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충주 풍경길을 걷다

林 山 2014. 5. 9. 13:02

아이파크아파트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뒷목골산을 바라볼 때마다 이곳으로 이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뒷목골산 숲길을 한 바퀴 돌고 와서 출근하면 하루종일 상쾌한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뒷목골산 능선은 충주 풍경길 중 하나인 사래실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이파크아파트


사래실 가는 길은 금릉초등학교와 두진아파트 뒤, 아이파크아파트 뒤에 나들목이 있다. 나는 주로 아이파크아파트와 두진아파트 뒤에 있는 나들목을 이용한다. 이른 아침에는 금릉대로 건널목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들이 있어 길을 건널 때는 조심해야 한다.     


계명산 해돋이


두진아파트 뒤편의 나들목으로 접어들면 종종 새벽의 여명을 뚫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계명산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우주 삼라만상을 두루 비추는 태양을 우러러 온 세상의 평화와 모든 중생의 평등한 행복을 기원해 본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엉터리 구조로 228명의 사망자와 74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도 함께 빌어 본다.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대통령부터 장관, 공무원, 해양경찰에 이르기까지 뻔뻔하고 몰염치한 작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명백한 정부의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진실을 감추고 왜곡보도를 일삼는 신문, 방송에도 분노한다. 흑색선전과 물타기로 희생자와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썩어빠진 인간들에게도 분노한다.    


그러고도 당신이 대통령인가!

그러고도 당신이 장관인가!
그러고도 당신이 공무원인가!
그러고도 당신이 해경인가!

그러고도 당신이 기자인가!
그러고도 당신이 국민인가!


정의감이 살아 있는 국민이라면 분노하고 거리로 나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이라면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세월호 침몰 같은 대규모 참사는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영산홍


아그배꽃


사래실 가는 길 초입에서부터 짙붉게 핀 영산홍이 산길 나그네를 반겨 준다. 영산홍은 저리도 아름답게 피었는데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갔다. 내 마음도 이렇게 안타깝고 슬픈데, 희생자 가족들이야 오죽하랴! 가슴이 시커멓게 다 타버렸을 것 같다.


산기슭에는 순백색의 아그배나무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그배나무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당이(棠梨), 삼엽해당(三葉海棠), 삼엽매지나무, 솜털줄해당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중남부의 산지에서 주로 자란다.        


아그배나무의 키는 약 3m 정도이고, 잎은 어긋나며,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들이 나 있다. 4~5월 무렵 가지 끝에서 흰색 또는 담홍색의 꽃이 총상(總狀)꽃차례로 핀다. 꽃잎과 꽃받침잎은 모두 5장이고, 암술대 아래쪽에 잔털이 있다. 아그배 열매는 가을에 붉은색 또는 홍황색으로 익는다. 열매의 지름은 5~9㎜ 정도이다. 아그배는 능금맛도 나고 배맛도 나는데, 엄청 시고 떫다. 


아그배나무는 생김새가 돌배나무와 비슷하고, 열매의 모양이 배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것 같아서 아기배로 불리다가 아그배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그배나무는 배가 아니라 사과나무류에 속한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아이들이 설익은 열매를 따 먹고 배가 아파 '아이구 배야' 하면서 뒹굴었던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연수정


제비꽃


철봉과 평행봉, 운동기구들이 있는 봉우리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턱걸이를 하려고 철봉에 매달렸다가 한 번도 못하고 내려왔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한 번을 못하겠다. 예전에는 그래도 10회 정도는 했었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절실히 느꼈다.  


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도 있고 쑥스러운지 작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만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정말 좋은 마음가짐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나의 인사 한 마디로 상대방이 반갑고 기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이것도 하나의 보시가 아니랴! 앞으로도 나의 인사 보시는 계속될 것이다.


연수정(連守亭)에 오르니 탄금대와 남한강, 달래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연수정은 연수동(連守洞)에 있는 정자라는 뜻이렷다. 연수동은 원래 충주군(忠州郡) 북변면(北邊面) 지역이었다. 일제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연원동(連原)과 동수동(東守洞), 대가미리(大加味里), 칠지동(漆枝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연원(連原)과 동수(東守)의 이름을 따서 연수리(連守里)라 하고 읍내면(邑內面)에 편입시켰다. 이후 1962년에 현재의 연수동으로 되었다. 


연수정 바로 앞에는 보라색 제비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저 제비꽃도 산길에 피어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건만 어찌하여 잔인한 인간들은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는가!     


혹벌의 충영


우연히 키작은 떡갈나무 가지 끝에 갈떡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갈떡은 떡갈나무의 순에 생기는 혹벌의 충영(蟲癭) 즉 벌레집을 말한다. 혹벌 분비물의 자극으로 떡갈나무 조직이 이상 발육하여 혹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옛날에는 갈떡을 먹기도 했는데, 맛은 시큼하고 약간 떫은 맛이 난다.


참나무는 종류도 많아서 헷갈리기가 쉽지만 그 유래는 재미있다. 옛날 사람들이 짚신 밑에 깔았다고 해서 신갈나무 , 어린 잎으로 떡을 싸서 먹었다고 하여 떡갈나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잎이 가장 곱다고 하여 갈참나무, 도토리가 장기판의 졸처럼 작다고 해서 졸참나무, 선조의 밥상에 열매 묵을 올렸다하여 상수리나무, 나무껍질이 세로로 깊이 파이면서 골졌다고 하여 굴참나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옻나무과의 식물인 붉나무의 유아 또는 엽병이 Schlechtendalia 속의 잔딧물에 자상을 받아 그 자극으로 생긴 혹 모양의 충영을 오배자(五倍子), 너도밤나무과 식물에 어리상수리혹벌의 산란으로 인해 생기는 벌레혹을 몰식자(沒食子)라고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타닌(tannin)의 함량이 많은 특징이 있다. 


