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응봉산 용소골 야생화 기행

林 山 2009. 10. 14. 10:50

깊어가는 가을 몇 번이나 벼르고 벼르던 용소골(龍沼谷)을 찾았다. 오지로 알려진 용소골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내 삶의 시원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도 한몫 했으리라.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충만한 나의 정신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영원한 보헤미안(Bohemian)을 꿈꾸게 한다.

 

강원도(江原道) 삼척시(三陟市) 가곡면(佳谷面) 풍곡리(豊谷里) 덕풍계곡(德豊溪谷) 입구에서 마을주민들이 주차료 2천원, 입장료 3천원을 받는다. 입장료는 청소비 명목이란다. 국립공원도 몇 년 전에 입장료를 폐지했는데, 성수기도 지난 가을에 주차료에 입장료까지 받다니 좀 너무한 것이 아닐까? 하긴 떼거지로 몰려와 산과 계곡을 쓰레기 천지로 만드는 공중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있기에 청소비를 물리는 것이리라.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라는 것도 그렇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에 들어갈 때 사찰측에서 바리케이드로 길을 막고 문화재 관람료를 거둬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재를 안본다는데도 막무가내로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관람료를 받으려면 문화재가 있는 사찰 입구에서 받는 것이 옳다. 국립공원의 입산로가 사찰 소유이기 때문에 문화재 관람 여부와는 상관없이 관람료를 내야 한다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인가! 부처님이 그렇게 가르치던가!     

 

   응봉산 덕풍계곡 지도

 

용소골은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응봉산(鷹峰山, 998.5m) 서쪽의 덕풍계곡 상류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정맥(洛東正脈)의 한 지맥인 응봉산은 삼척시 가곡면과 경북(慶北) 울진군(蔚珍郡) 북면(北面)의 경계선에 솟아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삼수령(三水嶺)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은 남쪽으로 치달려 내려오다가 용인등봉(1124m)을 지나 삿갓재(1119.1m)에 이른다. 삿갓재에서 갈라진 지맥은 동쪽으로 달리다가 용소골 상류 큰당귀골의 발원지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북쪽으로 응봉산에 이른 지맥은 다시 북동쪽의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응봉산 정상에 서면 동해바다는 물론 멀리 백암산, 통고산, 함백산, 태백산까지 보인다. 응봉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서쪽의 용소골과 문지골, 북서쪽의 버릿골(보리골), 동쪽의 온정골, 북쪽의 재랑박골 등 깊은 계곡이 많이 있다.  

 

옛날에는 매가 늘 이 산봉우리를 맴돌아서 매봉 또는 매봉산이라고 불렀다. 또, 이 산을 울진쪽에서 바라보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매봉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전설에는 울진 조씨가 매사냥을 하다가 잃어버린 매를 이 산에서 찾은 뒤부터 매봉이라 했으며, 이 산 근처에 부모의 묘자리를 쓰자 집안이 번성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매 응(鷹)'자를 써서 지금의 응봉(鷹峰) 또는 응봉산이 된 것은 한반도를 강점한 제국주의 일본 총독부가 한글로 된 산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부터다. 이때 전국의 수많은 산들이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 표기된 경우가 많다. 볏가리나 나무가리처럼 생긴 산을 전혀 뜻이 닿지 않는 加里峯(가리봉)이나 加里山(가리산)으로 표기한 것처럼..... 매봉 또는 매봉산, 응봉 또는 응봉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전국의 도처에 있는 것을 보면 옛날 한반도에는 매가 많이 서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덕풍계곡에는 내삼방과 외삼방이 있다. 중봉산(中峰山, 739.5m)을 서쪽에서 바라볼 때 내삼방은 왼쪽, 외삼방은 오른쪽 계곡에 있다. 내삼방에서 나는 소나무는 삼척목(三陟木), 또는 황장목(黃腸木)이라 해서 궁궐의 목재로 쓰였다. 경복궁 대들보도 삼척목이라고 한다. 덕풍마을은 내삼방의 남동쪽 덕풍계곡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옛날에는 풍곡과 삼방, 덕풍을 합쳐서 삼풍(三豊)이라고 불렀다. '12년 난리에 사람 종자를 구할 수 없으면 양백(兩白)에서 구하고, 9년 흉년에 곡식 종자를 구할 수 없으면 삼풍에서 구하라'는 말을 남겼다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은 이곳을 일러 삼풍이라고 했단다. 삼풍에는 '풍성할 풍(豊)'자가 들어 있어서 곡식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일까!

