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사랑

충주시립 우륵국악단 여름밤의 음악무대 1

林 山 2009. 10. 21. 20:32

2005년 8월 24일 충주 우륵국악당에서 충주시립 우륵국악단의 '여름밤의 음악무대' 공연이 열리는 날이다. 우륵국악단이 그동안 갈고 닦은 연주실력을 관중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주는 무대다. 1988년 4명의 가야금 합주단으로 창단된 이후 현재 15명의 상임단원과 비상임단원으로 다양한 쟝르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는 우륵국악단의 연주가 자못 기대된다. 더군다나 충주는 악성 우륵의 고장이 아니던가! 오늘의 공연은 바로 우륵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국악의 대향연인 것이다. 대취타(大吹打)를 시작으로 여름밤의 음악무대의 막이 오른다.

 

 

*대취타의 연주장면(집사 강상우)

 

노란색 두루마기에 행전을 치고, 꿩의 깃으로 장식한 전립을 쓴 단원들이 대취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일순 장내에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취타라는 의미는 부는 악기(吹樂器)와 치는 악기(打樂器)의 연주를 말한다. 등채(지휘봉)를 두 손에 받쳐들고 있다가 오른손만으로 머리 위로 높이 들고서 집사(지휘자)가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고 호령하면 징을 한 번 치고 연주가 시작된다. 관악기와 타악기가 함께 어루러져 내는 소리는 우주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할 만큼 장쾌하다. 그리고 새납(태평소)의 애원한 가락은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대취타는 행진곡풍의 음악이기에 위엄이 있고 씩씩한 것이 특징이다.

 

대취타는 취타(吹打)와 세악(細樂)을 대규모로 갖춘 군악으로 호적, 나발, 소라, 태평소 등의 관악기와 징, 용고, 바라, 장고 등과 같은 타악기로 편성된다. 이 음악은 임금의 노부(鹵簿), 행행(幸行), 능행(陵幸), 왕실(王室)의 동가(動駕)와 군대의 행진 및 개선, 주장(主將)의 좌기(坐起), 진문(陣門)의 개폐 때, 통신사의 행렬 때,검기무(劒器舞,칼춤), 선유락(船遊樂), 항장무(項莊舞) 등의 정재(呈才:궁중무용)를 할 때 선전관청과 영문에 소속된 취타수에 의해 연주되던 행진곡풍의 군례악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무령지곡이라고도 하고 속명으로는 대취타, 세칭 구군악이라고도 한다. 선전관청과 도성(都城)의 5영문(五營門)에는 대취타를 상설하였으며, 각 지방의 감영, 병영, 수영에도 두었고, 각 고을에는 소취타를 두었다.

 

현재의 대취타는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단은 12박이다. 이 곡은 19각 반각(제1각 제1박에서부터 제20각의 제6박까지)으로 되어 있는데, 제7장 끝에서 제1장 제3박으로 반복하는 도들이형식(還入形式)으로 되어 있으며, 부정형(不定型)으로 분장(分章)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연주복장은 전립(戰笠)을 쓰고, 황철릭을 입은 위에다가 남전대(藍纏帶)라는 띠를 두르고, 미투리(麻土履)를 신는다. 1971년 6월 1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는 정재국이다.


 

*생소병주(笙簫幷奏) 연주장면(생황:김효영, 단소:우상훈)

 

대취타에 이어서 수룡음(水龍吟)을 생소병주로 들려주는 순서다. 수룡음을 생황(笙簧)과 단소(短簫)의 2중주로 듣고 있으려니 남송시대 주돈유가 쓴 같은 제목의 한시가 문득 떠오른다.

