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東海市) 할아버지한의원 김형산 원장의 초대로 청하(靑霞) 문재곤(文載坤) 박사와 함께 묵호항(墨湖港)을 찾았다. 묵호항에 도착하니 김 원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로 오랜간만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김 원장은 횟감을 사는 동안 묵호항과 활어판매센터를 구경하라고 문 박사와 내게 권했다.
묵호항
묵호항
묵호항
먼저 묵호항 부두로 나갔다. 저녁 때라서 그런지 묵호항에는 화물선과 어선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내항의 잔잔한 물결 위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바다를 볼 때마다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타고난 역마살 때문이리라. 내 몸속에는 보헤미안(Bohemian)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1975년 그룹 퀸(Queen)이 발표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좋아하는 것은 곡 자체도 좋지만 가사 내용을 알기 전에 노래 제목에 먼저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김두수의 '보헤미안', 박주원과 최백호가 부른 '방랑자'도 보헤미안의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노래다. 딥 퍼플(Deep Purple)의 '집시(The Gypsy)',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과 레이디 가가(Lady Gaga), 샤키라(Shakira)의 동명이곡(同名異曲) '집시(Gypsy)'라는 노래도 있다.
김두수 - 보헤미안
묵호의 지명 유래는 이렇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이곳에는 새들이 많이 살았다. 낮이면 새들이 까맣게 몰려왔다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주민들은 이곳을 '새나루'라 불렀다.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까만 새가 많이 모여든다고 해서 이곳을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오이진(烏耳津)'이라고 불렀다. 이곳 이름을 부를 때는 '새나루', 적을 때는 '오이진(烏耳津)'이라고 썼다. 나중에는 까마귀가 흉조라고 해서 '오(烏)'자를 '오동나무 오(梧)'자로 바꿨다. 조선조 말기인 순조(純祖) 때 이곳에 큰 해일이 밀려와 집을 쓸어가고, 생업 수단인 배까지 파손되어 주민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순조는 강릉부사 이유응(李儒鷹)을 파견해서 주민들을 구제하게 했다. 부사 이유응이 이곳 주민들에게 마을 이름을 물으니 평민들은 '새나루', 선비들은 '오이진'이라고 대답했다. 이름이 각기 다른 까닭을 알게 된 이유응은 '이곳은 물(湖)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으니 '먹 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이후 이곳을 '묵호'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묵호는 조선시대만 해도 강릉대도호부 망상면 묵호진리로 작은 어촌이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1931년 묵호항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936년부터 삼척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1941년 8월 드디어 묵호항이 개항되었다. 1942년 강릉군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되면서 점차 항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55년 강릉읍과 성덕면, 경포면이 통합되어 강릉시로 승격되었고,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한 묵호항은 삼척의 시멘트와 양양의 철광석, 동해안의 수산물을 수출하는 항구로서 크게 발전하였다. 1979년 묵호항이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5만톤 이상의 배가 접안할 수 있는 항구시설을 갖추었다. 1980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이 통합되어 지금의 동해시가 되었다.
묵호항은 예전에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혀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어획량의 감소로 경제가 침체된 상태다. 요즘은 배를 타려는 내국인도 점점 감소하여 외국인 노동자,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인 선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묵호항 활어판매센터
묵호항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 내항에 바로 붙어 있는 활어판매센터로 들어갔다. 때는 저녁 파장 무렵이라서 그런지 활어판매센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수족관마다 각종 바다 물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물고기들에게 수족관은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수용소인 셈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물고기들에게는 그것이 운명인 것을..... 한 생명은 다른 존재를 먹이로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니 내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무수한 다른 존재들의 목숨값을 갚기 위해서라도 삶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목숨몫까지 살아줘야 하기 때문에.....
