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忠州市) 엄정면(嚴政面) 괴동리(槐東里) 억정사지대지국사탑비(億政寺址大智國師塔碑, 보물 제16호)와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호), 신만리(新萬里) 대한불교해동종(大韓佛敎海東宗) 신흥사(新興寺)를 돌아본 다음 장병산(帳屛山, 408.8m)과 엄정산(嚴政山, 505m)에 올랐다가 내려오느라 해가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 추평저수지(楸坪貯水池)를 찾았다. 추평저수지는 내가 충주시(忠州市) 엄정면(嚴政面)에 있는 신명중학교(新明中學校)에 다닐 때만 해도 없었다.
1980년대 내가 괴산군(槐山郡) 감물면(甘勿面) 감물중학교(甘勿中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낚시를 배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낚시를 한 지 몇 년 안되어 나는 어느덧 낚시광이 되어 있었다. 주말에 퇴근하면 으레 낚시 가방을 둘러메고 대어가 낚인다는 소문이 도는 저수지를 찾아 밤낚시를 떠나곤 했다.
그 무렵 충주시(忠州市) 엄정면(嚴政面) 추평저수지(楸坪貯水池)에 대물 잉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1980년중반 여름철이었을 거다. 대물 잉어를 잡기 위해 가춘리(佳春里) 추평저수지 상류에 자리를 잡고 릴낚싯대 두 대를 깔았다. 낚싯줄은 대물 잉어를 잡기 위해 4호 원줄을 썼다. 미끼는 찐 통감자에 6봉짜리 큰 낚시바늘을 끼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릴낚싯대 끝에 달아놓은 방울이 요란하게 울렸다. 순간 대물 잉어라는 느낌이 왔다. 릴을 감기 시작하자 잉어는 엄청난 힘으로 저항했다. 이렇게 강한 놈을 만난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낚싯대 끝은 부러질 듯 휘고 낚싯줄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났다. 드디어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잉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기에도 1m급의 대물 잉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잉어가 물 위로 튀어오르면서 머리를 반대쪽으로 확 잡아채자 낚싯줄이 거짓말처럼 딱 끊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 릴낚싯대에서도 방울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번에도 1m급의 대물 잉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잉어는 머리에 반동을 주었다가 반대쪽으로 강하게 제쳐서 낚싯줄을 툭 끊어버리고는 유유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닭 쫓던 개처럼 그저 멍하니 물속으로 사라지는 잉어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쉽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대물 잉어를 두 마리나 본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대물 잉어를 두 마리나 놓치고 나니 더 이상 낚시를 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낚시 가방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 오래전 대낚시로 붕어를 낚아 올리다가 문득 '나는 낚시를 취미로 하지만 붕어에게는 목숨이 달려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낚시를 끊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그날 나는 낚시 도구 일체를 낚시에 입문하려는 후배에게 다 줘 버렸다. 내 업(業)을 넘겨주는 것만 같아서 꺼림직했지만 후배가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준 것이다. 그 후배는 요즘도 낚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추평저수지
추평저수지에서 바라본 장병산과 엄정산 능선
추평저수지는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楸坪里)와 가춘리(佳春里)에 걸쳐 있다. 저수지 방둑을 경계로 아래가 추평리, 위가 가춘리다. 추평저수지는 1976년 6월 25일에 착공하여 1981년 12월 27일 준공되었다. 충주시 엄정면과 제천시 백운면,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옥녀봉(玉女峯, 600m)과 시루봉(730m)에서 동남쪽의 오청산(五靑山, 655m)으로 이어지는 천등지맥(天登支脈)의 남쪽 계곡에서 흘러내린 계곡수가 추평저수지로 흘러든다.
저물어가는 추평저수지 방둑에 서서 옛 추억에 잠겼다. 내 낚싯줄을 끊어버리고 유유히 사라진 대물 잉어들은 아직도 살아있을까?
그때 그 잉어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추평저수지를 떠나다.
201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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