 

放船千里凌波去  略爲吳山留顧
雲屯水府  濤隨神女  九江東注
北客翩然  壯心偏感  年華將暮
念伊蒿舊隱  巢由故友  南柯夢  遽如許
回首妖氣未掃  問人英雄何處
奇謀復國  可憐無用  塵昏白羽
鐵鎖橫江  錦帆衝浪  孫郎良苦
但愁敲桂櫂  悲吟梁父  淚流如雨

 

배를 띄워 천리 먼길 파도 헤쳐가니 오산(吳山)이 잠깐만에 스친다.
구름은 수부(水府)에 머물고 물결은 신녀(神女)를 좇는데
구강(동정호의 옛이름)은 동으로 흐른다.
기러기 날으니 웅지(雄志) 펴지도 못했는데 세월만 흘렀음을 느끼네
이숭의 은자 소부와 허유가 오랜 친구 같은데 남가일몽처럼 어느덧 옛일이구나
돌아보니 적군 아직 다 없애지 못했는데 세상사람에게 묻나니 영웅은 어디로 갔는가?
기이한 책략으로 보국(報國)하려 했지만
가련케도 아무 공도 없이, 영웅은 죽고 화살에는 먼지만 쌓였네
쇠사슬 강에 가로질러 적선 막으려 하지만 비단 돛(南宋) 파도에 부딪히듯
막아내기 어려우니 손책(孫策)의 마음인가, 비통하기 그지없다.
어찌할 수 없어 다만 시름에 젖어 노를 두드리며
슬피 양보음(梁父吟)을 부르니 비오듯 눈물이 흐르네 
 

생황과 단소의 이중주를 일컬어 생소병주라고 한다. 생황은 화음을 연주하고 단소는 장식음(시김새)이 많은 가락을 연주함으로써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생황은 금속성의 음색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여러 음을 동시에 불 수 있는 유일한 화성 악기로, 더없이 맑고 깨끗한 종적으로 두 악기는 아주 잘 어울린다. 생황은 둥근 박통 둘레로 돌아가며 구멍을 뚫고 거기에 죽관을 돌려 꽂아 죽관 아래 끝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쇠청을 붙여 숨을 내쉬고 들이 마실 때 일어나는 기류로 진동하게 해서 소리낸다. 떠는 음, 꺾는 음을 낼 수 없어서 독주악기로는 사용하지 못하며,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에서 유일하게 화음을 낼 수 있는 관악기이다.

 

이 '수룡음'은 가곡을 기악곡화 한 것으로 우리 음악에서 병주로 연주되는 대표적인 곡이며 장단 구성이 불규칙적이어서 장구 반주는 하지 않는다. 원래 수룡음은 고려시대 때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 때 쓰이던 반주 음악으로 농(弄), 낙(樂), 편(編)의 3악장으로 되어 있다. 또한 수룡음은 국악 가곡 가운데, 계면조의 평롱, 계락, 편삭대엽 등을 노래 없이 향피리를 중심으로 대금, 해금, 장구, 북으로 합주하는 곡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18세기말 성악곡의 반주음악이었던 자진한잎은 19세기초에 이르러 차츰 기악곡화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사관풍류(향피리가 중심이 되는 풍류. 향피리, 대금, 해금, 장구로 편성)의 모체가 되었다. 사관풍류는 계면 두거(界面頭擧), 우조 두거, 변조 두거, 계면 평롱(界面平弄), 계락, 편삭대엽을 노래없이 젓대, 피리, 해금, 아쟁 등의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수룡음(水龍吟), 염양춘(艶陽春), 경풍년(慶豊年)을 총칭한 것이다. 자진한잎, 거상악(擧床樂)으로도 불리는데, 거상악이라 한 것은 옛날 연희 때 상을 받기 전에 연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가곡의 반주 음악을 향피리 중심의 관악합주로 연주하는 음악을 '자진한잎'이라고 하고, '자진한잎' 에는 '경풍년', '수룡음', '염양춘'의 세 가지가 있다. 수룡음은 향피리 중심의 관악 합주로 연주하기도 하고, 생소병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가야금산조 '김죽파류' 연주장면(가야금:박미아, 장구:서길원)
 

