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풍광이 아름다운 충주호반의 가은산을 가다

林 山 2014. 3. 7. 15:07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가은산(加隱山, 562m)으로 들어가던 날 중국발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정치, 경제, 문화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날씨까지도 영향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사람도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것처럼 나라도 이웃나라를 잘 만나야 하는데 불행히도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중국은 서쪽에서 미세먼지로, 일본은 동쪽에서 방사능으로 한국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샌드위치 신세라고나 할까! 


충주호


옥순대교 한가운데 서자 충주호 왼쪽에는 가은산과 둥지봉, 오른쪽에는 단양팔경인 옥순봉과 구담봉, 정면에는 말목산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마침 유람선이 잔잔한 물결을 헤치고 장회나루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그대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였다.  


가은산은 금수산맥이 남동쪽의 말목산으로 뻗어가다가 802m봉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지능선에 솟아 있다. 충주호를 사이에 두고 가은산 건너편에는 옥순봉과 구담봉이 자리잡고 있어 호반의 멋진 풍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가은산의 주능선과 지능선 곳곳에는 새바위, 병풍바위, 벼락맞은바위, 물개바위, 정오바위(시계바위), 기와집바위, 손바닥바위, 석문, 굴바위, 곰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과 아름드리 노송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가은산의 연봉에 서면 북쪽의 금수산, 남동쪽의 제비봉, 남서쪽의 옥순봉과 구담봉, 월악산 등 월악산국립공원을 이루는 산군(山群)들의 거침없는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 토박이 주민들은 가은산을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마고할미가 이 산에 나물을 캐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렸다. 마고할미는 이 산의 능선과 골을 샅샅이 뒤지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에서 마침내 반지를 찾았다. 반지를 찾고 나자 마고할미는 '한 골만 더 있었어도 도읍이 들어설 만한 명당인데, 내가 눌러앉아 살려고 해도 도읍이 되지 못하리니 여기 머물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가는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새바위와 둥지봉


옥순대교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쉼터에서 가은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망이 조금 트인 바위에 이르자 새바위와 둥지봉이 눈에 들어왔다. 새바위봉과 둥지봉 입구에는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새바위봉과 둥지봉은 전망이 매우 뛰어난 곳인데, 월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 출입을 금지시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말목산


가은산에서 바라본 충주호


287.9m봉을 넘어서 산기슭을 따라 한동안 이어지는 순탄한 산길은 숲속의 한적한 산책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둥지고개부터 가파른 암릉길이 시작되었다.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털모자를 쓴 머리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한동안 숨을 몰아쉬면서 바윗길을 오르자 전망이 뛰어난 암릉지대가 나타났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성골 건너편으로는 말목산, 충주호 건너편으로는 구담봉과 제비봉이 미세먼지로 인해서 실루엣처럼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미세먼지만 아니었더라면 충주호반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항상 내 뜻대로만 되던가! 세상을 살다 보면 운이란 것도 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가은산 정상


전망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가은산 주능선 삼거리인 노송봉(566m)이 나타났다. 가은산 정상은 노송봉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서 전망은 전혀 없었다.  


가은산 정상 남쪽 기슭에는 삼국시대에 고구려군이 쌓은 가은암산성(加隱巖山城)이 있다. 험준한 암벽을 이용하여 작은 계곡을 두른 것으로 보아 입보용(入保用) 산성임에 틀림없다. 이 산성은 남한강을 이용하여 죽령(竹嶺)으로 통하는 물목을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군은 남한강 상류인 단양으로부터 하류인 충주로 진출하려는 신라군을 방어하기 위해서 이 산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은암산성은 현재 문지(門址)와 수구(水口), 건물지, 성벽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서쪽의 성벽 안쪽 벽 위에는 아직도 두 무더기의 냇자갈이 쌓여 있다. 남한강변에서 주워왔을 자갈은 돌팔매질을 하기에 알맞은 크기다. 입보민들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석전용(石戰用)으로 쌓아둔 자갈이 아닐까 추측된다. 


고려말에는 왜구가 이곳까지 침입한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둘레가 419보이고 성안에 세 곳의 샘이 있으며, 군창(軍倉)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단양과 제천, 청풍의 백성들이 이곳으로 피란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산성은 조선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감록(鄭鑑錄)에 단양 가은산성 일대는 예로부터 숨은 십승지(十勝地)라는 기록이 전한다', 또 '십승지는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 소재 가은산성이 피장처(避藏處)의 가차촌(駕次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들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정감록과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責),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서 말하는 십승지는 가은암산성 일대가 아니라 단양(丹陽)의 영춘(永春)이다. 


비기도참서에서 말하는 승지(勝地)는 어디일까? 영월의 정동(正東) 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雲峯)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의 영춘, 무주(茂朱)의 무풍(茂風) 북동쪽, 공주의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 예천 금당동(金洞) 동북쪽 등이다. 이중 운봉의 동점촌, 무풍의 북동쪽, 부안의 호암, 가야산의 만수동은 아직까지 그 위치를 비정(比定)할 수 없다.


위치가 파악된 승지는 다음과 같다. 영월의 정동(正東) 쪽 상류는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풍기의 금계촌은 영주군 풍기읍의 금계동과 욕금동과 삼가동, 보은의 증항 근처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시루봉 아래 안부(鞍部), 안동의 화곡은 봉화군 내성면, 단양의 영춘은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 공주의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는 공주시 유구면과 마곡면을 흐르는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 예천 금당동 동북쪽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동의 금당실(金塘室)이다. 


풍수도참서에서 말하는 승지들은 교통이 불편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옛날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 힘없는 백성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환란이 미치지 않는 험준한 지역으로 피난하여 몸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십승지 사상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혁명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말세의 도래, 봉기, 왕조의 교체 등을 예언한 정감록 신봉자였던 홍경래는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하여 조선왕조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다. 말세구원의 신앙으로 발전한 정감록의 궁궁을을(弓弓乙乙) 사상은 동학의 성립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정감록이 없었다면 아마도 동학혁명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18~19세기에 일어난 농민봉기는 대부분 정감록과 연결되어 있다.


미륵불 신앙이나 메시아 신앙도 정감록 신앙과 마찬가지로 말세구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질곡에 빠져 현실에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세구원의 신앙에 빠지기 쉽다. 말세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런 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독재정치가 행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일수록 말세구원의 신앙은 들불처럼 번져 간다. 지성인이라면 정감록이 필요없는 사회를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미륵불 신앙도 메시아 신앙도 더 이상 필요없는 그런 사회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여기가 바로 승지요 길지다! 승지를 멀리서 구하려 하지 말라. 자신이 머무는 자리를 승지로 만들 생각을 하라. 자신이 머무는 자리를 승지로 만들고 나아가 이웃의 자리까지 길지로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정도령이요, 미륵불이요, 메시아가 아닐까 한다.   


가은산을 내려오면서 정감록을 생각하다.


2014.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