 

풍곡은 풍요로운 골짜기, 즉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삼방은 산과 석탄, 나무 등 세 가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풍은 덕이 풍요롭다는 뜻인데, 덕과 복(福)은 서로 통하는 말이다. 마을 이름만으로 본다면 이보다 길지(吉地)가 없다.  

 

이지함은 도참서(圖讖書)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을 쓴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기인(奇人)이다. 삼풍이란 말은 토정가장결 외에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도사(道士), 예언가인 격암(格庵) 남사고(南師古, 1509~1571)가 쓴 도참서 '남사고비결(南師古密訣)'에도 등장한다. 남사고비결은 일명 '격암유록(格庵遺錄)', '남사고예언서(南師古豫言書)'라고도 한다.

 

求人兩白 求穀三豊(구인양백 구곡삼풍) 사람은 양백에서 구하고 곡식은 삼풍에서 구한다.

 

대체로 양백은 태백산(太白山)과 소백산(小白山) 사이를 말한다. 예로부터 양백지간(兩白之間)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양백지간은 도참서들이 대표적인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손꼽는 곳이다. 정감록은 토정가장결과 남사고비결 외에 도선비결(道詵秘訣), 무학비결(無學秘訣), 서산대사비결(西山大師秘訣) 등 20여 가지 이상의 도참서들을 모아서 편집한 '정감록(鄭鑑錄)'에 `영월정동상류 가장난종(寧越正東上流 可臧亂踪)'이란 구절이 있다. 영월군의 정동쪽 상류지역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할 수 있는 승지(勝地)라는 뜻이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儀豊)과 김삿갓의 묘가 있는 영월군 하동면 와석(臥石)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삼풍은 무주의 무풍(茂豊)과 영주의 풍기(豊基), 괴산의 연풍(延豊)으로 알려져 왔다. 도참서에 나오는 말들은 대부분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난해하기 짝이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같은 구절도 풀이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삼풍은 무풍과 풍기, 연풍도 될 수 있고, 풍곡과 삼방, 덕풍도 될 수 있다. 그외 또 다른 곳도 삼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삼풍과 양백은 지금 여기 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아니겠는가!  

 

모든 도참서들은 동양적 말세관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바람직하지도 않고 믿을 것도 못된다. 그러나 전제왕조정권이 통치하던 봉건시대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민중들에게는 이런 도참서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또, 잦은 전쟁과 난리로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이나 오랜 가뭄으로 굶어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참서들은 일종의 계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도참설은 낡은 체제를 뒤집어 엎으려는 민중들의 저항과 변혁운동에 희망과 동력을 제공해 주기도 한 반면, 사악한 무리들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사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풍곡마을을 떠나 산기슭에 내려앉은 가을을 완상하면서 남동쪽으로 6km 떨어진 덕풍마을을 향해 계곡을 거술러 오른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덕풍계곡은 버들치와 산천어, 꾸구리, 퉁사리, 연준모치, 민물참게 등이 살고 있어 보호수면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황교를 지나면서 왼쪽으로는 585봉과 벼락바위봉(812m) 그리고 710봉, 오른쪽으로는 중봉산이 계곡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벼락바위봉은 뇌암산(雷岩山)이라고도 한다. 죽죽 벋은 아름드리 금강송들은 기암절벽과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제법 수심이 깊은 찍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계곡 왼쪽으로 벼락바위봉과 710봉 사이의 직치골 입구가 나타난다. 여기서 710봉의 가파른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산호정사(山湖精寺)가 있다. 계곡을 구비구비 돌아 계곡 바닥에 앉아 있는 개구리바위를 만난다. 710봉과 범바위봉(626m) 사이의 버릿골 입구에 놓인 버릿교를 건넌다. 모든 것을 버려야 건널 수 있다고 해서 버릿교다. 범바위봉은 버릿골과 덕풍계곡 사이에 솟아 있다. 버릿골 왼쪽으로 산터골이 갈라진다.    

