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홍도(紅島) 기행

林 山 2009. 9. 18. 15:04

2007년 한가위를 이틀 앞둔 9월 23일 오후 1시 전라남도 목포시(木浦市) 북항(北港)발 홍도(紅島) 1구 죽항행 고속 여객선에 오른다. 요금은 편도 3만2천원이다. 목포에서 홍도까지의 거리는 약 115km,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30여년만에 다시 찾아가는 홍도는 어떤 모습일까? 청주에서 대학에 다닐 때 고등학교 동창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전여행을 한답시고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홍도를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 배는 목포항과 홍도 2구를 오갔다. 우리를 태운 배는 수심이 얕아서 홍도 2구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 정박한 채 작은 쪽배가 승객들을 실어날랐다. 홍도 2구에 상륙한 우리 일행은 무일푼인지라 민박은 꿈도 못꾸고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그날 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쟁반같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밤이 이슥하여 달이 서쪽으로 기울자 바다 위에는 금비단을 깔아놓은 듯 은은한 달그림자가 수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홍도 밤바다에 펼쳐진 달그림자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금도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후 다시 홍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보름달이 뜨는 날을 택해서 가리라 마음먹었다.       

 

홍도 지도

 

오후 1시 목포시(木浦市) 북항(北港)을 빠져나온 여객선이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린다. 물살을 가르면서 나아가는 배 앞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다가왔다가는 멀어져 간다. 잠시후 배는 팔금도(八禽島)와 안좌도(安佐島) 사이의 해협으로 들어간다. 두 섬은 510m 길이의 연도교(連島橋)인 신안제1교로 연결되어 있다. 안좌도는 원래 별개의 섬이었던 기좌도(箕坐島)와 안창도(安昌島)를 간척사업으로 연결하여 하나로 만든 섬이다. 두 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안좌도라 지은 것이다.   

 

여객선은 노대섬을 지나 한국 최초의 천일염전이 시작된 곳으로 유명한 비금도(飛禽島) 가산선착장에 잠시 들러 손님 몇 사람을 내려놓고는 다시 떠난다. 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비금도와 도초도(都草島) 해협으로 들어선 배가 두 섬을 잇는 937m 길이의 서남문대교 아래를 지난다. 도초도는 일제시대인 1925년 가을 소작인들이 무리한 소작료를 요구한 문재철(文在哲), 윤영현(尹永炫), 이마이 토요지마(今井豊島), 나카지마 세이타로(中島淸太郞) 등 악덕지주들에게 소작료 불납동맹으로 저항한 도초도소작쟁의(都草島小作爭議)로 유명한 섬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앞에 산과 바다가 검푸른 빛을 띠고 있는 섬이 나타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흑산도(黑山島)임을 알겠다. 선착장에서 몇 사람을 내려놓은 배는 두어 사람을 태우고 다시 홍도를 향해 뱃길을 떠난다.  

 

목포 서남방 92.7km 거리에 있는 흑산도는 예로부터 죄인들을 귀양보내는 유배지였다. 천주교 박해 때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이 섬에 머물면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썼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 최익현(崔益鉉, 1833∼1906)도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이 섬에 있는 상라산성(上羅山城, 반월성)은 장보고가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미자가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서 히트시킨 '흑산도 아가씨'는 바로 이 섬을 배경으로 한 노래다. 이 노래는 1967년 박춘석이 작곡하고 정두수가 가사를 썼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빚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피난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은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죽항

 

 노적산과 녹섬

 

실루엣처럼 어렴풋이 보이던 홍도가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낸다. 깃대봉(367.4m)과 양산봉(陽山峰, 232m)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객선은 오후 3시 반을 조금 넘겨 홍도 1구 죽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어서 외부인들은 무조건 2600원의 입도료를 내야 한다.

 

30여년만에 다시 찾아온 홍도..... 감개가 무량하다. 오늘따라 죽항 앞바다는 물결이 잔잔하다. 오른쪽으로는 방구여의 바위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왼쪽으로는 홍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노적산(露積山, 66m)과 녹섬이 죽항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파도가 잠잠한 내만에는 작은 어선들이 한가로이 떠 있다.  

