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경기 제일봉 화악산을 찾아서

林 山 2015. 7. 1. 13:34

몇 년 전 경기도 가평에 있는 명지산(明智山, 1,267m)에 오른 적이 있었다. 명지산 정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경기도 제일봉 화악산(華岳山, 1,468m)이 우뚝 솟아 있었다. 화악산을 바라보면서 훗날 꼭 찾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속세의 삶에 쫓기듯 살다 보니 이제서야 오게 되었다.

 

 

호주군 가평전투 기념비

 

 

뉴질랜드군 가평전투 기념비

 

391번 지방도인 화악산로를 따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로 접어들었다. 경덕천을 건너기 바로 직전 화악산로 도롯가에 호주-뉴질랜드 전투기념비가 있었다. 호주-뉴질랜드 전투기념비는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가평은 한국전쟁 당시 가평지구전투(加平地區戰鬪, 加平战斗, Battle of Gapyeong)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을 돕기 위해 파병된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 People's Liberation Army, PLA)은 1951년 4월 23일 제1차 춘계공세를 감행했다. 중국은 국제연합과 공식적인 전쟁을 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파병군을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PVA)이라고 불렀으나, PVA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인민해방군(이하 PLA) 제4야전군이 이름만 바꾼 채 참전한 것이었다. PLA 제20군은 김종오 준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6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화천 사창리 전선을 돌파하고, 가평 방면으로의 남하를 시도했다. 이때 영연방 제27여단은 가평천 일대에 저지선을 구축하고 PLA의 남하를 저지했다.

 

영연방 27여단은 영국군 미들섹스 대대를 주축으로 뉴질랜드군 16포병연대, 호주군 왕실 3대대, 캐나다군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로 편성되었다. 후퇴하는 국군 6사단을 구하기 위해 영연방 27여단은 다섯 배가 넘는 PLA를 막아내야만 했다. 1951년 4월 23일부터 3일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뉴질랜드군 16포병연대의 화력지원 아래 영국군과 호주군은 가평 죽둔리에서 40%가 넘는 부대원이 희생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경춘가도를 지켜냈다.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는 가평 남단 667고지를 사수함으로써 국군 제6사단의 후퇴를 엄호하고 경춘가도 보급로를 지켜냈다.

 

영연방 27여단의 가평전투 승리로 PLA 제20군은 북한강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한강 하류-본원리-인제-대포리 북방을 연결하는 노네임선(No Name Line)에 새로은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영연방 27여단이 가평전투에서 승리하고, 영연방 29여단이 파주 설마리전투(雪馬里戰鬪, 글로스터 고지 전투)에서 3일 동안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한 결과 PLA의 5차 공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영연방 27여단의 가평전투는 한국전쟁사 뿐만 아니라 세계전쟁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호주는 311명의 전사자와 1,230명의 부상자, 뉴질랜드는 31명의 전사자와 78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는 두 나라 공히 1차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이라고 한다. 호주전투기념비는 1963년 4월 24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민이 호주군 참전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을 1983년 12월 27일 가평군이 다시 세웠다. 기념비 오른쪽에는 동판에 새긴 전투현황지도가 있고, 왼쪽에는 자연석 위에 동판으로 새긴 참전약사가 있다. 뉴질랜드전투기념비는 1963년 4월 24일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민이 뉴질랜드군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을 1988년 9월 23일 가평군이 새로 세웠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자유와 세계 평화 수호를 명분으로 싸우다가 죽어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호주-뉴질랜드 전투기념비를 떠났다. 이제는 무조건 자유와 세계 평화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누구를 위한 자유, 누구를 위한 세계 평화인가를 물어야 한다.

 

전쟁은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자격이 없다는 증거다. 전쟁은 인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전쟁은 그래서 막아야 한다.  

