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의사가 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내가 교직을 그만두고 한의과대학에 간 것은 환자를 보살피면서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환자를 돌보는 것이 내 성격이나 취향에도 맞았고,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의료민영화(라고 쓰고 의료특혜사유화라고 읽는다)가 허용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료민영화가 허용되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에서 보듯이 서민들은 그야말로 의료비 폭탄으로 돈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의료지옥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서민들을 위한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설립해서 의료민영화에 대비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과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공동체 가치를 실현하고자 결심했다.
의료생협은 5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낸 조합원이 5백명 이상이 되어야 설립 조건을 충족하게 된다. 의료생협 설립 자체가 매우 어렵다. 의료생협을 설립했다고 하더라도 협동조합 운동 본연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생협 운영의 책임을 지는 지도부 구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필생의 과업을 함께 할 평생 동지들을 찾았다. 중차대한 과업에 아무나 가담시킬 수는 없었다. 협동조합 운동은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한 희생과 봉사 정신, 자리이타 정신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제갈량과 장비, 관우, 조운 같은 동지를 구하지 못했다면 결코 촉한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도 제갈량과 장비는 있었다. 하지만 관우, 조운이 없었다. 나는 관우, 조운을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평생 동지를 찾기 위해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을 파악하는 한편 주위의 평판도 참고했다. 공공선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과 양보를 담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사심이 엿보이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제외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간을 본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참여를 철회한 사람도 있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나라도 기분이 매우 상했을 것 같다. 지면을 빌어 당사자들에게 진정 사과와 함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운 결정이었고, 고민스런 선택이었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다음에 더 좋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말이다.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내가 독단적이라는 말을 듣고, 욕을 먹어도 좋다. 나와 평생 함께 할 동지들을 찾기 위한 삼고초려는 계속될 것이다.
2014.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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