 

동경 125°12', 북위 34°41'에 위치한 홍도는 흑산도에서 서남방으로 22km 떨어져 있다. 동서로는 2.4km, 남북으로는 6.4km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흑산면(黑山面) 홍도리(紅島里)다. 홍도는 가거도(可居島, 소흑산도), 영산도(永山島), 대둔도(大屯島), 다물도(多物島), 대장도(大長島), 상태도(上苔島), 중태도(中苔島), 하태도(下苔島)와 함께 흑산군도(黑山群島)를 이루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매화보다 아름답다고 하여 홍도를 매가도(梅加島)라고도 한다. 홍도라는 이름은 해질녘 석양 노을이 바다에 반사되어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하여 '붉을 홍(紅)'자를 쓴 것이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쭉한 누에 모양으로 떠 있는 홍도는 본섬과 20여개의 부속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항마을과 홍도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좁은 대목을 중심으로 북쪽이 섬의 2/3, 남쪽이 1/3을 차지한다. 북동쪽의 바다에서 솟구친 산맥은 352봉, 홍도 최고봉인 깃대봉, 347봉을 거쳐 대목을 지나 남동쪽의 양산봉에 이른 다음 남쪽의 바다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홍도는 약 200만년 전에 형성된 사암(砂岩, sandstone)과 규암(硅岩, quartzite)의 수직 절리(節理, joint)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다. 약간의 역암(礫岩, conglomerate)과 혈암(頁巖=泥板巖, shale)도 존재한다. 사암과 규암의 층리(層理, bedding)와 절리가 잘 발달되어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띠고 있다. 파식애(波蝕崖)와 파식대(波蝕臺) 등 해식단애(海蝕斷崖)가 발달하여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괴석이 즐비한 해안 일대는 독특한 해벽미를 자랑한다. 120여개에 이르는 해식동(海蝕洞, sea cave), 20여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岩島, sea stack), 2개의 바위문(sea arch) 등은 분재와도 같은 소나무,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른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한다. 서해바다를 불태우는 듯한 홍도의 낙조는 환상적이다. 그래서 홍도를 남해의 소금강, 서해의 해금강으로 부른다.

 

홍도에 자생하는 식물은 약 545종에 이른다. 특히 희귀식물인 풍란(風蘭)의 자생지로 유명하다. 풍란 외에도 나도풍란, 석곡, 새우난, 무엽란, 홍도원추리, 홍도까치수염, 영주치자, 백량금, 섬모시풀, 흰동백, 식나무, 누운향나무, 덩굴사철 등의 희귀식물 및 특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아름드리 동백림(冬柏林)과 사람주나무, 모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식나무 등의 군락지도 있다. 이른 봄에는 섬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꽃, 여름철에는 섬을 온통 노랗게 수놓는 원추리꽃이 장관이다.

 

동물로는 곤충과 조류, 파충류 등 231종이 알려져 있다. 특히 남방계의 새와 나비가 많다. 54종의 새중 남방계는 43종, 북방계는 11종이다. 흑비둘기와 염주비둘기는 육지부 서해안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귀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또 흑로, 가마우지, 쇠가마우지, 괭이갈매기, 원앙 등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 새들이다. 남색남방공작나비는 제주도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다.

 

홍도의 바다는 오염이 되지 않아 물이 맑고 풍부한 생물상을 보유하고 있어서 훌륭한 야외수족관이라 할 수 있다. 연근해에는 어류 233종, 무척추동물 117종, 해조류 24종이 서식하고 있다. 

 

홍도는 지질구조, 육상 및 해양 생물상이 다양하여 자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홍도는 1965년 4월 7일 천연기념물 제170호, 1981년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문헌에는 1679년 고씨라는 사람이 홍도에 최초로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취락은 홍도 1구인 남쪽의 죽항마을과 2구인 북쪽의 석촌마을에 집중되어 있다. 1구에는 수정처럼 물이 맑은 홍도해수욕장이 있고, 2구에는 해안의 전망이 뛰어난 등대가 있다. 홍도에 살고 있는 주민은 현재 177가구 466명(2003년 현재)이다. 지금은 여객선이 홍도 1구로 드나든다. 1구와 2구 사이는 어선으로 이동한다.

 

홍도의 1월 평균기온은 2℃, 8월 평균기온 25℃다. 연강수량은 984㎜, 연강설량은 8.8㎜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홍도의 경지는 논은 없고 밭 10㏊, 임야 623㏊이다. 주요 농작물로는 소량의 고구마, 감자, 콩, 보리, 마늘 등이다. 연근해에서는 주로 우럭, 농어, 장어, 멸치, 오징어가 잡힌다. 전복, 해삼, 미역, 김, 다시마도 채취된다. 전복은 양식도 한다. 

 

죽항마을 민박집에 숙소를 잡은 뒤, 대목을 넘어 홍도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하늘에 구름이 낀 탓으로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기는 틀렸다. 그래도 서녘 하늘과 바다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몽돌이 깔린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횟집에 자리를 잡는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손님들도 뜸하고 수족관에 물고기들도 별로 없다. 현찰이 없다고 하자 주인이 내일 죽항 선착장 매표소에서 결제하면 된다고 한다.

