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성남동에 있는 감포참가자미회 충주점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김ㅇㅇ 선배는 몇 년 전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등산 등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정ㅇㅇ 선배는 1년 전 승진을 해서 충주시 관내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었다.
1981년에 처음 만나 1983년도에 각자의 길을 갔으니, 실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노랑가자미 뼈째회를 안주로 곡차를 주고받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제는 자연스레 우리가 처음 만났던 1980년대 그 시절로 돌아갔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나는 교사 발령이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산척중학교 교직원, 특히 총각 선생님들과 자주 어울렸다. 앞으로 동료가 될 예비교사였기에 총각 선생님들은 나를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학과 김ㅇㅇ, 영어과 정ㅇㅇ, 사회과 김ㅇㅇ 선배와 가깝게 지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돌아가면 학교 동편에 있던 테니스장에서 총각 선생님들과 해가 지도록 테니스를 쳤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김, 정 두 선배와 나는 테니스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그래서 복식조가 짜여지면 종종 맥주나 짜장면 내기 시합을 했다. 내기가 걸리면 승부가 치열해지기 마련이었다. 판정이 애매하면 서로 우기기도 참 많이 했다. 그러다가 내기 승부가 끝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맥주와 짜장면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산척은 천등산 자락의 시골이라 교통이 불편하여 처녀 총각 선생님들은 대부분 하숙을 하거나 자취를 했다. 총각 선생님 중 한 사람이 숙직을 하는 날이면 숙직실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모여서 주로 먹기 내기 화투를 치거나 바둑을 두었다. 또 점당 천원짜리 고스톱판도 자주 벌어졌다. 바둑이나 고스톱판이 벌어지면 종종 밤을 새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화투를 끊었지만 그때만 해도 사람들 셋만 모이면 으례 고스톱판이 벌어지곤 했다.
김, 정 두 선배와 나는 바둑에 있어서도 호적수였다. 우리 세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바둑을 두었다. 그때의 실력이 밑바탕이되었는지 김, 정 두 선배는 각각 아마 5단, 4단의 실력이라고 했다. 내가 바둑을 한창 둘 때는 기원에서 아마 초단을 인정받았는데, 그때 이후 바둑을 두지 않아 지금은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겠다.
면소재지인 도봉에는 색시가 있는 선술집이 있었다. 총각 선생님들은 의기가 투합하면 선술집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김, 정 선배의 부름을 받고 나도 가끔 술판에 낄 때가 있었다. 색시가 애교를 부리면서 탁배기를 몇 순배 돌리면 어김없이 젓가락 장단에 뽕짝 떼창판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시집도 안간 선술집 색시가 아기를 낳은 것이었다! 그녀는 아기의 아빠가 누군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아기 아빠는 나도 아는 총각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기가 소문의 주인공과 쏙 빼닮았다는 말도 들려 왔다. 정작 소문의 주인공은 펄쩍 뛰면서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주장했다. 얼마 후 남몰래 내신을 낸 소문의 주인공은 멀리 떨어진 학교로 도망치듯이 전근을 갔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나는 1983년 3월 괴산의 목도중학교 감물분교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두 선배도 다른 학교로 전근되어 떠났다. 그리고는 소식이 끊어졌다. 김 선배의 소식은 간간이 풍문으로 들었지만, 정 선배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우연히 내 소식을 듣고 한의원을 찾아온 정 선배의 주선으로 30여 년도 더 지나 셋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 선배는 소문의 주인공에 대해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소문의 주인공은 그 후 교단을 떠나 서울에서 버스를 몰았다고 한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가 몰던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해서 승객들과 함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선술집 색시와 아이를 받아들이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 선배는 얼마 전 딸을 출가시킨 이야기며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끊다시피 한 이야기, 정 선배는 동료 여선생님과 결혼하게 된 사연과 대학원 논문을 쓸 때 있었던 일화, 연수차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인 바둑 고수들을 연파한 이야기 등을 들려 주었다. 횟집 한쪽 구석에서는 그렇게 초로기에 접어든 사나이들이 과거로 돌아가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살아가게 마련인가 보다.
밤이 이슥해서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두 선배의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아, 옛날이여!
201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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