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지조(共命之鳥) - 정상옥 전 동방대학원대학교 총장 휘호
15일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47명(33%)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새의 머리 하나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깬다. 한쪽 머리가 항상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자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고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교수들이 선정한 '공명지조'는 진보와 보수가 극한 대립으로 서로를 이기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해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결국 한 몸인 것을 왜 모르느냐는 안타까움을 상징하는 말로 뽑힌 것으로 보인다.
공명지조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공명지조에 이어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 ‘어목혼주(魚目混珠)’가 300명(29%)의 선택을 받아 올해의 사자성어 2위를 차지했다. ‘뿌리가 많이 내리고 마디가 이리저리 섞여있다’는 뜻의 ‘반근착절(盤根錯節, 27%)’과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한다'는 의미를 가진 ‘지난이행’(知難而行, 26%)‘,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사한다’는 뜻의 독행기시(獨行其是, 25%)’도 그 뒤를 이었다.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는 분명 새겨들을 만한 교훈이 들어 있다. 하지만 공존만이 능사는 아니다. 친일민족반역자들과도 공존해야 할까? 파시스트들과도 공존해야 할까? 그리고, 올해의 사자성어 '공명지조'의 뜻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 대부분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메리엄-웹스터 사전이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 방식은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빅 데이터를 활용해서 올해의 단어로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복수 인칭 대명사 ‘they’(그들)를 뽑았다. 'they'는 사실 복수 대명사인데 이 단어는 제3의 성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단수 대명사로 바뀌었다. 사전 측은 “인칭 대명사처럼 가장 기본적인 단어가 가장 많은 검색어가 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영어에는 성 중립적인 단수 명사가, 예를 들어 ‘everyone’이나 ‘someone’ 같은 것 말고는 부족해 ‘they’가 600년 넘게 써온 의미와 다르게 전환됐다”고 그 의미를 전했다.
그들만의 사자성어가 아니라 온국민이 관심을 가진 이슈를 상징하는 올해의 단어를 선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빅 데이터는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201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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