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1914~1917년에 완성한 6곡의 피아노 독주곡이다. 초연은 1919년 4월 11일 가보 홀에서 피아니스트 마르게리트 롱의 연주로 이뤄졌다. 1곡 ‘프렐류드’(Prelude), 2곡 ‘푸가’(Fugue), 3곡 ‘포를랑’(Forlane), 4곡 ‘리고동’(Rigandon), 5곡 ‘미뉴에트’(Menuet), 6곡 ‘토카타’(Toccata)로 구성되어 있다. 〈쿠프랭의 무덤〉은 신고전주의 기법과 20세기 음악기법으로 작곡되었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Le tombeau de Couperin(쿠프랭의 무덤)
Conductor: JAIME MARTÍN, Orquesta de Cámara SONY. First oboe: Juan Manuel García-Cano
〈쿠프랭의 무덤〉은 라벨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참전을 자원하여 입대를 앞두고 있던 그는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을 공부하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라벨의 친구들은 이미 입대하여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이듬해 입대한 라벨은 1917년 전장에서 돌아와서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라벨은 18세기 프랑스 음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고전적인 춤곡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또한 라벨은 1919년 ‘푸가’와 ‘토카타’를 생략한 관현악 편성의 편곡을 내놓았다. 라벨 특유의 섬세하고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이 빛을 발하는 이 관현악 편성은 1920년에 초연되었으며, 피아노 독주곡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Le tombeau de Couperin(쿠프랭의 무덤)
Berliner Philharmoniker, Conductor - Pierre Boulez, 2003
전쟁의 한복판에서 라벨에게 들려오는 것은 친구들의 계속되는 전사 소식이었다. 1917년, 마침내 전장에서 돌아온 라벨은 친구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입대 전에 구상했던 작품을 완성했고 각각의 모음곡을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큰 슬픔이 라벨에게 다가왔다. 작품의 출판을 앞두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면서 라벨은 이 슬픔을 오히려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하다. ‘추모하는 음악’이라는 의미의 17세기 음악양식인 ‘통보’(tombeau)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라벨은 이 작품에서 밝고 경쾌한 느낌마저 주는 우아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어머니와 친구들뿐 아니라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프랑스인들, 그리고 아름다웠던 과거에 대한 감미로우면서도 애절한 그리움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Le tombeau de Couperin(쿠프랭의 무덤)
Israel Chamber Orchestra, Conductor - Noam Sheriff
라벨이 제목에서 지목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크 프랑스 건반음악의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구현해낸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이다. 그러나 라벨은 이 제목이 쿠프랭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바로크 프랑스 건반음악의 그 섬세한 미학 전반에 대한 오마주라고 강조했다. 바로크 춤 모음곡을 고스란히 모방한 작품구성에서도 과거에 대한 이러한 존경심이 드러나 있다.
라벨은 이 작품에서 선법적인 화성과 섬세하고 독특한 장식음을 통해 바로크 시대의 음향을 되살려냈다. 간결한 형식 속에서 내적 완결성을 보여주는 구조적 논리와 정밀한 리듬의 구사는 라벨 특유의 이지적인 명료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모든 신고전주의적 기법들은 반음계적 선율, 통렬한 불협화음, 대담한 9화음, 공허하고 창백한 병진행 등 20세기적 기법과 공존하고 있다. 라벨은 이 순수하고 감미로운 추억의 향연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피아니즘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으며, 아름다운 과거의 시절을 투명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절망적인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다.
1곡 ‘프렐류드’(Prelude)
Győr Philharmonic Orchestra(기요르 필하오닉 오케스트라)
1곡 ‘프렐류드’(Prelude)
Maxim Emelyanychev, Real Filharmonia de Galicia, 20 mai 2016
1곡 ‘프렐류드’(Prelude)
Joanna Jones, piano. April 14th 2013
Gildenhorn Recital Hall,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1곡 ‘프렐류드’(Prelude). 첫 곡은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을 필사한 친구 자크 샤를로(Jacques Charlot)에게 헌정되었다. 추모음악의 문을 여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행복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정밀한 무궁동의 리듬을 제시한다. 12/16박자의 e단조로 이루어진 이 곡은 서정적인 음색으로 16분음표들을 표현해냄으로써 고전적인 투명함을 연출해야 한다.