 

 

화악계곡에서 바라본 화악산

 

화악천이 흐르는 화악계곡의 건들내에 이르자 화악산의 주봉인 신선봉(神仙峰, 1,468m)과 그 남서쪽 1km 지점에 솟은 제2봉 중봉(中峰, 1446m)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악산은 덩치가 크고 산세가 웅장한 산이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경계에 위치한 화악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에서 갈라진 화악지맥(華岳枝脈)에 속한 산이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져 화천의 백암산(白巖山, 1,179m)과 철원의 적근산(赤根山, 1,071m), 대성산(大成山, 1,174m), 수피령(水皮嶺, 780m), 

복주산(伏主山, 1,152m), 

광덕산(廣德山, 1,046m), 백운산(白雲山, 904m), 

도마봉(道馬峰, 883m), 

국망봉(國望峰, 1,168m), 

개이빨봉(犬齒峰, 1,110m), 민둥산(1,023m), 

강씨봉(姜氏峰, 830m), 청계산(淸溪山, 849m), 원통산(圓通山, 567m)을 지나 운악산으로 달려와서는 수원산(水源山, 710m), 죽엽산(竹葉山, 622m), 불곡산 임꺽정봉, 호명산, 한강봉, 사패산, 도봉산(道峰山, 717m), 상장봉, 노고산(老姑山, 487m), 현달산(峴達山, 139m), 고봉산(高峰山, 206m), 장명산(長命山, 102m)으로 뻗어가 한강 하구에 이른다.

 

화악지맥은 한북정맥의 도마봉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져 석룡산(石龍山, 1,150m)과 화악산, 응봉(鷹峰, 이하 매봉, 1436.3m), 촉대봉(燭臺峰, 1,190m), 몽덕산(蒙德山, 690m), 가덕산(加德山, 858m), 북배산(北培山, 867m), 계관산(鷄冠山, 730m), 작은촛대봉(小燭臺峰, 665m), 물안산(物安山, 438m), 보납산(寶納山, 330m)으로 달려가 북한강에 이르는 약 50km의 산맥이다. 작은촉대봉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진 또 하나의 산줄기는 춘천의 청운봉(靑雲峰, 546m), 삼악산(三岳山, 654m)을 지나 북한강에 닿는다.

 

화악산은 개성의 송악산(松岳山, 488m), 서울-안양-과천의 관악산(冠岳山, 632m), 가평-포천의 운악산(雲岳山, 937.5m), 파주-양주의 감악산(紺岳山, 675m)과 함께 경기오악에 속한다. 화악산 신선봉과 매봉 정상 일대는 군사시설이 있어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중봉까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전국 명산의 정상에 설치된 군사시설을 철거하고 정상의 멋진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실운현(實雲峴, 이하 실운재)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신선봉, 동쪽에 매봉이 우뚝 솟아 있다. 신선봉과 매봉, 중봉을 두루 일러 삼형제봉이라고도 한다. 실운재 북쪽 계곡은 화천의 삼일계곡, 남쪽 계곡이 가평의 삼림계곡이다. 신선봉 남쪽 계곡은 오림계곡-칠림계곡으로 승원폭포와 옥녀탕이 있다. 실운재 남쪽 계곡을 통틀어 화악산계곡이라고 한다. 삼일계곡의 물은 북류하여 수피령 일대에서 발원하는 사창천과 합류하여 지촌천이 된다. 지촌천은 동쪽으로 흘러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에서 북한강으로 들어간다.

 

중봉의 남서쪽에는 언니통봉(928m), 남쪽에는 애기봉(1055.3m)과 수덕산(修德山, 794.2m)이 솟아 있다. 신선봉 서쪽의 조무락골(鳥舞樂谷)에는 쌍룡폭포와 복호등폭포, 와폭 등의 폭포와 골뱅이소와 중방소, 가래나무소, 칡소 등 소(沼)가 있다.

 

도마봉에서 발원하는 도마천과 조무락골천, 백둔천, 명지천 등이 합류한 가평천은 남동쪽으로 흐른다. 화악산 신선봉과 매봉에서 발원하는 화악천은 남류하면서 가덕산 발원의 경덕천과 합류하여 가평천으로 흘러든다. 가평천은 이후 개곡천, 승안천을 받아들인 다음 남류하여 가평 자라섬에서 북한강으로 들어간다.    

