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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미얀마 지진 큰 피해 만달레이를 가다, 생존자들 거의 도움 못 받아

林 山 2025. 4. 3. 07:51

Inside Mandalay: BBC finds huge devastation and little help for Myanmar quake survivors.

미얀마 지진 큰 피해 만달레이를 가다, 생존자들 거의 도움 못 받아

난의 21살 아들을 포함해 5명의 남성이 여전히 갇혀있는 건물

 

BBC 취재진이 만달레이로 차를 몰고 가면서 지난 금요일 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의 규모가 조금씩 드러났다. 우리가 들어간 거의 모든 거리, 특히 도시의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적어도 한 개의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잔해 더미로 변했다.   

일부 거리에는 여러 개의 구조물이 무너졌다. 우리가 본 거의 모든 건물은 적어도 한 개의 벽에 균열이 나 있었고, 들어가기에 안전하지 않았다. 주요 도시 병원에서는 야외에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미얀마 군사 정부는 지진 이후 외국 언론인이 입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잠복 취재에 들어갔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취재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이 나라는 집권 군사 정권을 위해 자국민을 감시하는 정보원과 비밀 경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 엄청난 재난에 직면하여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한 미얀마 인민이었다. 무너진 5층 건물 맞은편 거리에서 5일 동안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 41세의 난 신 하인은 "그가 살아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가능성이 작더라도요."라고 말한다. 

하인의 21세 아들 사이 한 파는 건설 노동자로, 예전에는 호텔이었고 사무실로 바뀌고 있는 건물의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그를 구출할 수 있다면, 그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규모 7.7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의 바닥이 땅속으로 가라앉았고, 꼭대기가 거리 위로 기울어져 언제든지 뒤집힐 것처럼 보였다. 사이 한 파와 다른 네 명의 노동자가 건물 안에 갇혔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건물에서 구조 활동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고 곧 시작될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미얀마의 정치 상황 때문이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미얀마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내전으로 인해 약 350만 명이 이주했다. 군부 독재자 민 아웅 흘라인의 미얀마 정부군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무장 반군에 대한 작전을 계속했다. 이는 정부군이 구호 및 구조 작업에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주요 지역을 제외하고는 만달레이에서 대규모로 활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군부 정권은 드물게 국제적 지원을 호소했지만 UK, US를 포함한 많은 외국과의 불안한 관계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재 현장 인력의 형태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이러한 구조 활동은 많은 사람들이 갇혔을 것으로 우려되는 구조물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고층 스카이 빌라(Sky Villa) 콘도미니엄 단지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승려가 시험을 치르고 있던 우 흘라 떼인(U Hla Thein) 불교 아카데미다. 

불교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인도 재난 대응팀을 이끄는 니라즈 싱은 그 구조물이 "팬케이크"처럼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BBC에 "가장 어려운 붕괴 패턴이고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망적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40도에 가까운 무더운 태양 아래에서 구조대원들은 금속 드릴과 커터를 사용하여 콘크리트 슬래브를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고 있다. 느리고 매우 힘든 작업이다. 크레인이 콘크리트 조각을 들어올리면 이미 꽤 많이 부패한 시체의 악취가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구조대원들은 4~5구의 시체를 발견했지만 첫 번째 시체를 꺼내는 데는 여전히 몇 시간이 걸렸다. 아카데미 구내의 임시 텐트 아래 매트에 앉아 있는 것은 학생들의 가족들이다. 그들의 얼굴은 지치고 낙담해 있다.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들은 시신이 실린 구급차 주변으로 몰려든다. 

다른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시신 사진을 보여주는 구조대원 주변으로 모여든다. 가족들이 수습된 시신이 사랑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애쓰는 동안 고통스러운 순간이 흐른다. 하지만 시신이 너무 훼손되어서 그 일은 불가능하다. 시신은 영안실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법의학적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이 가족 중에는 29세의 우 투자나의 아버지도 있다. 그는 아들이 살아남을 희망이 전혀 없다. 우 흘라 아웅은 "내 아들이 이런 처지에 처했다는 걸 알고는 위로받을 수 없고,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은 흐느끼며 일그러졌다. 

