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지팔(Parsifal)>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1877년 가을부터 착수하여 1882년에 완성한 3막의 오페라다. 초연은 1882년 7월 26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헤르만 레비 지휘로 이뤄졌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인〈파르지팔〉은 1880년의 음악제에서 상연할 목적으로 작곡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병으로 인하여 1882년 1월 14일에야 요양지인 팔레르모에서 전체를 완성하였다. 성배의 전설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그 종교적이고 숭고한 내용을 상징하기 위해 ‘신성무대 축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란 부제를 붙여서 발표했다.
등장인물은 파르지팔(테너), 쿤드리(소프라노 혹은 메조소프라노), 구르네만츠(성배의 기사, 베이스), 암포르타스(성배의 수호자, 베이스), 클링조르(마법사, 베이스-바리톤), 티투렐(암포르타스의 아버지, 베이스), 기사들, 꽃의 처녀들, 소년들이다. 배경은 중세, 스페인 몬트살바트 성이다. 대본(리브레토)은 바그너가 썼다.
편성은 플루트 3, 오보에 3, 클라리넷 3, 바순 3, 잉글리시 호른, 콘트라바순, 베이스 클라리넷,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2, 튜바, 하프 2, 팀파니 4, 테너드럼, 종, 현5부로 되어 있다. 무대 위에도 트럼펫 2, 트롬본 4, 종, 선더머신이 편성되어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Parsifal(파르지팔)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작곡하기 전인 1845년에 이미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팔(Parzival)》을 읽었으며,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파르치팔의 아들이 겪는 모험담인 〈로엔그린〉을 작곡한 바 있다. 말년에 이른 바그너는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자신이 평생에 걸쳐 깨달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다.
바그너가 〈파르지팔〉에 대해 처음 착상한 것은 1857년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본작업을 시작한 것은 8년이 지난 뒤였고, 이마저도 〈니벨룽겐의 반지〉 연작을 마무리하기 위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1년이 지난 1877년에야 〈파르지팔〉의 작업에 전념할 수 있었고 마침내 1882년, 길고 긴 여정을 거친 대작이 완성되었다.
<파르지팔>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던 성배(Holy Grail)에 얽힌 종교 드라마다. 음악이 환상적인데, 특히 전주곡이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최후의 만찬, 성배, 믿음을 복합적으로 표현한 음악이다. 모티프는 슬픔이며, 죄악을 통회하는 모티프다. 주인공 쿤드리는 마법의 여인, 섹스의 화신, 천사의 변신 등으로 설정되어 있어 강한 인상을 준다.
바그너는 이 작품의 종교적인 메시지가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의 여흥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만 공연할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작품이며, 바이로이트 극장의 음향조건에 가장 적합하도록 작곡한 것이다. 실제로 〈파르지팔〉은 1903년까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만 독점적으로 공연될 수 있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Parsifal(파르지팔)
1882년에 이루어진 초연은 107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135명의 합창단, 23명의 독창자가 참가하여 대규모의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바그너는 무대 배경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무대 디자인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 피력했다. 극의 배경이 되는 성배의 전당은 바그너가 방문한 시에나 성당을 본떠 만들었고, 클링조르의 마법의 정원 역시 바그너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라벨로의 팔라초 루폴로를 모델로 하여 디자인되었다.
〈파르지팔〉의 공연에서는 모든 막이 끝날 때까지 박수를 치지 않는 관례가 있는데, 초연 때 바그너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그너 자신이 2막에서 '꽃의 처녀들의 노래'가 끝나자 ‘브라보’를 외쳤다고 한다. 바그너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여전히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는 극이 끝날 때까지 박수를 치지 않는 관례가 지켜지고 있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을 포함한 주요 오페라극장에서도 이를 따르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Parsifal(파르지팔)
초연 무대의 지휘는 유대계 독일 지휘자 헤르만 레비가 담당했다. 사실 바그너는 랍비를 아버지로 둔 레비가 지휘봉을 잡는 것을 반대했고, 심지어 레비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바그너는 자신의 후원자인 루트비히 2세에게 지휘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유대인들은 순수한 인간성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일은, 〈파르지팔〉을 둘러싼 반유대주의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파르지팔〉은 초연 당시부터 반유대주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순수혈통으로 그려지는 파르지팔을 아리아인의 전형으로, 그리고 성배의 기사들에 맞서는 클링조르를 유대인의 전형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혐의는 이전에 바그너가 쓴 반유대주의적 저술들과 연관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그러나 사실 대본 어디에서도 클링조르가 유대인을 상징한다는 암시는 찾아볼 수 없다.
