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KBS '특파원 현장보고, 차고시안(Chagosian)의 망향가'를 보다가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비인도적이고 반인류적인 범죄 행위에 분노하고 말았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차고스 제도(Chagos Archipelago)는 인도양의 몰디브 남쪽 약 1600km 떨어진 곳에 있다. 64개의 아름다운 산호섬들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섬인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16세기 초 포르투갈인들이 최초로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무인도였던 이 섬에는 18세기에 프랑스인들이 흑인 노예와 함께 들어와 정착했다. 프랑스인들은 노예를 이용해서 코코야자와 코프라 농장을 경영하였다.
차고스인들의 비극은 1814년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차고스 제도를 점령하고 영국령으로 편입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차고스 제도는 원래 모리셔스의 관할이었다. 1965년 모리셔스로부터 분리된 차고스 제도는 1968년 모리셔스가 독립한 뒤에도 영국령으로 남겨졌다.
1966년 영국 정부는 미국과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50년간 임대한다는 비밀협정을 맺었다. 때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직후였다. 당시 미국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등 인도양 주변 전지역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기지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인도양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디에고 가르시아 섬보다 더 좋은 입지조건은 없었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영국과의 밀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영국은 섬을 임대해 준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잠수함용 핵미사일을 5백만 파운드라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미국은 그 대신 원주민 2천여 명의 완전한 추방을 영국 정부에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2천여 명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단 한 명의 원주민도 남기지 않고.....
영국군은 원주민들의 개를 한곳으로 모아 총으로 쏘아 죽인 뒤 시체를 불태웠다. 영국군의 위협에 차고스인들은 겁을 먹었다. 한편 영국 정부는 주민들에게 이주 지역인 모리셔스에 집과 가축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 못한 차고스인들은 강제 이주 보상금 90만원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배에 태워졌다.
낯선 땅 모리셔스에 도착했을 때 영국 정부의 약속은 곧 거짓말로 드러났다. 차고스인들은 영국 정부로부터 집과 가축을 받는 대신 영원한 귀향불가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보상금도 강제 이주된 지 수 년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모리셔스 섬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한 차고스인들은 빈민으로 전락했고, 생활은 비참했다.
항구 주변에서 슬럼가를 형성한 차고스인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은 교육과 취업에서도 소외되었다. 그 결과 많은 차고스인들이 약물과 알콜중독,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아프리카 통일기구(The Organization for African Unity, OAU)의 반대와 모리셔스의 차고스 제도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인도양 주변 전역을 작전 반경에 둔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기지를 세웠다. 기지에는 대규모의 군항과 비행장, 통신시설, 연료보급창, 막사 등이 들어섰다. 미군은 이 기지를 '캠프 저스티스(Camp Justice)'라 명명했다. 차고스인들에게 저지른 행위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기지는 현재 태평양의 괌이나 오키나와의 군사기지처럼 미국의 중요한 전략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01~2003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를 폭격한 B-52와 스텔스기가 출격한 곳도 바로 이 기지다.
영국 정부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으로부터 차고스인들을 차단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차고스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가 폭로되자 영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차고시안들은 1980년대부터 '차고스 난민그룹(Chagos refuges group)'을 결성하고 영국 정부를 상대로 강제 이주민들의 원상회복과 강탈당한 섬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모리셔스의 영국 대사관 앞에서 꾸준히 항의 집회와 시위를 벌여 왔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차고스인들은 영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했다. 모금운동을 통해 기금을 모은 차고스인들은 1997년 영국 정부의 불법성과 자신들의 억울함을 직접 런던의 법원에 제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영국 정부의 거짓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차고스인들의 존재가 알려질 경우 기지 건설이 중단될 것을 우려한 영국 외교부는 '차고스 제도에는 갈매기만 산다'는 등의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기지 후보지도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아니라 알데브라 섬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단체들이 알데브라 섬에 살고 있는 거북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나서자 미국 정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희생양이 되었다. 차고스인들은 졸지에 거북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2000년 런던 법원은 차고스인들의 강제이주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국 정부의 야만적인 행위가 영국 법정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차고스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2004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왕실칙령을 방패막이로 삼아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도 런던 법원은 왕실칙령이 무효라고 판결함으로써 다시 한 번 차고스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에 조차된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2016년 이후 영국에 반환된다. 영국은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지체없이 차고스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차고스인들을 배제한 채 영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야만적인 밀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고향을 되찾기 위해 영국과 투쟁하는 차고스인들을 지지한다.
차고스인들의 비극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도 미군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에서 떠나야만 했다. 차고스인들의 비극이 한국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라카와 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간 분쟁들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국제깡패짓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누가 영국 신사라고 했는가? 비인도적이고 반인류적인 만행들을 수없이 저지른 영국인들을 과연 신사라고 할 수 있는가! 영국인들이 전세계에서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는 인류의 이름으로 반드시 규탄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영국 대신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국제분쟁의 배후에는 대부분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고통에 빠트리는 제국주의는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201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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