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백두대간 함백산 야생화 기행

林 山 2015. 8. 21. 10:26

2박3일간의 여름 휴가를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하이원추추파크에서 보내기로 했다. 가는 날 내추럴빌에 여장을 풀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미니 풀장에서 외손녀들과 튜브를 타면서 망중한을 가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함백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백두대간 화방재


38번 국도(강원남부로)를 따라 통리재를 넘어 황지교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5번 국도(태백로)로 접어들었다. 상장삼거리에서 31번 국도(태백산로)를 타고 태백산 기슭을 따라 화방재(花房嶺, 936m)에 올랐다. 화방재는 백두대간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 있는 고개다. 태백산을 떠난 백두대간은 화방재를 건너 수리봉, 창옥봉을 지나 함백산으로 이어진다.


'태백산 지명유래'에는 '고갯마루에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붉게 피어 마치 꽃방석 같다고 하여 화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태백 주민들은 화방재를 어평재(御嶺)라고 부른다. 화방재 서쪽 산기슭에 있는 어평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어평은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곳에 이르러 ‘여기서부터 내 땅(御坪)이다’라고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화방재에는 어평주유소와 어평휴게소가 있다. 화방재를 또 정거리재(停車里峙)라고도 부른다. 이 고개가 높아서 쉬어 가는 고개라 하여 붙은 이름이리라.


백두대간 만항재


화방재에서 백두대간 수리봉과 장산 산기슭을 구불구불 휘감고 돌아가는 414번 지방도(함백산로)를 따라 만항재(晩項嶺, 1,330m)에 올랐다. 만항재 고갯마루에는 안개가 수시로 몰려왔다가는 사라졌다. 


태백시 혈동과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를 이어주는 만항재는 남한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토착민들이 늦은목이재(능목재)라고 부르던 이 고개는 한자어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늦을 만(晩)', '목 항(項)’을 차용하여 만항재가 되었다고 한다. 


만항재의 유래는 고려 말~조선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가 군사 쿠데타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창업하자 고려 왕실에 충성하는 문신 72명은 개성의 만수산의 서두문동, 무신 48명은 동두문동으로 숨어들었다. 이성계 일파는 고려 유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동서두문동에 불을 질렀다. 고려 유신 대부분은 불에 타 죽고, 간신히 살아남은 7명은 오지를 찾아 강원도 정선군 고한 땅에 몸을 숨겼다. 정선 사람들은 이들을 고려 유신 칠현(高麗遺臣七賢), 이들이 은둔한 곳을 거칠현동(居七賢洞)이라 명명한 뒤 마을 입구에 칠현사(七賢祠)를 세웠다. 거칠현동을 제2의 두문동, 즉 소두문동이라고도 불렀다.


두문동과 그 부근에 흩어져 살던 고려 유신 칠현의 후손들은 이 고개에 올라 정한수를 떠놓고 떠나온 고향을 바라보면서 고려의 부흥과 개성으로의 금의환향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이후 이 고개는 고향을 바라보던 곳이라 하여 망향재(望鄕嶺)라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 '망향재->망항재->만항재'로 음운변화를 했다는 설이 나왔다. 하지만, 글쎄다. 


고한읍 고한리 강원남로 두문동재터널 입구 근처에는 두문동이라는 지명이 실제로 있다. 백두대간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에 있는 싸리재를 두문동재라고도 한다. 


만항재에는 하늘숲정원이 있다. 만항재에서는 매년 8월 초순에 남한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만항재에는 고원지대에서만 자생하는 다양한 야생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만항재는 하늘길 운탄고도(運炭高道)의 기착지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만항재에서는 서쪽으로 두위지맥(斗圍枝脈)이 갈라진다. 하늘길은 사실 정해진 길은 없다. 해발고도 1,330m인 만항재 하늘숲정원에서 백운산(白雲山, 1,426.6m)-꽃꺾기재(花折嶺, 1,150m)-두리봉(일명 斗圍峰, 1,470.8m)-질운산(佶雲山 1,171.8m)-새비재(鳥飛峙, 850m)-예미산(禮美山 989.2m)으로 이어지는 두위지맥의 좌우 아무 길이나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대략 32km에 이르는 하늘길은 해발고도 1,000m를 넘나드는 고원길로 백두대간과 그 지능선들의 멋진 산악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갖가지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겨울에 눈내린 하늘길의 새하얀 설경도 가히 환상적이다. 