이후,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가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라고 밝힌 것 역시 이러한 논란을 지속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치 치하에서 〈파르지팔〉은 ‘사상적으로 부적합’한 작품으로 간주되었고 2차 세계대전 시에는 바이로이트에서 단 한 번도 공연될 수 없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Parsifal(파르지팔)
한때 바그너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니체는, 〈니벨룽겐의 반지〉가 초연된 뒤 바그너에 대해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하였고, 〈파르지팔〉을 본 뒤에는 결정적으로 바그너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파르지팔〉에서 보여주는 성배와 성창, 구원자 등의 이미지가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운영비를 벌기 위해 바그너가 부르주아의 취향에 영합하여 기독교를 앞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용 자체의 기독교적 색채와 더불어, 이 작품을 신성한 전례로 간주하며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하도록 한 것 역시 종교성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바그너와 종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공유했던 니체로서는 이 작품이 바그너의 변절을 상징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니체는 또한, 바그너의 여느 작품보다도 〈파르지팔〉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도 반감을 느꼈다. 니체 역시 한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했으나 점차 그의 허무주의에 반발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하였다. 또한 예술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바그너의 신념 역시 니체에게는 퇴폐와 타락으로 인식되었다. 니체는 의지의 포기를 주장한 쇼펜하우어나 바그너의 사고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개인적인 도피로 해결하려는 것이며, 기독교의 노예적 윤리를 근저에 깔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한편 기독교인들 역시 〈파르지팔〉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파르지팔〉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속을 등짐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는 설정 역시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인들은 〈파르지팔〉이 이교도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신성모독적인 작품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도덕성의 기초에 대하여》를 읽고, 인간선의 최고의 형태가 연민이라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또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불교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으며, 불교적인 사상을 담은 작품을 구상한 결과로 《승리자》라는 대본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부처의 수행과 파르지팔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한 바그너는, 파르지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음악극을 구상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구원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던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사상을 융합한 이 마지막 작품에서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극 중에서 파르지팔이 죄를 범한 암포르타스와 쿤드리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들에게 느낀 연민을 통해 가능했다.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그려진 영웅의 모습은 이제 종교적인 구원자로 변화된다. 바그너는 세계를 구원할 운명을 지닌 영웅 지크프리트의 연장선상에서 파르지팔의 성격을 구상했다. 〈지크프리트〉에서 그린 세속에 물들지 않은 ‘두려움’을 모르는 영웅의 모습은, 〈파르지팔〉에서 ‘연민’을 모르는 구원자로 제시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구원자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바그너는, 원래의 이름인 파르치팔(Parzival)의 철자를 바꾸어서 파르지팔(Parsifal)로 바꾸었다. 이 이름은 ‘순수한 바보’를 뜻하는 아랍어 ‘팔 파르지(Fal Parsi)’에서 가져온 것이다.
파르지팔이 쿤드리의 유혹을 뿌리치는 장면은,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의지의 포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기만으로 가득한 현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이 강요하는 의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성적 의지를 가장 강렬한 의지로 생각했던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공감했던 바그너는, 파르지팔이 쿤드리의 유혹에 직면하여 암포르타스에 대한 연민을 깨닫게 되는 이 장면을 통해 의지의 포기와 깨달음이라는 의제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르지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쿤드리라는 여인이다. 쿤드리에는 그동안 바그너의 작품에 그려진 인물들의 성격이 집약되어 있다. 쿤드리는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를 비웃었다는 죄로 세상을 영원히 방황하는 벌을 받은 여인이다. 쿤드리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되기를 갈망하는데, 그녀가 원하는 갈망은 죽음을 통한 영원한 안식이다. 쿤드리의 운명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이 처한 운명과 흡사하다.
또한 쿤드리라는 인물은 선과 악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성배의 기사들을 돕는 역할이기도 하면서, 악한 마법사 클링조르의 노예가 되어 성배의 기사들을 유혹함으로써 이들의 위기를 초래한 인물이기도 하다. 1막과 3막에서 보여주는 성녀와 같은 이미지의 쿤드리와, 남성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리는 악녀로서의 쿤드리는 〈탄호이저〉에서 그린 엘리자베트와 베누스라는 대조적인 여성상을 하나의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속죄를 통한 구원을 갈망하는 쿤드리와,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는 이교도로서의 쿤드리는 〈로엔그린〉의 오르트루트와 엘자를 연상시킨다.