다음으로 연주되는 곡목은 박미아(가야금), 서길원(장구)의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다. 서길원의 장구장단에 맞춘 박미아의 섬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가야금소리가 공연장에 그윽하게 울려 퍼진다. 특히 서길원은 손에 무엇이든지 주어지면 그것으로 훌륭한 타악을 연주해 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는 타고난 타악기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산조란 민속음악에 속하는 기악독주곡 형태의 하나이며, 주로 남도(南道)소리의 시나위와 판소리의 가락을 장단(長短)이라는 틀에 넣어 연주하는 즉흥성을 띤 음악이다. 산조(散調)는 말 뜻 그대로 '허튼 가락', 또는 '흩은 가락' 이란 의미로 이전에 존재하던 여러 민간 음악 등을 산조 속에 차용하거나 융합한 것이다. 연주장소, 연주자 등 연주 조건에 따라 즉흥적인 감정표현을 중시하는 음악이 바로 산조다. 따라서 산조는 연주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즉흥성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산조는 서양음악으로 치자면 재즈에 해당된다고 볼 수가 있다. 서양에 재즈가 있다면 한국에는 산조가 있는 것이다.

 

산조의 장단은 반드시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는 정형성을 갖는데 악기나 유파에 따라서 장단 구성이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다. 산조는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배열된 3∼6개의 장단 구성에 의한 악장으로 구분되며 반드시 장구 반주가 따른다. 각 산조의 첫 악장은 반드시 진양조로 시작하며 계면조가 가장 많이 쓰인다.

 

산조는 19세기 말엽 김창조(金昌祖;1865-1919)가 최초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야금 산조를 효시로 하여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해금산조, 그리고 1950년 무렵 아쟁산조, 피리산조의 차례로 생겨났는데, 지금은 가야금산조가 많이 연주되고 유파(流派;바디)도 가장 많다. 즉 각 악기마다 산조가 있는데 특히 가야금 산조에 '류(流)'가 많은 것이다. 성금련류, 최옥산류, 강태홍류, 김병호류, 김윤덕류, 서공철류,  황병기류 등..... 김죽파류도 그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김죽파(金竹坡, 1911~1989)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할아버지 김창조로부터 가야금산조 가락을 전수받으면서 자랐다. 7세 때 김창조가 죽자 그의 제자 한성기(韓成基)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동시에 다른 분야의 민속악도 익혀 거문고, 판소리, 가야금병창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20세에 경성방송국(KBS의 전신)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하였다. 그후 연주활동과 후진양성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기,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비교적 김창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가야금산조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다. 구성은 '다스름-진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세시산조'로 되어 있다. 섬세한 농현(弄絃)과 저음이 풍부한 가락으로 이어져 있고 최근에는 새로운 가락을 첨가하여 1시간 가량 연주한다.

 

19세기 말 김창조, 한숙구 등이 처음으로 가야금산조를 연주한 이래 십여 명이 넘는 뛰어난 명인들이 각기 고유한 유파를 형성하면서 가야금산조를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민속기악 독주곡으로 발전시켰다. 가야금산조는 오른손으로 현을 뜯거나 튕기는 숙련된 연주기교와 왼손으로 줄을 강하게 떨거나 흘려내리고 밀어올리는 등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서 특유의 생동감을 표현한다. 오늘은 바로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는 것이다. 박미아의 가야금산조 연주는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정재(춘앵무)를 추고 있는 서지민(대전 연정국악원 단원)

 

국악에 춤이 없다면 아마도 흥이 반감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올려진 것은 춘앵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인 서지민이 꾀꼬리 빛을 상징하는 앵삼이라는 노란색의 의상에 화려하게 장식된 화관(花冠)을 쓰고 피리, 대금, 해금, 장구, 좌고 등으로 구성된 관현악 반주에 맞춰서 춘앵무를 추기 시작한다.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 꾀꼬리같다.

 

춘앵무는 가로 120cm, 세로 227cm 크기의 화문석 위에서만 추는 궁중무용이다. 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꾀꼬리를 좁은 공간에서 축소표현하고 있는 아름답고도 우아한 춤이 바로 이 춘앵무인 것이다. 이 춤은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익종)가 만든 춤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춘앵무는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순종숙황후(純宗肅皇后)의 보령(寶齡)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창제한 정재(呈才)이다. 어느 봄날 아침, 버들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되어 이를 무용화한 것이라고 한다. 향악무(鄕樂舞)의 양식을 빌었으며, 무동(舞童)이나 여기(女妓) 혼자서 추는 독무(獨舞)이다. 무의(舞衣)는 무동일 경우는 복건(幅巾)에 앵삼(鶯衫), 여기일 경우는 화관에 앵삼을 입는다. 길이 6자 가량의 화문석(花紋席)에서 비리(飛履), 탑탑고(塔塔高, 두 팔을 펼쳐 들고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는 춤사위 ), 타원앙장(打鴦場, 세 걸음을 나아간 다음, 합 장단에서 팔을 힘차게 뒤로 뿌리는 동작), 화전태(花前態), 낙화유수(落花流水), 여의풍(如意風) 등의 춤사위를 연출하는데, 특히 화전태는 흰 이를 보여 곱게 웃음짓는 미롱(媚弄)으로 이 춤의 백미이다. 반주음악은 평조회상(平調會相) 전곡을 사용한다.

