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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희 선생의 소설집 '서당 개 풍월을 읊다'

林 山 2015. 5. 21. 16:34

강준희 선생의 소설집 '서당 개 풍월을 읊다' 표지


팔순의 원로 소설가 강준희 선생으로부터 친필 서명이 든 신간 단편소설집 '서당개 풍월 읊다(2015, 국학자료원)'를 선물로 받았다. 소설집에는 '우리 공원 이야기, 끝, 망년우, 어떤 풍경, 이 글월을 한 번 보라, 와류, 할아버지, 마름과 타작관' 등 풍자와 해학, 위트와 유머를 담은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집의 제목에 영감을 준 작품은 두 번째 단편 '끝'으로 보인다. '끝'은 개를 의인화하여 정의와 도덕이 사라진 대한민국판 요계지세(澆季之世)를 호통과 풍자, 해학으로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천대받는 재래종 똥개인 '개'다. '개'는 모순된 기성의 권위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견유(犬儒)로 청빈한 선비작가인 강준희 선생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하고 괄시를 받더라도 '개'는 고관대작의 이쁨과 귀여움을 받는 애완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고관대작의 총애를 받는 애완견은 곡학아세와 아부로 처세하면서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지식인들을 상징한다. 지식인들이 썩으면 몰염치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아닌가! 선생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해서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소설집에는 고유한 우리 토박이 말이 많이 나온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에 대한 선생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아 사어(死語)가 된 아름다운 토박이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글 쓰는 이들의 사명은 우리 고유어를 살려내는 작업이라고 선생은 강조한다.  


강준희 선생은 1966년 신동아에 '나는 엿장수외다'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선생은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하느님 전상서', '신굿', '하늘이여 하늘이여', '미구꾼', '개개비들의 사계', '염라대왕 사표쓰다', '아, 어머니', '쌍놈열전', '바람이 분다, 이젠 떠나야지', '베로니카의 수건' 등 49년간 31권의 작품을 출간했다.


선생은 충북 단양에서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이후 땔감 장수와 노동판 품팔이, 엿장수, 연탄배달부, 포장마차 등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왔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선생은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입학원 강사와 중부매일, 충청일보, 충청매일 등 지방지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선생의 삶 자체가 입지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조를 잃지 않아 청빈한 선비작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서당개 풍월 읊다'는 지난해 눈수술을 했지만 시력이 더욱 약해진데다 오랜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선생의 건강이 악화되어 자칫 출간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마침 대학에서 컴퓨터 과목을 강의하는 이대훈 교수가 원고를 대필해줘서 소설집 출간이 가능했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집필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선생의 삶은 많은 후배 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14년부터 충주에서는 강준희 선생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강준희 문학관'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강준희 문학관' 건립사업에 대한 충청북도와 충주시의 관심을 촉구한다. 


2015.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