〈파르지팔〉의 3막은 이처럼 선과 악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쿤드리의 성격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파르지팔의 발밑에 엎드린 쿤드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의 발을 씻어준다. 예수의 발을 씻어주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처럼 죄에서 벗어난 쿤드리에게 파르지팔은 세례를 베푼다. 파르지팔이 암포르타스를 치유함으로써 구원의 과업이 모두 달성되자 비로소 쿤드리는 죽음이라는 구원을 얻게 된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1막.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파르지팔. 성배와 성창을 수호하는 성배의 기사단이 모여 있는 몬살바트 성에서 원로 기사 구르네만츠가 암포르타스 왕의 병세를 걱정한다. 이때 쿤드리가 나타나 왕을 위해 구해온 아라비아의 향유를 건네준다. 기사들이 쿤드리의 정체에 대해 의아해하자, 구르네만츠가 쿤드리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포르타스의 아버지 티투렐이 조직한 성배의 기사단에 입단하기를 원했던 클링조르가, 성욕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단을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는다. 클링조르는 사악한 마법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미녀들을 노예로 삼아 성배의 기사들을 유혹하게 했다. 티투렐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암포르타스는 클링조르의 노예가 된 쿤드리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클링조르에게 빼앗긴 성창에 부상을 당한다. 이 상처는 ‘연민을 깨달음으로 얻은 순수한 바보’가 나타날 때까지 치유될 수 없다.
구르네만츠가 이야기하는 동안, 한 청년이 활로 쏘아 떨어뜨린 백조를 들고 자랑스럽게 등장한다. 구르네만츠는 생명을 경시하는 그를 꾸짖으며 출신을 묻는다. 청년이 자신의 이름도 고향도 모른다고 답하자, 쿤드리가 청년의 정체를 말해준다. 그의 이름은 파르지팔이며, 그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을 전쟁에 보내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그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려준다. 비탄과 죄책감에 젖은 파르지팔을 보면서 구르네만츠는 그가 바로 예언 속의 ‘순수한 바보’일 것이라고 직감한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을 성배의 전당으로 데려가고, 성배의 기사들이 모여 성찬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암포르타스는 고통에 신음한다. 의식이 끝난 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이 의식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암포르타스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보며 실망하면서 그를 쫓아낸다.
2막. 쿤드리의 유혹을 뿌리친 파르지팔. 파르지팔이 예언 속의 인물임을 예감한 마법사 클링조르는 그를 타락시키기로 결심하고 쿤드리에게 파르지팔을 유혹하라고 명령한다. 파르지팔이 클링조르의 정원에 등장하자 클링조르의 지배를 받는 꽃의 처녀들이 파르지팔을 사이에 두고 싸움을 벌인다. 이때 쿤드리가 나타나 파르지팔을 부른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를 유혹한다. 쿤드리의 유혹에 현혹되어 그녀와 입맞춤하는 순간, 파르지팔은 암포르타스 왕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쿤드리의 유혹을 뿌리친 파르지팔의 앞에 클링조르가 나타나 성창을 던지지만, 성창은 파르지팔의 머리 위에서 멈춰버린다. 파르지팔은 성창을 들고 십자가를 그리고, 그러자 클링조르의 마법의 정원이 황무지로 변해버린다.
3막. ‘연민을 깨달은 순수한 바보’ 파르지팔의 치유와 구원. 세월이 흐른 뒤 몬살바트 성의 숲에서 잠들어 있는 쿤드리를 구르네만츠가 깨운다. 이 때 두 사람 앞에 갑옷 차림의 기사가 나타난다. 구르네만츠는 그가 파르지팔임을 알아보고, 파르지팔이 되찾아온 성창을 보고 감격하면서 그간의 일들을 말해준다. 오랫동안 성배를 보지 못해 선왕 티투렐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과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암포르타스와 쇠약해진 성배의 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파르지팔은 죄책감을 느낀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에게 세례를 베풀고 쿤드리는 파르지팔의 발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준다. 파르지팔은 쿤드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세례를 베푼다.
성배의 전당에서는 티투렐의 장례를 위해 기사들이 최후의 성배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고통에 견디다 못한 암포르타스는 제발 자신을 죽여 달라며 기사들에게 호소하고, 이 때 파르지팔이 나서서 성창을 암포르타스의 상처에 갖다 댄다. 순간 암포르타스의 상처가 치유되고, 암포르타스는 기뻐하며 파르지팔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치유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본 쿤드리는 기쁨 속에서 숨을 거두고, 성배의 기사들은 구원의 기적을 찬양한다.
1막 전주곡(Prelude)
1막 전주곡(Prelude). 1막의 전주곡에는 〈파르지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라이트모티브들이 사용되고 있다. 목관악기와 현악기가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성찬의 모티브를 연주하면서 음악이 시작된다. 목관의 풍부한 음색과 약음기를 낀 현악기의 절제된 음색이 경건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뒤이어 관악 성부와 현악 성부가 성배의 모티브를 연주한다. 성배의 모티브는, 바그너가 드레스덴의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 자주 연주했던 예배음악 ‘드레스덴 아멘’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두 개를 중심축으로 하여 전체 음악극이 전개된다.
