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 하나를 포기하면서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3년 동안 총 15권의 학술교양도서를 발간하는 사업이었는데, 성과가 좋으면 2년 동안 연장하기로 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에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외에는 신청자가 없었다. 사업 목표 중에 '조선사편수회 식민사학 비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즉 연구내용 중에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 남한 강단사학계에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곳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사업 목표 중에 '조선사편수회 식민사학 비판'이 들어간 것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 국회의원 때문이었다. 한국 강단사학은 '식민사학'이란 이름표를 '실증사학'이란 이름표로 바꿔단 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식민사관을 추종한다. 그러니 이 사업을 수행하겠다고 나선 대학 사학과나 학회, 연구소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4

 

국가사업은 매년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 심사라는 것이 식민사학자들이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1945년 8월 14일 이전'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분야는 그나마 무늬라도 친일색채가 옅어졌는데, 이 분야는 노골적인 친일파 세상이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5권의 저서 중에 4권에 최종 불합격처리가 결정되었다. 출간금지와 연구비 환수조치가 내려졌다. 아래는 그 4권의 명단이다.

 

1.《조선사편수회식민사학 비판 -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 》(이덕일)

2.《조선사편수회출신들의 해방 후 동향과 영향》(김병기)

3.《한국 실증주의 사학과 식민사관》(임종권)

4.《독립운동가가 바라본 한국고대사》(임찬경)

 

연구자들은 이런 조치에 반발해 이의신청을 했다. 한중연(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의신청을 기각해서 교육부로 넘겼다. 연구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교육부에 항의했지만 교육부 역시 연구비 환수와 출간금지라는 제재조치를 내렸다. 한중연이 처분하고 교육부가 최종확정한 이른바 <처분확정통지서>는 조선총독부 학무국과 조선사편수회에서 내렸다면 명실이 상부할 내용이었다. 한중연과 교육부가 자신들을 이베(安倍) 내각 소속으로 아는지 대한민국 소속으로 아는지는 일단 별개로 두자. 이 사업의 과제는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연구'이다. 사업 목표 중의 하나가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이다. 한중연과 교육부가 제재를 가한 네 권의 저작은 모두 이 과제를 정확하게 수행한 것이었다. 이를 부적격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단 하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비판했다는 것뿐이었다.

 

5

 

이른바 한중연과 교육부에서 내린 <확정통지>에는 4권의 처분에 대한 연구자들의 이의신청 내용과 한중연과 교육부의 심의결과가 담겨 있다. 한중연에서 내린 판정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이의제기했고, 한중연과 교육부는 이렇게 답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① 조선사편수회식민사관 이론비판(이덕일)

 

이 저서는 조선사편수회의 핵심논리 중 하나이자 현재 중국에서 북한 강역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한사군은 북한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고 논증한 저서이다. 한중연과 교육부가 "주제 관련 연구성과의 편향되지 않은 충실한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은 "주제 관련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논리를 따르라"는 것이다. 즉 한사군은 조선총독부와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대로 북한에 있었고,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북한 역사학계는 어떤 견해일까?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아들인 홍기문은 1949년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일제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역사학자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그들의 논리는) 첫째 서기 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백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라고 말했다. 70여 년 전인 1949년에 북한 학계는 '낙랑군=평양설'이 일제 어용학설의 첫 번째라고 비판했다. 그후 북한의 리지린은 1958년 북경대 대학원에 유학하며 고사변학파(古史辯學派)의 고힐강을 지도교수로 1961년《고조선연구》란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낙랑군은 평양이 아니라 요동에 있다는 내용이다. 리지린이 1961년 평양에서 열린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학술논문의 요지를 발표하면서 북한 학계는 공식적으로 '낙랑군=평양설'을 폐기시키고 '낙랑군=요동설'로 정리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북한 학계에서 폐기시킨 '낙랑군=평양설', 즉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학설이 남한의 한중연과 교육부에는 신성불가침의 교리이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이 교리에 도전해서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했으니 출판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연구비를 환수해야겠다는 것이 백주대낮에 한중연과 교육부가 휘두르는 칼춤이다. 일본학중앙연구원, 일본문부성으로 이름을 고치면 명실이 상부하다.

 

②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의 해방 후 동향과 영향(김병기)

 