2곡 ‘푸가’(Fugue)
Artist: Kathryn Stott, 2015
2곡 ‘푸가’(Fugue)
Arr. by David Diamond, Seattle Symphony, Gerard Schwarz, 1996
2곡 ‘푸가’(Fugue). 두 번째 곡은 친구 장 크루피에게 헌정된 곡으로, 라벨은 크루피의 어머니에게도 오페라 〈스페인의 한때〉를 헌정한 바 있다. 3성부 푸가로 구성된 이 짧은 곡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더없이 난해하고 정교하다. 실제로 라벨은 초연을 준비하던 마르게리트 롱에게 이 푸가를 틀리지 않고 잘 연주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라벨의 정밀한 프레이징과 짜임새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동시에 라벨 특유의 탐미적인 음향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교와 날카로운 감수성을 필요로 한다. 옛 양식을 더없이 정교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현대화한 이 곡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3곡 ‘포를랑’(Forlane)
Győr Philharmonic Orchestra(기요르 필하오닉 오케스트라)
3곡 ‘포를랑’(Forlane)
Boulez, Berlin Philharmonic
3곡 ‘포를랑’(Forlane)
Michèle Renoul, piano
3곡 ‘포를랑’(Forlane). 생동감 넘치는 리듬의 이 곡은 바스크 출신의 화가 가브리엘 들뤼크를 추모하는 곡이다. 라벨은 이 작품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쿠프랭 〈왕궁의 합주곡집〉(Concerts royaux)에 수록된 ‘포를랑’을 편곡하면서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포를랑은 이탈리아의 민속춤곡으로, 그 활기차고 열광적인 리듬 때문에 교회가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 〈쿠프랭의 무덤〉 중 가장 큰 규모인 이 곡은 4개의 주제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부점 리듬의 연쇄로 이루어진 첫 번째 주제는 역동성과 관능미를 함께 보여준다. 이 열광적인 춤에 이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두 번째 주제가 뒤따르고, 더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세 번째 주제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주제선율은 불협화음을 대담하게 제시함으로써 격정의 순간을 연출해낸다. 이 곡에서 라벨이 보여주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화음의 구사는 빠르고 열광적인 리듬 속에 감춰진 비애감을 발견하게 한다.
4곡 ‘리고동’(Rigandon)
Győr Philharmonic Orchestra(기요르 필하오닉 오케스트라)
4곡 ‘리고동’(Rigandon)
Russell Harris conducts the Phlharmonie Südwestfalen
Christmas concert in Soest Cathedral
4곡 ‘리고동’(Rigandon)
Angela Hewitt, Royal Conservatory of Music at Toronto's Koerner Hall
4곡 ‘리고동’(Rigandon). ‘리고동’은 어릴 적부터의 친구들인 피에르와 파스칼 고뎅 형제에게 헌정되었다. 이 두 형제는 전장에서 포탄에 맞아 동시에 사망함으로써 라벨에게 더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들과 함께 나누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듯 라벨은 이 곡을 역동적이고 전원적인 리고동이라는 춤곡으로 구성하였다. 기쁨과 활기로 가득한 리듬의 리고동 부분에 이어 천진난만하고 소박한 트리오가 뒤따른다. 다시 역동적인 리고동을 반복하면서 격정적으로 마무리된다.
5곡 ‘미뉴에트’(Menuet)
Boulez, Berlin Philharmonic
5곡 ‘미뉴에트’(Menuet)
Joanna Jones, piano. April 14th 2013 Gildenhorn Recital Hall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5곡 ‘미뉴에트’(Menuet). 이 우아한 미뉴에트는 장 드레퓌스를 추모하는 곡으로, 라벨은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드레퓌스의 집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이 신사적이고 귀족적인 인물을 그리는 이 곡은 세련되고 품위 있는 음향을 펼쳐 나간다. G장조의 투명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미뉴에트 부분은 섬세하고 우아한 선율을 통해 더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 아름다움 사이에서 엿보이는 슬픔의 감정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감미로운 비애감을 연상시킨다. 미뉴에트 부분에 이어지는 뮈제트 부분은 소프트 페달을 사용하여 고요하고 차분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잔잔한 음향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크레셴도 되면서 폭발적이고 불길한 클라이맥스를 연출한다. 이 열광적인 절정에 뒤따라 다시 우아하게 펼쳐지는 미뉴에트 부분에서는 앞서 제시된 두 개의 주제가 어우러져 창백한 느낌의 화음을 만들어낸다.
6곡 ‘토카타’(Toccata)
Vlado Perlemuter(블라도 페르뮈테르)
6곡 ‘토카타’(Toccata)
Mariangela Vacatello, piano. February 4, 2014 Teatro Orfeo
6곡 ‘토카타’(Toccata). 이 현란한 기교의 마지막 곡은 음악학자이자 초연무대를 빛낸 마르게리트 롱의 남편이었던 조셉 드 말리아베에게 바쳐졌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를 연상시키는 무궁동의 리듬과 화려하게 펼쳐지는 숨 가쁜, 비르투오소적 진행은 〈밤의 가스파르〉의 ‘스카르보’에 비견될 만큼 극한의 기교를 필요로 한다. 라벨은 이 눈부신 기교의 향연 속에서 군대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리듬을 반복함으로써 비극적인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암시하고 있다. 치밀하고 추진력 넘치는 바로크적 구성과 라벨 특유의 정교한 기법들이 어우러져 격렬한 클라이맥스를 연출하면서 격정 속에 악곡이 마무리된다.(클래식 백과)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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