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 김성동(金聖東) 선생이 암과 싸우다가 2022년 9월 25일 오전 7시경 건국대학교 의대 충주부속병원에서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울진 죽변에서 김인국 신부로부터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부음을 듣자마자 곧장 차를 몰아 충주로 돌아왔다.
선생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도 미욱한 후배들을 남기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시니 애통하고 또 애통하다. 선생과의 인연은 2021년 7월 중순경으로 올라간다. 경기도 양평에서 충주시 연수동 유원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긴 선생은 필자, 김인국 신부 등 뜻을 함께 하는 인사들과 함께 역사연구모임 '해방동모(解放同侔)'를 결성하고 금기에 갇힌 역사와 문학을 해방시키는 일에 나섰다.
'해방동모'의 구심점인 선생은 회원들과 함께 고려시대 김윤후 장군의 대몽항쟁 유적지, '영원한 아나키스트' 유자명의 생가터,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총책 김삼룡의 생가터, 조선공산당 3대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정태식 생가터 등을 답사하면서 남한에서 잊혀지거나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앞장섰다.
선생은 역사 유적지를 다녀온 뒤에는 꼭 답사기나 관련 글을 남겼다. 선생은 아픈 몸을 부여잡고 그동안 김윤후 장군 유적지 답사기 '대림산성, 세계 최강 침략군 물리친 충주사람들', 홍범도 장군 관련 글 '충주성 두려뺀 미륵뫼 총댕이들', 유자명 생가터 답사기 '한강토 위를 떠도는 중음신 아나키스트 류자명 선생', 정태식 생가터 답사기 세 정씨(鄭氏)를 찾아서',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아들로 유명한 원경 스님 관련 글 '멈춰버린 인연의 수레바퀴 - 원경 스님 입적에 부쳐' 등을 손수 썼다.
선생이 역사 유적 답사기를 남긴 뜻은 후세인들이 읽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승의 마지막 과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선생은 '해방동모'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아, 그러나, 선생은 역사 유적 답사 시작 단계에서 조일전쟁(朝日戰爭) 격전지 탄금대 답사를 앞두고, 답사기 '탄금대, 왜놈은 얼레빗, 되놈은 참빗'만 먼저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안타깝고도 애닯다.
선생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했다. 이름은 몰락한 유생이었던 조부가 '동방(東)의 성인(聖)이 되라'는 뜻으로 손자에게 지어 주었다고 한다.
선생의 부친 김봉한은 이관술과 함께 경성콤그룹 활동을 하다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한국전쟁이 나면서 부친은 충남 대덕군 산내면 산골짜기에서 2,000여명의 사상범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이런 아픈 가족사는 선생의 삶을 평생 동안 지배하게 된다. 좌익 활동을 했던 부친을 둔 이유로 연좌제라는 족쇄가 채워져 정상적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1964년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지효 스님을 은사로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해 12년 동안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붙들고 씨름하던 선생은 1975년 '주간종교'에 첫 단편 소설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정식 승적이 없었던 그는 당시 소설 내용을 문제 삼은 조계종으로부터 '승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제적한다'는 통고를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연좌제의 탈출구이자 평생의 화두로 문학을 선택했다.
1976년 가을 하산해 바둑 잡지 편집자 등으로 일하던 선생은 1978년 '한국문학'에 중편 소설 '만다라(曼陀羅)'가 당선됐다. '만다라'는 출가한 지 6년째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풀지 못하던 수도승 법운(法雲)이 지산(知山)이라는 파계승을 만난 뒤 수도 생활에 변화를 맞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승려 생활을 반영한 '만다라'는 젊은 승려 법운의 수행과 방황을 통해 불교계와 사회 전체의 위선과 한계를 고발한 문제작이었다. '만다라'는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되면서 문단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1981년 선생은 첫 소설집 '피안의 새'와 산문집 '부치지 않은 편지' 등을 연달아 발표한다. 이어 장편소설 영화로 만들어진 '만다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는 이른바 한양(漢陽)의 지가(紙價)를 올리는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한편, 선생은 1983년 해방 전후 시기를 배경으로 부친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친의 사상과 활동을 다룬 부분 등이 검열에 걸려 삭제되는 일이 생기자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이 무렵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난 그는 몇 차례에 걸친 뇌수술 등을 거쳐 100일 만에야 병원에서 퇴원하기도 했다.
퇴원 이후에도 선생은 자전적 장편 '집'과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해' 등을 출간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1991년에는 임오군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조선의 각 분야 예인들과 인걸들의 활약을 다룬 대하 장편소설 '국수(國手)'를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미완으로 끝났던 '국수'는 2018년에 전체 5권으로 완간하게 된다.
선생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불교신문'에 대표작 하나인 '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을 연재한다. 소설 '꿈'은 승려와 여대생의 사랑과 구도(求道)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2010년 선생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이들의 행적을 담은 열전 '현대사 아리랑'을 냈다. '현대사 아리랑'은 2014년에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로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하게 된다.
선생은 2015년 소설 전체의 주제를 완전히 뒤바꾸다시피 개작한 '만다라'를 내놓기도 했다. 주인공 법운이 ‘피안’으로 가는 차표를 찢어 버리고, 속세로 달려가는 원작의 마무리 장면은 개작 '만다라'에서 법운이 ‘피안’ 행 차표를 들고 정거장 쪽으로 달려가는 장면으로 처리된다. 이 장면에 대해 선생은 “젊은 수좌 법운이 공부도 모자라고 흥분된 상태에서 저자로 내려와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만다라'의 주인공 법운은, 승적을 버린 뒤에도 자신의 거처를 ‘절이 아닌 절’을 뜻하는 ‘비사란야(非舍蘭若)’라 이름 붙인 집 안에 불상을 모시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는 등 승려와 비슷한 생활을 한 김성동으로 연결된다.
2019년 선생은 해방 공간에서 남로당원으로 좌익 활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부친과 옥고를 치른 모친의 이야기를 다룬 생전의 마지막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를 출간했다. '민들레꽃반지'를 통해서 부친의 존재가 그의 평생의 문학적 화두였음을 알 수 있다. 그해 모친마저 사망하자 매달 한 번씩 찾아오던 기관원이 발길을 끊었고, 선생은 비로소 연좌제에서 해방된 홀가분함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선생은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문체를 지닌 글지였다. 어린 시절 조부 슬하에서 익힌 한학과 지금은 잊혀지다시피 한 순우리말, 충청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의 문장은 번역으로는 느낌을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독특한 ‘조선 문체’를 구사했다. 말과 글에 관한 그의 고집과 헌신은 대하소설 '국수'에 나오는 낱말을 설명한 별권 단행본 '국수사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국수'를 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말은 한독(漢毒)과 왜독(倭毒), 양독(洋毒) 등 삼독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짓밟히고 버려진 우리말을 저라도 챙겨서 남겨 놓자고 쓴 게 소설 '국수'”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선생은 그동안 집필한 문학적 업적으로 이태준문학상을 비롯해서 신동엽창작기금, 행원문화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받았다. 마침내 선생은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동방의 성인'이 되었다.
그동안 남북 분단과 가족사로 인해 수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으신 선생이시여! 이제는 감시도 억압도 없는 편안한 세상에서 영면하시기를!
2022년 9월 26일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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