 

농어와 돌돔, 우럭 모듬회를 시켜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한다.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술 한 잔에 취하고 홍도의 밤바다에 취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그네의 향수에 젖기 마련이다. 밤이 이슥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몽돌 위를 구르는 물결소리만이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린다. 30년 전에 보았던 환상적인 홍도의 달밤을 떠올리면서 숙소로 향한다.    

   

 신당

 

이튿날 아침 일찍 깃대봉을 오르기로 한다.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 뒤로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는 데크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15분 정도 걸려 전망대에 올라선다. 전망대에서는 죽항마을과 양산봉, 홍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표지판에 '깃대봉은 휴식년제에 들어가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할 수 없이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간다. 높지도 않고 산세도 평범한 깃대봉을 산림청이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한 이유를 모르겠다. 

 

양산봉으로 가는 길목에 신안군 홍도관리사무소가 있다. 홍도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자생난전시실에 들른다. 자생난실에는 '홍도팔경'이란 제하의 시가 걸려 있다. 원제는 '景觀讚音(경관찬음)'으로 홍도의 절경을 예찬한 한시다. 어색한 곳 몇 구절을 고쳐 다시 풀이한다.

 

奇巖怪石機重橫(기암괴석기중횡)
獨帶萬年不變情(독대만년불변정)
莫言孤作無隣島(막언고작무린도)
誰識將爲保國城(수식장위보국성)
號得紅島春意拾(호득홍도춘의습)
景如仙界道心生(경여선계도심생)
此山曾若渡斯水(차산증약도사수)
聲輿金剛爭入京(성여금강쟁입경)

 

기묘한 바위와 괴이한 돌들 몇 겹이련가

천년 만년 세월 흘러도 그 모습 변함없네

이웃도 없는 외로운 섬이라고 말하지 마오

장차 나라 지킬 섬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리

그 이름 홍도라 하였으니 뜻마저 흡족하네

선계가 예 있어 도 닦을 마음 절로 생기네

이 산이 일찌기 바다를 건너 알려졌더라면

그 명성이 한양에서 금강산 못지 않았으리

 

난전시실에는 대엽풍란과 소엽풍란, 콩란, 새우란, 석곡, 맥문동 등 500여종의 홍도 자생풍란과 희귀식물을 전시하고 하고 있다. 풍란과 콩란을 돌에 붙인 석부작도 보인다. 만5천원 정도면 배양란을 구입할 수 있다. 자생난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식물원치고는 좀 허술하고 초라한 편이다.  

 

난 전시실을 나와 오솔길을 따라 양산봉으로 오른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당산숲(堂山林)에 이르자 새로 지은 듯한 자그마한 신당이 나타난다.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 300살 된 동백나무들이 밀림을 이룬 당산숲은 홍도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매년 음력 섣달 그믐에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당제를 지내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 있던 자리에 얼마 전 신당을 복원하고 용왕을 모셨다.  

 

양산봉 중턱 바위벼랑에서 바라본 방구여

 

당산숲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바위벼랑 위에 서자 홍도 남쪽 바다와 방구여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기증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까마득한 수직 바위벼랑 바로 아래는 시퍼런 바다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홍도 일주 유람선을 타기 위해 양산봉을 내려간다. 

 

 홍도 1구 죽항마을과 선착장

 

12시 30분에 출발하는 홍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에 오른다. 섬을 한바퀴 도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요금은 만5천원이다. 출발 시간이 되자 200여명의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죽항 선착장을 떠나 남쪽의 방구여로 향한다. 가이드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홍도의 역사와 33경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홍도에는 이른바 홍도 10경과 33경이 있다. 홍도 10경은 제1경 남문바위, 제2경 슬금굴, 제3경 거북바위, 제4경 만물상, 제5경 부부탑, 제6경 석화굴, 제7경 독립문바위, 제8경 탑섬, 제9경 슬픈여, 제10경 공작새바위다. 홍도 33경은 사람마다 이름과 순서가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33경과 홍도 유람선조합의 33경 해상관광코스 순서도 다르다. 홍도 지도나 안내도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신안군이나 흑산면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궁금증과 답답증은 풀어지지 않는다. 홍도에 대한 기행문도 속 시원하게 쓴 사람이 없다. 

