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7월 21일 '한나라당의 뉴비전으로는 선빈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
한나라당의 ‘뉴비전’으로는 선진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
한나라당의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의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이는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선진복지국가,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표방하는 186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한나라당의 이념과 정책의 변화를 표방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외교와 국방 분야의 전반적인 정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뉴비전'에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줄곧 주창해 온 성장주의 담론인 “선진화”가 여전히 중요한 국가발전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012년의 시대적 과제로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변화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 변화를 최초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한나라당의 소장파의 시각에서 뉴비전은 한나라당이 기존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시대적 요구를 수렴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일 수 있을 것 같다. 뉴비전에 대해 유승민 최고위원은 “당 대표가 논의를 해 달라”며 공론화의 필요성을 공개 제의하였고, 남경필 최고위원도 '보수의 가치를 잘 반영하여, 묵묵히 가정을 지켜가는 가장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는 긍정적인 입장을 발표하였다. 정두언 신임 여의도연구소장 역시 뉴비전을 '시대에 맞는 진보적인 접근'으로 규정하면서, 한나라당에 맞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뉴비전은 한나라당의 무능력과 정책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뉴비전은 선진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과제로 연평균 잠재성장율 5% 이상 유지, OECD 평균 이상의 고용률 달성, 세종시·혁신도시·4대강을 활용한 지역균형발전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한나라당 정책과 큰 차별성이 없는 내용들이다. 특히, 4대강 개발 등에 대한 환경 파괴와 예산낭비 논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성이 없다. 뉴비전은 오히려 4대강 사업의 해외 진출, 물산업의 육성을 통한 70만개 일자리 창출 등의 사업을 설정해 기존의 낭비적인 국가 지출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오히려 연장하고, 자발적 비정규직의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최저임금의 인상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입장 표명도 없는 등, 그야말로 기존의 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지속하고 확대하겠다는 입장 역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뉴비전은 한미 FTA협상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추진하면서 선진복지국가 만들기도 동시에 밀고 나가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투자자 국가제소(ISD)’ 조항 때문에 미국의 민간 사업자가 국내의 연금이나 의료보험 등 각종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진출의 여지가 넓어지고 결과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공복지정책의 확대가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있다. 이는 복지국가로 발전과 명백하게 배치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선진복지국가를 말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뉴비전은 현재의 불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를 변화시킬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는커녕 기존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한 납품가 조정제도와 징벌적 보상 강화 등 실효성과 정책실현 의지마저 불분명한 기존의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북 정책에서 있어서도 현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강경정책과 비핵개방 3000 정책 등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여전히 개성공단의 기능 확대, 금강산 관광지구 연계 개발 확대, 북․중․러 지역의 접경지역 협력 프로젝트와 자유무역지대 개발, 임진강 평화특구 등을 주장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민주정부 시기의 노력이 현 정부 들어와 모두 물거품이 된 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모두 생략되어 있다.
뉴비전의 한계는 사회분야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뉴비전은 사회복지 공무원 13,951명을 증원하고, 학교 사회복지사 11,160명, 군 사회복지사 1,424명 등에 대한 충원 계획 등 사회복지 인력 확대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국민연금의 보장율이나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목표나 수치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도 공언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일정과 경로, 구체적인 국고지원 증액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2013년까지 13,000명의 사회복지사 확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기존의 일반직 공무원을 재배치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신규채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1,000명 정도에 불과해 기존의 임용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학교 사회복지사나 군 사회복지사 충원 계획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없고, 설사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비정규직의 저임금 일자리 양산으로 끝날 위험이 높다.
뉴비전은 <빈곤아동수당>이라는 제도를 제시하여, 아동수당 제도 자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현재 OECD 국가들 중에서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OECD 국가들이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이유는 육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보육 책임을 인정하고, 아동수당을 아동의 인권으로 바라보는 데 근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반 가정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남은 물론이다.
