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디아(Finlandia op.26)>는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가 1899년에 초고를 완성해서 1900년에 개정한 교향시다. 시벨리우스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향시다. 편성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큰북, 트라이앵글, 심벌즈, 현5부로 되어 있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Finlandia Op.26(교향시 '핀란디아')
Helsingin kaupunginorkesteri. Radion sinfoniaorkesteri
Sibelius-Akatemian suuri kuoro. Jukka-Pekka Saraste
〈핀란디아〉가 작곡되어 초연되었던 것은 1899년 12월 14일 헬싱키에서였다. 당시 헬싱키에서는 정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고, 그 날이 바로 〈핀란디아〉가 초연된 날이었다. 시벨리우스는 이듬해에 〈핀란디아〉를 수정했다. 1890년대에 시벨리우스는 이미 핀란드 내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을 받았다. 1900년 이후 그는 핀란드를 넘어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를 ‘핀란드의 작곡가’에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거듭나게 한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핀란디아〉이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Finlandia Op.26(교향시 '핀란디아')
Vienna Musikverein - 19 September 2009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Franz Welser-Möst
이 곡의 인기는 시벨리우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가 이 곡을 작곡했던 것은 당시 헬싱키에서 일어났던 시위에 음악으로 공헌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핀란드 내에서는 정치적인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핀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고, 이에 대해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여 일어나라’라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단순하지만 매우 선동적인 작품으로 핀란드의 정치에 대해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모든 이들이 노래할 수 있는 선율은 핀란드 국민들의 마음에 천둥과도 같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듬해 시벨리우스는 이 곡의 스코어를 개작하고, 이 곡에 ‘핀란디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 18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신생단체였던 헬싱키 필하모닉(Helsinki Philharmonic)이 이 곡을 가지고 첫 번째 유럽 투어를 나서서 시벨리우스의 이름과 그의 음악을 온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 투어는 파리 엑스포에서 끝났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Finlandia Op.26(교향시 '핀란디아')
Lim Kek-tjiang conducts Evergreen Symphony Orchestra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Finlandia Op.26(교향시 '핀란디아')
Royal Liverpool Philharmonic Orchestra and Vasily Petrenko
유명한 이 곡의 탄생이 이렇듯 굉장히 지역적인 문제에서부터 출발했지만, 〈핀란디아〉는 굉장히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사실이다. 〈핀란디아〉를 통해서 당시의 시벨리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아있는 핀란드인으로 등극되었다. 당시에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강하게 보인 차이콥스키의 〈1812 서곡〉과 마찬가지로, 〈핀란디아〉가 시벨리우스가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Finlandia Op.26(교향시 '핀란디아')
〈핀란디아〉의 엄청난 성공은 시벨리우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왜냐하면 〈핀란디아〉로 인해 더욱 중요한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이 빛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핀란디아〉가 매우 효과적인 음악이자,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를 보여준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특히 첫 시작의 어두운 구름이 낀 듯한 금관의 음향은 잊지 못할 음향이다. 무엇보다도, 〈핀란디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선율은 음악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멜로디 중 하나이다. 핀란드는 결국 러시아 혁명 직후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들의 자율권은 1920년 10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클래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