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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대법원의 어이상실 판결

林 山 2013. 2. 15. 12:32

2월 14일 오후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는 '안기부 X 파일 사건'과 관련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녹취록에 나온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면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정의상실 판결'로 노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잃게 되었다. 

 

떡값을 준 삼성 그룹 관련자들과 떡값을 받은 검사들은 빠진 채 비리를 폭로한 기자 두 명과 노 의원에게만 법적 제재를 가한 대법원 제3부의 판결은 국민의 법감정과 정의관념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검찰은 떡값을 주고받은 의혹이 있는 삼성의 홍석현, 이학수씨와 검찰의 당시 최경원 법무부 차관, 김두희 성균관대 이사, 김진환 서울지검 2차장검사, 안강민 서울지검장, 한부환 서울고검 차장검사, 김상희 동부지검 차장검사, 홍석조 서울고검 차장검사 등 간부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보도한 언론인과 노 의원만 기소하는 등 편파수사를 강행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시대착오적인 법적용을 견제하기는 커녕 편협한 법해석으로 검찰권의 남용을 합리화시켜 줌으로써 사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노 의원은 이를 두고 '폐암환자를 수술한다더니 암 걸린 폐는 놔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라고 허탈해 했다.

 

문제의 발단은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의 2011년 5월 판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 법사위에서 발언할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한 노 의원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형법상 정당행위로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 제2부는 이를 '8년 전 일로서, 공개하지 않으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2부가 '시간이 흘렀서 관심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대법관들의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다. 또 노 의원의 보도자료 배포 행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린 행위를 문제 삼아 항소심의 무죄판결을 뒤집은 것은 한마디로 어이상실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집에 도둑이 든 집주인이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질러서 도둑을 잡았는데, 정작 도둑은 잡아가지 않고 집주인을 소음공해죄로 처벌한 격이나 마찬가지다.

 

하루 전인 2월 13일에는 노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을 진두지휘했던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이 박근혜 정부의 새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돼 명암이 엇갈렸다.

 

다음은 노 의원이 발표한 긴급기자회견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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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떠나며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 최대 재벌그룹회장의 지시로 그룹부회장과 유력 일간지회장등이 주요 대선후보, 정치인, 검찰 고위인사들에게 불법으로 뇌물을 전달하는 모의를 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담은 녹취록이 8년 후인 2005년 공개되었습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사건입니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을 건국 이래 최대의 정, , , 언 유착사건이라 말했습니다. 주요 관련자인 주미한국대사와 법무부차관이 즉각 사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뇌물을 준 사람, 뇌물을 받은 사람 그 누구도 기소되거나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를 보도한 기자 두 사람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떡값검사 실명을 거론하며 검찰수사를 촉구한 국회의원 한사람이 기소되었습니다.

 

다시 8년이 지난 오늘 대법원은 이 사건으로 저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죄목으로 유죄를 확정하였습니다. 뇌물을 줄 것을 지시한 재벌그룹회장, 뇌물수수를 모의한 간부들, 뇌물을 전달한 사람, 뇌물을 받은 떡값검사들이 모두 억울한 피해자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 저는 의원직을 상실할 만한 죄를 저지른 가해자라는 판결입니다. 폐암환자를 수술한다더니 암 걸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국내 최대의 재벌회장이 대선후보에게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해괴망칙한 판단을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가? 양심이 있는가?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013214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노 회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