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 탄생일인 12월 25일 충주시(忠州市) 노은면(老隱面) 수룡리(水龍里) 보련산(寶蓮山, 764m) 동남방 수룡계곡(水龍溪谷)에 있는 수룡폭포(水龍瀑布)를 찾아가기로 했다. 중앙탑면(中央塔面) 하구암리(下龜岩里)에서 잣고개를 넘어 봉황리(鳳凰里) 한포천(漢浦川)변으로 난 수룡봉황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룡계곡 입구가 나타난다. 수룡리 팔송마을 수룡폭포가든 삼거리에 '수룡폭포'와 '조덕공 의병장 묘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내동1교에서 바라본 한포천
한포천은 충주시 노은면 대덕리(大德里) 원통산(怨慟山, 675m)과 법동리(法洞里) 수레의산(수리산, 678.8m)에서 발원하여 노은면 중심부를 동류하여 중앙탑면 봉황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한포천 유역의 노은평야는 충주분지 내부의 충주평야(달천평야), 요도천(堯度川) 유역의 신니평야, 주덕평야와 함께 충주 지역의 주요 곡창지대이다.
노은면의 유래는 조선 효종 때 청안현감(淸安縣監)을 지낸 정경연(鄭慶演, 1604~1666)과 관련이 있다. 정경연은 이곳에 들어와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그후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 되었다.
대상마을에서 바라본 보련산
보련산은 충주시 앙성면과 노은면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764m이다. 보련산 동쪽으로는 쇠바위봉(593.5m)-동막재-국사봉(國師峰, 482m)-무쇠봉(371.4m), 서쪽으로는 하남재-국망산(國望山, 769.6m)-승대산(僧代山, 562.8m)-원통산으로 이어진다.
보련산 정상 부근에는 둘레 약 1.8㎞의 보련산성(寶蓮山城)이 있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기 대몽항전의 역사적 현장인 천룡산성(天龍山城)에 해당하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봉황성(鳳凰城)과도 관련이 있다. 보련산성은 정상부와 남쪽 봉우리를 에워싸는 석축산성으로 입보농성용(入保籠城用) 산성이며, 동쪽 중앙탑면의 장미산성(薔薇山城)을 연결하는 관방체계의 연장선상에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련산성은 충주와 장호원을 연결하는 교통로와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한포천을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보련산성의 둘레는 6,121척이었고, 성 안에 우물 1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석축 성벽은 장방형 석재를 이용하여 외축내탁(外築內托) 축성법으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동서남북 방향에 있었던 성문터와 석축 이전의 토루(土壘) 흔적은 남아 있다. 수문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전설지(傳說誌, 충청북도, 1982)'와 '충주중원지(忠州中原誌, 1985)', '충주의 구비문학(충주시, 2002)'에는 보련산성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삼한시대 노은면 보련산 서쪽 가마골(부곡)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장미(薔薇)와 보련(寶蓮) 남매가 살았다. 남매는 명산의 정기를 받아 모두 장수 기질을 갖고 있었다. 나라에서는 한 집안에 두 장수가 있으면 한 사람은 죽어야만 했다. 각자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던 남매는 결국 생사를 걸고 성 쌓기 내기를 하기로 했다. 이기는 사람이 살아남기로 했다. 누이 보련은 노은 보련산, 동생 장미는 가금(지금의 중앙탑면) 장미산에서 성을 쌓기 시작했다. 보련의 실력이 장미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가슴이 저미는 고통을 느꼈다. 어머니는 누구를 살릴 것인가 고민하다가 아들 장미를 살리기로 결심했다. 보련이 성을 더 높이 쌓자, 애가 타던 어머니는 떡을 해서 보련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준 떡을 먹고 보련이 마지막 돌 한 개를 얹어 성을 완성하려는 순간, 장미성이 완성되었다는 북소리가 울렸다. 아들 장미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달은 보련은 그 길로 노은 땅을 떠났다. 그 다음날 보련의 집에는 큰 별이 떨어졌다. 일설에는 보련이가 죽었다고 한다. 그뒤 보련이 쌓은 성을 보련산성, 장미가 쌓은 성을 장미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보련산성 전설은 남매 장수가 생사를 건 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쌓은 성이라는 축성유래담이자, 어머니가 아들 편을 들어 딸이 억울하게 죽는다는 비극적 장수설화이다. 보련산성 전설은 오뉘힘겨루기 전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된 오뉘힘겨루기 전설 대부분은 아들이 딸을 이기고 있는데, 이는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수룡계곡 입구
수룡계곡
수룡계곡
수룡폭포 하단
수룡폭포 상단과 중단
수룡폭포 중단
수룡폭포 상단
추운 겨울이라서 그런지 수룡계곡을 찾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수룡계곡 입구에서 700m쯤 올라가자 3단폭포인 수룡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폭포의 수량은 매우 적었다. 중단과 상단 폭포는 낙차가 약 6~7m 정도 되어 보였고, 하단폭포는 거의 와폭에 가까왔다.
상단과 중단 폭포에는 꽤 굵고 큰 소나무들이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수룡폭포는 수안보면의 매학폭포(일명 신선폭포)와 더불어 충주의 대표적인 폭포인데, 관리가 좀 소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더구나 수룡폭포는 충주시가 홍보까지 하는 관광자원이 아니던가! 충주시청 주무부서에서는 현장을 답사하고 쓰러진 소나무들을 빨리 치우기 바란다. 수룡폭포를 찾은 방치된 소나무들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충주시는 '관광 충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지 않은가! '관광 충주'는 말로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충주시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을 확인하는 행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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