수족관에는 대게, 홍게, 오징어, 대방어, 광어, 가자미, 도다리, 고등어, 참돔, 복어, 문어 등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들도 있었다. 인간을 호기심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 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와 수족관에 갇히 물고기들은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유롭게 살던 바다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묵호항에 왔으니 바다 물고기에 정보를 좀 얻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말도 있잖은가! 먼저 가자미목 둥글넙치과의 넙치(廣魚, Flatfish)와 가자미과의 도다리(finespotted flounder)를 구별하는 법을 알아보자. '좌광우도'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 머리를 정면으로 놓고 보았을 때 두 눈이 왼쪽에 몰려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몰려 있으면 도다리라는 것이다. 강도다리는 예외다. 주둥이가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면 광어, 주둥이가 작고 이빨이 없으며 입술이 두꺼우면 도다리다.
사량넙치(출처-국립수산과학원)
고베둥글넙치(출처-국립수산과학원)
귄텔둥글넙치(출처-국립수산과학원)
마찰넙치(출처-국립수산과학원)
가주넙치(출처-국립수산과학원)
넙치와 광어는 같은 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해역에서 주로 잡히는 넙치는 사량넙치와 고베둥글넙치다. 사량넙치는 몸이 작고 체고도 낮은 편이다. 유안측(有眼側, 등)은 갈색 바탕에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기저에 수레바퀴 모양의 짙은 갈색 무늬가 희미하게 나타나며, 무안측(無眼側, 배)은 희다. 지느러미는 연한 갈색을 띤다. 고베등굴넙치는 최대 크기가 10cm로 아주 작다. 유안측은 짙은 갈색, 무안측은 머리 바로 뒤쪽은 담황색을 띠지만 그 뒤쪽은 짙은 회색을 띤다. 지느러미는 연한 황색을 띠며 뒷가장자리는 어둡다.
귄텔둥글넙치는 서태평양의 인도네시아, 태국만, 인도양의 아라비아해에 분포한다. 몸이 작고 심하게 측편되어 있는 소형 어종이다. 몸은 전체적으로 연한 황색을 띠며, 가슴지느러미를 제외한 나머지 지느러미는 검다. 가슴지느러미는 분홍색을 띤다. 마찰넙치는 필리핀에서 호주에 이르는 서태평양, 홍해에서 아프리카 동부를 포함하는 인도양에 분포한다. 크기는 20∼40cm로 최대 60cm 까지 성장한다. 유안측은 짙은 갈색 바탕에 수십개의 깨알만한 백색소포가 일정한 간격으로 산재하며, 무안측은 회백색을 띤다. 지느러미는 갈색을 띠며, 꼬리지느러미는 가장자리가 검다. 꼬리지느러미 기부에 황색의 가로줄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가주넙치는 미국 북부에서 멕시코 북부에 이르는 동태평양에 분포한다. 최대 크기는 152cm, 무게가 33Kg까지 나가는 것도 있다. 유안측은 흑갈색 바탕에 작은 흰색 얼룩이 드물게 분포하며, 무안측은 희다. 지느러미는 어두운 갈색을 띤다.
넙치는 양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자미류 어종 중 최고급 횟감으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대량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값싼 횟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횟집에서 유통되는 광어의 90%가 양식산이다. 하지만 값이 싸다고 해서 맛도 없을 거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회를 뜨고 나서 6시간 정도 숙성시킨 광어회의 맛은 결코 다른 고급 어종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광어는 여전히 우럭과 더불어 인기 있는 국민 횟감이다.