 

덕풍계곡은 버릿교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삼방에 이른다. 구룡소에는 산천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구룡소 서쪽의 중봉산 기슭에는 투구바위가 있다. 내삼방에는 민가가 몇 집 띄엄띄엄 앉아 있다. 덕풍계곡은 부추밭교를 건너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부추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부추밭교다. 

 

덕풍계곡과 오른쪽의 괭이골(갱이골) 합수머리에서 칼등모리교를 건넌다. 지형이 칼등처럼 모가 나고 갈라져 있다고 해서 칼등모리교다. 괭이골은 중봉산 능선과 용인등봉(1124m) 능선 사이를 흐르는 계곡으로 상류에는 큰샘골과 작은샘골이 있다. 용인등봉 서쪽 낙동정맥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솟아 있는 산은 묘봉(猫峯, 1168m)이다. 용인등봉에서 887봉과 용인등(770m)을 거쳐 개족발봉(515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북동쪽으로 덕풍마을에 이른다. 

 

칼등모리교를 건너 조금만 더 올라가면 범바위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덕풍마을에 이른다. 깊은 산골짜기 안에 이렇게 널찍하고 아늑한 분지가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덕풍마을은 몇 년 전만 해도 오지(奧地)중의 오지였다. 자동차도 없고 도로도 뚫리지 않았던 시절에는 더 오지였을 것이다.

 

언제부터 덕풍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옛날 세상을 등지고 이런 깊은 산중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이들은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찾아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막을 짓고 땅을 일구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썩은 세상을 개혁하려다 실패한 혁명가들이나 무거운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금지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야반도주한 남녀도 있었을 것이다. 

 

권세가문의 아름다운 딸과 머슴 마당쇠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어느 날 달도 없는 깊은 밤 담을 넘어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을 찾아 무작정 떠나는 두 남녀...... 마침내 인적도 끊어진 심심 두메산골인 이곳에 이르러 보금자리를 꾸미고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두 사람.....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초가집이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과 통나무집이 들어선 지금 덕풍마을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물을 건너는 곳에는 다리가 놓이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도 뚫렸다. 풍곡-덕풍간 비포장도로는 조만간 포장된다고 한다. 용소골을 아끼는 이들에게 개발소식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덕풍계곡의 비경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덕풍마을은 13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외에 대부분 민박이나 식당을 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고향산장(033-572-2133), 덕풍산장(033-572-7378), 토봉민박(033-572-7386), 꽃밭거랑펜션(옛 용소골산장, 033-572-7622)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장미

 

마을 앞 화단에는 장미, 코스모스, 과꽃, 금잔화가 활짝 피어 있다. 장미는 붉다 못해 검붉은 흑장미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은 저런 색일까! 붉은색 장미는 '정열, 욕망, 기쁨, 아름다움, 절정' 등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코스모스

 

멕시코가 원산인 코스모스(Cosmos)는 이제 한국인들과 너무나도 친숙한 꽃이다. 흰색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결'이고 빨간색은 '소녀의 순애'다. 코스모스는 청열해독(淸熱害毒)의 효능이 있어 눈의 충혈과 동통에 사용하며, 종기에는 짓찧어 참기름과 혼합하여 붙인다. 민간에서도 거의 쓰지 않는다. 