 

 

실운재 화악터널

 

삼림계곡 구비구비 돌아 실운재로 오르는 산길은 굉장히 가파랐다. 실운재에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을 연결하는 화악터널이 뚫려 있었다. 391번 지방도(화악산로)의 터널인 화악터널은 해발 870m에 위치해 있으며, 터널의 길이는 680m이다. 화악터널은 1990년대 이전에 개통되었지만 안전 문제로 1997년에 폐쇄되었다가 2008년 말에 다시 완공하여 재개통했다.

 

 

화악터널에서 바라본 매봉

 

 

화악터널에서 바라본 삼림계곡

 

 

화악터널에서 바라본 삼일계곡

 

가평쪽 화악터널 앞에는 정자와 전망대가 있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가평쪽 화악터널에서는 왼쪽으로 매봉-촉대봉 능선과 오른쪽으로 중봉-애기봉-수덕산 능선, 그리고 그 사이로 깊은 삼림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군 제8979부대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인 매봉에는 미제거 인명살상용 지뢰가 아직도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화천쪽 화악터널 앞에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악터널 북쪽으로는 삼일계곡이 실운재에서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한북정맥의 복주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었다. 사내면 소재지는 한북정맥과 두류지맥(頭流支脈), 그리고 화악지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형세가 마치 떡을 찌는 시루 속에 들어앉은 것 같아서 옛날에는 사내면 소재지인 사창리(史倉里)를 시루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창리는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조공부대인 중국인민해방군(PLA) 제9병단의 1951년 4월 공세로 국군 제6사단이 큰 피해를 입은 사창리전투(史倉里戰鬪)로 유명한 곳이다. 4월 22일 PLA 제9병단은 유엔군의 동서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국군 제6사단 방어지역인 화천-가평 축선으로 밀고 내려왔다. 국군 제6사단은 1년 전 PLA의 포위 공격으로 북한 지역 온정리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후퇴한 악몽이 떠올랐다. PLA가 출현하자 병력과 화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국군 제6사단은 유일한 철수로인 사창리-춘천 도로를 따라 무질서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PLA에 의해 제19연대는 고립되었고, 제2연대와 제7연대는 차량과 장비를 포기한 채 일부는 인접부대로 합류하고, 일부는 각자 흩어져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철수하였다. 국군 제6사단이 무너지자 화력을 지원하던 미군 포병부대들도 화기를 버리고 동쪽의 북한강 지역으로 서둘러 철수했다.

 

국군 제6사단은 통신장비도 버려둔 채 철수했기 때문에 전황을 파악할 수도 없었고, 예하부대의 지휘 통제도 불가능했다. 4월 23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2,500명 정도의 병력이 석룡산-화악산 후방에 집결할 수 있었다. 미군 제9군단장은 국군 제6사단장에게 부대를 재편성하여 석룡산-화악산의 캔사스선(Kansas Line)에서 PLA를 방어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사기가 떨어진 국군 제6사단은 PLA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국군 제6사단은 영연방 제27여단의 엄호를 받으며 4월 24일 가평 남서쪽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재편하였다. 4월 25일에는 낙오병들의 부대 복귀로 6,313명의 장병이 집결하게 되었다. 4월 23일~25일까지 3일 동안의 전투는 앞에서 이야기한 가평지구전투에 해당한다.

 

4월 22일~24일까지 3일 동안의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소총 2,263정, 자동화기 168정, 2.36인치 로케트포 66문, 대전차포 2문, 박격포 42문, 곡사포 13문, 차량 87대 등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군 포병부대도 105밀리 곡사포 15문, 4.2인치 박격포 13문, 무전기 242대, 차량 73대의 손실을 입었다.

 

한국전쟁 당시 화악산은 사창리전투와 가평지구전투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의 상흔은 화악산에도 짙게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매설한 인마살상용 지뢰가 아직도 매봉의 산기슭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 

 

 

참조팝나무꽃

 

 

참조팝나무꽃

 

화악터널에서 실운재로 오르는 산길에는 홍백색 또는 담홍색을 띤 참조팝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장미과(Rosaceae)의 낙엽활엽관목인 참조팝나무(Spiraea fritschiana C. K. Schneid.)는 중부 지방 이북의 산지에서 자란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동북부 등지에도 분포한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서 겹산방꽃차례에 피며,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다. 꽃이 예뻐서 정원레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참조팝나무는 잎 뒷면과 열매에 털이 없으나, 강원도 이북에 분포하는 덤불조팝나무(S. miyabei Koidz.)는 잎 뒷면과 열매에 털이 있어서 구분된다.

