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르니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까지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휴가를 받은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올라온 것이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고층빌딩들의 밀림속으로 들어간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들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매연과 귀를 멍하게 만드는 소음에 벌써부터 기가 질리기 시작한다. 일급수에 살던 물고기를 삼급수로 옮겨놓았을 때 보이는 그런 현상과 비슷하다.
어찌보면 매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잘들 살아가는 서울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서울사람들을 존경한다. 서울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뛰는 문화다. 버스나 전철을 탈 때부터 뛰어야한다. 생존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바쁘게 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다. 그러니 걷는 문화, 그중에서도 팔자걸음문화에 익숙한 나같은 사람이 서울에서 살기란 애시당초 틀린 일이다.
강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까지 가서 4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혜화역에서 내렸다. 혜화역 근처 서울대학교 의대 부속병원에서 전립선암으로 입원하고 있는 큰처남을 문병했다. 큰처남내외와 문병차 와 있던 네째 처남댁이 반갑게 맞는다. 처남은 링거액을 두 개씩이나 달고 있는데다 소변주머니까지 차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암도 암이지만 치료과정이 훨씬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처남은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암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내 생각에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환경오염물질, 육식위주의 식생활 등이 암의 주요원인이 아닌가 한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무한증식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곧 암이다. 암은 초기에 수술을 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치료법도 없다. 방사선요법이나 화학요법이 있지만 심한 부작용으로 인해 생명연장의 효과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나는 한의학적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은 가정과 사회환경, 생활습관, 식생활,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 내가 암환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모든 인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짐승처럼 살라는 것이다. 산속에서 짐승처럼 3년만 살면 암이 아니라 그 어떤 병도 나으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암에 걸린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또 한가지는 마라톤요법이다. 마라톤을 뛰고나면 나는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마라톤의 이런 정화능력은 분명 암치료에 도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의사들도 포기한 어느 말기암환자가 마라톤으로 자신의 암을 완치한 예가 실제로 있다. 또한 나는 한약재를 이용한 약물요법과 음식을 통한 식이요법, 명상을 통한 정신요법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처남에게 목숨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처남은 행정공무원으로 사무관자리에 올랐고, 두 아들도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부러울 것이 없는 형편인데 그만 암에 걸리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쾌유를 빈다.
서울에 사는 네째 처남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튿날 오전 상계 백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일년도 넘게 투병하고 있는 문재곤 박사를 문병했다. 몇 달 전에 왔을 때는 말도 한마디 못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눈빛도 돌아오고 말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기억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일년만에 처음으로 감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이젠 음식도 입으로 먹을 수 있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 지체없이 매점으로 달려가 쿠키 한 상자를 사왔다. 쿠키 하나를 주자 맛있게 먹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동식을 튜브를 통해서 직접 위장으로 넣어주었었는데....... 좋아져도 이만저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가장 먹고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오소리감투 안주에다가 막걸리를 한 대포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문박사 부인에게 '문재곤 박사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모은 후원금 백만원을 전달하자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맙게 받는다. 후원회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 주란다. 문박사에게 다음에 올 때는 꼭 오소리감투에 막걸리를 함께 마시자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선다. 돌아서는 마음이 가볍다. 발걸음도 가볍다.
오후에는 인천으로 가서 중풍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처이모님을 문병했다. 우측 반신의 편마비와 가벼운 언어장애, 기억장애가 후유증으로 남아 있었다. 전에는 매우 활달하고 호방한 성격이었는데 지금 보니 많이 수척해져 있다. 그나마 대소변과 식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몸조리를 잘 하라는 인사를 드리고 처이모님댁을 나선다.
인천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충주로 가는 귀로에 올랐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사람은 일단 중병에 걸리면 마치 서리맞은 풀잎처럼 폭삭 시들어버린다. 병은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시킨다는 것을 이번에 똑똑히 보았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건강은 있을 때 지켜야 할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고 산다.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나는 다음날 아침을 늘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맞이한다. 그러니 나에게 새날의 하루는 언제나 보너스인 셈이다. 매일 보너스 인생을 살아가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죽움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내가 죽는다면 다른 세상에서 맞이한 삶을 또 열심히 살아가면 될 뿐이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죽지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거늘...........
200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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