 

과꽃

 

과꽃은 많은 원예종이 있다. 흰 과꽃의 꽃말은 '모정', 분홍색은 '달콤한 꿈', 보라색은 '사랑의 승리'다. 과꽃 두 송이가 사랑의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뚱딴지

 

덕풍마을에서 용소골로 가는 길가에는 가을꽃이 한창이다. 활짝 핀 뚱딴지, 나팔꽃, 고마리, 석잠, 닭의장풀, 익모초, 쥐손이풀, 개망초, 왕고들빼기, 애기똥풀, 나도송이풀 꽃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뚱딴지는 개울가 둔덕에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뚱딴지꽃은 언뜻 보면 해바라기꽃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훨씬 작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뚱딴지를 캐먹던 기억이 난다. 맛은 별맛도 없고 들그므리하다. 요즘 사람들은 뚱딴지를 먹지도 않으리라. 뚱딴지를 돼지감자라고도 하는데, 주로 사료나 염료로 이용된다.   

 

고마리 

 

개망초

 

고마리풀과 개망초는 산과 들 어디에나 무성하게 자라는 풀꽃이다. 옛날에는 고마리를 베어다가 돼지우리에 깔아주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고마리의 잎과 줄기에서 즙을 내어 콜레라를 치료했다고도 한다. 

 

개망초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갖은 양념을 해서 무치면 약간 쌉쓰름하면서도 맛있는 나물이 된다. 개망초의 전초(全草)를 말린 것이 한약명 일년봉(一年蓬)이다. 청열해독(淸熱解毒)과 소화(消化)의 효능이 있어 소화불량, 장염의 설사, 전염성 간염, 임파절염(淋巴節炎), 혈뇨(血尿)의 치료에 쓸 수 있다. 거의 안쓰는 약재다.   

 

 나팔꽃

 

보라색 나팔꽃도 피었다. 나팔꽃의 씨가 견우자(牽牛子)다. 견우자는 흑축(黑丑)과 백축(白丑)으로 구분한다. 흑축은 붉은 꽃의 씨, 백축은 흰 꽃의 씨다. 견우자는 준하축수제(峻下逐水劑)로 대소변불통과 부종, 복수(腹水)를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석잠풀

 

석잠풀은 강이나 연못 주변의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꽃 모양이 꿀풀과 비슷한 것은 같은 꿀풀과이기 때문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석잠풀은 한약명으로 광엽수소(廣葉水蘇)라고 한다. 청열화담(淸熱化痰), 항균소종(抗菌消腫), 강혈압진정(降血壓鎭靜) 작용이 있어 고혈압과 종양 등의 치료에 이용된다. 임상가들은 잘 안쓴다.   

 

닭의장풀

 

닭의장풀꽃은 가녀린 느낌을 주는 꽃이다. 하루만 지나면 꽃이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꽃말도 '짧았던 즐거움'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이용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 맛을 보지 못했다.

 

닭의장풀의 한약명은 압척초((鴨跖草)다. 청열사화제(淸熱瀉火劑)로 이수청열(利水淸熱), 양혈해독(凉血解毒)의 효능이 있다. 수종(水腫), 각기(脚氣), 소변불리(小便不利), 감기, 단독(丹毒), 이하선염(耳下腺炎), 황달성 간염, 열리(熱痢), 말라리아, 코피, 혈뇨, 혈붕(血崩), 백대(白帶), 인후종통(咽喉腫痛), 옹저정창(癰疽疔瘡) 등을 치료한다. 잘 안쓰는 약재다.

   

익모초

 

익모초(益母草)는 꽃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그 모양을 알 수 있다. 시골의 집 근처나 밭둑에서도 잘 자란다. 예로부터 민간에서 많이 쓰던 약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더위를 먹었을 때 어머니가 짜주신 익모초즙을 먹었던 경험이 있다. 얼마나 쓰던지..... 아직도 그 쓴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익모초는 활혈거어제(活血祛瘀劑)로 활혈조경(活血調經), 거풍청열(祛風淸熱)의 효능이 있다. 월경불순, 붕중대하(崩中帶下), 산후 어혈에 의한 통증, 간열두통(肝熱頭痛), 목적동통(目赤腫痛), 백내장과 녹내장을 치료한다. 

