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미스 김 라일락(Miss Kim Lilac)과 팔리빈 라일락(Palibin Lilac)

林 山 2022. 7. 23. 15:18

2022년 5월 하순경 성남 신구대식물원을 찾았다. 가든 카페 앞에는 마침 미스 김 라일락(Miss Kim Lilac)이 활짝 피어 있었다. 시중에 미스 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팔리빈 라일락(Palibin Lilac)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스 김 라일락의 이파리를 보면 팔리빈 라일락과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스 김 라일락은 잎이 다소 큰 삼각형이지만, 팔리빈 라일락은 작고 둥글다. 미스 김 라일락은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보라색이지만 점점 라벤다색으로 변하며, 활짝 피면 하얀색으로 변하면서 매혹적인 향을 낸다. 미스 김 라일락은 지금 시중에서 거의 유통되고 있지 않아서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미스 김 라일락(성남 신구대식물원, 2022. 5. 21)

 

팔리빈 라일락 (충주시 교현동 주공아파트, 2021. 5. 4)

 

미스 김 라일락은 물푸레나무목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시링가 푸베스켄스 섭스피시즈 파툴라 미스 김(Syringa pubescens ssp. patula Miss Kim)이다. 영어명은 미스 김 코리언 라일락(Miss Kim Korean Lilac) 또는 미스 김 라일락(Miss Kim Lilac), 미스 김 만주리안 라일락(Miss Kim Manchurian Lilac)이다. 일어명은 히메라일락'미스김'(姫ライラック'Miss Kim')이다. '꽃말은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이다.

 

속명 'Syringa'는 '파이프(pipe), 관(tube)'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시링크스(syrinx)'에서 유래했다. 'syrinx'는 원래 '고광나무속의 작은 가지로 만든 피리'라는 뜻의 그리스어 '필라델푸스(Philadelphus)'였는데 후에 전용된 것이다. 종소명 '푸베스켄스(pubescens)'는 '익다, 숙성하다(ripening), 털이 많은(hairy)'의 뜻을 가진 라틴어 형용사다. 잎에 솜털이 많이 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ssp'는 '섭스피시즈(subspecies)'의 줄임말로 '아종(亞種)'을 나타낼 때 쓴다. 아종명 'patula'는 '옆으로 퍼지는, 연장하는, 확장하는'의 뜻으로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지는 특성을 나타낸다. 

 

'Miss Kim'(미스 김)이 학명에 들어간 사연은 이렇다. 미군정기인 1947년 11월 캠프 잭슨(Camp Jackson)에서 근무하던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 미군정청, 美軍政廳) 소속 원예사 엘윈 마셜 미더(Elwyn Marshall Meader)는 동료와 함께 북한산으로 등산을 갔다. 미더는 백운대 정상에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종 특산식물 털개회나무[Syringa patula (Palib.) Nakai]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미더는 이 나무를 라일락의 일종으로 착각했다. 미더는 어렵사리 씨앗 12개를 받았다. 

 

1948년 한국 근무를 마친 미더는 뉴햄프셔로 돌아가 씨앗을 심었다. 12개 가운데 7개의 싹이 텄다. 그런데, 다섯 그루는 크게 자랐지만 두 그루는 키가 작은 왜성종(矮性種)이었다. 왜성종 두 그루 중 하나는 특히 이파리가 진한 녹색으로 가장자리에 주름이 있었다. 꽃이 피자 처음에는 진보라색이더니 차츰 라벤더색으로 변하다가 꽃이 질 무렵에는 흰색으로 변했다. 꽃 향기 또한 매우 좋았다. 여름에는 흰가루병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강건했으며, 가을에는 진홍색 단풍이 들어 아름다웠다. 

 

1954년 뉴햄프셔 농업시험장은 이 왜성종 꽃나무에 '미스 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스 김 라일락은 권위 있는 영국 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로부터 정원공로상(Garden Merit)을 받았다. 

 

'미스 김'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 미더는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이 김씨다. 한국에서 미인대회가 열린다면 김씨 성을 가진 여성이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여성만큼 아름답다는 뜻에서 이 나무에 '미스 김'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미더가 한국에 있을 당시 식물 자료 정리를 도와 주었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종명을 붙였다는 설은 와전된 것이다. 

 

이후 미스 김 라일락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으로 퍼져 나갔다. 1970년대에는 한국에도 역수입되었다. 미스 김 라일락은 서양수수꽃다리(lilac, 라일락, 양정향나무)에 비해 키가 작고 가지 뻗음이 일정하여 모양 만들기가 쉽고,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짙어 우량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정원과 공원에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미스 김 라일락의 원종은 털개회나무[국가표준식물목록 정명 Syringa pubescens Turcz. subsp. patula (Palib.) M.C.Chang & X.L.Chen),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학명 Syringa patula (Palib.) Nakai, ]이다. 원산지는 한강토(조선반도)와 중국이다. 털개회나무의 일어명은 우스게하시도이(ウスゲハシドイ, うすげはしどい, Syringa pubescens subsp. patula)다. '우스게(うすげ, 薄毛)'는 '숱이 적은 머리', '하시도이(はしどい)'는 '개회나무'의 뜻이다. 중국명은 꽌동챠오링화(关东巧玲花, Syringa pubescens subsp. patula)이다. '꽌동(关东)'은 산하이관(山海關) 동쪽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롱쟝(黑龍江) 성(省) 등 동베이산셩(东北三省) 지역을 일컫는다. '챠오링화(巧玲花)'는 학명이 'Syringa pubescens Turcz.'이며, 털개회나무와 가장 가깝다. '巧玲花'의 일어명은 지나하시도이(シナハシドイ)이다. 지나(シナ)는 중국을 말한다. 