 

유람선조합의 33경을 기본으로 여러 지도와 안내도, 기행문 등을 참조해서 홍도 33경의 이름과 순서를 죽항에서 시계방향으로 다시 정해본다. ①제1경 도승바위→제2경 남문바위→제3경 탕건바위→제4경 병풍바위→제5경 슬금굴→제6경 흔들바위→제7경 칼(상투)바위→제8경 곰바위(무지개바위)→제9경 제비바위→제10경 돔바위→제11경 기둥바위→(제12경 ET바위)→(제12경 삼돗대바위)→제13경 주전자바위→제14경 시루떡바위→제15경 원숭이바위→제16경 용소바위→제17경 대문바위→제18경 좌불상→②(제18경 홍도해수욕장)→제19경 거북바위→제20경 만물상→제21경 부부탑(수중자연석탑)→제22경 석화굴→(제23경 홍도 2구 등대)→제24경 독립문바위→제25경 탑섬→(제26경 대풍금)→제27경 수력말과 종바위→(제28경 망제)→제28경 두루미여→제29경 벼락바위→제30경 슬픈여→제31경 공작새바위→제32경 홍어굴→제33경 노적산→①.

 

비수기에는 ①번부터, 성수기에는 ②번부터 관람한다고 한다. 이 순서와 이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순서와 이름을 정할 수 있으리라.  

 

1경 도승바위 

 

도승바위

 

맨 처음 이른 곳은 33경중 제1경인 방구여의 도승(道僧)바위다. 불도를 닦는 스님이 선정(禪定)에 든 듯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방향을 바꿔서 보면 칼 모양과 비슷하게도 보인다. '여'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작은 암초나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섬 가까운 곳에 있으며, 간혹 바다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것도 있다.

 

옛날 홍도에 마음이 착한 홀아비 어부가 개 한 마리를 자식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부는 고기를 잡으러 먼바다로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실종되었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개는 먹는 것도 잊은 채 바닷가에 나와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목이 쉬도록 주인을 부르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도승이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애처롭게 죽어간 개의 넋을 빌어주기 위해 도승상을 세웠다. 그후 섬사람들은 이 바위를 충견암(忠犬岩) 또는 도승바위라고 불렀다. 지금도 태풍이 부는 날이면 주인을 애타게 부르는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2경 남문바위

 

방구여의 남문(南門)바위는 홍도 10경중 제1경, 33경중 제2경이다. 홍도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어 남문이라고 한다. 바위섬에 소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석문이 기울어진 사다리꼴로 뜷려 있다. 남문을 지나간 사람은 일년 내내 더위를 먹지 않고 재앙이 없어지며, 소원을 성취하고 행운을 얻는다고 한다. 또 고깃배가 남문을 지나가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문을 행운문(幸運門)이라고도 한다. 가이드는 또 남문을 만복을 내리는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는데..... 그런데 '만복'과 '해탈'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남문바위가 유명해 진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 매년 이곳에서 전국사진대회가 열리면서부터다. 남문바위 일대의 절경은 해외에 배포한 한국의 관광안내 책자의 표지에 실리기도 하고, 한때는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에 나오는 애국가의 배경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유방바위

 

봉긋한 두 개의 바위섬이 붙어 있어 젖무덤처럼 생긴 바위는 유방(乳房)바위다. 유방바위는 젖무덤바위, 쭈쭈바위라고도 한다. 그런데 천지신명님의 장난인가 모양이 짝짝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걸작이다. 짓궂은 남신(男神)이 유방바위를 만들어 놓고 한쪽만 애지중지하며 만졌는데, 너무 많이 만진 쪽만 유달리 커져 그만 짝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방바위를 신의 섬 또는 신의 바위라고도 한단다.    

 

홍도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유방바위에서 풍어와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낸다고 한다. 저 풍만한 유방으로 용왕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일까? 

 

도승바위를 배경으로

 

3경 탕건바위

 

병풍바위 바로 앞 수면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작은 바위가 3경 탕건(宕巾)바위다. 속칭 감투바위다. 먼 옛날 이곳으로 귀양온 선비가 홍도의 절경에 취한 나머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탕건이 날려 바다에 빠졌다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물에 떠 있던 탕건이 바위로 변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유방바위는 홍도 33경에 들지 못했을까?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탕건바위보다 유방바위가 낫지 않은가!   

 

4경 병풍바위

 

4경 병풍(屛風)바위는 탕건바위 바로 뒤에 있다. 마치 병풍을 뒤로 비스듬히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병풍바위는 양산봉 산신령이 동남풍을 막기 위해 펼쳐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남해 용왕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12폭의 거대한 병풍을 쳐 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전설이란 말 그대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란 뜻이니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오.   

