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의 눈' 표지
2006년 제 15회 전태일문학상에 단편소설 「단풍 열 끗」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용탁의 첫 소설집 『미궁의 눈』이 나왔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대학 시절의 학생운동과 미국에서의 생활, 농촌으로 귀향해서 농부로 살아온 십 년간의 경험과 마주친 풍경, 사람들을 바탕으로 너무나 어리석거나 혹은 지나치게 영악하거나, 아니면 영악함과 어리석음을 함께 가진,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한국 문학의 주인공으로 올려놓고 있다.
순수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한 본성
표제작인 「미궁의 눈」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땅에 폭력을 통해 새로운 권력자가 탄생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이 예정된 마을.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보상금을 받아 떠나고 떠날 곳이 없는 사람들만 남은 마을은 국가의 행정과 치안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의 마을이 되어 공포와 폭력이 난무한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공동체의 전통과 사회로부터의 단절은 인간의 근원적 본성의 한 측면인 폭력이 유감없이 드러날 수 있게 하였고, 폭력은 단절로 인한 공허를 메워 새로운 위계가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최덕근 행장行狀」에서는 권력에 맛 들린 어리석은 인간의 일생을 사기열전의 서술 방식과 문체로 기록하며 냉소하고 「혜원거사慧原居士 창종기創宗記」는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한 사기꾼을 보여준다.
소설가 안재성은 발문에서 “무서운 세상과 마주친, 혹은 그 무서운 세상의 한복판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려는 하찮은 인간들의 고독을 읽는다”라고 이 소설집을 평가하고 있다. 그건 최용탁이 인간의 겉모습 뒤에 숨은 진실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그가 순수한 눈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얼 모르기 때문에 순수한 것과 알면서도 순수한 것과는 다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숨겨진 악을 두려워하고 이기주의를 무서워한다. 그의 단편들 속에 숨겨진 섬뜩함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쓰기
농촌의 노총각 이야기를 다룬 「꽃피는 봄날에」나 시골 조합장 선거에서 벌어진 일화를 그린 「단풍 열 끗」에는 과거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바보나 괴팍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최용탁이 살아온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평범한 농민들이다. 이들 작품 속에는 오늘의 농촌 현실이 매우 구체적으로 세세히 묘사되고 있어 농촌 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최용탁 소설의 또 다른 단면은 역사와 혁명에 닿아 있다. 「세 노인」과 「바하무트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그가 직접 경험하거나 만나 함께 생활했던 이들의 이야기인데, 때로는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안개 무덤」은 이 소설집 중 예외적인 작품으로 동성애를 주제로 삼아 신비스럽고 몽환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세 노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연 사실인가 싶도록 특이하다. 20세기 중반 미국 공산당에서 활동하며 쿠바 혁명에도 참가했던 심성보. 일제 강점기부터 노동 운동에 헌신하다가 남파공작원으로 남한에 내려온 박태성.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귀국하지 못하는 김유. 최용탁은 비극적인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잊혀졌던 세 명의 혁명가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미국에서 만난 세 노인의 생애에서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으나 작품으로 만들 때에는 오히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오랜 시간의 삶과 경험으로 작품의 소재를 모아온 최용탁은 『미궁의 눈』을 통해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의 침묵은 과수나무의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며 영양분을 축적하는 과정이었고, 이제 그 결실인 『미궁의 눈』이 나온 것이다. 이 소설집은 그의 작품 활동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리는 책으로, 또한 독자들에게는 한 명의 능숙한 이야기꾼을 소개하는 책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YES24
목차
1. 단풍 열 끗
2. 미궁의 눈
3. 최덕근 행장(行狀)
4. 꽃피는 봄날엔
5. 바하무트라는 이름의 물고기
6. 세 노인
7. 혜원거사(慧原居士) 창종기(創宗記)
8. 안개 무덤
해설: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쓰기-안재성
작가의 말
최용탁
1965년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났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이민, 잡화상 등을 하다가 1995년 영구 귀국하여 충주시 산척면에 정착했다. 농사일 틈틈이 써온 소설로 마흔둘에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2007년 첫 소설집 <미궁의 눈>을 발표했으며, 현재 충주에서 과수원을 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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