이 책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연구내용을 비판하고 나아가 조선사편수회 출신으로 해방 후 국사학계의 태두라고 떠받들려진 이병도ㆍ신석호의 해방 이후 행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먼저 이병도ㆍ신석호는《친일인명사전》에 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친일파들이다. 이 책을 집필한 김병기 박사는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희산 김승학 선생의 종손이며 현재 광복회 학술원장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담은 지금은 "독립운동을 하면 영원히 망하고 친일을 하면 영원히 흥한다"로 바꾸어야 하는 실례다. 희산 김승학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학무국장(교육부 장관)과 만주 무장항쟁조직이던 참의부 참의장을 지냈으며, 해방 후 백범 김구 주석으로부터 국내에 군부 설립을 위임받았던 저명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 선생으로부터 광복 후《독립운동사》를 쓰라는 권고를 받고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각종 자료를 모았으며, 광복 후 생존 독립운동가들과 함께《한국독립사(1964)》를 편찬했다. 그는 일제 때 5년 동안 투옥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팔 다리가 몇 차례 부러지는 숱한 고문"을 받았다. 김승학 선생은《한국독립사》서문에서 일제의 고문 이유를 "독립운동사 사료를 어디에 감추었느냐?"는 것이었다고 썼다. 이렇게 피눈물로 지켜낸 사료들은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위탁기증해서 정리하고 피눈물로 쓰여진《한국독립사》를 일반인들이 보기 쉬운 한글판으로 재간행될 예정이었지만 이 사업 역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17년에 강제로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병도ㆍ신석호가 해방 후에도 일제 식민사학을 하나뿐인 정설로 만든 것을 비판하는《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의 해방 후 동향과 영향》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교육부에 의해 출판금지와 연구비 환수조치를 당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교육부는 "지금이 조선총독부 세상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느냐?"라고 기염을 토하는 듯하다. 3대 독립운동가 후손인 김병기 박사는 여전히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교육부에 또아리 튼 토왜, 친일매국세력들에 의해 탄압받는 중이다.

 

③ 한국 근대역사학: 실증주의와 민족사학(임종권)

 

이 책은 한마디로 남한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실증주의'는 남한 강단사학계에서 일제 식민사학을 여전히 하나뿐인 정설로 유지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임종권 박사는 서양사 전공자로서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에도 능한 학자이다. 그래서 실증주의의 창시자로 불린 랑케의 저작을 직접 읽고 남한 역사학계의 실증주의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학이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왜곡한 실증주의로서 랑케의 실증주의와도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서술했다. 광복 후 조선사편수회 출신인 이병도ㆍ신석호를 태두로 삼은 남한 역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이란 이름을 '실증사학'으로 바꾸어달고 '객관성'을 주창하면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이 마치 객관적인 실증사학인 것처럼 국민들은 호도했다. 임종권 박사의 실증적 연구로 남한 학계의 실증주의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도구임이 밝혀지자 이런 연구결과를 '개인의 독창적인 학설이나 주장'으로 매도하고 출판금지 및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린 것이다. 심사의견 중에는 심지어《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을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있다. 이 사업의 대주제가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 연구'인데, 민족지도자들의 독립투쟁이 '반역'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조선총독부의 자리에 서서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것이다.

 

④ 일제 하 독립운동가들의 고대사 인식(임찬경)

 

이 저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고대사관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과 다르다고 논증한 책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교육부에서 말하는 '학계의 보편적인 입장'이란 '조선총독부 역사관 추종'을 뜻하는 것이다. 이의신청 심의결과는 한마디로 앞뒤도 맞지 않는 횡설수설에 불과하다. 남한 식민사학자들의 횡설수설은 그러나 반드시 "조선총독부 역사관은 영원히 우리를 지배하신다"는 종착점을 정확하게 찾아간다. 얼마나 비판할 거리가 없으면 참고문헌을 첨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삼았는지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참고문헌을 첨부하지 않은 다른 여러 저서들은 합격판정을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교육부는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역사관을 가졌는지 국민들에게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직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반도사관(半島史觀)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6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자신들을 조선총독부 소속이라고 굳게 믿고 내린 출판금지 및 연구비 환수조치는 위 4권의 책만이 아니다. 전 한국회계학 회장 허성관(전 광주과기원 총장)이 쓴《개성상인의 탄생》도 출간불가와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렸다. 이 책은〈박영진가 복식부기 장부의 20세기 전후 삼포(蔘圃)회계와 현대적 경영사고〉(《경영학연구》, 2017년 8월) 등의 논문을 기초로 작성된 저서이다. 이 논문은 2017년 통합경영학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허 전 총장은 2014년에도〈개성상인의 20세기 전후 삼포회계와 현대적 경영사고〉라는 논문으로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이런 논문들을 일반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쓴 책이《개성상인의 탄생》이다. 이 책은 개성상인 박영진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문서가 복식부기였고, 박영진가(家) 장부에 담긴 현대 자본주의적 사고와 경영기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초서(草書)로 쓰여진 박영진가 문서(문화재청 등록문화재 587호)를 탈초 작업까지 해 가면서 논문을 쓰고, 저서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서 고려대 경영학과 정석우 교수는 "조선조 말 개성상인 장부가 복식부기이고, 개성상인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면서 사업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해 종합한 책"이라고 평가했는데 한중연은 왜 출간금지와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렸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허성관 전 총장이 서문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 경제사학계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반증하는 증거"라고 쓴 것처럼 안병직ㆍ이영훈 등이 포진한 낙성대경제연구소 등에서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면에서 부정한 책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대한민국의 탄생 자체를 거부하는 반민족적 논리인데, 이를 비판했다고 한중연에서 제재를 가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허 전 총장이 이 논문들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의 명의로 발표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설립 이래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세력과 총성없는 전쟁을 계속해 왔는데, 이 책에 대한 한중연의 친일매국적 제재 또한 그 일환인 것이다.