이어서 호른과 트럼펫이 연주하는 장엄한 믿음의 모티브가 제시된다. 앞서 제시된 두 모티브가 온음계적인 것과는 달리 믿음의 모티브는 반음계적인 선율로 이루어진다. 점차 음악이 격렬해졌다가 성창의 모티브, 암포르타스의 모티브 등이 이어진 뒤 다시 한 번 성찬의 모티브가 반복되면서 여운을 남기며 전주곡이 마무리된다.
티투렐, 경건한 영웅(Titurel, der fromme Held)
티투렐, 경건한 영웅(Titurel, der fromme Held)
구르네만츠의 이야기, ‘티투렐, 신앙심 깊은 영웅(Titurel, der fromme Held)’. 1막에서 구르네만츠가 쿤드리와 암포르타스에 얽힌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구르네만츠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클링조르의 모티브, 유혹의 모티브, 예언의 모티브 등이 차례로 제시된다. 구르네만츠가 부른 예언의 모티브를 기사들이 되받아 합창하고, 이를 오케스트라가 다시 반복한다. 뒤이어 호른이 웅장한 파르지팔의 모티브를 연주하면서 파르지팔의 등장을 알린다.
최후의 만찬을 위해 준비해 두었네(Zum letzten Liebesmahle)
최후의 만찬을 위해 준비해 두었네(Zum letzten Liebesmahle)
성찬의 합창(Zum letzten Liebesmahle). 성배의 기사들이 성찬의식을 거행하며 부르는 합창으로, 트럼펫과 트롬본이 전주곡에서 제시된 성찬의 모티브를 웅장하게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곧이어 종소리가 장엄하게 들려오고, 기사들은 종소리 선율을 그대로 받아 제창한다. 제창이 끝나면 암포르타스가 등장하고, 전주곡의 믿음의 모티브를 기초로 한 숭고한 합창이 시작된다. 청년들과 소년들이 함께 부르는 이 합창은 장중한 음색과 순수한 음색이 어우러져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합창은 다시 한 번 성찬의 모티브를 되풀이하면서 성찬의식과 함께 종결된다.
꽃의 처녀들의 노래(Flower Maidens)
꽃의 처녀들의 노래(Flower Maidens)
꽃의 처녀들의 노래(Flower Maidens). 2막에서 파르지팔을 유혹하기 위해 꽃의 처녀들이 부르는 노래로, 1막에서 소개된 유혹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음악이 전개된다. 반음계적인 선율이 여성합창단의 음색과 어우러져 유혹의 제스처를 강조한다. 마치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음악이 계속되다가, 이윽고 꽃의 처녀들이 서로 다툼을 벌이면서 음악이 점차 고조된다. 오케스트라는 스타카토로 투쟁의 모티브를 연주하면서 격렬함을 더한다.
암포르타스! 그 상처!(Amfortas! Die Wunde!)
암포르타스! 그 상처!(Amfortas! Die Wunde!)
‘암포르타스! 그 상처!(Amfortas! Die Wunde!)’. 쿤드리에게 매혹당하여 입맞춤하는 순간 암포르타스에 대한 연민을 깨닫게 되는 파르지팔의 각성을 그린 음악으로, 극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강렬한 오케스트라가 암포르타스의 상처의 원인이 쿤드리의 유혹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극적인 순간을 강조한다. 파르지팔은 강한 목소리로 쿤드리를 뿌리치고, 쿤드리는 자비를 베풀어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애원한다. 쿤드리가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된 사연을 토로하는 선율은 매우 낮은 음에서 시작하여 고음부로 진행한다. 선율이 최고음에 다다르면 쿤드리는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린다. 쿤드리의 선율은 두 옥타브를 넘나드는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청중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안아달라고 유혹하지만 파르지팔은 욕망을 거부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의 아버지(Mein Vater!)
오, 은혜로움이여, 높은 곳에 계신 분께 경배를(O Gnade! Höchstes Heil)
성스럽고 놀라운 창(O wunden-wundervoller heiliger Speer)
저주스러운 장자상속권(Wehvolles Erbe)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를 보았네(Ich sah das Kind an seiner Mutter Brust)
'나의 아버지(Mein Vater!)'(T), '오, 은혜로움이여, 높은 곳에 계신 분께 경배를(O Gnade! Höchstes Heil)'(T), '성스럽고 놀라운 창(O wunden-wundervoller heiliger Speer)'(T), '저주스러운 장자상속권(Wehvolles Erbe)'(B),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를 보았네(Ich sah das Kind an seiner Mutter Brust)'(S) 등도 베스트 아리아다.(클래식 백과)
201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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