그러나 뉴비전은 빈곤아동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이른바 <빈곤아동수당>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아동수당의 취지와 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동은 미래 경제사회발전의 희망이자 동력이다. 아동시기의 성장과 교육의 성과가 이후의 삶에서 결정정인 역할을 수행함은 이미 여러 연구들에서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선별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빈곤아동수당>과 같은 '선별적 현금 복지'는 복지와 경제성장을 분리시키는 위험한 정책이다. 최근 재정 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부유럽은 모두 복지확대와 경제성장이 분리되는 바람에 큰 문제를 겪고 있다. 보편주의 복지라야 복지와 경제가 통합적으로 발전함은 세계사의 경험적 결과이다.
뉴비전은 오세훈 시장의 전면적 무상급식 반대를 지지하면서, 한편으로는 농산어촌 지역의 전면적 무상급식, 소득과 관계없이 학생당 1-3개의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의 무상화 추진이라는 모순된 정책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소득하위 70%까지만 무상급식을 하는 정책은 세금의 부담자(상위 30%)와 복지의 수혜자(하위 70%)를 분리하는 정책이 되므로, 이러한 선별주의 정책은 그 자체로 지속가능하지 않음은 물론 향후 대상자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뉴비전의 한계는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대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뉴비전은 모든 사람이 생애주기별로 안정된 소득을 누리게 하고, 모든 국민을 빈곤, 질병, 노령, 실업, 장애, 산재 등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평생 안심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인 언급일 뿐, 여전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나 소득수준에 비례한 사회 연대적인 누진적 증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뉴비전은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복지재정 증가율(10.8%)을 근거로, 기초노령연금이나 국민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과 의료보호 등에 대한 대상자의 자연증가로 인해서 사실상 복지지출이 거의 저절로 OECD 수준의 20%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복지정책을 할 생각은 없고, 고령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적인 증가만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읽혀지는 부분이다.
현재 국내총생산의 9% 수준인 사회복지지출을 2020년 까지 20%로 확대하는 것은 적극적인 증세나 세목의 신설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지론인 '증세 없는 복지 재정 마련 정책'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것으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한나라당 자신은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등 부자감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비과세 감면의 축소, 탈세 척결, 재산세 과세의 현실화 등 민주당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만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을 현혹하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야당과 차이가 있다면 부가가치세, 담배 소비세, 주세 등 간접세에 대한 증세를 하겠다는 것뿐이다. 물론 담배값과 술값의 인상 등은 금연과 금주 정책으로서 매우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부가가치세 등 소득에 역진적인 소비세들을 중심으로 하는 증세는 결국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재원을 마련하고, 부자들에게는 국가지원을 계속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재원대책 없는 한나라당의 선진복지국가 기획은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심각한 국민적 우려에 직면할 개연성이 크다.
복지와 경제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성을 갖는 통합체이다. 복지에 재정을 투입하면 경제가 퇴보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복지의 지나친 부족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복지와 경제를 대립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구시대적인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복지는 서민층에 대한 시혜나 도움의 수준이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며, 전체 국민들의 삶과 행복을 보장하는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복지의 수혜자와 비용의 부담자를 분리하는 선별주의 정책은 확대가 불가능하며, 성공할 수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표된 한나라당의 뉴비전은 사회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성장동력의 부재를 비롯하여,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노후소득보장 등 국민의 5대 불안 문제를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그나마 일정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부실한 뉴비전에 대해서조차 당내 일각에서 좌클릭이라는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실제로 공청회에는 홍준표 당 대표 등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뉴비전이 실제 채택될 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정도 수준의 정책조차 한나라당 내에서 좌클릭이라고 비난 받는 상황이라면, 2012년의 양대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2011년 7월 21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시사 이슈 화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미 FTA 다시 보기 (0) | 2011.11.03 |
---|---|
양의사 선생님들 복국은 드시죠? (0) | 2011.10.28 |
일본 원전 20년 근무자가 밝힌 후쿠시마 원전 관리의 실태 (0) | 2011.03.18 |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독재정권들 (0) | 2011.02.25 |
아들에게 쫓겨난 할머니 (0) | 2011.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