현재 양식되고 있는 주어종은 국립수산과학원 거제육종센터에서 개발한 킹넙치(KingNupchi Halibut)다. 킹넙치는 일반 양식 넙치보다 30% 이상 성장이 빠르다. 그렇다면 자연산 넙치와 양식 넙치는 어떻게 구별할까? 자연산 넙치는 모래바닥이나 뻘을 헤엄쳐 다니기 때문에 배에 이끼 등 이물질이 끼지 않아 희고 깨끗한 편이다. 양식 넙치는 양식장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기에 배에 물이끼가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이끼의 색은 푸른색과 고동색을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연근해 도다리(출처-국립수산과학원)
원양 도다리(출처-국립수산과학원)
도다리는 단일 어종이 아니다. 도다리라고 다 같은 도다리가 아닌 것이다. '담배쟁이' 또는 '담배도다리'라고 부르는 오리지널 도다리는 먼 바다에 서식하기 때문에 어획량이 적어서 경매를 마치자마자 순식간에 다 팔리는 어종이다. 부산 자갈치시장 등 일부 시장에서만 소량 유통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횟집이나 일식집 종사자들도 쉽게 볼 수 없는 어종이다.
지금까지 도다리 행세를 하고 있던 어종은 강도다리(일어명 누마가레이)와 돌가자미(stone flounder, 돌도다리, 돌광어, 일어명 이시가레이), 문치가자미(서남해도다리, 도다리, 참도다리, 일어명 마코가레이)였다. 찰가자미(울릉도가자미, 미역초광어, 일어명 바바가레이)를 도다리라고 해서 팔기도 한다.
우리나라 연근해 강도다리(출처-국립수산과학원)
원양 강도다리(출처-국립수산과학원)
우리가 횟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도다리는 대량으로 양식되는 강도다리다. 강도다리는 해안에 살지만 강으로 올라오기도 해서 이름에 '강'이 붙었다. 이른바 '봄 도다리 세꼬시'는 90% 이상이 양식 강도다리고 보면 된다. 물론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산 강도다리가 들어오기도 한다. 강도다리는 지느러미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몸에는 단단한 돌기가 튀어나와 있어 광어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강도다리는 두 눈이 광어처럼 왼쪽으로 쏠려 있어 '좌광우도'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다.
돌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돌가자미는 문치가자미보다 성장속도가 빨라 양식이 가능한 어종이다. 제주도 표선면에서 돌가자미 양식에 성공했다. 중국에서도 돌가자미 양식을 했다. 한국인이 중국에 사업체를 두고 양식을 해서 국내로 수입을 했다.
돌가자미는 넙치과와 가자미과 어종 중 유일하게 비늘이 없고, 유안측에 돌 모양의 딱딱한 각질층인 골반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있다. 두 눈은 오른쪽에 몰려 있다. 돌가자미는 환경에 따라 몸의 무늬가 수시로 변한다. 일반인들은 돌가자미의 일어명이 이시가레이인 까닭에 고급 횟감인 이시가리와 혼동하기도 한다. 가자미과 어류 중 최고 횟감으로 치는 이시가리는 줄가자미다. 상인들은 돌가자미를 돌도다리라고 해서 판매한다.
문치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강도다리가 '봄 도다리 세꼬시'로 유명하다면 방송에서 도다리 또는 참도다리로 알려진 문치가자미는 '도다리 쑥국'의 재료이다. 남도 지방의 대표적인 가자미가 바로 문치가자미인데, 성장 속도가 느려 양식 기피 어종이다. 따라서 문치가자미는 전량 자연산이라고 보면 된다. '좌광우도'의 법칙은 문치가자미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입이 작고 튀어나온 두 눈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어 광어와 쉽게 구별된다. 문치가자미는 12~2월 산란을 마치고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주로 봄에 그물에 많이 걸린다. '봄 도다리'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이때는 살이 차오르는 중이라 횟감으로는 아직 이르기 때문에 쑥국의 재료로 쓰는 것이다. 참가자미(일어명 마가레이)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문치가자미는 두 눈 사이에 비늘이 있어 구별된다.