 

요술동굴

 

요술(妖術)동굴은 홍도의 해안 일대에 있는 120여개의 크고 작은 자연동굴 가운데 하나다. 왼쪽 두 동굴에는 천장에 뿌리를 박은 덩굴식물이 요술처럼 거꾸로 자라고 있어 요술동굴이라고 한다. 늘 푸른 덩굴은 동굴의 안쪽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홍도 주민들은 이 덩굴을 소밥이라고 부른다. 

 

거꾸로 자라는 '죄 많은 나무'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만 보인단다. 지은 죄가 많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으로만 자란다는 것이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레 감추는 인간보다 저 나무가 훨씬 고결한 존재로 다가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비를 날리고 있는 듯하다.

 

이끼가 많이 낀 바위 일대는 금강문(金剛門)이라고 한다. 금강문은 모든 악귀들이 사라진 청정도량(靑淨道場)으로 통하는 문이다.

 

5경 슬금굴

 

슬금굴(瑟琴窟)은 홍도 10경중 제2경, 33경중 제5경이다. 동굴의 내부공간은 꽤 넓어 200여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 앉을 수 있다. 옛날 이 섬으로 귀양을 온 선비가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망망대해가 바라보이는 이 동굴에서 가야금을 타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여 가야금굴(伽倻琴窟)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실금리굴 또는 실금굴은 '비파 슬(瑟), 거문고 금(琴)'자를 써서 슬금굴로 해야 맞지 않을까?    

 

지금도 슬금굴에 들어가 눈을 감고 고요히 있으면 그 옛날 선비가 가야금을 연주하던 아름다운 선율이 들린다고 한다. 저 동굴 뒤로 죽항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6경 흔들바위

 

바위벼랑 꼭대기에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바위는 6경 흔들바위다. 옛날 힘이 아주 센 도사가 속세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올려놓았는데, 악한 사람이나 못된 사람이 지나가면 흔들거리면서 겁을 준단다. 흔들바위 근처를 지나는 배들도 항상 긴장을 하고 다닌다고 한다.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는 바위다.  

 

마치 칼같이 생긴 바위는 7경 칼바위다. 홍도를 재앙과 악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홍도의 수호신이 이 바위를 세웠다고 한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인 상투와 닮았다 하여 상투바위라고도 하는데..... 홍도 사람들은 칼바위라고 부른다. 칼바위와 별개의 상투바위도 있다. 도승바위를 칼바위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두 바위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8경 곰바위

 

8경 곰바위는 육지를 향해 기어오르는 곰의 형상이다. 곰바위 밑에 있는 동굴을 통해서 나쁜 사람들이 배를 가르고 쓸개를 강탈해 갔단다. 곰바위는 지금도 쓸개를 돌려달라면서 울부짖고 있다고 한다. 다른 존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질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수평선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 때 가끔 오색찬란한 빛이 저 바위에 드리우면 마치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것 같다고 하여 곰바위를 무지개바위라고도 부른다. 무지개바위는 비가 내린 다음 날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신혼부부가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악귀가 물러가고 행운이 오며, 신혼여행에서도 안전하게 돌아온단다. 또 저 바위가 온통 오색으로 물드는 해질녘 신혼부부가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 것은 물론 행복하게 백년해로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개바위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 

 

해마다 삼월 삼짇날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온다는 바위는 9경 제비바위다. 생긴 모양이 제비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등대가 없던 시절 이 바위는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10경 돔바위는 고기떼들이 많이 모여드는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옛날 한 노인이 낚시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때 마침 커다란 돔 한 마리가 낚시 바늘을 물었다. 비몽사몽간에 노인이 온 힘을 다해 낚시대를 당겼는데 그만 너무 세게 당긴 나머지 고기가 바위에 박혀 버리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돔은 그 자리에 그대로 바위로 굳었단다. 돔바위 근처에서는 실제로 돔 등 고급어종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긴 동굴 안쪽에 배가 부른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바위는 신부바위다. 신부가 속도위반을 해서 임신중이라고 한다.   

 

11경 기둥바위 

 

고대 그리이스 신전을 떠받치듯 10여m에 이르는 네모난 돌기둥들이 홍도를 떠메고 있는 듯한 형상의 바위는 11경 기둥바위다. 이 돌기둥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홍도 전체를 들어올려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도 주민들은 기둥바위가 무너지면 큰 변고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 기둥바위 동굴에는 이 섬의 업(業)인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어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이티바위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을 닮았다고 해서 이티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다. 어떤 사람은 이티바위를 12경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삼돛대바위

 

다음은 삼돛대바위다. 옛날 홍도는 신선들만 사는 섬이었단다. 홍도에는 신선들이 남해 용궁을 다닐 때 타는 돛단배가 수 천 척이나 있었는데, 인간들이 이 섬에 당도하자 신선들의 배는 모두 수궁으로 들어갔다. 그중 돛대가 세 개 달린 배 한 척만 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의 삼돛대바위라고 한다. 이티바위 대신 삼돛대바위를 12경에 넣는 사람도 있다.  