 

정재(呈才)란 본래 모든 재예(才藝)를 드린다는 뜻의 헌기(獻技)에서 유래되었는데, 이것이 차츰 궁중무용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 정재에는 향악정재(鄕樂呈才)와 당악정재(唐樂呈才)가 있는데, 향악정재는 전통 궁중무용을 말하며 당악정재는 고려 때 송(宋)에서 들어온 궁중무용을 말한다. 당악정재는 긴 장대에 수술로 장식한 죽간자(竹竿子)를 2명이 들고 무용수의 등장, 퇴장을 인도하는 반면, 향악정재는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용수들이 등, 퇴장하면서 인사를 하고 시작과 끝을 마무리한다. 또한 당악정재에는 정재의 앞뒤에 노래로 불리는 치어(致語)와 구호(口號)가 있는 반면 향악정재에는 그것이 없다. 또한 당악정재에는 춤추다가 중간에 노래를 부르는 창사(唱詞)가 순한문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향악정재는 순한글로 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조선 순조 이후 이러한 향, 당의 구분은 거의 없어졌다.

 

향악정재는 향악무라고도 하는데, 형식과 절차를 중히 여기는 당악정재에 비해 자연스럽고 간단한 형식을 가졌다. 고려사에 무고(舞鼓), 동동(動動), 무애(無) 등 3가지가, 악학궤범에는 봉래의(鳳來儀), 아박(牙拍), 향발무(響鈸舞), 학무(鶴舞),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등이 향악정재로 소개되어 있다. 이후 조선 순조 때 익종(翼宗)에 의하여 창작된 춘앵전(春鶯囀), 고구려무(高句麗舞), 향령무(響鈴舞), 보상무(寶相舞), 선유락(船遊樂), 헌천화(獻天花) 등도 향악정재에 든다. 향악정재는 죽간자(竹竿子)의 인도 없이 무원들이 바로 등장하여 춤추고, 끝나면 꿇어앉아 큰절을 하고 곧바로 퇴장하는 자연스런 형식을 가졌다.

 

 

*회심곡을 부르고 있는 황효숙 

 

다음은 황효숙이 부르는 회심곡(回心曲) 순서다. 하얀 박사 고깔에 장삼을 입은 황효숙이 꽹과리 반주에 맞춰 회심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공연장에 숙연한 분위기가 감돈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제목도 다양하고 사설 역시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회심곡..... 부모님의 은혜가 더없이 크고 중하니 공덕을 쌓아 효도로써 은공을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라.....

 

회심곡은 '인생의 길', '부모님 은혜', '몇년이나 산다고', '죽음의 길', '저승사자', '풍도지옥', '극락왕생' 등 7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에서 '인생의 길' 가사를 여기 실어본다.

  

일심으로 정념은 극락세계라
보옹오호오흥이 어마미로다 보옹오오호오홍이 에헤에..
염불이면 동참 시방에 어진 시주님네
평생 심중에 잡순 마음들, 연만하신 백발노인 일평생을 잘자시고,
잘노시다 왕생극락을 발원하시며 젊은이는 생남 발원
있는 아기는 수명장수 축원이 가고 덕담이 갑니다.
하늘같은 이 댁전에 문전축원고사 덕담정성지성 여쭌뒬랑,
대주전 영감마님,장남한 서방님들 효자충남한 도령님들
하남에 여자에게 젓끝에는 금년생들 하늘같은 이댁전에
일평생을 사시자하니 어디 아니 출입들을 하십니까.
삼생인연은 불법만세 관제구설 삼재팔난 우환질병 걱정근심
휘몰아다 무인도 깊은 섬중에다 허리둥실이 다 버리시며,
일신 정기며 인간오복 몸수태평 얻어다가
귀한 아들 따님전에 전법하니, 어진 성현의 선남자 되리로다,
명복이 자래라, 아하 아하 헤나네 열의 열
사십소사 나하아 아하아아

