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80세 할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내원했다. 어제 요통을 치료하는 침법을 시술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할머니 : 원장님,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도 치료가 되우?
나 : 그럼요. 그런 증상을 이명(耳鳴) 우리말로 귀울이라고 해요. 언제부터 소리가 났는데요?
할머니 : 한 10년은 된 거 같다우. 난 치료가 안되는 줄 알았수다.
나 : 어느 쪽 귀에서 소리가 나는데요?
할머니 : 오른쪽 귀라우.
나 : 어떤 소리가 들리시는데요?
할머니 : 남들은 물소리나 매미소리 같은 게 난다는데 난 나뭇가지가 부러질 때처럼 '뚝 뚝'거리는 소리가 난다우.
나 : 이명증을 여러 사람 치료해봤지만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는 분은 처음이네요. 소리는 얼마나 큰데요?
할머니 :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시끄럽다우.
나 : 그 정도면 많이 불편하시겠네요.
할머니 : 나 같은 사람이 많수?
나 : 네. 이명은 연세 드신 분들에서 다섯에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에요.
할머니 : 난 귀에서 소리가 나는 건 못 고치는 줄 알았다우.
나 : 이명이 질병은 아니에요. 하지만 소리가 너무 크면 불면증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치료해야 합니다.
할머니 : 귀울이는 왜 생기는 거유?
나 :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요. 가장 흔한 원인은 소음으로 인한 청력장애랍니다. 시끄러운 데 오래 있거나, 헤드폰을 낀 채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들어도 청력장애와 함께 이명이 생길 수 있고요. 귓병이나 약물 부작용, 노화도 이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답니다.
할머니와 문답식 대화가 끝나고 이명의 치료에 들어갔다. 한의학에서는 이명의 원인을 신정부족(腎精不足), 기혈양허(氣血兩虛), 간화상염(肝火上炎), 담화옹성(痰火壅盛) 등으로 본다. 어떤 경우든 예풍과 청궁, 중저는 이명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혈이다. 예풍과 청궁, 중저혈을 중심으로 할머니에게 이명을 치료하는 침법을 시술했다.
오늘도 요통 치료를 위해 내원한 할머니는 어제 이명증 치료를 받은 뒤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사라졌다면서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이명이 단 한 번의 침 치료로 사라졌으니 할머니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사실 반신반의했다가 할머니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나서 몹시 기뻤다. 10년 묵은 체증이 일순간에 내려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임상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자랑을 하기 위함도 아니요, 또 한의원을 선전하기 위함도 아니다. 정말이다. 다만 할머니와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병은 자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만약 할머니가 자신의 증상을 불치로 여기고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명증을 안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침을 쓰는 사람은 장수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전쟁터에 나간 장수가 장검을 빼어 드는 심정으로 침통에서 침을 빼어 들곤 한다. 오늘도 전쟁터에서 승리한 장수의 기분을 느낀 그런 하루였다.
201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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