 

13경 주전자바위

 

14경 시루떡바위

 

13경 주전자바위는 손잡이가 없는 주전자처럼 생겼고, 14경 시루떡바위는 시루떡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옛날 용왕이 사해 충신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산해진미를 차려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는데, 그 당시에 썼던 술 주전자와 시루떡이 굳어서 바위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15경 원숭이바위

 

고릴라가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의 바위는 15경 원숭이바위다. 옛날 용왕의 잔치에 참석했던 원숭이가 홍도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원숭이는 점차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향수병에 걸린 원숭이는 해변에 나와 먼 남쪽 고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대로 죽어서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원숭이는 오늘도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16경은 용소(龍沼)바위다. 옛날 죄를 지어 용이 못된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려고 천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천년이 되어 이무기가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때가 왔다. 그때 임신한 여인이 해초를 뜯으러 바다에 나왔다가 허물을 벗고 승천하려던 용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부정을 타서 승천하지 못하게 된 용은 분을 못이겨 피를 토하면서 바위에 자신의 형태만을 남긴 채 용소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홍도에 까마귀가 많이 살았는데, 용이 피를 토한 뒤로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17경 대문바위는 옛날 청나라와 교역을 할 때 풍랑을 만난 배들이 대피하던 곳이란다. 배들이 대문바위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져 다음날 안전하게 다시 항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18경 좌불상(坐佛像)은 스님이 앉아서 선정에 든 듯한 모습의 바위다.

 

좌불상을 지나면 홍도해수욕장이다. 이곳을 18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절벽이 해수욕장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깃대봉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아늑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이다. 홍도해수욕장은 길이 600m, 폭 70m 정도의 규모다. 해변에는 몽돌이 깔려 있어 빠돌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홍도에서는 몽돌을 빠돌이라고 하는가 보다. 바닷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수심 10m까지 들여다 보인다. 

 

거북이가 바다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오는 듯한 모습의 바위는 홍도 10경중 제3경, 33경중 제19경 거북바위다.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거북바위가 있다. 옛날 서해 바다에 살던 용왕이 중병에 걸렸다. 의원은 토끼의 간을 먹어야 용왕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충신 거북은 토끼의 간을 구하러 용궁을 떠나 육지로 올라갔다. 거북이 토끼의 간을 구하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밤낮으로 걱정하던 부인 거북은 남편 거북을 찾으러 육지로 올라갔다. 부부 거북은 그렇게 서로를 향해 애타게 기다리다가 바위로 변했다는 슬픈 이야기....... 이런 전설 하나쯤 있을 법도 하다.

 

거북바위는 용신을 맞이하고 악귀를 쫓아주며, 주민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홍도의 수호신이라고 한다. 또 풍어와 안전한 항해를 보살펴 준단다. 홍도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날 당제를 지낸 뒤 용왕의 허수아비를 이곳에서 수궁으로 띄워 보내고 있다.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으리라. 또 옛날 청나라 해적들의 배가 나타날 때마다 거북바위가 풍랑을 일으켜 홍도를 지켰다는 전설도 있다.

 

20경 만물상

 

유람선이 앞으로 더 나아가자 마치 용암이 흘러내린 듯한 바위들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다양한 형상의 만물상(萬物相)이 나타난다. 홍도의 만물상은 홍도 10경중 제4경, 33경중 제20경이다. 금강산의 만물상에 비하면 훨씬 못미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형상으로 보이는 만물상은 서해 최고의 자연예술 조각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과 낮, 저녁에는 각기 다른 색을 띠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옛날 홍도를 자주 약탈하는 아주 못된 해적들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도사가 해적들에게 착한 마음씨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만 가지 형상의 바위를 만들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만물상을 한 번 보면 착한 사람이 되었다. 해적들도 만물상을 본 뒤 착한 사람으로 변하여 노략질을 그만두고 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21경 수중자연석탑

 

검푸른 바닷물속에서 솟아오른 21층 석탑 모양의 바위는 홍도 10경중 제5경, 33경중 21경 수중자연석탑(水中自然石塔)이다. 옛날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백발의 신령이 나타나 '목욕재계하고 이 탑에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얻으리라'고 계시하였다. 신령의 계시대로 정성을 다해 탑에 기도를 드린 부부는 마침내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녀자들이 이 탑에서 기도하면 모두 소원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수중자연석탑은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하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부부탑(夫婦塔)이라고도 하고,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남근(男根)바위 또는 서방(書房)바위로도 부른다.  