 

참조팝나무와 좀조팝나무(Spiraea microgyna)는 꽃 모양이 매우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다. 잎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잎에 털이 없으면 참조팝나무, 털이 있으면 좀조팝나무이다.

 

좀조팝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국에도 분포한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 흰색이나 연한 홍색으로 겹산방꽃차례로 달린다. 꽃이 아름다워서 전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좀조팝나무보다 작은 바위좀조팝나무(var. velutina)는 북한의 강원도 삼방(三防)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이다.

 

 

까치수염

 

까치수염(Lysimachia barystachys)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까치수염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까치수염을 까치수영, 꽃꼬리풀, 개꼬리풀이라고도 한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10~20㎝ 길이의 줄기를 따라 작은 꽃들이 뭉쳐서 큰 봉오리가 되고 끝에 가서 꼬리처럼 약간 말려서 올라간다.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실운현에서 바라본 화악산

 

 

실운현에서 바라본 매봉

 

화악터널 북쪽에서 실운재로 오르는 비포장 임도가 있다. 화악터널 남쪽에도 실운재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지만 군사용 도로라 공군 제8979부대장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화악터널 남북쪽에서 실운재로 곧장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화악터널 북쪽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실운재에 올라섰다. 실운재에서는 능선에 가려 화악산 신선봉은 보이지 않고, 중봉만 간신히 보였다. 중봉 정상에는 구름이 몰려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헬기장에서는 매봉도 잘 보였다. 매봉에도 구름이 걸려 있었다. 군사도로가 매봉 정상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고광나무꽃

 

 

고광나무꽃

 

 

 

실운재에서 중봉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는 지루한 길이었다. 길가에는 하얀색 고광나무꽃과 좀조팝나무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매화말발도리(Deutzia uniflora Shirai)도 보였다. 매화말발도리는 범의귀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키는 1m 정도로 작고 비스듬히 자란다. 매화 같다고 해서 매화말발도리이며, 지방에 따라 댕강목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지방에서 자생하며, 일본에도 분포한다. 주로 깊은 산 바위 틈이나 바위 위에서 서식한다. 꽃은 5~6월에 지름 5㎝ 정도의 하얀색 꽃이 1~3송이씩 달린다. 꽃잎은 5장이다. 

 

경기도 용문산에 자생하는 좁은잎매화말발도리(var.angustifolia)는 잎이 좁고 긴 모양이고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지리말발도리(var. triradiata)는 잎에 3개로 갈라진 성모가 나고, 삭과 겉에 4개로 갈라진 성모가 나며, 암술대가 4개로 갈라진다. 해남말발도리(var. tozawae)는 잎에 선(腺)처럼 생긴 톱니가 있고, 1년생 가지에 대가 있는 성모가 나며, 작은꽃자루에 털이 많이 나지만 잎의 겉면에는 털이 없다. 

 

일부에서는 말발도리(Deutzia parviflora Bunge) 열매를 수소(溲疏)라고 하고, 아토피와 피부염과 가려움증에 매화말발도리 열매로 수소를 대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수소는 말발도리가 아니라 빈도리(Deutzia crenata) 열매다.  

 

 

화악산에서 바라본 매봉

 

삼림계곡과 오림계곡의 분수령 가까이 왔을까? 뒤를 돌아보니 한북정맥 화악지맥이 화악산에서 실운재를 넘어 매봉을 지나 촉대봉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매봉의 북쪽에는 분단산(1,287m)이 솟아 있었다. 매봉 정상의 군사시설이 아스라이 보였다.    

 

 

정향나무꽃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는 지루함을 잊게 해준 것은 길가에 피어 있는 야생화였다. 설악산에서 활짝 피어 있던 정향나무꽃은 여기서는 이제 끝물이었다. 

 

정향나무(丁香木, Syringa velutina var. kamibayashii)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으로 야생 라일락이라고도 한다. 1개의 꽃을 옆에서 보면 '못 정(丁)'자로 보이고, 꽃에 향기가 있어 정향나무라고 한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정향과는 다르다.