   

쥐손이풀

 

쥐손이풀꽃은 수줍은 듯 귀엽운 모습이다. 쥐손이풀과 이질풀은 사촌간인데다 종류도 다양해서 구별이 쉽지 않다. 쥐손이풀은 꽃잎의 붉은 줄이 3개, 이질풀은 5개다. 또, 이질풀은 쥐손이풀에 비하여 꽃이 훨씬 더 큰 편이다.

 

쥐손이풀과 이질풀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지만 나는 아직 그 맛을 모른다. 둘 다 한약명으로 노관초라고 한다. 거풍활혈(祛風活血), 청열해독의 효능이 있어 류머티스 관절염, 경련, 사지마비, 화농성 종양, 타박상, 장염, 이질 등을 치료한다. 임상에서는 잘 안쓴다.

   

왕고들빼기

 

왕고들빼기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한국인의 입맛을 돋워주는 대표적인 나물 가운데 하나다. 

 

왕고들빼기를 한약명으로 산와거라 한다. 양혈해열(凉血解熱), 소종(消腫)의 효능이 있어 각종 염증과 종양을 치료한다. 뿌리는 한의학에서 건위소화제, 해열제로 쓴다. 생즙은 진정작용과 마취작용이 있다. 감기, 편도선염, 인후염, 유선염, 자궁염, 산후출혈, 종기 등의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 잘 안쓴다.   

 

애기똥풀

 

애기똥을 닮은 노오란 애기똥풀꽃...... 그리스 신화에서 새끼 제비가 눈이 아파 견딜 수 없어하자 어미 제비가 몰래 발라주었다는 약초다. 그래서 꽃말도 '어머니의 몰래 주는 사랑'이다. 

 

애기똥풀은 염료로 이용된다. 지상부를 잘게 썰어 끓여서 염액을 내면 매염제를 쓰지 않고도 짙은 색이 나온다. 애기똥풀의 한약명은 백굴채(白屈菜)다. 해독진통(解毒鎭痛)과 살균항암(殺菌抗癌), 지해(止咳), 이뇨(利尿)의 효능이 있어 위통, 황달, 수종, 개선창종(疥癬瘡腫), 유방암등 각종 암의 치료에 쓴다. 뿌리는 백굴채근(白屈菜根)이다. 파어지혈(破瘀止血), 소종지통(消腫止痛)의 효능이 있어 타박상으로 인한 어혈, 월경불순, 월경통, 소화성 궤양 등을 치료한다. 주로 민간에서 쓰는 약재다.  

 

 나도송이풀

 

나도송이풀꽃은 언뜻 보면 며느리밥풀꽃과 비슷하게 생겼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관상용이나 밀원으로도 이용된다. 나도송이풀의 한약명은 송호(松蒿)다. 청열이습(淸熱利濕)의 효능이 있어 황달, 수종, 풍열감모(風熱感冒), 비장염(脾臟炎) 등의 치료에 쓰인다. 

덕풍마을에서 용소골과 문지골이 갈라진다. 문지골은 삿갓재-용인등봉-용인등-개족발봉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과 삿갓재-줄미등봉(905m)-모래재(789m)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 사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용소골은 삿갓재-모래재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계곡으로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른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많은 용소골과 문지골은 응봉산의 여러 계곡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용소골은 덕풍마을-방축소-제1용소-요강소-제2용소-흰바위-매바위-제3용소에 이르는 약 6km의 계곡이다. 남동쪽으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 용소골로 접어들면 바위절벽과 암릉길로 변한다. 바위절벽 밑으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길이 나 있다. 

 

덕풍마을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방축소는 용소골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꽤 넓고 깊어 보이는 방축소에는 안전을 위해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방축소 바로 위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사천왕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장이니 용소골을 찾는 나그네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리라. 가파른 바위벼랑을 한 굽이 돌아서 장군바위골 입구를 지난다. 