 

7

 

2013년 필리핀은 헤이그에 있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이하 국제재판소)에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제소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9개의 U자 형태의 선(구단선)을 그어놓고 그 안쪽 바다와 섬들이 모두 중국의 관할권 아래 있다고 선언한데 대해서 국제상설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중국이 자국관할이라고 주장하는 9단선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베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재판소는 2018년 만장일치로 중국의 패소를 판결했다. 나는 국제재판소의 판결문 중에 "중국은 남중국해 구단선에 대한 역사적 권리(Historical Rights)를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한 부분을 중시한다. '역사적 권리'가 판단의 주요 근거의 하나로 사용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망언했지만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은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시진핑의 논리를 자신들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중연과 교육부에서 출간금지 조치를 내린 《조선사편수회식민사관 이론비판-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는 시진핑이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요 논리의 하나인 한사군(漢四郡) 한반도설을 사료를 들어 부정하고 한사군은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논증한 저서다. 한중연과 교육부에서 이 책을 우수 학술교양도서로 선정해 전 국민에게 일독을 권한다면 대한민국 정부 소속이 맞지만 지금 한중연과 교육부가 보이는 행태는 정 반대다.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사군 한반도설" 외에는 대한민국에서 출간할 수 없다는 것이니 이들은 내심으로는 중국 국무원 소속 기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일본의 아베 내각은 2014년 7월 '집단적 자기방위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뿐만 아니라 일본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공격의 경우와 그러한 공격의 심각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도 자위대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여기에서 '일본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란 물론 대한민국이다. 군대보유 및 분쟁에 대한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합헌으로 만들어 여차하면 대한민국에 보내겠다는 뜻이다. 일본 문부성과 A급 전범 출신이 만든 사사카와 재단, 도요타 재단 등은 대한민국 학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거나 유학생들의 경우 학자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대어주면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한 다음 국내 대학에 교수로 침투시키는 전략을 꾸준히 사용했다.

 

그 결과 2019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야본성'이라는 일본식 이름의 가야전시 연표에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ㆍ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서기)"이라고 써놨다. 일본 극우파들이 369년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써 놓은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당초 일본 순회 전시일정까지 잡아 놓고 있었다. 만약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미사협 등의 반박이 없었다면 '가야본성'은 일본 전시를 강행했을 것이고 일본 극우파는 "역사는 다시 장악하는데 성공했다"고 축하하면서 독도를 필두로 땅만 다시 점령하면 된다고 기염을 토했을 것이다.

 

한중연과 교육부에서《조선사편수회출신들의 해방 후 동향과 영향(김병기)》을 출간금지시키고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린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이병도ㆍ신석호를 극렬 보호함으로써 일제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소속이 아니라 아베 내각 소속의 한중연과 교육부가 내린 조치라면 명실이 상부하다. 다른 두 권의 저서《한국 실증주의 사학과 식민사관(임종권)》이나《독립운동가가 바라본 한국고대사(임찬경)》도 마찬가지로 한중연과 교육부가 중국 국무원 소속이거나 아베 내각 소속이 아니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반역사적, 반민족적 작태를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 후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이 다시 친일파 세상을 만듦으로써 친일 매국노에게 다시 탄압받던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이 절로 다가온다. 김병기 박사의 증조부인 희산 김승학 선생께서 유고로 남긴 《한국독립사》서문의 일부가 필자들의 심경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유사 이래 국가흥망의 역사가 허다하나 우리처럼 가혹한 이민족의 압박을 받아 거의 민족이 말살될 위경(危境: 위태로운 처지)에까지 이르렀던 전례는 일찍이 없었다...(내가) 불행히 왜경(倭警)에게 체포된 후 수각(手脚: 팔다리)이 부러지는 수십 차례의 악형이 바로 이 사료 수색 때문이었다...

 

무릇 한 국가를 창건하거나 중흥시키면 시정 최초 유공자에게 후중한 논공행상을 하고 반역자를 엄격하게 의법조치하는 것은 후세자손으로 하여금 유공자의 그 위국충성을 본받게 하고 반역자의 그 죄과와 말로를 경계케 하여 국가 주권을 길이 만년 반석 위에 놓고자 함이다. 이 중요한 정치철학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역사가 증몀하는 바이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동안 국파민천(國破民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노예가 됨)의 뼈저린 수난 중 광복되어 건국 이래 이 국가 백년대계의 원칙을 소흘히 한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일제의 주구(走狗: 반역자의 사냥개)로 독립운동자를 박해하던 민족 반역자를 중용하는 우거를 범한 것은 광복운동에 헌신하였던 항일투사의 한 사람으로서 전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의 시정 중 가장 큰 과오이니 후일 지하에 돌아가 수많은 선배와 동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보냐? 이 중대한 실정으로 말미암아 이박사는 집정 10년 동안 많은 항일투사의 울분과 애국지사의 적(的: 과녁)이 되었었다. (김승학,《한국독립사》유고)"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 연구 연구자 일동

 

[서울광장] 문재인 정부, 친일잔재 청산 의지 있는가 - 오일만 논설위원
https://news.v.daum.net/v/2020111805081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