 

라일락은 정향나무를 원종으로 삼아 미국에서 개량된 나무다. 1947년 미 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는 도봉산에서 정향나무의 씨를 채취해서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는 정향나무를 개량해서 만든 새로운 품종에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미스김 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스김 라일락은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역수입되어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었다. 

 

정향나무는 꽃이 아름다워 정원수로 인기가 있다. 향기가 좋아 향료를 추출하기도 하며, 밀원식물로도 이용 가치가 크다. 수피는 민간에서 건위제로 쓰이기도 한다.  

 

 

한국에는 정향나무와 같은 종에 흰꽃이 피는 흰정향나무, 털이 많은 털개회나무, 울릉도에 나는 섬개회나무(var. venosa) 등이 있다. 같은 수수꽃다리속(Syringa)에는 꽃개회나무와 수수꽃다리, 개회나무 등이 있다.

 

 

세잎종덩굴꽃

 

 

세잎종덩굴꽃

 

 

세잎종덩굴꽃

 

 

 

세잎종덩굴(Clematis koreana Kom.)은 한창 피고 지고 있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식물인 세잎종덩굴은 한국과 중국 동북부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설악산에 자생하는 왕세잎종덩굴(var. biternata)은 세장의 작은잎이 겹잎으로 나온다.

 

세잎종덩굴의 꽃은 5~6월에 종 모양의 암자색 또는 황갈색으로 핀다. 꽃이 무거워 아래로 쳐진다. 키는 약 1m이고, 잎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꽃이 특이하게 생겨서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어린잎과 줄기는 나물로 먹을 수 있다.

 

 

큰꽃으아리 열매

 

큰꽃으아리의 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맺혀 있었다. 작은 공처럼 생긴 열매에는 긴 암술대가 수염처럼 달려 있었다. 큰꽃으아리(Clematis patens C. Morren & Decne.)는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의 낙엽 덩굴나무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기슭 양지에서 자란다.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한다. 

 

 

큰꽃으아리의 꽃은 5~6월 줄기 끝에 1개씩 흰색 또는 연한 노란색으로 위를 향해 피어난다. 꽃의 지름은 10~15cm이다. 꽃잎은 없다.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잎이다. 꽃이 져도 수염 모양의 긴 암술대가 남아 있다. 

 

큰꽃으아리는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원예 품종으로도 개발되어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 붉은빛이 도는 흰색, 보라색 꽃 등이 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다. 한의학에서 큰꽃으아리의 뿌리를 위령선(威靈仙)이라고 한다. 위령선은 사지 마비나 요통, 근육 마비, 타박상, 다리의 동통 등에 사용한다. 

 

큰꽃으아리는 으아리속 식물 가운데 가장 큰 꽃을 피우므로 다른 으아리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중국 원산의 원예식물인 위령선(Clematis florida Thunb.)은 꽃자루에 포잎이 2장, 꽃받침잎이 6장이어서 큰꽃으아리와는 다르다. 

 

 

화악산계곡

 

 

꽃쥐손이꽃

 

삼림계곡과 오림계곡의 분수령을 지났다. 신선봉에서 뻗어내린 분수령 산줄기는 매봉-촉대봉 능선과 신선봉-중봉-애기봉-수덕산 능산의 사이에서 마치 남성의 성기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분수령 왼쪽 계곡은 삼림계곡, 오른쪽 계곡은 오림계곡-칠림계곡이다. 

 

분수령 근처에서 함백산 만항재에서 보았던 꽃쥐손이꽃을 만났다. 쥐손이풀과(Geraniaceae)의 여러해살이풀인 꽃쥐손이(Geranium eriostemon Fischer ex DC.)는 우리나라의 중부 이북 지방, 중국, 몽골, 헤이룽강, 우수리강 등지의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털쥐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꽃쥐손이로 통합되었다.

 

꽃쥐손이의 꽃은 6~8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피고, 줄기와 가지 끝에 3~8개의 꽃이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과실은 삭과로 선형이고, 5개로 갈라져 위로 말린다. 꽃쥐손이는 꽃이 예쁘고 과실이 특이하여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꽃쥐손이의 전초는 설사를 멈추는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지사제(止瀉劑)로 쓰인다. 