 

회심곡은 조선시대 휴정(休靜)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불교가사다. 그 가사는 영조 52년 해인사에서 펴낸 목판본 '보관염불문'에 실려 있다. 다른 판본으로는'조선가요집성'과 '석문의범' 등에 실려 있는 것도 있는데, 총 232구로 된 장편가사다. 회심곡은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고 사후 내세의 세계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인간에 대한 계도와 불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불리워졌다. 사찰에서 주로 불리워지는 회심곡은 불교의 교리를 대중적 포교 차원에서 쉬운 민요운율에 얹어 부른다. 요즈음은 민요화되어서 민요로 많이 불리우기도 한다.

 

이 회심곡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으면서 민심이 피폐해지자 불자들의 신심을 정화하고 고취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불교사상을 유교사상이나 중국의 노장사상에 접합시켜 당시의 흉흉한 사회세태를 정화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즉 말세적인 풍속에 물들어 있는 충효신행(忠孝信行)과 애욕과 탐욕에 의한 골육상쟁을 지양하고,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아 지켜나가기 위해 일념으로 염불하고 수행해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극락연화대에 올라 태평곡을 부르자는 내용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었다고 알려진 '회심곡(悔心曲)'도 있다. 이 회심곡의 내용은 모든 사람은 부처님의 공덕으로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승에서 부처를 믿고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극락세계로 가고 악업을 많이 지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을 담고 있다.

 

회심곡은 원래 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일반대중이 잘 아는 가락에 교리(敎理)를 사설로 붙인 음악이다. 회심곡을 화청(和請)이나 고사염불(告祠念佛)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평염불(平念佛) 중 덕담부분을 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따로 떼어서 만든 곡이 바로 회심곡이다. 고사염불에는 고사선염불과 뒷염불의 2가지가 있다. 뒷염불은 다시 서울, 경기도 지방의 평조염불(平調念佛)과 치악산 소리의 오조염불(悟調念佛), 반멕이로 나눌 수 있다. 회심곡은 이중 평염불이 민요가 된 곡으로 음악형태는 경기민요조로 되어 있다. 다만 민요가 대개 일정한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면, 회심곡은 주로 엇모리장단으로 맞추어 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범패가 한문이나 산스크리트어를 사설로 쓰고 있는 데 비해 회심곡은 주로 우리말 사설로 되어 있다.

 

경기명창들이 부르는 회심곡은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가사로 하여 노래한다. 이밖에도 불교가사와 관계되는 회심곡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각 지방에서 상여소리로 부른 회심곡은 대개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사설 일부를 넣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경남의 가야금병창 공연장면

 

회심곡에 이어 박경남이 가야금병창(伽倻琴竝唱)으로 '백발가', '화초사거리', '사랑가'를 차례로 들려준다. 장구장단은 양예랑이 맡았다.

 

백발가(白髮歌)는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서 부르는 단가다. 어느새 늙었음을 한탄하는 내용같지만 전체적으로는 한탄조와는 거리가 멀고, 유명한 고사나 아름다운 경치를 읊는 식의 상투적인 가사로 되어있다. 남도잡가인 화초사거리(花草四巨里)는 산천경개를 읊은 첫구절을 마치면 별다른 뜻이 없는 입타령으로 된 '긴염불'과 여러 가지 꽃이름을 되는 대로 주워 섬기는 '화초염불'로 구성된 형식이다. 긴염불 부분은 경쾌하고 씩씩하며, 화초염불 부분은 흥겹다. 사랑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을 따로 떼어내어 별도로 판을 짠 것이다. 구조(舊調)사랑가 대목을 변형시킨 것으로 '긴사랑가', '자진사랑가', '정자노래'까지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장단이나 선율의 골격은 판소리와 비슷하다.

