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한아~ ~ !
창한아~ ~ ~ !!
이제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구나. 허공에 메아리로 돌아오는 이름이구나.
내가 지리산 천왕봉을 떠난 지 스무날만에 형제봉을 넘어 피앗재까지 왔을 때는 오랜 가뭄으로 샘이 말라 버려서 물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만수동으로 내려 가야만 했었다. 거기서 너를 만났지. 너는 이미 백두대간 순례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대간의 품에 살고 있었다. 백두대간이 좋아서, 백두대간의 청학동인 만수동이 좋아서 너는 거기서 그렇게 백두대간이 되어 살고 있었다.
내가 오랜 산행으로 지쳐 있을 때 너는 직접 담근 마가목주를 따라 주며 위로해 주었지. 단재 신채호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역사학도로서 민족정기가 사라져 가는 현실을 너는 안타까와 했었지.
너는 그날 나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와서 내가 잠에서 깰까봐 물 한 병과 천마죽 두 봉지를 내 머리맡에 살며시 두고 갔지. 아~ ~ ! 내 너의 그 깊은 마음 지금도 새록새록하단다. 끝내 나는 너의 얼굴도 보지 못 하고 다시 백두대간으로 떠나가야만 했었다. 고달픈 산행으로 목이 마를 때 네가 준 물을 마시면서 나는 너의 가슴을, 너의 마음을 내 안에 마셨단다.
내가 백두대간을 육십일만에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다시 반가운 해후를 했었지. 삼가저수지 유원지 솔밭에서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너는 나의 백두대간 종주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같이 하룻밤을 지새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네가 준 천마죽은 내 차마 먹지 못 하고 한계령에서 만난 목포 한솔산악회 오옥현 군에게 주었지. 그는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되었었는데 왠지 그에게 천마죽을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도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이던가! 올해 2월 24일 백두대간 늘재에서 속리산을 넘어 갈령까지 너와 함께 종주를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너의 친구 김정춘 군이 받더구나. 너를 찾으니 그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하더구나. 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나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넋을 잃고 말았단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나는 네가 그렇게 이승을 하직한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할 일도 많았는데 그렇게 떠나다니 가슴이 찢어지는구나.속리산을 넘어 피앗재를 지날 때 나는 만수동 네가 살던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북한쪽 백두대간을 함께 탐사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 하고 너 먼저 훌훌 홀로 떠났구나. 이제 너는 죽어서 백두대간이 되었구나. 네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백두대간으로 가련다. 우리 거기서 이승에서처럼 반갑게 만나도록 하자꾸나.
하늘나라 너에게로 弔詩를 띄워 보낸다.
너는
백두대간이 좋아
백두대간에 살다가
이제는 영원히
백두대간으로 돌아 갔구나.
너는 죽어서 백두대간의 품이 되고
나는 살아서 너의 따뜻한 품에 안긴다.
너는 그렇게 죽어 백두대간의 등이 되고
나는 이렇게 살아 너의 넓은 등에 업힌다.
먼 훗날
백두대간 그 어느 등성이에서
한 그루 청청한 소나무를 만나거든
살아 푸르른 마음으로 살던 너의 혼백으로 알련다.
백두대간 그 어느 고개마루에서
널찍하고 듬직한 바위를 만나거든
살아 속깊은 마음으로 살던 너의 혼백으로 알련다.
이승과 저승이 한 걸음이거늘
너와 나는 서로 그림자가 되어
언제나 백두대간에서 노닐자꾸나.
언제나 백두대간에서 살자꾸나.
이제는 너를 내 가슴속에 묻어야 하는구다.
너는 다시 태어나 조선의 북쪽 백두대간이 되어라.
우리 거기서 눈물겹도록 반가운 해후를 하자꾸나.
몇 날 몇 일이고 눈물 펑펑 쏟으며 반가운 해후를 하자꾸나.
2002년 3월 23일 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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