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소설가 고 김성동(金聖東)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호(號)를 물었다. 선생은 자신의 호가 전중(前中)이라고 했다.
전중? 아무리 머리를 굴려 풀이를 해봐도 그 의미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선생이 머리를 깎고 사문에 출가를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슬그머니 웃음이 빵 터질 뻔했다. 전중에는 '전(前)에 중(僧)이었다.'는 뜻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자신의 호에 대해 “왜 내 이력에 ‘전직(前職) 승려(僧侶)’가 자꾸 따라다니잖여? 그러다 보니 호를 짓는다면 ‘전중(前中)’으로 하면 좋겠다 싶었지. ‘전(前)’은 앞으로 올 시간, 그러니께 새로운 세상을 가리키는 시간 개념이고, ‘중(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라 둥그런 원을 만들자, 살육 없는 세상을 만들자 하는 비원(悲願)을 담은 거지.”라고 설명했다.
‘전중(前中)’에는 '전직 승려'라는 뜻도 담겨 있지만, 사실은 '앞으로 살육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민족사의 비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개인 이력과 평생의 소망을 '전중' 두 글자로 나타낸 것이었다.
선생은 이처럼 자신의 호에도 깊은 뜻에다가 위트를 담은 재미있고 멋진 글지였다.
2022. 9. 29.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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