영월 상동과 정선의 사북을 잇는 화절령은 봄날 산나물을 뜯으러 나온 여인들이나 나무꾼들이 지천으로 피어난 진달래나 철쭉을 꺾었다 해서 꽃꺾기재라고도 불린다. 새비재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온 '엽기 소나무'가 있는 고개다. 


운탄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백여 년이나 앞선 BC 2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교역로인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본뜬 이름이다. 채탄이 활발하던 1960년대부터 강원도 태백과 정선, 영월에는 탄광지대를 연결하는 산악도로가 많이 만들어졌다. 1989년부터 채산성 악화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탄광들이 줄줄이 문을 닫자 운탄고도는 더이상 쓸모가 없는 길로 버려지게 되었다. 이후 생활 수준의 향상과 함께 레포츠 붐이 일면서 한적했던 운탄고도는 사람들에게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여우오줌풀꽃


부처꽃


산솜방망이꽃


만항재 하늘숲정원에는 여우오줌꽃, 부처꽃, 산솜방망이꽃 등 고원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말 그대로 정말 야생화들의 천국이었다. 


함백산 기원단에서 바라본 함백산 정상


만항재에서 백두대간 창옥봉 북쪽 산기슭으로 난 서학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함백산 기원단이 나온다. 함백산은 예로부터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 광산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이곳에서 광부와 그 가족들의 무사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함백산 기원단에 오르면 함백산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함백산과 태백선수촌 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와 백두대간 삼거리


함백산 기원단을 북쪽으로 내려서면 함백산 KBS 중계소 진입로가 나온다.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사전에 허가를 받지 못한 차량은 출입할 수 없다. 바리케이드에서 200m 정도 올라가면 시멘트 포장도로와 백두대간 갈림길이 나타난다. 함백산 정상까지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1.8km, 백두대간길은 1.2km이다.  


말나리꽃



둥근이질풀꽃


동자꽃


쑥부쟁이꽃


모시대꽃


톱풀꽃


솔나물꽃


일월비비추꽃


배초향꽃


흰송이풀꽃


새며느리밥풀꽃


푸른여로꽃


긴산꼬리풀꽃


각시취꽃


백두대간길로 접어들자 말나리꽃, 둥근이질풀꽃, 동자꽃, 긴산꼬리풀꽃, 모시대꽃, 잔대꽃, 쑥부쟁이꽃, 까실쑥부쟁이꽃, 어수리꽃, 당귀꽃, 참취꽃, 각시취꽃, 참나물꽃, 새며느리밥풀꽃, 솔나물꽃, 배초향꽃, 흰송이풀꽃, 톱풀꽃, 마타리꽃, 뚝갈꽃, 일월비비추꽃, 푸른여로꽃 등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함백산은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청초하면서도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바라보면서 걷는 산길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백두대간 함백산 정상


함백산 정상 표지석


함백산 KBS 중계소


드디어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咸白山, 1,572.9m) 정상에 올라섰다. 함백산 정상에는 첨성대 모양으로 쌓은 돌탑이 있었고, 그 앞에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정상 동쪽에는 함백산 KBS 중계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함백산 정상은 중계소 시설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함백산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는 대박산(大朴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吳宖黙)의 '정선총쇄록(旌善叢瑣錄)'에는 ‘상함박(上咸朴), 중함박(中咸朴), 하함박(下咸朴)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과 대박(大朴), 함백(咸白)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중기의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했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뜻이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 [척주부]에는 '근대봉 남쪽에 상함백산(은대봉), 중함백산(본적산), 하함백산(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함백산은 이 세 산을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미산은 라싸(Lasa)에서 1,300km 떨어진 서부 티베트에 있는 카일라스산(岡仁波霽, Mt. Kailash,  6,714m)으로 믿어지고 있다. 


백두대간 함백산의 북쪽에는 중함백(中咸白, 1,505m), 은대봉(銀臺峰, 1,442m), 금대봉(金臺峰, 1,418m), 대덕산(大德山, 1,307m), 북동쪽에는 비단봉(緋緞峰, 1,279m), 매봉산(梅峰山, 일명 天衣峰, 1,303m)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백운산과 두리봉, 매봉산(梅峰山, 1,268m), 서남쪽에는 장산(壯山, 1,409m), 남쪽에는 백두대간 태백산(太白山, 1,547m), 동쪽에는 연화산(蓮花山, 1,171m)과 백병산(白屛山, 1,259m) 등이 솟아 있다.