 

사랑바위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듯한 바위는 사랑바위고, 토라져 뒤로 돌아선 듯한 바위는 도담바위다. 도담바위는 본처, 가운데 바위는 남자,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바위가 새각시라고 한다. 남자가 새각시를 맞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본 본처가 토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화두가 아니겠는가!

 

22경 석화굴

 

규모가 제법 큰 천연동굴인 석화굴(石花窟)은 홍도10경중 제6경, 33경중 22경으로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석화굴 왼쪽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실폭포가 보기에도 시원하다. 이곳에서 동양 최고의 오색찬란한 일몰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석양이 질 무렵 고기잡이 배를 탄 어부가 멀리서 석화굴을 바라보면 굴속의 물결에 노을이 반사되어 마치 오색 꽃이 핀 무릉도원의 입구로 착각한다고 하여 일명 꽃동굴이라고도 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옆 동굴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 동굴 천장에는 다양한 종유석(鐘乳石 stalactite)이 자라고 있다. 종유석은 100년에 1~2cm씩 자라므로 동굴의 대략적인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동굴속은 어두워서 플래시를 가지고 들어가야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홍도 2구 석촌마을

 

홍도 2구

 

유람선이 30여년 전에 찾아왔던 홍도 2구 가까이 다가가니 석촌마을의 옛 모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때는 2층집이나 3층집이 없었던 것 같은데...... 포구 앞에 있는 저 바위..... 바다에 비친 금빛 찬란한 달그림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바로 그 바위다. 갑자기 해무가 몰려더니 삽시간에 깃대봉을 휘덮어 버린다.

 

홍도 2구를 벗어나자 23경인 언덕 위의 하얀 집 홍도등대가 한폭의 풍경화처럼 앉아 있다. 등대는 우리에게 낭만과 고독을 떠오르게 한다. 저녁무렵 등대 주변을 거닐면서 바라보는 낙조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붉은 노을을 남기고 지는 해는 장렬한 소멸을 느끼게 한다.

 

석양을 볼 때마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가 떠오르곤 한다.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장렬한 느낌을 주는 국가가 기미가요라고 생각한다. 가사는 황조(皇祖) 천조대신(天照大神, 天てらす大神,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 내려준 나라 일본의 이상과 천황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일본의 가요중 일본정신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슬프도록 붉은 석양, 일제히 날리는 벚꽃, 사무라이, 할복자살, 카미가제(神風, かみかぜ) 특공대, 일장기, 그리고 기미가요......  할복자살하는 사무라이처럼 하얀 바탕에 붉은 태양을 그린 일장기를 가슴에 두르고 엄숙하게 기미가요를 부르면서 미국 태평양함대의 전함들을 향해 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인간폭탄이 되어 장렬하게 산화하는 카미가제 특공대.....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가!

 

지금의 기미가요를 작곡한 사람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작곡했던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Franz Von Eckert, 1852~1916)이다. 그는 그 공로로 1902년 태극 3등급 훈장까지 받았다.

 

홍도등대는 목포항과 서해안의 남북 항로, 동남아 항로를 오가는 배들의 육지초인표지 역할을 한다.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한 제국주의 일본이 중국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침략전쟁에 동원된 함대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홍도등대를 세웠다. 1931년 2월 1일부터 밝히기 시작한 등대의 불빛은 20초에 3번 반짝이면서 약 45km 떨어진 먼 곳까지 전달된다. 등탑의 높이는 10m이며, 다른 등대와 달리 사각형 콘크리트 구조 내부에는 등탑으로 올라가는 주물 사다리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24경 독립문

 

옛날 중국을 오가는 배들이 지나다녔던 독립문(獨立門)은 홍도 10경중 7경, 33경중 24경이다. 서울에 있는 독립문과 흡사해서 3.1만세운동 이후 독립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홍도 주민들은 북쪽에 있는 바위라고 해서 북문(北門)바위, 구멍이 뚫렸다고 해서 구멍바위라고도 부른다. 독립문 주변의 해저는 경관이 뛰어나 스쿠버 다이버들이 많이 찾고 있다. 

 

절리로 이루어진 바위섬 꼭대기에 풀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섬은 신비(神秘)섬이다. 신비섬에 이어 군함바위(軍艦)가 눈에 들어온다. 군함바위도 절리로 형성된 넓적한 돌벽돌들이 층층이 쌓여 함선의 형상을 빚어 놓았다.    
 

