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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적들-이인휘

林 山 2009. 4. 29. 16:35

'내 생의 적들' 표지 

 

어두운 과거로부터 뚜벅뚜벅 걸어나온 우리 시대의 초상


이 소설은 사십대 중반의 김광훈이 한밤중에 가리봉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나경중이라는 사내가 가리봉 오거리에 세워진 이정표를 부수려다 잡혀와 있다. 나경중은 아내의 친구 남편으로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노동운동으로 뛰어든 사내다. 오래 전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이 사내는 자폐아를 낳고, 뒤이어 쌍둥이를 갖게 되면서 생활고에 허덕이다, 결국은 한 조직을 이끌던 리더의 자리를 내놓고 모든 운동가들과의 교류를 끊고 살아간다.

파출소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인적이 끊긴 밤거리를 걷는다. 가리봉 오거리는 화려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오래전 일공단, 이공단, 삼공단으로 불렸던 거리가 어느 날 슬며시 디지털 일번지, 이번지, 삼번지로 바뀌어 이정표에 박혀 있다. 나경중은 사거리에 서서 독백처럼 말한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나라는 존재가 있기나 한가 싶습니다. 여기서 한 블록만 넘어가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고, 그 허름한 집과 내 사는 모습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저 거리는 디지털 거리로 첨단 산업단지로 변해가고 있는 겁니다. 세상을 바꿔내야 한다며 내가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은 지 이십사 년. 그 이십사 년의 세월을 두고 저 거리와 내가 살고 있는 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혼란스럽더군요. 도대체 이십사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나경중은 쓸쓸한 웃음을 남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김광훈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절망에 젖어 사라져가는 나경중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1980년 5월에 만났던 한 여자를 떠올리며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김광훈은 산동네 꼭대기 집에 살던 가난한 도시빈민의 자식이다. 공장을 다니며 야학에서 공부하여 대학까지 갔지만, 생활이 궁핍해 학교 서클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고 있다. 시인의 꿈을 키우며 문학서클에 몸담고 있던 김광훈은, 초현실주의와 낭만주의적 실존주의에 경도되어 역사라는 것도 늘 반복될 뿐이어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며, 세상과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런 그가 1980년 5월 17일 밤에 같은 서클 친구이자 총학생회 간부였던 이상현과 함께 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끌려간 후, 자신과 관계없다고 믿었던 현실에 의해 짓밟히기 시작한다. 이상현의 의문의 죽음에 연루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고, 불순분자로 몰려 강제징집을 당했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죄를 뒤집어쓰고 남한산성까지 끌려가게 된다.

모든 형기를 끝마치고 세상 속으로 나오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슴앓이를 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을 확인한다. 절망과 비애에 싸인 그는 자포자기 상태로 자신을 방치하고, 안기부에서는 여전히 그를 관찰 대상으로 삼아 협박하며 사람들과 단절시키고자 한다. 그는 안기부의 감시를 피해 구로공단을 떠돈다. 피폐한 삶 속에서 병을 얻고 절망하던 김광훈은, 1980년 잠시 들렀던 적이 있던 친구의 집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거들며 지낸다. 다시 살아갈 희망을 붙들려고 애쓰던 무렵, 한 여자가 김광훈을 찾아온다. 그는 그녀를 통해 8년 동안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진실에 접근하게 되고, 그 진실의 실체를 파헤쳐가면서 결국 사회와 무관한 존재는 없으며, 사회의 불행이 곧 개인의 고통과도 닿아 있음을 깨닫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된다.-YES24

 

목차

 

프롤로그 - 먼 기억 속으로

1부 그 여자
2부 춤추는 노루
3부 끝나지 않은 노래

에필로그 - 빛을 찾아서
작가후기

 

 

이인휘

 

1958년 서울 출생. 야학에서 공부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명지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3학년까지 다녔지만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며 대학을 자퇴하고 군대로 피신한다. 제대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촌을 떠돌며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돌아와 공장에 들어간다.그곳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섰고, 운동 과정에서 함께 활동했던 박영진이 파업 도중에 분신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추모사업회를 만든다. 이후 구로 독산 지역에서 추모사업회를 통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소설을 썼다.

광산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활화산』, 수배당한 노동운동가의 삶의 질곡을 그린 『문 밖의 사람들』, 남성 페미니즘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등을 발표했다. 진보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을 만들어 6년 동안 이끌어오다가 [사단법인 디지털 노동문화 복지센터]로 발전시킨 뒤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8년 만에 새로운 소설 『내 생의 적들』을 썼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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