 

미스 김 라일락(성남 신구대식물원, 2022. 5. 21)

 

팔리빈 라일락(충주시 교현동 주공아파트, 2021. 5. 4)

 

미스 김 라일락은 키가 1.2~2.7m 정도이다. 줄기는 곧게 자란다. 줄기의 껍질은 짙은 회색으로 껍질눈이 흩어져 있다. 겨울눈은 난형이다. 잎은 짙은 녹색이다. 잎 모양은 타원형에서 난형이며, 길이는 7.6~12.7cm다. 가을이 되면 잎이 진홍색으로 변한다. 

 

꽃은 양성화이며 5~6월에 핀다. 꽃줄기는 10~15cm 정도이다. 꽃봉오리가 처음 나올 때는 진보라색을 띠며, 꽃이 피면서 홍자색 또는 라벤더색으로 차츰 변한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거의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변하고 진한 향기가 있다. 

 

미스 김 라일락은 작은 관목이어서 경관이 작은 곳에 심으면 적당하다. 울타리나 혼합 경계지용으로도 쓰인다. 집단 재배도 좋다. 꽃이 화려하고 향기가 매혹적이어서 절화로도 많이 이용된다. 

 

미스 김 라일락(성남 신구대식물원, 2022. 5. 21)
팔리빈 라일락(충주시 교현동 주공아파트, 2021. 5. 6)

 

팔리빈 라일락(Palibin lilac) 물푸레나무목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시링가 푸베스켄스 섭스피시즈 푸베스켄스 '팔리빈'(Syringa pubescens ssp. pubescens 'Palibin') 또는 시링가 마이어리 '팔리빈'(Syringa meyeri 'Palibin')이다. 

 

'Palibin'은 명명자인 러시아 식물학자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팔리빈(Ivan Vladimirovich Palibin, 1872~1949)이다. 'meyeri'는 미국 농무부 소속 탐험가 프랭크 니콜라스 마이어(Frank Nicholas Meyer, 1875~1918)를 기리는 뜻이 있다. 1909년 미국 새로운 식물 종을 수집하기 위해 아시아를 여행하던 마이어는 중국 펑타이정원(豐臺庭院)에서 샤오예챠오링화(小叶巧玲花, Syringa pubescens ssp. microphylla) 왜성종을 발견했다. 그는 왜성종 샤오예챠오링화 가지를 잘라 미국으로 보냈다. 미국에서는 왜성종 샤오예챠오링화를 꺾꽂이로 육성해서 팔리빈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팔리빈 라일락의 원종명은 란딩샹(蓝丁香, Syringa meyeri)이다. 영어명은 마이어 라일락(Meyer lilac) 또는 코리언 라일락(Korean lilac)이다. 미국에서는 미스 김 라일락이 만주 라일락(Manchurian Lilac), 팔리빈 라일락이 코리언 라일락(Korean Lilac)으로 잘못 알려졌다. 일어명은 히메라일락(姫ライラック)이다.   

 

팔리빈 라일락의 키는 1.5m 이하이다. 수수꽃다리속 식물 가운데 가장 작은 왜성종이다. 가지는 빽빽하게 벋는다. 작은 가지에는 4개의 능선이 있으며, 미세 연모(軟毛)가 나 있다. 잎자루는 6~15mm이며, 털이 없거나 미세 연모가 있다. 잎은 작고 둥근 달걀형이며, 진한 녹색을 띤다. 잎 길이는 2∼5cm, 너비는 1.5∼3.5cm이다. 잎 뒷면에는 털이 없거나 잎맥에 연모가 있다. 

 

꽃은 4~6월에 핀다. 원추형 꽃차례는 곧게 서며 길이 2.5~10cm, 너비 2.5~4cm이다. 꽃차례와 꽃자루에는 미세 연모가 있다. 꽃자루 길이는 1~2mm이다. 꽃 색은 분홍색 또는 보라색이다. 꽃받침은 암자색(暗紫色)이고, 길이는 2mm이며, 털이 없거나 미세 연모가 있다. 꽃부리는 청자색(青紫色)이고 길이는 1.5cm이다. 꽃부리통은 원통형이고, 길이는 0.5~1.5cm이다. 꽃부리 열편(裂片)은 장타원형이며 옆으로 벌어진다. 열편은 담갈색에 이어 차츰 검은색으로 변해 꽃부리통 입구 아래에 붙는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장타원형으로 길이는 1~2cm이고, 뚜렷한 껍질눈이 있다. 종자는 8~9월에 익는다. 

 

2022. 7. 23. 林 山. 2023.5.4.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