   

제1용소

 

가파르고 험해서 밧줄이 없으면 통과하기가 어려운 바위벼랑이 수시로 나타난다. 큰 비가 내릴 때 용소골을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길은 물론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리기 때문이다. 또 계곡 양쪽은 바위절벽이라 발을 디딜 곳도 몸을 피할 곳도 없다. 

 

방축소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제1용소를 만난다. 검은 물빛이 소가 매우 깊다는 것을 말해 준다.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세찬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낙차도 크지 않은 저 폭포수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수심 40m의 소를 만들었다니......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과거 덕풍마을에 가뭄이 들면 주민들이 이 용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소골에는 의상(義相, 625~702)대사와 목비둘기에 얽힌 전설이 전해 온다.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풍곡리 소라곡(召羅谷)이라는 곳에서 나무로 만든 비둘기 세 마리를 날렸다는데..... 한 마리는 울진의 불영사(佛影寺), 또 한 마리는 안동의 흥제암, 마지막 한 마리는 용소골에 떨어졌다고 한다. 목비둘기가 용소골에 떨어지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기암절벽과 폭포, 소와 담(潭)이 어우러진 절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폭포 위로 가려면 용소 오른쪽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벼랑을 타고 올라야 한다. 밧줄을 잡고 폭포 위로 오르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은 물빛의 용소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순간 머리털이 곤두서면서 섬뜩한 느낌이 든다. 자칫 밧줄을 놓치면 곧 저 깊은 용소로 떨어질 판이다.     

 

 바위벼랑에 핀 쑥부쟁이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용소골은 제1용소 위로도 끝없이 이어진다. 수많은 와폭(臥瀑)들을 지나 요강소가 있는 암반 위에 올라선다. 소 안에 파인 확이 흡사 요강처럼 생겼다.

 

바위벼랑에 매달려 핀 쑥부쟁이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린다. 쑥부쟁이가 피지 않는 가을은 무효다. 수줍은 듯 저만치 피어 있는 보추화(報秋花) 쑥부쟁이...... 그 청초함은 하늘을 닮아서일까? 외로움과 슬픔이 보일 듯 말 듯 꽃입술에 사알짝 묻어 있다. 까실쑥부쟁이도 앙증맞게 피었다. 꽃 크기가 쑥부쟁이보다 훨씬 작다.       

 

쑥부쟁이와 까실쑥부쟁이는 국화과 식물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관상용으로도 키운다. 두 식물의 전초를 한약명으로 산백국(山白菊)이라고 한다. 소염해열(消炎解熱), 진해거담(鎭咳祛淡), 거풍해독(祛風解毒)의 효능이 있어서 풍열감모, 해수, 기관지염, 편도선염, 유선염, 창종(瘡腫)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잘 쓰지 않는 약재다. 

 

제1용소 바로 위 협곡의 소

   

참취꽃

 

용소골을 거슬러 오를수록 바위벼랑길이 더욱 더 험해진다. 험한 곳에는 밧줄이나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어도 힘이 든다.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야 하는 와폭과 소를 수없이 만난다. 바위와 돌을 징검다리 삼아 개울을 건너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동무들과 함께 개울에서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던 그 시절이 참 그립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바위틈에 피어난 작고 하얀 참취꽃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 시방세계의 백천억 나유타 불찰미진수겁 가운데 지금 여기 같은 시공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인 그대와 내가 만났으니...... 꽃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만날 때 비로소 활짝 피어나는 법! 천년의 사랑도 찰나의 인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취는 향과 맛이 뛰어나고 비타민도 풍부해서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산나물이다. 농가에서는 재배도 많이 한다. 염료로 이용하면 밝고 독특한 색상을 얻을 수 있다.

 

참취의 전초를 한약명으로 동풍채(東風菜), 뿌리를 동풍채근(東風菜根)이라고 한다. 동풍채는 이뇨소염(利尿消炎)과 보익(補益), 동풍채근은 행기활혈(行氣活血), 소풍지통(疏風止痛)의 효능이 있다. 간염과 신장염, 방광염, 장염에 의한 복통, 기침, 요통, 두통, 현기증, 타박상, 골절동통(骨節疼痛) 등을 치료한다. 항암 효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재보다는 주로 산나물로 많이 이용된다. 