 

가야금병창은 단가(短歌)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독립시켜 가야금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연주자가 가야금을 타면서 동시에 노래를 하는 형태가 바로 가야금병창이다. 따라서 가야금병창을 공연하는 사람은 가야금산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판소리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가야금병창의 장단은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진양, 엇중모리 등을 쓰며 장구반주가 따른다.

 

기야금병창의 장르형성은 19세기 말 판소리를 부를 줄 알았던 가야금의 명인들로부터 유래한다.  초기에는 산조에 겸해 연주되었고 김창조(金昌祖)를 가야금병창의 시조로 삼는다. 박필괴, 심정순, 심상건, 안기옥, 김죽파, 함동정월 등은 모두 가야금병창의 명인이자 산조의 명인이다. 1968년 가야금산조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보유자에 정재국(鄭在國, 1997 해제), 안숙선(安淑善)이 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녹음방초', '호남가', '사랑가', '제비노정기' 등이 있다.


 

*윤일로의 시조창 공연장면. 대금에 최여영, 피리에 송영규

 

 다음 순서는 윤일로 선생의 시조창이다. 평시조와 지름시조를 긴 호흡, 느린 가락의 창으로 들려준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했지만 윤일로는 충주시립우륵국악단 창단 이후 17년 동안이나 몸담아 온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시조, 가곡, 무용, 사물놀이 부문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각종 공연에 참여해 왔다. 명실공히 그는 우륵국악단 나아가 충주 국악의 산증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필자는 젊었을 때부터 그를 보아왔는데,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살이 많이 늘어난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시조창은 초, 중, 종장의 사설을 3장 형식에 얹고 한 장단이 5박 또는 8박으로 되어 있는 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음악의 형태에 따라서는 평시조,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가(首雜歌), 휘모리잡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시조창은 순조 때 간행된 '유예지'에 처음으로 경제(京制)에 해당하는 평시조 악보가 전한다. 그후 여러 가지 가곡의 영향을 받아 많은 시조곡조가 파생되었고, 시조창이 각 지방으로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 지방의 기호에 맞는 지방적 특징이 발생하게 됨으로써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서울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전라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완제,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지방의 내포제(內浦制) 등 지방제(地方制)가 생기게 된 것이다

 

평시조 창법(唱法)은 시조 전체를 평평(平平)하게 또는 순평(順平)하게 부르는데, 음계는 황종(黃鐘:E ), 중려(仲呂:A ), 임종(林鐘:E )의 3음 음계의 계면조에 속한다. 우조는 엄숙하고 계면조가 애원한 느낌이라면 평시조는 화평한 느낌이다. 평시조는 모든 시조의 원형으로 그밖의 시조는 모두 이 평시조에서 파생, 변주된 곡이다. 평화한 시조란 뜻의 평시조는 중간음역의 음으로 시작하고 화평하고 웅장하게 부른다. 조선조 중엽까지는 주로 평시조만 불렀다. 전해져 내려오는 시조도 평시조가 대부분이다.

 

지름시조는 고음역으로 질러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인데, 즉 초장 첫머리를 높여서 부르고, 중장과 종장은 평시조 곡조로 부른다. 초장의 첫째, 둘째 장단을 높여서 부르기 때문에 두거시조(頭擧時調) 또는 소이시조(騷耳時調)라고도 한다. 지름은 말 그대로 소리를 지른다는 뜻으로, 지름시조는 씩씩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지름시조는 평시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가곡의 두거 또는 삼삭대엽(三數大葉)의 창법을 모방하여 변조시킨 곡이다. 음악의 형태에 따라 분류하면 우조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여창(女唱)지름시조, 평지름시조의 4종류가 있다. 평시조가 황(黃), 중(仲), 임(林)의 3음음계인 계면조(界面調)인데 비하여 지름시조는 황, 중, 임, 무(無) 4음음계의 계면조이다. 평시조와 같은 단형시조(短型時調)라면 모두 지름시조로 부를 수 있다.


