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Gaspard de la nuit(밤의 가스파르)

林 山 2018. 1. 26. 09:23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 -Trois poèmes pour piano d'après Aloysius Bertrand)>는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1908년에 완성한 3곡의 피아노 독주곡이다. 초연은 1909년 1월 9일 파리에서 리카르도 비녜스의 피아노 연주로 이뤄졌다. 1곡  ‘물의 요정’(Ondine)은 해럴드 바우어(Harold Bauer, 1873~1951), 2곡 ‘교수대’(Le Gibet)는 장 마르노드(Jean Marnold, 1859~1935), 3곡 ‘스카르보’(Scarbo)는 루돌프 그란츠(Rudolph Ganz, 1877~1972)에게 헌정되었다. 고난이도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으로 낭만주의 음악의 표현성과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Gaspard de la nuit(밤의 가스파르)

Vlado Perlemuter(블라도 페르뮈테르)


모리스 라벨이 1908년에 작곡한 〈밤의 가스파르〉는 모두 3개의 악곡으로 이루어진 독주 피아노 작품으로, 라벨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이끈 시인인 알루아지우스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 1807~1841)의 산문시 〈밤의 가스파르〉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환상적인 낭만성과 투명하고 정교한 고전주의적 균형감이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스파르’란 페르시아어로 ‘보물을 지키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베르트랑은 ‘밤의 가스파르’라는 제목을 통해, 보석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우면서도 밤처럼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기를 의도했다. 라벨은 베르트랑의 시에서 나타나는 신비롭고 어두운, 심지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악마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09년,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Ricardo Viñes, 1875~1943)의 연주로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비녜스는 라벨과 동갑내기 친구로서, 라벨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하는 인물로 신뢰해 마지않았던 피아니스트이자, 라벨에게 베르트랑의 시를 알려주어 이 작품이 탄생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Gaspard de la nuit(밤의 가스파르)

Kun-Woo Paik(백건우), 예술의 전당


〈밤의 가스파르〉는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 정도로 고난이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동시에 심오한 형식적 논리를 표현해내야 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라벨은 특히 3곡 ‘스카르보’를 쓰면서, 당시 가장 연주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았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능가하는 비르투오시티를 의도했다. 〈밤의 가스파르〉는 ‘스카르보’ 뿐 아니라 전체 악곡이 모두 최고의 기교와 깊이 있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난해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Gaspard de la nuit(밤의 가스파르)

Lucas Debargue, Tippet Rise Art Center, The Olivier Music Barn, August 21, 2016


이 작품의 기반이 된 베르트랑의 시는 낭만주의자들이 바라본 밤의 세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벨은 베르트랑의 환상적인 낭만주의를 더없이 탁월하게 음악으로 표현해냈지만, 시인의 감성과 자신의 감성을 교차시키기 위해 악보에 원래의 시를 그대로 싣고 있다. 베르트랑의 시어들은 라벨의 음악을 통해 더욱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심지어는 전율스럽고 사악하게 펼쳐지지만, 라벨 특유의 투명한 음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벨의 음악세계를 특징짓는 고전주의적 균형감각과 고전주의음악에서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형식적 논리 역시 더없이 세련된 양상으로 펼쳐진다.


1곡 ‘옹딘’(Ondine, 물의 요정)

Cordelia Williams(코델리아 윌리엄스), Royal Concert Hall, Nottingham, on 19 March 2013.



1곡 ‘옹딘’(Ondine, 물의 요정)

Alicia de Larrocha(알리시아 데 라로차)


1곡 ‘옹딘’(Ondine). 첫 곡 ‘옹딘’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물의 요정 운디네의 전설을 소재로 한 베르트랑의 시이다. 전설 속에서 운디네는 인간과 결혼하지만 결국 남편의 사랑을 잃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요정이다. 시인은 자신을 유혹하여 호수 아래에 있는 왕국으로 데려가려는 운디네의 달콤한 속삭임을 환상적인 시어들로 표현하고 있는데 라벨은 이 대목을 투명하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요한 달을 비추는 호수의 잔물결을 묘사하듯 느리고 고요하게 시작되는 선율이 음악을 시작하고, 이를 배경으로 요정의 유혹을 표현하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선율이 제시된다. 요정의 유혹은 더욱 농염해지고, 물의 흐름이 점차 커지면서 아르페지오를 반복하며 첫 부분이 마무리된다.