수많은 탑의 형태로 이루어진 탑(塔)섬은 홍도 10경중 8경, 33경중 25경이다. 섬의 정상부에는 꽤 넓은 평지가 있다. 탑섬에 오르면 홍도의 비경을 볼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독립문과 탑섬 주변은 고급 어종이 풍부한 최고의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해상 포장마차

 

26경 대풍금은 홍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역사적인 곳이다. 유람선이 대풍금 근처 파도가 잔잔하고 아늑한 곳에 떠 있는 작은 목선으로 다가간다. 이른바 해상 포장마차다. 한 접시에 2만~2만5천원을 받고 전복, 해삼, 우럭, 농어 등의 싱싱한 생선회를 즉석에서 떠준다. 관광객들이 생선회를 주문하기 위해 횟배가 있는 쪽으로 몰려들면서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나도 생선회를 시켜 소주를 한 잔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27경 수력말과 종바위는 홍도에서 조류가 가장 세다고 알려진 곳이다.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먼저 밀려오는 큰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린다는데..... 종바위 부근을 지나는 배들은 종소리의 강약에 따라 안전하게 항해를 했다는 것이다. 즉 종소리가 크게 울리면 뱃사람들은 물결이 사납다는 것을 직감하고 항해를 중단하였고, 종소리가 작아지면 비로소 날씨가 좋다는 것을 알고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28경은 망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두루미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망제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못들은 것일까? 두루미여는 상두루미여와 하두루미여가 있다. 29경 벼락바위에 대한 설명도 놓쳤다. 

 

30경 슬픈여

 

슬픈여는 홍도 10경중 제9경, 33경중 30경으로 일곱남매바위라고도 부른다. 칠남매바위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흑산도다. 

 

아주 먼 옛날 마음씨가 착한 부부가  일곱 남매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명절을 맞아 부부는 칠남매를 남겨두고 제물과 아이들의 새옷을 사기 위해 뭍으로 나갔다. 부모님이 돌아오기로 한 날 칠남매는 산봉우리에 올라가 돛단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저 멀리 수평선에 부모님이 타고 갔던 배가 나타나자 칠남매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때마침 불어온 강한 돌풍과 큰 파도에 강타당한 돛단배는 난파되어 가라앉고 말았다. 칠남매는 부모님을 찾아 울부짖으면서 바다속으로 걸어들어가 그대로 바위로 변했다. 칠남매의 가련한 넋은 지금도 부모님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슬픈여 또는 칠남매(七男바위라고 한다. 

 

문효치 시인이 쓴 '홍도-슬픈여'라는 시가 있다. 칠남매바위에 얽힌 슬픈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시다.    

 

슬픔이 자라면
  바위가 되는가. 

귀싸대기를 먹이며
끊임없이 달려붙는 파도에도 닳지않고
오히려 한 자씩 커 올라오는
견고한 슬픔이 되는가. 

그 많은 날 햇빛으로도
그 긴 세월 달빛으로도
녹이지 못하는
슬픈여, 저 바위의 검붉은 빛깔. 

어린 날 저물녘 엄마를 기다리듯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이제 다시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는가. 

침묵으로 굳은 몽둥이
기다림이 끝나지않아
살아나지도 못하는가. 

기다림을 위하여
죽지도 못하는가.
 

31경 공작새바위

 

공작새바위는 홍도 10경중 제10경, 33경중 31경이다. 공작새바위는 오른쪽에서 보면 모자상(母子像), 앞에서 보면 공작새, 왼쪽에서 보면 천마상(天馬像) 같다. 공작새바위 주변의 빼어난 산세는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장군(將軍)바위를 지나 32경 홍어굴(洪魚窟)에 이른다. 홍어굴은 5톤급 소형선박 10여척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법 큰 동굴이다. 홍어잡이 어선들이 북서풍이 강하게 불 때 이 동굴로 대피하였다고 해서 홍어굴이라 부른다. 

 

녹섬

 

홍도 1구 죽항 입구의 녹섬에 이르면 섬 일주 유람은 거의 끝난 셈이다. 앞쪽 바위벼랑 위에는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녹섬의 해돋이는 장관이다. 두 바위봉우리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33경 노적산

 

녹섬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33경 노적산이다. 죽항에서 노적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홍도의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2시간 반만에 홍도 일주를 마친 유람선이 죽항 선착장으로 들어간다. 홍도는 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성적인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다시 홍도에 올 기회가 있다면 며칠 여유를 가지고 머무르면서 차근차근 섬을 돌아보고 싶다.

 

선착장에 내려 잠시 기다리다가 목포행 여객선에 오른다. 여객선이 죽항 선착장을 떠나 목포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다시 홍도에 오게 될지..... 홍도야, 잘 있거라. 다시 만날 그날까지.....

 

 

2007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