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멀다는 핑계로 미루던 765KV 고압송전탑 설치 반대 투쟁의 현장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부산, 울산, 창원, 경산 등지에서 동료 한의사들이 자신의 일을 돌보지 않고 위양리로 달려왔다. 토요일에는 전국각지에서 3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2차 희망버스를 타고 와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고압송전탑 설치 반대 투쟁을 벌였다고 한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전경
위양리 마을로 들어서자 화악산 위를 날아다니는 헬리콥터의 굉음이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위양리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은 화악산 지능선에는 이미 송전탑 하나가 솟아 있었다. 주민들의 손이 모자라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한전측이 헬리콥터로 자재를 실어날라 3일만에 전격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송전탑 예정지 진입로 감시초소
노동당 부산시당 서영아 부위원장의 안내로 127호와 128호, 129호 송전탑 예정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송전탑 예정지로 올라가는 진입로 입구에는 위양리 마을주민들이 감시초소용 움막을 세워놓고 교대로 한전측 관계자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초소 지킴이 할배 한 분이 장작을 패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감시초소 움막에 걸려 있는 '10억 손해배상, 100만원 가처분신청당해도 765KV 송전탑은 절대로 못 세운다'고 쓴 플래카드가 비장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129호 송전탑 예정지
129호 송전탑 예정지 감시초소 움막
129호 송전탑 감시초소 지킴이 김무진 할매
129호 송전탑 예정지 주변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위양리 내량마을에서 대항리 평밭마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이르자 129호 고압송전탑 감시초소 움막이 나타났다. 129호 송전탑 예정지는 움막에서 50m쯤 남쪽으로 떨어진 능선에 있었다. 129호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도 마을사람들이 움막을 세우고 태극기를 꽂아 놓았다. 움막 북쪽으로 윗화악산과 아래화악산이 바로 앞에 바라다보였다.
감시초소 움막에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할머니들', '밀양구간 345KV 4회선 지중화 5천9백억 가능, 방안을 검토하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감시초소 주변에도 '누구를 위한 송전탑인가?! 주민건강 위협하는 765KV 꺼져!', '한전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과 직접 대화하라!', '밀양 시민들이여! 밀양의 주산 화악산을 살립시다!', '765KV 송전탑 건설을 반대합니다! 밀양 어르신들 힘내세요!', '밀양 765KV 송전탑을 전면 백지화하라!',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이 희망입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들이 온몸으로 쌀쌀한 겨울 찬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129호 고압송전탑 감시초소 움막은 김무진 할매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김무진 할매는 '건강을 찾으려고 화악산 기슭으로 들어왔더니 웬 놈의 무시무시한 765KV 고압송전탑이 들어온다고 하니 이 무슨 날벼락인교? 내사마 죽을 때까지 싸울랍니더.' 하면서 투지를 불태웠다. 김무진 할매가 체했는지 뱃속이 불편하다고 해서 이기소식화적(利氣消食化積)하는 침법을 시술했다. 발침을 하고 나서 다음 고압송전탑 예정지로 향했다.
128호 송전탑 예정지
아래화악산의 5,6부 능선을 횡단하는 임도를 따라 127호 송전탑 예정지로 향했다. 129호와 127호 송전탑 예정지 중간쯤 되는 임도 한켠에는 얼마나 방치했는지 녹이 잔뜩 슨 불도저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바로 저 자리가 128호 고압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지하고 했다. 한전측 사람들이 불도저를 앞세우고 송전탑을 세우러 왔다가 마을주민들에게 가로막히자 그대로 두고 철수했다고 한다.
127호 송전탑 예정지
127호 송전탑 예정지 감시초소 움막
감시초소 움막 내부
127호 송전탑 예정지 움막 지킴이 손희경, 곽정섭 할매와 함께
127호 송전탑 예정지 움막은 손희경(77), 곽정섭(67) 할매가 지키고 있었다. 손희경, 곽정섭 두 할매는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도 있어 꽤 유명한 투쟁활동가들이었다. 노동당 부산시당 당원들도 주말을 맞아 연대투쟁을 하러 나와 있었다.
움막 한켠 벽에는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밀고 올라왔을 때 할매들의 몸을 묶었던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움막 안에는 관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도 파 놓았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위양리 주민들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송전탑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손희경 할매는 7대째 이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토박이었다. 할매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 땅에서 자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송전탑 반대 투쟁에 발벗고 나섰단다. 얼마 전 한전측이 경찰의 보호 아래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126호 송전탑을 세울 때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단다. 얼마나 안타깝고 분하던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손희경 할매의 인생 역정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두 할매에게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것이 없느냐고 묻자 손희경 할매는 긴장이 되면 소변이 자주 나오고, 곽정섭 할매는 대변이 시원하지 않다고 했다. 손희경 할매에게는 진심안신(鎭心安神)하고 보신방광(補腎膀胱)하는 침법, 곽정섭 할매에게는 이기활장통변(利氣滑腸通便)하는 침법을 시술했다. 유침하는 동안 연대활동 나온 노동당원들이 난로에 구운 고구마를 내왔다.
침 시술이 끝나고 곽정섭 할매로부터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127 꽃동산 프로젝트 꽃보다 할매'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27호 송전탑을 막아내고 그 자리에 '희망 꽃나무'를 심는다는 프로젝트였다. 꽃나무는 영산홍으로 한 그루에 5천원이었다. 기금을 내면 꽃나무에 이름표도 달아준다고 했다. 나는 즉석에서 만원의 기금을 내고 '희망 꽃나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 다시 이 자리에 오게 될 때 볼썽사나운 송전탑 대신 아름답게 피어난 영산홍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행복해졌다.
위양리 마을주민들과 한방의료봉사단
127호 송전탑 감시초소에서 위양복지회관으로 돌아오니 본진의 의료봉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복지회관 의료봉사는 내외의 관심을 끌었던 위양리 이장 선거에서 재선된 권영길 할배의 주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한의사들과 마을주민들은 함께 복지회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을주민들과 작별한 한의사들은 밀양 버스터미널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 한 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예전의 민주노동당과 민지네(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의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장규 진해드림요양병원 원장을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왔다. 그리고, 경산시 한의사회 전해오 회장, 부산의 이창기 원장 등 뜻을 함께 하는 동료 한의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추억을 안고 돌아왔다.
201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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