 

*국악 관현악 반주에 맞춰 가곡 '우락'을 열창하고 있는 박진희

 

이번에는 2005년도 동아콩쿠르 일반부에서 금상을 차지한 바 있는 박진희가 가곡 '우락'을 즐려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구로 편성된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고 단아하다. 가곡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가곡은 훈련된 전문가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며, 단순히 가사 전달만이 아닌 음악적 표현을 즐기는 데 그 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전통 성악은 정가(正歌)와 속가(俗歌)로 크게 나뉘는데, 가곡은 가사나 시조처럼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정(雅正)하게 부르는 정가에 속한다. 가곡은 시조시를 선율에 얹어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예술음악으로 판소리, 범패와 더불어 한국 3대 성악곡의 하나이다. 옛 선비들의 예술생활을 반영한 것으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부른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가곡은 시조시를 얹어 노래하지만 시조와는 음악형식면에서 많이 다르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의 3장 형식이지만 가곡은 이를 5장으로 나누고, 전주에 해당하는 대여음(大餘音)과 간주격인 중여음(中餘音)이 있다. 또한 시조에서는 생략하는 종장 끝의 '하노라, 하노니, 하오리라' 등을 생략하지 않고 모두 부른다. 또한 시조는 장구 반주나 악기 하나 정도의 반주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가곡은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가곡은 우조 즉 평조와 계면조의 2가지 음계가 있는데, 평조와 계면조는 각각 5음음계로 되어 있다. 우조의 가곡은 정대화평(正大和平)하고 청장격려(淸壯激勵)한 느낌, 즉 화평하면서도 높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계면조는 애원격렬(哀願激烈)하고 애원처장(哀願悽帳)한 느낌, 즉 구슬프고 애달픈 느낌을 준다.

 

박진희가 부르는 우락(羽樂)은 우락시조(羽樂時調)의 준말로, 평조음계 우조(羽調)에 의한 낙시조(樂時調)라는 말이다. 남창과 여창으로 두루 부르는데 남창우락은 언락(言樂)을 파생시켰으며 언락과 서로 대를 이룬다. 언락과 여창우락은 높은 음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남창우락은 낮은 음으로 숙여 낸다. 우락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사용하며 하규일(河圭一)의 전창으로 남창 3곡과 여창 7곡이 전한다. 연주형태는 '태평가'를 제외한 다른 가곡과 같이 단잡이로 된 거문고, 젓대, 세피리, 가야금, 해금, 장구 등 관현악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독창곡이며, 대여음이 전주로 사용된다. 남창은 계락(界樂)다음 언락 앞에서, 여창은 평롱(平弄) 다음 환계락(還界樂) 앞에서 부른다. 우락이 수록되어 있는 옛 악보로는 '서금가곡(西琴歌曲)', '학포금보(學圃琴譜)' 등이 있고, '청구영언(靑丘永言)', '가곡원류(歌曲源流)' 등에 노랫말이 전한다.


 

*판소리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을 부르고 있는 방수미

 

국악무대에 어찌 판소리가 빠질 수 있으랴!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황성가는 대목을 방수미가 판소리로 들려준다. 방수미는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으로 주역배우다. 그녀는 일찌기 남원 춘향제에서 판소리부문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KBS 방송국이 주최한 서울국악경연대회에서도 판소리부문 금상을 받은 바 있다. 판소리 공연에 있어서 고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오늘은 송세운이 북채를 잡았다.

 

판소리 형태의 음악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음악장르일 것이다. 판소리 한편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 판소리는 노래하는 한 사람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음악극이다. 가수가 북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소리'라 하고, 북장단이 없이 말로만 대사를 읊어나가는 것을 '아니리'라고 한다. 또 노래를 하면서 이야기의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채를 들고 갖가지 몸짓을 하는 것을 '발림'이라고 한다. 소리를 부를 때 고수는 옆에서 북장단을 치면서 때로는 가수의 흥을 돋우기도 하고 때로는 가수의 상대역이 되어 주면서 판소리를 더욱 흥미롭게 해준다. 이처럼 고수가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하는 짧은 말을 '추임새'라고 한다.

