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사한 봄날, 충주에서 제천을 가려고 손수 운전을 하면서 천등산 다릿재를 넘고 있었다. 천등산 허리를 구불구불 감고 오르는 다릿재를 중간쯤 올랐을 때 시멘트를 운반하는 대형트럭이 힘에 부친 듯 느릿느릿 앞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뒤에는 승용차 몇 대가 뒤를 따르고 있다. 다릿재는 추월금지 구간이라 트럭뒤를 따라서 천천히 넘어가기로 한다. 차창을 활짝 열어제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 본다.
나는 충주에서 제천에 있는 대학에 다니느라 평일에는 하루에 두 번 이 재를 넘는다. 그런데 다릿재를 넘다보면 시멘트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을 자주 만나곤 한다. 그럴 때는 재를 넘는 시간이 평소보다 10분이나 20분 정도나 더 걸리기 일쑤다. 트럭뒤를 하염없이 따라가노라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반면에 좋은 점도 있다. 길가에 전개되는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산경치를 즐기며 트럭 뒤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릿재를 넘었는지 모를 때도 있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나쁜 점이 있으면 또 반대로 좋은 점도 있는 법이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다릿재를 넘기로 한다. 마침 길가에는 연분홍 벚꽃과 진분홍 털진달래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오른쪽으로 천등산의 우람한 산세가 한눈 가득히 들어온다. 경사가 급한 계곡에도 화사하게 핀 벚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쩌면 저리도 고울 수가 있을까!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베어버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벚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랴! 나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진달래도 북한의 국화라고 해서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역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가 아니라 목란이다.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몇 년 전인가 진달래에서 목란으로 국화가 바뀌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화가 권력자의 말 한 마디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목란꽃을 좋아한다.
내 차의 바로 앞에는 은색의 승용차가 햇볕을 반사하면서 달리고 있다. 차창은 짙은 검은 색으로 썬팅을 해서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바로 그 때 오른쪽 뒷자석 창문이 열리더니 곱고도 하얀 손이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문득 '나를 잘 아는 여인이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고 고운 손으로 볼 때 분명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저 고운 손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저 섬섬옥수의 여인의 정체가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미지의 여인에게 답례의 뜻으로 손을 흔들어 주려고 손을 막 차창밖으로 내밀려고 하는 찰나였다.
희고 고운 여인의 섬섬옥수에서 빈 과자봉지가 바람을 타고 내 차앞으로 휙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이런 일이. . . . . 뜻밖의 일을 당하고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 순간 미지의 여인에 대한 환상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씁쓰레함만이 가슴 한가운데로 밀려든다. 마치 뒤통수를 한대 맞은 느낌이다. 섬섬옥수의 여인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려던 것이 아니라 다 먹고난 과자봉지를 차창밖으로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아, 이 허망함이여!
오늘처럼 길을 가다보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공중도덕 의식이다. 이 세상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행동은 하지않을 것이다. 우리의 이토록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무심코 버린 쓰레기로 더럽혀서야 되겠는가! 섬섬옥수의 여인에게 그녀의 희고 고운 손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200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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