 

뒤돌아 본 용소골

 

구절초

 

구절초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울고 산기슭에는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어드메쯤 왔을까 궁금하여 뒤돌아 보니..... 바위절벽을 휘감고 돌아간 산길은 꼬리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돌아갈 일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속인(俗人)이어서일 게다. 

 

작은 와폭을 건너 산모퉁이를 한 굽이 더 돌자 바위절벽 밑에 구절초(九節草)가 고아한 모습으로 피어 있다. 순백색의 구절초꽃..... 깊은 산속에 피어 있어서일까! 애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엷은 분홍빛이 도는 구절초도 피었다. 부끄러운 듯 발그레하다.

 

구절초의 꽃말은 '고상함, 밝음, 순수, 우아한 자태'다. 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도 있다. 구절초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구절초를 구일초(九日草),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민간에서 부인병의 치료와 예방에 써 왔다. 또,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다. 번식력이 강하고 재배가 쉬워 휴양림 같은 산악지대를 개발할 때 조경식물로도 이용된다.  

 

구절초와 산구절초, 바위구절초의 전초를 구절초(九折草)라 하여 한약재로 쓴다. 구절초는 온중조경(溫中調經), 소화의 효능이 있어 월경불순, 불임증, 자궁냉증(子宮冷症), 위냉증(胃冷症), 소화불량을 치료한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일러 흔히 들국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들국화라고 부르는 식물은 없다. 들국화는 쑥부쟁이, 구절초, 감국, 산국, 개미취 등 국화과 식물들을 통털어 일컫는 말이다.  
  

용소골

  

물매화

  

 물매화 

 

물매화

 

구절초를 만난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물기가 축축한 암반지대에 물매화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용소골에서 물매화를 만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주 연한 연두색이 도는 흰색 꽃이 앙증맞으면서도 고결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꽃말도 '고결, 결백, 정조, 충실'이다. 

 

물매화는 고산지대 초원의 양지쪽 습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자라기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 물기가 많은 땅에서 잘 자라고, 꽃 모양이 매화를 닮았다고 해서 물매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매화를 매화초(梅花草), 다자매화초(多刺梅花草), 물매화풀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에는 물매화(P. palustris)와 애기물매화(P. alpicola) 2종이 자생하고 있다. 애기물매화는 한라산 중턱 이상의 습지에서 자란다. 

 

물매화의 전초를 한약명으로 매화초(梅花草)라고 한다. 청열해독, 양혈소종(凉血消腫)의 효능이 있어 황달형 간염, 동맥염, 종기 등을 치료한다. 임상가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20m폭포가 있는 큰다래지기골 입구가 저만치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제2용소다. 제1용소에서 제2용소까지는 30분, 제2용소에서 제3용소까지는 3시간 정도의 거리다. 제2용소골에서 작은터골을 지나 1시간 정도 오르면 흰바위를 만난다. 왼쪽으로 가면 오산도폭포가 있는 큰터골이다. 큰터골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살던 초막터가 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난채골 입구를 지나면 용소골의 절경인 매바위가 나타난다. 매바위에서 한참 오르다 보면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계곡은 응봉산으로 가는 작은당귀골이다. 덕풍에서 용소골을 거쳐 응봉산 너머 울진의 덕구온천까지는 15km에 이르는 오지 트레킹 코스다. 작은당귀골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원골과 큰당귀골 합수머리를 만난다. 제3용소는 큰당귀골로 50m쯤 올라간 곳에 있다. 원골 상류는 낙동정맥 삿갓재에서 발원하는 제당골이다.

  

큰다래지기골 입구에 이르렀을 때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서서히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제2용소를 바로 앞에 두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용소골을 다시 찾을 그날을 기약하면서......

 

 

2007년 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