함백산 동쪽 기슭에는 어룡탄광과 대명탄광, 풍전탄광, 남쪽에는 함태광산 등이 있다. 서쪽 기슭에는 사북광업소와 정동광업소, 세원광업소,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삼덕탄광, 서진탄광 등이 있다. 북동쪽 기슭에 있는 태백선 추전역(杻田驛, 855m)은 남한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이다. 서북쪽 산기슭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가지고 돌아와 세웠다고 알려진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정암사에는 정암사수마노탑(淨巖寺水瑪瑙塔, 보물 제410호)이 있고, 정암사 앞 지장천에는 열목어(천연기념물 제73호)가 서식하고 있다. 


함백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태백산과 사내골


함백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창옥봉과 만항재


남쪽을 바라보니..... 구룡산을 떠난 백두대간이 부쇠봉, 태백산을 지나 화방재로 내려선 다음 수리봉, 창옥봉을 치달아 함백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함백산 정상에 서서 백두대간의 힘찬 맥을 느꼈다. 함백산에서 창옥봉을 지나 동남쪽으로 뻗어간 능선에는 장산이 솟아 있었다. 장산 일대에는 운해가 떠 있었다. 


함백산 남쪽 사내골에서 발원하는 수계는 소도천(所道川)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태백시 삼거교에서 금대봉에서 발원한 황지천(黃池川)과 합류한 뒤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구문소에서 철암천(鐵岩川)을 받아들인 다음 남류하여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육송정삼거리에서 송정리천(松亭里川)과 만나 낙동강(洛東江)이 된다. 


만항재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흐르는 지장천(地藏川)은 사북읍에서 동남천(東南川)이 되어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낙동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수리에서 대덕산과 금대봉 사이 계곡의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南漢江)으로 합류한다. 만항재에서 발원하여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부근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옥동천(玉洞川)을 이룬 다음 김삿갓면 대야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함백산에서 바라본 하늘길 두위지맥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만항재를 떠난 두위지맥(斗圍枝脈)이 1387m봉, 1386m봉, 백운산, 1344m봉을 지나 두리봉(두위봉)을 향해 치달려가고 있었다. 두위지맥 남쪽 하늘에도 운해가 떠 있었다. 두위지맥 마룻금과 좌우 산기슭을 넘나드는 고원길이 운탄고도 하늘길이다. 바로 앞 1387m봉 정상부 우측으로 넘어가는 운탄고도 하늘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두위지맥 마룻금은 남쪽의 영월군 상동읍과 북쪽의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가 된다.  


함백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중함백과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


함백산을 떠난 백두대간은 북쪽으로 중함백과 은대봉을 지나 금대봉에 이른 다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단봉에 이른 다음 남동쪽으로 매봉산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은대봉 주위에도 흰 구름이 일고 있었다. 금대봉 오른쪽으로 대덕산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금대봉의 북쪽과 남쪽에는 남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 남한강은 금대봉 북쪽 이끼계곡의 검룡소(儉龍沼), 낙동강은 금대봉 남쪽 계곡의 너덜샘에서 발원한다. 남한강의 발원지는 일반적으로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1,563m)에서 발원하는 오대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금대봉 이끼계곡의 검룡소에서 시작하여 삼척시 하장면을 지나 골지천에 합류하는 창죽천을 발원지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낙동강의 발원지도 논란이 있다.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상징적인 발원지일 뿐이고, 실제 발원지는 금대봉 남쪽의 너덜샘이다.


지금으로부터 14,5년 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에 화방재를 출발하여 오후 늦게 함백산에 도착해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밤중에 중함백과 은대봉을 넘어 싸리재를 향해 산길을 걸어가는 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함백산 정상에서 필자


함백산은 턱밑에까지 도로가 나 있어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함백산을 제대로 느끼려면 화방재에서 수리봉-만항재-창옥봉을 거쳐 오르는 것이 좋다. 소시적에는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쉬운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가 다 그러한 것을 어쩌랴!  


함백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함백산과 재회를 기약하고 귀로에 올랐다. 


2015.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