 

심청가는 조선시대 때 나온 작자나 연대를 알 수 없는 판소리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이며, 신재효(申在孝)의 판소리 여섯 마당 중의 하나다. 심청가는 현존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가장 비극성이 강조된 소리이다. 효녀 심청(沈淸)이 소경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마침내 아버지가 눈을 뜨게 된다는 설화(說話)를 극화한 것이다. 심청가는 비록 효가 그 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 불교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심청가의 창법은 매우 처절한 대목이 많아 계면조(界面調)가 많다. 심청가의 유명한 대목(눈 대목)들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도 최고난도의 기량이 요구되는 음악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토막소리 혹은 대회소리로도 많이 불리고 있다. 뛰어난 심청가 명창으로는 박유전(朴裕全), 김창록(金昌錄), 김채만(金采萬) 김제철(심청 탄생), 이날치, 정재근 등이 있다. 이들의 뒤를 잇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방수미다. 오늘날 흔히 불리는 심청가는,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한애순에게 전승된 계통과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에게 전승된 계통이 있다. 

 

판소리는 원래 중부지방 이남에서 발달했는데, 광대는 전라도 무인(巫人) 출신이 많았으며 신재효 이후 1세기에 걸쳐 연창(演唱)되어 온 장르다. 광무(光武) 연간의 원각사(圓覺社) 이후 서양 연극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가 창극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으나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판소리와는 다르다. 판소리는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능보유자에는 송순섭, 성판례, 한귀례, 박정자 등이 있다.

 

 

*사물놀이 공연장면(서길원, 양예랑, 권영주, 김현주)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려진 것은 사물놀이다. 서길원이 지휘자격인 쇠잡이다. 그의 꽹과리 소리를 신호로 북, 징, 장구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사물연주는 느린 장단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빠른 장단으로 들어간다. 북은 둥둥 울리면서 사람의 심장을 고동시킨다. 장구잡이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괭과리는 귓속에 착착 들러붙는 화려한 금속성 소리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고요한 한밤중에 산사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징소리는 은은하게 간간이 들려온다.

 

사물놀이는 기본적으로 두들겨 패고 때리는 연주다. 두들겨 패고 때리는 연주이기 때문에 아주 신명이 난다. 신명나게 사물놀이를 한 판 벌이고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사물놀이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휘몰이다. 휘몰이는 네박자로 된 단순한 장단을 처음에는 천천히 연주하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빠르게 연주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연주자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쳐댄다. 그래서 휘몰이를 칠 때는 연주자도 관람자도 흔히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 4가지를 가지고 하는 연주를 말한다. 최소인원 4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얼마든지 많은 수가 할 수 있다. 사물놀이는 실내에서 한 자리에 붙박이로 앉아서 오로지 사물의 리듬을 보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보다 계획적이며 체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민속 장단의 극단적인 아름다움과 신명을 느끼게 하는 놀이이다. 사물놀이는 앉은반과 선반으로 나뉘는데, 앉은반은 앉아서 연주하는 것을 말하고 선반은 서서 하는 연주를 말한다. 선반은 소고가 추가되며 머리에 상모를 쓴다. 이때 상쇠는 부들상모를 나머지 악기는 채상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 공연에서 들려주는 것은 사물놀이 앉은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삼도사물놀이다. 삼도사물놀이는 전라도(호남우도농악), 경상도(영남풍물), 경기 충청(웃다리풍물)의 대표적인 장단을 모아서 짜임새 있는 연주형태로 만든 것이다. 장단순서는 점고, 호남가락의 오채질굿, 우질굿, 좌질굿, 굿거리, 영남가락의 덩덕궁이, 별달거리, 웃다리가락의 짝쇠의 순으로 되어 있다. 삼도사물놀이는 사물악기(꽹과리, 징, 장고, 북)가 완벽하게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사물놀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놀이를 마지막으로 모든 공연은 끝났다. 오늘 조광석 우륵국악단 지휘자의 친절하고도 상세한 해설이 곁들여져 훨씬 더 좋았다. 악성 우륵의 고장답게 앞으로 좀더 자주 이런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우륵국악단의 단원수도 좀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국악연주와 공연을 할 수 있다. 지금 15명의 단원이 있는 우륵국악단은 다른 국악단에 비해서 매우 초라한 규모다. 앞으로 우륵국악단이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국악단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5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