다음은 가자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리나라의 연근해에 서식하고 있는 가자미는 약 20여 종에 달한다. 최고급 횟감은 단연 노랑가자미(일어명 마츠카와)와 범가자미(점도다리, 멍가레, 일어명 호시가레이), 줄가자미(일어명 이시가리, 사메가레이)다. 희귀성으로는 노랑가자미>범가자미>줄가자미 순이다. 노랑가자미는 일본에서 낚시로 잡히는데, 국내산은 거의 없다. 배 전체가 노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범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범가자미는 검은 점이 찍혀 있어 점도다리라고도 하며, 상인들 사이에는 멍가레로 통한다. 크기는 약 60cm로 자란다. 몸 빛깔은 유안측이 암갈색, 무안측은 흰색으로 약간의 검은 반점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수가 감소한다. 등과 뒷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에 둥글고 검은 반점이 있다.
줄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줄가자미는 유안측 돌기로 인해 껍질이 상어(일어명 사메)처럼 거칠다고 해서 일본인들은 사메가레이라고 한다. 겨울이 제철인 줄가자미는 뼈가 연해서 뼈째회 횟감으로 좋다.
참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참가자미(brown sole, 일어명 마가레이)는 주로 동해안에서 잡히며, 무안측 양쪽 지느러미가 노란색을 띤다. 용가자미(어구가자미, 포항가자미, 일어명 소우하치)를 지역에 따라 참가자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용가자미와 참가자미는 다른 종이다.
용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용가자미는 유안측이 짙은 암갈색으로 약간 황색을 띠고, 무안측의 지느러미 부분이 투명하다. 다른 가자미보다 입이 커서 아구다리라고도 한다. 대부분 그물로 잡히며, 음식점에서 구이용으로 많이 소비된다.
참가자미는 가자미식해의 주재료였으나 어획량이 감소하자 값이 비싸져 요즘은 뼈째회 횟감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가자미식해는 비싼 참가자미 대신 기름가자미(arrow-toothed halibut, 일어명 히레구로)로 만든다. 지역에 따라 기름가자미를 물가자미(경상도 방언 미주구리, 일어명 무시가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기름가자미와 물가자미는 엄연히 다른 물고기다.
물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물가자미는 유안측에 작고 둥근 반점이 6개 있다. 지역에 따라서 물가자미를 지역에 따라 살가자미라고도 한다. 뼈째회 횟감으로 주로 소비되고 있으며, 조림을 해도 맛이 좋다.
기름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기름가자미는 4~5월이 제철인데, 살이 얇고 기름이 많아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뼈가 연해 뼈째 썰어 회무침으로 인기 있는 횟감이다. 냉장고에 4~5일 두었다가도 횟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자미식해의 주재료로 많이 소비된다. 반건조한 기름가자미 구이의 맛도 매우 좋다.
갈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갈가자미(경남 납세미, 사리가자미, 전남 갈가재미, 조릿대가자미, 사시가리, 일어명 야나기무시가레이)는 구이나 조림 등 반찬용으로 많이 소비된다. 언뜻 보면 기름가자미와 비슷하지만 지느러미 색이 보다 연하며, 체형은 보다 길쭉하다.
찰가자미(출처-국립수산과학원)
찰가자미는 울릉도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하여 울릉도가자미라고도 한다. 수산시장에서는 도다리, 일명 물도다리로 유통되고 있다. 체형은 일반 가자미류보다 통통한 편인데, 맛은 별로 좋지 않다.
넙치와 도다리, 가자미에 대해서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자미 넙치나 도다리, 가자미는 먼저 어종을 물은 다음에 주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회를 먹더라도 이름이나 알고 먹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넙치나 도다리, 가자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묵호시장 야경
묵호시장 어판장회식당
묵호항과 묵호활어판매센터를 구경하고 나오자 어느덧 저녁 때가 다 되었다. 김 원장은 뼈째회용 가자미와 오징어 각각 한 봉지와 홍게 한 보따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묵호시장 횟집과 식당가는 주말인데도 한산한 편이었다.