 

 

화악산 신선봉 정상

 

화악산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신선봉 정상에는 대규모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화악산 최고봉 신선봉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현실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분단국가의 국민 신세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이 빨리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화악산에서도 절감했다.

 

공군 방공포대가 주둔하고 있는 국립공원 무등산(無等山) 최고봉 천왕봉(天王峰, 1,187m)도 1966년 7월 1일부터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광주시민들은 무등산 천왕봉을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에 광주시와 국방부, 공군은 협의를 통해서 방공포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2018년부터 천왕봉을 등산객들에게 상시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전국의 명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사시설들도 대안을 마련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사시설로 인해 박탈된 전국의 명산 조망권은 국민들의 품으로 속히 돌아와야 한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인가목꽃

 

중봉 기슭에서 인가목과 백당나무의 꽃을 만났다. 인가목은 이제 꽃이 지고 있었다. 장미과(Rosaceae)의 낙엽활엽관목인 인가목(人伽木, Rosa suavis Willd.)은 꽃 모양이 해당화와 비슷해서 산해당화라고도 한다. 인가목은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과 강원도 이북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희귀보호식물이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북미에도 분포한다.

 

 

꽃은 5~6월에 장미색으로 피고 새 가지 끝에 1~2개씩 달리며 화경에 선모가 밀생한다. 생열귀나무(Rosa davurica Pall.)에 비해 엽병에 가시가 없고 소엽 뒷면에 선점이 없다.

 

 

백당나무꽃

 

백당나무(Viburnum sargentii KOEHNE)는 인동덩굴과(Caprifoliaceae)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우리나라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일본과 사할린섬, 중국, 헤이룽강, 우수리강에도 분포한다. 꽃이 희고 불당 앞에 심는다고 백당나무이며, 지방에 따라 접시꽃나무라고도 한다.

 

백당나무의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 핀다. 어긋나게 갈라져 쟁반처럼 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과 열매를 맺는 참꽃이 함께 달린다. 바깥쪽에는 3㎝ 정도의 흰색 헛꽃이 달리며 꽃부리가 5갈래로 갈라진다. 안쪽에는 노란 흰색을 띠는 작은 참꽃이 피며, 꽃잎은 5장이다. 언뜻 보면 꽃 모양이 산수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산수국은 꽃이 푸르거나 붉은 보라색을 띤다. 

 

백당나무의 잔가지와 잎, 열매를 한약명 계수조(鷄樹條)라고 한다. 잔가지와 잎은 봄, 열매는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민간에서 요추 염좌나 타박상, 관절통, 이질, 설사, 간염, 황달에 계수조를 달여서 마신다. 종기, 가려움증, 옴 등에는 달인 물을 바른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백당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특이하여 관상수나 정원수로 심는다. 어린 가지와 잎에 털이 없는 것을 민백당나무(Viburnum sargentii for. calvescens), 꽃이 모두 무성화로 된 것을 불두화(佛頭花, Viburnum sargentii for. sterile)라고 하며 주로 절에서 키운다.  

 

 

화악산 중봉

 

 

중봉 정상 표지석

 

 

애기봉 능선

 

 

화악산 중봉 정상에서 필자

 

드디어 화악산 제2봉 중봉에 올라섰다. 중봉 정상에는 좀조팝나무꽃이 지고 있었다. 중봉 근처에는 가시철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초소에는 두 명의 군인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중봉 정상은 남쪽을 제외하고는 전망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중봉은 화악지맥에서 남서쪽으로 1km 정도 벗어나 있었다. 화악산 최고봉 신선봉을 향해 서서 백두대간-한북정맥-화악지맥이 매봉으로 뻗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봉에서 애기봉을 거쳐 수덕산으로 뻗어간 능선과 화악산계곡을 바라보면서 화악산을 가슴에 안았다. 

 

산을 올랐으면 반드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 있을 때 내려갈 때를 알고 준비하는 것은 삶의 지혜일 것이다. 이제 화악산을 내려갈 때가 되었다. 

 

화악산을 떠나 귀로에 오르다. 화악산아, 잘 있거라.

 

2015.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