요정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인간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구애를 물리친다. 운디네는 토라져 투정을 부리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결국 갑작스러운 웃음소리를 남긴 채 물방울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라벨은 투명하고 신비로운 화음들로 상처받은 요정의 심경을 그려낸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32분음표들의 연쇄는 요정의 집착과 슬픔, 분노, 그리고 사악함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이 격렬한 아르페지오의 향연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시인을 사랑하는 운디네의 우아한 선율이 다시 한 번 속삭이듯 반복된 뒤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라벨은 ‘옹딘’에서, 〈물의 유희〉에서 보여주었던 물에 대한 묘사를 한층 섬세하고 깊이 있게 발전시키고 있다. 물 속 세계의 신비로우면서도 위험을 감춘 아름다움을 더없이 관능적이고 몽환적으로 그려 보인다. 이 곡 역시 빠르고 섬세한 패시지와 화음들의 연쇄를 소화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작품이다. 라벨은 자신의 작품을 자주 연주했던 영국 피아니스트 헤럴드 바우어에게 이 곡을 헌정하였다.


2곡 ‘교수대’(Le Gibet)

Maurice Ravel(모리스 라벨) plays Ravel Le Gibet from Gaspard de la Nuit



2곡 ‘교수대’(Le Gibet)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1975



2곡 ‘교수대’(Le Gibet)

Serene Han(서린 한), piano. July 19, 2016


2곡 ‘교수대’(Le Gibet). 해질 녘의 황량한 벌판에서 시인은 교수대에 매달려 죽은 시체를 발견한다. 멀리 마을 성채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죽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벨은 전체 악곡에 B♭음을 고집스럽게 반복함으로써 이 음산한 종소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종소리 위에서 뚜렷이 대비되는 선율은 독특한 리듬을 반복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시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황량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장면에 이어 고풍스러운 선율이 짧게 연주되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느낌을 준다. 다시 첫 부분의 진행으로 돌아와 음산하고 나른하게 마무리된다. 라벨은 베르트랑이 표현한 음산하고 기괴한 환상을 엄숙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음향으로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라벨은 이 곡이 〈밤의 가스파르〉 중 가장 쉽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항상 지지해준 음악 평론가 장 마르놀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3곡 ‘스카르보’(Scarbo)

Valentina Lisitsa(발렌티나 리시차)


3곡 ‘스카르보’(Scarbo)

Alicia de Larrocha(알리시아 데 라로차)



3곡 ‘스카르보’(Scarbo)

Nadezda Pisareva. C. Bechstein Centrum Berlin in December 2015.


3곡 ‘스카르보’(Scarbo). 베르트랑은 밤마다 나타나 심술궂은 장난을 치는 난쟁이 요괴 스카르보를 괴기스럽게 묘사한다. 라벨은 이 요괴의 장난을 극한까지 몰아간 과장된 기교와 그로테스크한 음향으로 그려내고 있다. 음산한 트레몰로로 음악이 시작되면서 기괴한 밤의 풍경이 펼쳐진다. 변덕스러운 스타카토 선율은 날뛰는 스카르보의 춤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스카르보의 출몰은 달빛 속에서 더욱 기괴한 악몽을 만들어낸다. 라벨은 이 곡을 쓰면서 마치 관현악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것처럼 강렬하고 현란한 음향을 만들어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강렬한 악센트,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르게 질주하는 스케일과 화음의 연쇄, 쏟아지는 옥타브의 물결로 숨가쁘고 다채로운 음색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이 극도의 비르투오소적 기법들을 소화하고 라벨이 의도한 그로테스크한 음향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테크닉과 섬세한 페달의 사용, 날카로운 감정표현이 필요하다. 특히 스카르보의 날카로운 외침을 표현한 기괴한 코다와 그 외침과 함께 순식간에 침묵해버리는 그로테스크한 결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련한 해석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라벨은 이 난곡 중 난곡을 스위스 피아니스트 루돌프 간츠에게 헌정하였고, 지금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난공불락의 작품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클래식 백과)


2017.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