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가족 휴가지 삼척에서 차를 몰아 장흥 노력항으로 향했다. 태풍 덴마호가 막 지나간 노력항에서 오후 3시 10분에 떠나는 카페리 오렌지호에 올랐다. 배가 얼마쯤 달리자 오른쪽으로 '서편제'와 '봄의 왈츠' 촬영지라는 청산도, 왼쪽으로 '1박2일' 촬영지'라는 여서도가 나타났다.
배가 한바다로 나갈수록 파도는 더욱 높아졌다. 태풍이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 있는 듯 했다. 여간해서 배멀미를 하지 않던 나도 속이 울렁거려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아침 일찍 장거리 운전에 지친데다가 배멀미까지 겹쳐 나도 모르게 까무룩이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목적지인 성산항에 거의 다 왔다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잠이 깼다. 성산 일출봉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1시간 50분 걸린다던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연착 이유를 오렌지호 사무장에게 물으니 높은 파도 때문에 물결이 잔잔한 바다로 돌아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산항에 내리자 초등학교 친구 박정선이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왔다. 2년만의 만남이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친구의 트럭에 올라 서귀포로 향했다.
북쪽에서 바라본 일출봉
성산항을 빠져나오자 일출봉 북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물이 빠진 뻘밭에서는 사람들이 모시조개를 잡고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모시조개를 한 자루씩 잡았다. 조개는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잡힌다고 했다.
서쪽에서 바라본 일출봉
일출봉 앞에서 친구 박정선과 함께
성산항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일출봉을 사진에 담기 좋은 곳이 있었다. 검은색을 띤 해안에는 순비기나무와 문주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자주색 꽃이 활짝 핀 순비기나무들이 땅에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 하얀색 문주란꽃도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문주란의 향이 진했다. 문주란은 겨울을 제외하곤 일년 내내 꽃이 핀다고 했다.
해안의 오솔길에는 승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불현듯 나도 말에 올라 해변을 마음껏 질주해보고 싶어졌다. 제주가 말의 고장이라더니 어디서나 말을 볼 수 있었다.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
어느덧 해는 서해에 지고..... 이름 모를 항구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밀려오는 바닷가에는 낚시꾼 두 사람이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서귀포 시내로 들어와 친구의 안내로 갈비집으로 들어갔다. 육지에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의 부인도 나왔다. 잠시 후 친구의 친구 김창식 씨 부부도 합석했다. 대구가 고향인 김창식 씨는 13년 전에 제주에 와서 터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농기계를 판매하는 정부융자지정업체인 동양공업 사장이었다.
나와 같은 충북이 고향인 친구도 어릴 때부터 방랑생활을 하다가 제주에 흘러들어와 터를 잡았다. 처음에는 수타면 중식당을 했었는데, 지금은 접고 꽤 큰 감귤농장을 하고 있었다. 갈비집 주인장도 강원도에서 온 사람이라 했다. 우연인지 세 사람 모두 육지에서 살길을 찾아서 제주도로 온 사람들이었다.
타향에서 살다 보니 고향에 대한 향수 같은 것들이 동병상련이 되어 이들을 가깝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타향에서는 고향 까마귀를 만나도 반갑다고 하지 않았는가!
왼쪽부터 박정선 친구, 필자, 김창식 사장
제주도 돼지 등갈비집의 특징은 우선 육지에 비해 고기의 양을 푸짐하게 준다는 것이다. 이 집도 역시 양이 푸짐했다. 1인분을 혼자서 다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 육지에서 고기집을 하는 사람들은 제주도를 좀 본받았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구운 돼지고기를 멸치젓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스테인레스 종지에 담은 멸치젓에다가 매콤한 풋고추을 썰어 넣은 뒤 불판에 올려놓고 짜글짜글 끓이면서 돼지고기를 찍어서 먹는 것이었다. 멸치젓 국물이 쫄아들면 소주를 종지에 부어 다시 채웠다. 물이 아니라 소주!
'한라산 맑은소주' 한 잔 마시고 돼지고기 한 점을 멸치젓에 찍어 먹는 맛이란! 그 맛은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만큼 기막혔다. '한라산 맑은소주'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술이다. 제주도는 청정지역이라 수질이 좋아서 그런지 소주 맛도 아주 깨끗하다.
술자리는 밤이 이슥해서야 끝이 났다. 김 사장 부부는 돌아가고..... 흥겨워진 마음으로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가서 피곤한 몸을 뉘였다.
2010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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