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

林 山 2005. 2. 28. 09:49

충주 버스 터미널에서 4시 15분발 동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뇌출혈로 근 반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있는 靑霞 문재곤 박사를 문병하기 위한 서울행이다.고속버스는 2시간 반 정도 달린 끝에 나를 동서울 터미널에 내려 놓았다.강변역에서 전철을 타고 중계역에서 내려 목적지인 상계 백병원에 도착하니 7시 반이 다 되었다.

1층 로비로 가니 세명대 한의대 본과 3학년인 최종훈, 2학년인 전필승군이 기다리고 있다.최종훈군은 내가 회장으로 있는 [문재곤 박사를 사랑하는 모임]의 총무이고,전필승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의대에 들어온 사람들의 모임인 [취영회]의 회장이다.그들과 함께 문박사가 입원해 있는 907호실로 들어가니 그의 부인이 송구스러워하면서도 반갑게 맞아 준다.

병상에 누워 있는 문박사를 바라보니 그 처참한 모습에 목이 메인다.말도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눈빛을 통해서만 자신의 뜻을 간신히 나타낼 뿐이다.기도에 가래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에는 구멍을 뚫어 튜브를 꽂아 놓았다.오른쪽 측두골은 뇌속에 생긴 세 개의 동맥류 절제수술을 할 때 제거해 놓은 상태여서 그자리가 움푹 함몰되어 있다.얼마전에 측두골 봉합수술을 했다는데 염증이 생겨 다시 떼어 놓았다는 것이다.목부위도 오늘 기도를 확보하는 수술을 재차 받았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저번에 왔을 때보다도 병세가 훨씬 악화된 것 같아 보인다.건강했을 때 그토록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생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는 것을 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시간강사로 세명대 한의대에서 醫易學을 강의하던 문박사와 나는 교수와 학생신분으로 만났다.그의 철학과 나의 생각은 곧 의기투합하여 절친한 친구사이로 발전하게 된다.교수로 임명되기를 바라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자 나는 그에게 한의대 편입을 권했다.나는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그 해 그는 편입시험에 응시하여 합격을 한다.

가르치던 위치에서 갑자기 학생신분으로 바뀐 상황은 그에게 상당한 중압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거기다 그는 본태성 고혈압이 있는 상태에서 술을 무척이나 즐겼다.그는 당나라의 대시인 李 白과 견줄만한 풍류가객이면서 동양철학자였다.강사료나 번역료로 꾸려가던 생계는 전보다 더욱 어려워지고,학점취득에 대한 부담은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결국 그는 올해 1학기를 마치자마자 뇌혈관 파열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이다.

그가 이렇게 된 데 대하여 나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나는 그에게 세명대 한의대 편입을 권하지 말았어야 했다.중국으로의 유학이나 원광대 한의대 편입을 권했을 것을...............

문박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나를 무척이나 반기고 있음이 눈빛으로 드러난다.내가 백두대간을 60여일간 혼자서 종주하고 있을 때,그러니까 그가 쓰러지기 바로 며칠전 설악산에서 전화통화를 했었다.

"중산 선생님, 백두대간에서 내려오시는 날 막걸리 한잔 하면서 山소식좀 들읍시다."

내가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기 하루전에 한 통화였다.

그 길로 그는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한의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나와 함께 산사람이나 되었으면 이지경은 되지 않았을 터인데.........후회막급이다.

그동안 [문사모]에서 모은 후원금 중 1차로 2백만원을 문박사의 부인에게 전달했다.문박사의 부인은 어쩔 줄 모르면서 미안해 한다.문병을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자 문박사의 허전한 눈동자가 발걸음을 뗄 수 없게 한다.나는 그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주고 나서 마침내 발길을 돌렸다.

아픈 가슴을 그러안고 병원문을 나서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靑霞, 어서 빨리 일어나 그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같이 나눕시다."

2001년 12월 27일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 심창한 군을 가슴속에 묻으며  (0) 2005.03.05
삿갓골재 대피소 황인대님에게  (0) 2005.03.02
書堂이야기  (0) 2005.02.26
금봉산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0) 2005.02.03
어느 가을날의 하루  (0) 200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