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이었던가? 설악산 흘림골에서 등선대를 넘어 주전골로 내려오다가 용소폭포에 들른 적이 있다. 때는 한겨울이라 폭포가 꽁꽁 얼어붙어 빙벽을 이루고 있었다. 용소폭포를 떠나면서 다음에 또 오색계곡을 지나가게 되면 다시 오리라 생각했었다.
오색정류장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1158m봉
온정1교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한계령과 1158m봉, 등선대, 만물상
오색계곡으로 들어서자 설악산 대청봉에서 점봉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장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설악산은 뭐니뭐니해도 산세가 우렁차고 암릉미가 뛰어난 산이다.
용소폭포
용소폭포에서 필자
오색약수터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으로 오르는데,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섰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용소폭포에 도착했다. 용소폭포는 낙차가 그리 높지 않은 아담한 폭포였다. 장마철이 지나서 그런지 수량도 그리 많이 않았다.
용소폭포에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니..... 아주 먼 옛날 용소에는 천 년 묵은 암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수컷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미처 따라가지 못한 암컷 이무기는 폭포가 되어 남았다. 암컷 이무기의 머리와 발은 폭포의 양쪽 바위, 꼬리는 폭포가 되었다던가? 믿거나 말거나.....
주전바위 일명 시루떡바위
용소폭포 바로 밑에는 주전바위 일명 시루떡바위가 있었다. 바위의 모습이 엽전을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주전바위,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떡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소폭포와 12폭포 삼거리에서 12폭포까지의 계곡을 주전골(鑄錢谷)이라고 한다.
주전골에도 전설이 깃들어 있으니..... 옛날 조선조 중엽이라던가? 강원도 관찰사가 한계령을 넘다가 이곳을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쇠붙이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인을 시켜 쇳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살펴보게 하였다. 10여 명의 무리들이 동굴 속에서 몰래 위조엽전을 만드는 것을 발견한 하인은 그 사실을 관찰사에게 보고했다. 관찰사는 대노하여 그 무리들을 토벌하고 동굴을 없애버렸다. 그 후 위조엽전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이 골짜기를 '쇠를 부어 만들 주(鑄), 돈 전(錢)'자를 써서 주전골이라 부르게 되었는 이야기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혁명가 임꺽정(林巨正) 부대가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 전제왕조정권과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에 분노한 임꺽정은 몰락한 농민과 백정, 천민들을 규합하여 무장봉기했다. 임꺽정 부대는 전제왕조정권을 뒤집어엎기 위한 혁명자금을 조달하려고 설악산 주전골에서 위조엽전을 주조했다. 위폐 주조병들은 군자금을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느라 엽전을 흘리면서 갔다고 한다. 그 골짜기가 지금의 흘림골이다.
당시 임꺽정 부대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하고 썩은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열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최소한 부일민족반역자들이 도적질한 지금의 나라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계령에서 바라본 오색계곡
임꺽정 부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용소폭포를 떠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돌고 돌아 한계령에 올랐다. 한계령 전망 좋은 바위에 서서 깊고 깊은 오색계곡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나도 하나의 바위가 되어.....
201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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