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술친구 없이도 종종 찾는 연수부속구이

林 山 2015. 9. 18. 12:52

저녁에 한가할 때 곡차 한 잔이 생각나면 술친구 없이도 종종 찾는 구이집이 있다. 충주시 연수동 연수종합상가에 있는 연수부속구이다. 지난해 연수동으로 이사한 뒤 마실을 갈 만한 거리에 목로주점(木爐酒店) 분위기가 나는 주점이 없을까 하고 찾아 나섰다가 발굴한 집이다. 


연수부속구이에는 자영업자, 노동자, 직장인, 무직자, 가정주부 등 주로 서민 계층의 사람들이 온다. 그중에는 벼라별 사람이 다 있어서 어떨 때는 이 집이 야간 인생극장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인생극장에는 연출도 없다. 이 집에 오는 모든 사람이 주연이자 조연이고, 관객이다. 주모도 마찬가지다. 


충주시 연수동 연수종합상가에 있는 연수부속구이


돈낭돈신구이


저녁 8시쯤 되었을까? 연수부속구이라는 인생극장에 들어가니 주모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노동자가 이미 무대에 올라 있었다. 착한 인상의 주모는 주방에서 돼지 내장을 손질하고 있었고, 노동자는 돼지고기 삼겹살 안주에 소주를 마시면서 혼잣말로 연신 쌍욕을 해대고 있었다. 개쉐끼, 씨팔, 씨발년, 씨부랄, 좆같이, 니기미..... 입만 열면 거칠고 찰진 욕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그런 쌍욕이 계속 쏟아져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전화를 하거나 받을 때도 욕 반, 말 반이었다. 욕을 생활화한 사람이었다. 쌍욕학교 교장감으로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인물이었다.


나는 노동자를 등지고 자리에 앉아서 그의 쌍욕을 들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주모에게 돈낭돈신(豚囊豚腎) 반반과 과일향 소주 처음처럼 순하리를 주문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돈낭은 돼지 불알, 돈신은 돼지 콩팥이다. 돈낭은 식감이 부드럽고, 돈신이 맛이 고소해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위다. 돈낭돈신 반반 메뉴는 원래 이 집에는 없다. 돈낭돈신을 함께 맛보기 위해 내가 반반씩 달라고 해서 만들어진 메뉴다.


돼지 불알에 대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고기맛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돼지 한두 마리씩은 키웠다. 수퇘지는 잘 크라고 거세(去勢)를 시켰다. 어른들이 돼지의 네 다리를 묶은 뒤 사금파리로 불알주머니를 그으면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불알이 쏙 튀어나왔다. 고기가 먹고 싶었던 나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돼지 불알을 받아서 동생들과 함께 구워 먹곤 했다.


잠시 뒤 다리가 약간 불편한 듯 보이는 호리호리한 중년의 여성이 혼자 들어와 출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모와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이 집의 단골인 듯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어두웠다. 그녀는 소주 한 병을 주문하더니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그녀는 무슨 사연을 안고 이 무대에 올라 깡소주를 마시고 있는 것일까? 


홀 안의 등장인물은 이제 4명이 되었다. 4명의 주인공은 각각 자기만의 독백 연기를 하고 있었다. 노동자는 여진히 쌍욕을 뱉어내고 있었고, 중년 여인은 한 잔 술에 자신의 사연을 담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주모는 주방과 홀을 오가며 서빙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시간은 흘러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노동자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한바탕 또 쌍욕을 쏟아내고는 퇴장했다. 노동자는 사라졌지만 그의 찰진 욕은 아직도 내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홀 안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들었다. 내 앞에는 구워 놓은 돈낭돈신이 많이 남아 있었다. 중년 여인의 소주병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내 탁자로 초대했다.


나 : 제가 한 잔 살 테니까 이리 오세요.

여인 : (주모를 바라보면서) 이 분 합석해도 괜찮아요?

주모 : 괜찮아요. 좋은 분이세요.

여인 : (내 자리로 옮기면서) 그럼 실례할게요.

나 : 이젠 시간도 늦고 손님도 없으니까 주인장도 이리 오세요.


주모도 합석해서 예고에도 없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중년 여인은 남편과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뻔한 위로의 말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주모는 그녀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듯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취기가 오르자 중년 여인의 사연도 어느 정도 풀어진 듯했다.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문을 나가자마자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길거리에 나자빠졌다. 주모와 내가 달려나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길가에 앉힌 뒤 잠시 쉬게 했다. 혼자 집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주모와 나는 다시 홀 안으로 돌아와 남아 있는 안주와 술로 뒤풀이를 했다. 하루종일 술손님들에게 시달렸을 주모의 얼굴에 언뜻 무념무상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오랜 세월 진상 손님들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보살이 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덧 취기가 불콰하게 올랐다. 무대에서 내려갈 때가 된 것이다. 무대를 정리하고, 막을 내리는 역할을 맡은 주모를 뒤로 하고 귀로에 올랐다. 나는 오늘도 내 역할을 충실히 잘 연기한 것일까?


2015.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