김 원장의 안내로 묵호시장 안에 있는'어판장회식당'으로 들어갔다. 횟감과 게 등을 식당에 맡기면 야채와 양념값을 받고 생선회도 썰어주고, 매운탕도 끓여주며, 게도 쪄 주는 시스템이었다. 잠시 후 가자미 뼈째회와 오징어회, 찐 홍게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자미 뼈째회가 참 맛있었다. 고소하면서도 단 맛이 났다. 무슨 가자미냐고 물었더니 김 원장도 모른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어찌 곡차 한 잔이 없으리오! 주거니 받거니 밤이 이슥하도록 회포를 풀었다. 우리는 한의대에 다닐 때도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한의학과 인생, 철학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한의대에는 나이가 많은 한의대생들의 모임인 취영회(聚英會)가 있었다. 제일 연장자였던 나는 모임의 좌장 역할을 했었다. 취영회라는 이름은 문 박사가 작명했다.
김형산 원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나보다 한 학번 먼저 한의대에 들어와서 어렵게 어렵게 공부를 했다. 등록금을 내기 어려워 불우학우돕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렵고 힘들게 졸업한 김 원장은 고향인 동해시에서 개원했다.지금은 한의원에 손님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좀 있다는 말을 김 원장으로부터 듣고 내 마음도 흐믓해졌다.
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하고 교육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당시 노태우 독재정권은 전교조에 붉은 색칠을 하려고 혈안이 되어 공안몰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공안당국에 체포되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해직이 되었다. 10여 년의 해직생활 끝에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나이 40이 넘어 한의대에 들어갔다.
문재곤 박사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의대에서 의역학 강의를 했었다. 그러다가 내 권유로 강의를 그만두고 나보다 한 학번 늦게 한의대에 편입을 해서 들어왔다. 문 박사는 재학 중 불행하게도 뇌출혈로 생사를 오가는 상황까지 갔었다. 눈물겨운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후유증 때문에 문 박사는 결국 한의대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 꼭 내 탓인 것만 같아 늘 마음이 무거웠었다. 요즘 문 박사는 한의학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은 듯했다.
밤이 이슥해서 '어판장회식당'을 나왔다. 동해의 밤은 깊어갔지만 한 풍류 한다는 사람들 세 명이 만났는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한섬바다카페에서
천곡동 한섬포구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한섬바다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문 박사가 동해에 올 때마다 김 원장과 함께 가끔 들른다는 호젓한 카페였다. 홀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동해에서의 회동 기념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한의대에 다닐 때의 내 모습은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길게 길렀었다. 그 당시는 내가 도인의 모습이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김 원장이 오히려 도인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인생역전이라고나 할까! 김 원장의 얼굴에는 인생의 멋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바닷가에 자리잡은 카페의 조용한 분위기 탓이었을 것이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젖어 마이크를 잡고 이선희가 부른 영화 '왕의 남자' OST '인연'과 바이올린 전주곡이 참 좋은 장윤정의 '첫사랑'을 연달아 불렀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꽃비가 내릴 즈음이면 꼭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는 바로 타이완(臺灣) 가수 덩리쥔(鄧麗君)이 부른 중국 영화 '티엔미미(甜蜜蜜)'의 OST였다. '티엔미미'를 부르면서 나만의 기분에 도취되어 아련한 옛 추억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 돌아가면서 가슴에 깊이 묻어두었던 비장의 노래들을 풀어 놓았다. 바닷가 외딴 카페에서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세 남자의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음정이나 박자는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노래를 통해서 추억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 남자가 풀어 놓은 추억이 홀 안에 가득 흘러 넘치고 있었다. 누구도 말은 안했지만 우리는 젊은 시절 함께 공유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안타까와 하고 있었다. 그 시절이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한섬바다카페 바로 앞에는 푸르른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한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우리 만남의 의미는 문재곤 박사의 '東海有感(동해유감)-동해의 추억'이란 한시 한 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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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民誠濟健安興(만민성제건안흥) 정성으로 세상 돌봐 건안케 하리
201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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