오배자는 본초학에서 수삽약(收澁藥) 중 지사약(止瀉藥)으로 염폐(斂肺), 삽장(澁腸), 지혈, 해독(解毒)의 효능이 있어 폐허구해(肺虛久咳), 구리(久痢), 구사(久瀉), 탈항(脫肛), 자한(自汗), 도한(盜汗), 유정, 변혈, 코피, 붕루(崩漏), 외상출혈, 옹종창독(癰腫瘡毒), 피부습란(皮膚濕爛)을 치료한다. 몰식자는 수렴지혈약(收斂止血藥)으로 삽정(澁精), 염장(斂腸), 지한(止汗), 지혈(止血)의 효능이 있어 대장허활(大腸虛滑), 사리부지(瀉痢不止), 변혈(便血), 유정(遺精), 음한(陰汗), 해수(咳嗽), 각혈(喀血), 창상출혈(昌傷出血)을 치료한다고 한다. 몰식자는 본초학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개다래 열매에 충영이 생긴 것을 목천료(木天蓼)라고 한다. 목천료는 신장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혈액의 요산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민간에서 통풍의 치료에 쓴다. 목천료는 본초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고, 한의사들도 거의 쓰지 않는다.


막은대미재


연수정 봉우리를 지나 또 하나의 얕으막한 봉우리를 넘으면 막은대미재가 나온다. 막은대미재는 연수동에서 용탄리(龍灘里) 학골(鶴谷)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는 충주와 강원도 지방을 오가는 길목이었다. 


조선조 초엽 죄수가 사형 판결을 받고 이 고개를 넘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형수들이 이 고개를 넘어서 갔을까? 안림동과 종민동  사이에 있는 마즈막재도 조선시대 사형수들이 한 번 넘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형수들에게 마즈막재와 막은대미재는 그야말로 한 많은 마지막재였던 것이다.  


충주시내 전경


금봉산


뒷목골산 능선과 탄금대, 장미산


막은대미재에서 풍경길은 사래실 가는 길과 이별한다. 풍경길은 계명산 서부능선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서부능선을 잠시 올라가면 시야가 시원하게 툭 터진 전망대 바위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남서쪽으로는 충주시가지, 남동쪽으로는 충주시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금봉산과 대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봉우리 정상에서는 뒷목골산 능선과 그 뒤로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탔다는 탄금대가 있는 대문산(大門山), 대문산을 좌우에서 안고 흐르는 남한강과 달래강, 그 건너편으로 삼국시대 고구려 산성이 있는 장미산(薔薇山)까지 훤하게 바라다보인다.

 

 

묵묘


산길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묵묘가 하나 있다. 길손들이 늘 오가는 길목에 누워 있으니 묵묘의 주인은 쓸쓸하지는 않겠다. 명당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자리가 아니겠는가! 

 

  약수터


전망대 봉우리를 지나 또 한 봉우리를 넘어서 내려가면 마침내 아침 산책의 목적지 뒷목골산 약수터에 이르게 된다. 약수터에서 계명산의 정기를 담뿍 머금은 물로 목을 축이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물 한 모금도 자연이 베푸는 큰 혜택임을 깨닫는다.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고마움을 종종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깨닫는다면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풍경길 약수터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에서는 낭비라는 것이 없어서 죽어서도 아낌없이 다른 존재의 먹이가 되고, 거름이 됨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다. 내 몸이 다른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輪廻),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復活)의 참뜻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자신의 시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보시하는 티베트인들의 조장(鳥葬)을 숭고하면서도 처절하게 아름다운 장례문화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고승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 선사도 열반에 들면서 자신의 시신을 산속에 가져다 놓아 짐승과 새들의 먹이로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다른 존재의 생명 살림을 위해 자신을 먹이로 내놓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 지선의 행위가 아닐까 한다. 침굉 선사의 선시(禪詩) '소음(笑吟)'을 음미해본다.


金鎚影裏裂虛空(금추영리열허공) 금방망이 그림자 속에서 허공이 부서지고

驚得泥牛過海東(경득니우과해동) 진흙소 깜짝 놀라 동쪽 바다를 지나가네.

珊瑚明月冷相照(산호명월냉상조) 산호와 밝은 달은 서로 차갑게 맞비추고

今古乾坤一笑中(금고건곤일소중) 예와 지금 하늘과 땅은 한 웃음 속에 있네.


약수터 안부에서 과수원 한가운데를 지나서 내려오는 길이 있다. 하지만 남의 과수원 한가운데를 지나야 하는 것도 그렇고 집집마다 큰 개들이 지키고 있어 이 길로 다니는 사람들은 드물다. 하산길은 대부분 전망대 봉우리를 다시 넘거나 산허리를 돌아가는 우회로를 따라 막은대미재까지 온 다음 아이파크아파트로 내려가는 막은대미재길을 이용한다.


산아래화실


풍경길은 막은대미재길로 이어진다. 막은대미재길을 내려오다가 만나는 첫번째 건물 이층에는 윤승진 작가의 산아래화실, 그 아래층에는 윤 작가의 부친인 국악인 윤일로 선생의 국악연구회 사무실이 있다. 몇 년 전 산아래화실을 여는 날 밤 저 이층 베란다에서 윤 작가와 함께 곡차례를 가진 적이 있다. 지금도 내 한의원 대기실 한쪽 벽에는 윤 작가가 그려 준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다.  


복사꽃


사과꽃

 


사래실 가는 길과 막은대미재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과 교감하려고 노력했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에도 정다운 눈길을 건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는 숲속의 교향악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나도 숲의 일원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생각하며 깨달으며 걸었던 풍경길이 곧 나의 인생길이었음을 깨닫는다. 


2014.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