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Symphonia domestica Op.53(가정 교향곡)

林 山 2017. 11. 17. 09:22

<가정 교향곡(Symphonia domestica)>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03년에 쓴 교향곡이다. 1904년 3월 21일에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영웅의 생애'가 자서전이라고 한다면, '가정 교향곡'은 사생활을 그린 것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Symphonia domestica Op.53(가정 교향곡)

Orchestra Sinfonica di Torino della RAI. Ferdinand Leitner, conductor


구스타브 말러와 더불어 20세기 오페라 하우스를 개혁하는 데에 앞장섰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러는 지휘에 있어서, R.슈트라우스는 작곡에 있어서 그러했는데, 4년의 터울이 있는 이 두 천재들은 서로의 천재성을 존중하고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는 이전 시대에 슈만-리스트-쇼팽이 보여주었던 친분에 비견할 만하다. 말러는 R.슈트라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산의 반대편에서 갱도를 파다가 마침내 지하에서 만나게 되는 두 광부와 같습니다.” 20대 중반부터 친분을 쌓아온 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지휘하며 알리는 데에 앞장섰는데, R.슈트라우스는 흔쾌히 스스로를 ‘첫 번째 말러리안’이라 칭하며 자랑스러워했고, 말러는 그의 새로운 오페라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Symphonia domestica Op.53(가정 교향곡)

Corvallis-OSU Symphony. Marlan Carlson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작곡 스타일만큼이나 지휘 스타일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차이를 갖고 있었다. 말러는 열정적이고 흥분적인 지휘 동작을 보여주며 디테일과 음표, 작곡가의 지시에 목숨을 걸 정도였지만, R.슈트라우스는 ‘넥타이 지휘’라고 불릴 정도로 차렷 자세로 오로지 오른손만으로 지휘봉을 흔들었고 그날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작품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엔 꽤나 열정적인 지휘 포즈를 구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후일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9번, 3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발퀴레 정도를 지휘할 때에만 땀을 흘립니다. 그 외의 다른 작품에서는 자제력을 잃거나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Symphonia domestica Op.53(가정 교향곡)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Lorin Maazel


음악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진지했다는 면에 있어서 말러는 토스카니니에 비견할 만하지만 그와의 권력투쟁에서는 보기 좋게 패배했던 반면, R.슈트라우스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과 능력에 대한 자부심 덕분에 항상 여유롭고 낙천적이며 패배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명성을 바그너보다 더 높게 쌓아올리는 일에 몰두했을 뿐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거창한 사회적 야심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독일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의 전통, 오페라와 연극의 전통을 하나로 융합하여 아방가르드 사조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오페라 어법을 창조해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로지 작곡과 돈을 버는 일, 카드 게임과 티타임, 자기만족을 위해 지휘봉을 드는 일 등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비견할 만한 유일한, 그리고 타고난 천재인 모차르트도 80 넘게 살았다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지 싶기도 하다.


이러한 그는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은 교향곡을 왜 작곡하면 안 되는가”라고 말하며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의 흥미로운 면모를 내 자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후일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R.슈트라우스에 맞먹는 에고이스트인 퍼시 그레인저도 그를 “인간 존재의 위대한 모범”이라고 숭배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타고난 천재 특유의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었던 그에게도 가족은 자기 자신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1887년에 소프라노인 파울리네와 결혼한 뒤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 아들인 프란츠가 뒤늦게 태어난 1897년부터 가족을 소재로 한 음악을 염두에 두었고, 이후 1903년이 되어서야 작곡을 시작하여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완성했다. 이 곡이 바로 [가정 교향곡(Sympohia Domestica)]으로서 음악에 앞서 평생토록 가족을 사랑하는 모범적인 가장으로 헌신하고자 한 일종의 음악적 다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머러스하고 애정이 넘치는 작곡가 가정의 일상이 묘사되는 [가정 교향곡]은 전통적인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형식이지만 주제들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묘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자유롭게 펼쳐지는 일종의 교향시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소나타 양식에 대한 실험과 변용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와 쇤베르크의 [실내 교향곡]을 이어주는 가교적인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하루의 낮과 밤, 다음날 아침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이 각자의 주제를 갖고 자신의 등장과 행동을 제시하는 스토리보드를 바탕으로, 아들의 장난과 부모의 행복함, 7시 종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자장가와 홀로 남은 작곡가가 작곡을 하는 장면, 서정적인 사랑의 장면과 꿈, 2중 푸가로 표현되는 아침의 소란스러움과 기쁨에 찬 마지막 피날레 등등이 마치 장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첫 도입부는 일종의 가족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총주로 시작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부를 연상케 하고,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은 시간적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보인다. 에피소드들은 수은처럼 반짝이며 쉼 없이 쏟아지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오르가즘적인 엑스터시 또한 훌륭한 대조를 이루며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드라마틱하게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아라벨라]적인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틱함이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프롤로그에서의 연극적인 대화에서 기인하는 속도감을 예견하는 선행모델로도 보이는데,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설정은 이후 역시 가정 내의 문제를 극화시킨 [인테르메초]를 통해 오페라로 온전히 구현된다.