만달레이 궁전과 마하 무니 사원을 포함한 만달레이의 많은 역사적 유적지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우리는 피해 정도를 보기 위해 들어갈 수 없었다. 군부 독재가 만든 억압적인 환경 때문에 붕괴 현장, 희생자, 그 가족 등 모든 것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종 언론인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는 탑 근처 파괴된 집 밖 거리에서 불교 장례 의식이 거행되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60대인 우 흘라 아웅 카잉과 그의 아내 다우 마마르타이의 집이었다. 그들의 아들은 우리에게 "저는 그들과 함께 살았지만 지진이 났을 때는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았습니다. 부모님은 순식간에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시신은 훈련된 구조대가 아니라 초보적인 장비를 사용한 지역 주민들이 꺼냈다. 두 사람을 끌어내는 데 이틀이 걸렸는데, 두 사람은 서로 팔을 두른 채 발견되었다. 미얀마 군사 정부는 지금까지 2,886명이 사망했다고 말하지만, 당국이 아직 많은 붕괴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숫자는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진으로 인한 실제 사망자 수가 얼마인지는 결코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만달레이의 공원과 열린 공간은 임시 캠프로 바뀌었고, 궁전 주변을 흐르는 해자 제방도 마찬가지였다. 도시 곳곳에서 저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집 밖에 매트와 매트리스를 깔고 야외에서 자는 것을 보았다. 

만달레이는 공포에 질린 도시이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금요일 이후로 거의 매일 밤 큰 여진이 있었다. 한밤중에 규모 5의 여진에 깨어났다. 하지만 수만 명이 돌아갈 집이 없어서 야외에서 잠을 잔다. 

물을 기다리는 줄에서 어린 손녀와 함께 있는 동안 만난 72세의 다우 킨 소 민트는 "더 이상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진이 난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립니다. 우리는 달려갔지만 집은 사라졌어요. 저는 나무 아래에서 살고 있어요. 와서 보세요."라고 말했다. 

민트는 세탁부로 일하고 아들이 장애가 있어서 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어디서 살까요? 정말 큰 곤경에 처해 있어요. 쓰레기 매립지 옆에 살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쌀과 옷 몇 벌을 주었어요. 우리는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달려나왔어요.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없어요. 제발 도와줘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또 다른 노인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은 아직 아무도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물품을 나눠주기 위해 차를 세우는 것을 본 대부분의 차량은 개인이나 소규모 지역 단체에서 기부한 한정된 재고를 가진 작은 밴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이용 가능한 구호품을 얻기 위해서는 서들러야만 한다. 

만달레이의 주요 병원 일부도 피해를 입었고,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 구내에 환자를 위한 침대가 줄지어 놓여 있다. 14세의 슈웨 지 쑨 표(Shwe Gy Thun Phyo)는 뇌 손상을 입었고 눈이 충혈되었다. 그녀는 의식이 있지만 반응이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치료에 대한 수요를 감당할 의사와 간호사가 거의 없어서 가족들이 의료진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자 자(Zar Zar)는 심각한 복부 부상으로 배가 팽창했다. 그녀의 딸이 그녀 뒤에 앉아 그녀를 부축하고 부채질을 해서 더위로부터 그녀를 약간이나마 시원하게 해준다. 우리는 병원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민 아웅 흘라잉 군사정권의 경찰이나 군대에 체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 생존자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들은 사망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들이 갇힌 무너진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난 신 하인은 처음에는 냉정했지만, 지금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에 직면할 준비를 하는 듯하다. 

난 신 하인은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제 아들은 저와 그의 여동생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저는 아들이 죽었더라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의 시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보도 Yogita Limaye Mandalay, Myanmar
원문 https://www.bbc.com/news/articles/c5ygpplz72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