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어머니에게 들렀다. 어제는 며칠 전 태어난 외손녀를 보러 진료 끝나고 바로 인천으로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들르지 못했다. 2번 침상의 어머니를 만나러 와 있던 강규용 원장의 여동생이 인사를 한다.
다리를 주물러 드리려고 이불을 들치니 어머니의 발에 예쁜 꽃무늬 버선이 신겨져 있다.
"어머니, 꽃무늬 버선이 이쁘네요. 누가 신겨 드렸어요?"
"간병사....."
간병사가 사물함에 있던 꽃무늬 버선이 있길래 신겨 드렸다고 한다. 꽃무늬 버선을 신으신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머니는 아실까?
다리와 팔을 주물러 드리는데 오늘도 오른쪽 무릎 관절과 종아리 근육이 아프시단다. 관절은 오랫동안 와상 상태로 움직이지를 못해서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종아리가 아픈 것은 살이 너무 빠져서 통각에 유난히 예민해져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른손 들어올리기 운동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뉴케어와 야쿠르트를 드렸다. 오늘은 뉴케어는 반, 야쿠르트는 삼분의 일 정도 드셨다. 어머니의 치아 상태를 살펴 보니 이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잔뜩 끼어 있다. 양치질을 해 드리려고 사물함을 뒤지니 치솔이 보이지 않는다. 간병사에게 식사 뒤에는 되도록 양치질을 해 드리라고 일렀다.
어머니는 금방 눈을 스르르 감으신다.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것도 피곤한 모양이다. 어머니를 잠에서 깨우려면 옛날 이야기가 약이다.
"어머니 드시고 싶은 음식 있어요?"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없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요?"
"없다."
"아버지는 안 보고 싶으세요?"
"안 보고 싶어."
아버지도 안 보고 싶다니!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신 모양이다. 병든 육신이 병이 얼마나 고달프시면 삶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셨을까!
"옛날에 제가 용돈 벌려고 둘째 동생 데리고 남의 담배밭 매러 갔던 일 생각나세요?"
"그래."
어머니는 대답 대신 눈물을 흘리신다. 그 옛날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기억이 떠오르셨던 것일까?
당시 담배는 환금가치가 매우 높은 농작물이었다. 따라서 마을마다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았다. 그런데 담배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 일손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담배 경작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중학생이나 심지어는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의 손도 빌려야만 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바로 아래 동생이 국민학교 4년이었을 거다. 내가 살던 동네의 웃담에 있는 담배밭 주인으로부터 풀을 뽑아 달라는 일거리가 들어왔다. 나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용돈이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둘째 동생과 함께 일을 맡기로 했다. 당시 담배밭이 누구네 것이었고, 품삯은 얼마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담배밭 매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고, 품삯도 나이가 어리다고 터무니없이 적게 받았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때는 무더운 한여름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풀 뽑기는 시작되었다. 나와 동생은 담배밭 한 고랑씩 맡아서 호미로 무성하게 자란 바랭이, 쇠비름 등 풀을 뽑아 나갔다. 처음에 한두 고랑 풀을 뽑을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치고 힘들어 오기 시작했다. 호미질을 하는 팔은 아파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한낮에 쨍쨍 내려쬐는 땡볕을 받아 담배밭 속은 그야말로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넓은 담배잎들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차단막 역할을 했다. 담배잎들 때문에 땡볕에 달구어진 땅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서 담배밭 속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푹푹 쪘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옷은 금방 흠뻑 젖어 땀범벅이 되었다. 갈증으로 목은 바싹바싹 타들어 왔다. 나중에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어지럽기까지 했다.
동생은 옆 고랑에서 조막만한 손으로 풀을 뽑으면서 내 뒤를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동생의 얼굴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어린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동생 때문에라도 힘들다는 내색을 할 수 없었다. 하루 해는 왜 그리도 긴지......
동생과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일을 했다. 해가 서산에 뉘역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일이 끝났다. 담배밭 주인으로부터 품삯을 받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힘으로 땀 흘려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보람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과 내가 번 품삯을 어머니의 손에 쥐어 드리자 어머니는 오늘처럼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그 돈이 어떻게 해서 번 돈이라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그 뒤로 다시는 담배밭을 매러 다니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담배밭 매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머니는 어떻게 나와 관련된 일들을 거의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실까? 기억력도 온전치 못하신데도.....
가난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맏아들이었던 나는 어쩌면 어머니에게 유일한 꿈이요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꿈과 함께 꽃다운 젊은 시절은 부질없이 흘러가 버리고 이젠 병든 몸에 백발과 주름만 남으셨다. 지금은 편히 쉬셔도 될 만한 형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시간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편도선 인생열차의 종착역만 얼마 남겨두지 않은 채.....
내가 어린 시절의 일들을 종종 어머니에게 들려 드리는 것은 어쩌면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찾아 드리고 싶어서다. 한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실 때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만 담아 가셨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나를 만나서 행복했었노라고.....
2012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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