I. Bewegt(활동적인). The Philadelphia Orchestra. Wolfgang Sawallisch


첫 악장인 Thema I Bewegt(활동적인) – Thema II. Sehr lebhaft(매우 생기있게) – Thema III. Ruhig(고요한)는 말 그대로 슈트라우스가 성격을 부여한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주제 세 개가 등장하는, 일종의 리스트 소나타 도입부와 같은 제시부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F장조의 아버지 주제로서 첼로가 ‘느긋한’ 모습을 연주하고 오보에에 의해 ‘꿈꾸는 듯한’, 클라리넷이 ‘까다로운’, 바이올린이 ‘격노하는’, 트럼펫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차례로 제시한다. 한편 B장조의 어머니의 주제는 아버지의 F장조 주제와는 조성적으로 가장 먼 조성으로서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른 남편과 아내의 전형적인 성격을 그려낸 작곡가의 해학이 돋보인다. 이렇게 아버지와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어머니의 주제는 대단히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남편과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하듯 아버지의 주제를 뒤집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주제는 바로크 시대의 목관악기로서 작곡가가 대담하게 부활시킨 오보에 다모르(Oboe d’amore)를 통해 제시되며 명랑하고 해맑은 아이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II. Scherzo: Munter(쾌활하게). Minnesota Orchestra. Edo de Waart


두 번째 악장 Scherzo: Munter(쾌활하게) - Mässig langsam(적당히 느리게). 오스트리아의 무곡 랜틀러가 주된 음형으로서 플루트와 목관 악기를 통해 부모가 장난스럽게 뛰노는 아이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아버지가 단호하게 놀이를 멈추게 하니 아이가 떼를 쓰지만 어머니가 달래며 침실로 데리고 간다. 



III. Wiegenlied(자장가) - mäßig langsam. WDR Symphony Orchestra. Dimitri Mitropoulos.


세 번째 악장 Wigenlied(자장가): Mässig langsam und sehr ruhig(적당히 느리고 매우 고요하게). 2악장에 이어서 아름다운 자장가가 펼쳐진다. 어머니가 바이올린으로 아버지가 첼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글로켄슈필에 의해 자명종이 일곱 번 울리며 이제는 아이가 잠든 조용한 가정에서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2중주를 통해 남편은 책상에 앉아 일(작곡?)을 하고 아내는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IV. Adagio. Philadelphia Orchestra · Eugene Ormandy


네 번째 악장 Adagio, Langsm. 가히 사랑의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대목은 슈트라우스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바이올린군의 커다란 울렁임과 목관의 감각적인 울림을 통해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분위기가 펼쳐지고 오케스트라 총주에 의해 엑스터시를 상징하는 클라이맥스가 등장한다. 계속해서 부부의 서정적인 자유로움이 펼쳐진 뒤 이번에는 앞선 클라이맥스와는 성격이 다른 영웅적이면서 이후의 ‘살로메’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국적인 에너지감을 수반한 두 번째 클라이맥스가 등장하고 이윽고 새벽녘의 고요한 분위기 안으로 부부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러자마자 다시 자명종이 일곱시를 알리며 아침을 맞이한다.



V. Finale: Sehr lebhaft. Minnesota Orchestra. Edo de Waart


마지막 악장은 일종의 부를레스케적인 Finale. Sehr lebhaft. 부부는 현악부와 금관부의 2중 푸가를 통해 다시금 ‘즐거운 말다툼’을 시작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한스 리히터와 같은 옛 지휘자들이나 몇몇 평론가들은 이 과정을 밤의 신비로움과 낮의 열정의 대비로 해석하며 바그너의 트리스탄적인 관념적 음악어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지만, 사실 작품의 작곡 의도와 스토리보드의 진행을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곡가는 이 마지막 악장에 대해 “찬란하게 울려 퍼지는 화해의 노래”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그저 가족의 즐겁고 단란한 모습만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청자들은 미처 알 수 없는 부부 사이의 문제를 음악적 형식에 의거하여 완전히 해결한 기쁨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밤과의 대조는 상징적, 은유적으로 설계된 장치가 아니라 극적인 대비와 시간적 구성에 의한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진지한 평론가들과 맹목적인 자신의 추종자들을 살짝 속이기 위한 작곡가 특유의 속물적인 유머가 발휘된 대목이 아닐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1904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42분이 넘는 긴 연주시간을 요구하는 대작으로서 작곡가의 자의식을 반영했다는 면에 있어서 [영웅의 생애]의 후편이기도 하고 작곡가의 오케스트라 어법의 극한을 담아내고 다수의 주인공과 복선적인 이야기를 병행했다는 점에 있어서 [그림자 없는 여인]의 전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오보에 다모르를 복원시킨 동시에 색소폰 4중주를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과감하게 사용한 음향적 실험이자 교향곡 양식을 해체하며 교향시 양식에 변화를 주도한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찮은 가정사를 다루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음악적인 측면에 있어서 재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알프스 교향곡]에 버금가는 작곡가의 중요한 오케스트라 작품이 바로 이 [가정 교향곡]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제가 1925년 왼손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작곡한 단악장의 피아노 협주곡인 [가정 교향곡에 의한 파레르곤(Parergon zur Symphonia Donestica)] Op.73에서 다시 한 번 사용되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작곡가가 이 [가정 교향곡]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7.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