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아씨-변산바람꽃이 올 때가 되었는데..... 지난주에 가야산(伽倻山, 678m)에 들어왔다가 발목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변산아씨는 만나지도 못하고 되돌아와야만 했었다. 1주일 뒤 변산아씨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가야산을 향해 떠났다.
옥계저수지
변산아씨가 기다리는 가야산으로 들어가려면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를 지나가야 한다. 옥계저수지 둑방에 서서 잠시 가야산을 바라보니 미세먼지가 부옇게 떠 있다. 황사는 중국 탓이라고 하겠지만 미세먼지는 우리나라 탓 아닌가! 해마다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옥계저수지는 가야산 제일봉 가사봉(袈裟峯, 678m)에서 원효봉(元曉峰, 605m)과 465m봉을 지나 남동쪽으로 290m봉으로 뻗어내린 능선과 가사봉에서 북쪽으로 석문봉(石門峰, 653m), 옥양봉(玉洋峰, 621m)에 이른 다음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원산(書院山, 481m)을 지나 명월봉(明月峰)과 관어대(觀魚臺)로 뻗어내린 능선 사이의 계곡 입구을 막아서 만든 저수지이다. 옥계저수지는 1957년에 준공되었으며, 덕산저수지(德山貯水池)라고도 부른다.
가사봉-석문봉 구간은 금북정맥(錦北正脈)에 속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속리산(俗離山, 1,058m)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안성시(安城市) 죽산면(竹山面) 칠장산(七長山, 491.2m)에서 금북정맥(金北正脈)과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갈라진다. 칠장산을 떠난 금북정맥은 천안의 청룡산(靑龍山, 400m), 성거산(聖居山, 579m), 차령(車嶺), 광덕산(廣德山, 699m), 차유령(車踰嶺), 국사봉(國師峰, 489m), 백월산(白月山, 飛鳳山, 560m), 오서산(烏棲山, 791m), 보개산(寶蓋山, 274m), 월산(月山, 日月山, 395m), 수덕산(修德山, 495m)을 지나 가야산 가사봉과 석문봉을 거쳐 성국산(聖國山), 팔봉산(八峰山, 326m), 백화산(白華山, 284m)에 이른 다음 태안반도(泰安半島) 지령산(知靈山, 218m)에서 끝난다. 금북정맥의 길이는 약 240㎞이다. 금북정맥 북서쪽으로는 안성천(安城川)과 삽교천(揷橋川), 남쪽으로는 금강(金江)이 흐른다.
옥계저수지의 철새들
옥계저수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겨울 철새들이 떼를 지어 유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철새들도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동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철새들의 군무는 장관이었다.
명월봉과 관어대
덕산면 읍내리 전경
명월봉 정상에는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태실(憲宗胎室)이 있다. 관어대(觀魚臺)는 예산 가야산의 가야구곡(伽倻九曲) 중 제1곡이다. 관어대는 '낚시하는 자리 터'라는 뜻이다. 1949년 옥계저수지 축조공사로 경치가 아름다운 낚시터였던 관어대, 옥계리의 원 마을, 99칸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1681~1767)의 고택도 사라졌다.
기록에 의하면 옥계저수지 한가운데를 굽이쳐 흐르던 옥계천변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경치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옥계저수지가 생기면서 옛길은 사라지고 아리랑고개로 올라 헌종태실 뒤로 해서 가야동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새로 생겼다. 관어대 안내판에는 7언절구 한시 한 수를 적어 놓았다.
一曲武夷上釣船(일곡무이상조선) 한 굽이 들어서니 무이곡처럼 낚싯배 떠 있고
休言此曲只沙川(휴언차곡지사천) 사천의 이 계곡도 더할 나위 없네
漁臺己見西峯色(어대기견서봉색) 관어대 서쪽 봉우리 바라보고 있노라니
秀氣蒼然鎖暮烟(수기창연쇄모연) 푸른 봉우리에 걸친 저녁 연기 참 아름답구나
조선 영조(英祖) 때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낸 병계 윤봉구는 가야계곡의 비경 아홉 곳을 정하여 가야구곡이라 칭하고 문집에 기록해 놓았다. 가야구곡은 제1곡 관어대를 비롯해서 제2곡 옥병계(玉屛溪), 제3곡, 습운천(濕雲泉), 제4곡 석문담(石門潭), 제5곡 영화담(暎花潭), 제6곡 탁선천(卓錫川), 제7곡 와룡담(臥龍潭), 제8곡 고운벽(孤雲壁), 제9곡 옥량폭(玉梁瀑) 등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가야구곡은 경치가 이름에 훨씬 못미치는 것 같다.
옥계저수지 둑방에서는 덕산면 읍내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덕산면은 예산군의 서쪽에 있는 면이다. 덕산면 읍내리에는 고려시대의 덕산 읍성(德山邑城)과 예산 읍내리 토성(禮山邑內里土城)이 있다. 또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예산 읍내리 미륵불(禮山邑內里彌勒佛)도 있다.
남연군묘
상가저수지에서 바라본 가사봉
가사봉 계곡으로 들어가려면 남연군묘(南延君墓, 충청남도기념물 제80호)와 상가저수지를 지나야 한다. 남연군묘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아비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무덤이다. 이하응은 가야사(伽倻寺) 터가 2대에 걸쳐 제왕이 나올 자리라는 풍수의 말을 듣고, 1844년(헌종 10) 절을 불태우고 탑을 파괴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이구의 묘를 이장하였다. 당시 가야사는 지금의 수덕사보다도 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이하응은 인근 골짜기에 보덕사(報德寺)를 짓고, 개운사의 도문(道文)을 불러 주지로 삼은 뒤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 얻은 차남 재황(載晃)이 철종(哲宗)의 뒤를 이어 기울어가는 조선의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었고, 고종의 차남 척(坧)도 조선의 마지막 왕위에 올라 순종이 되었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이하응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해 남연군묘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남연군묘 도굴 미수 사건으로 크게 노한 이하응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강화했다.
상가저수지는 가사봉 동쪽 계곡을 막아서 만든 작은 저수지이다. 상가저수지가 있는 상가리를 갯골 또는 윗갯골이라고도 한다. 갯골은 가얏골의 줄임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가얏골을 가야동(伽倻洞)이라고 불렀다. 갯골이란 이름이 가야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가리도 원래는 승가리(僧伽里)였다. 승가(僧伽, samgha)는 불교 승려를 뜻하는 말이다. 승려들이 사는 마을=승가마을 곧 승가리가 변해서 상가리가 된 것이다. 가야산이란 이름도 가야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사봉 계곡
가사봉 계곡
가사봉 계곡
상가저수지를 지나 가사봉 계곡으로 들어가니 1주일 전만해도 발목까지 덮었던 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눈이 녹은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곡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그리고 거기 지난해 만났던 바로 그 자리에서 변산아씨가 수줍은 듯 꽃샘바람에 오돌오돌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행여 그 님이 아니올까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1년에 단 한번의 만남이 이렇듯 애틋하고 반가울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변산아씨를 만났으니 이제 내게도 비로소 봄이 온 것이었다.
올해는 변산바람꽃 개체수가 눈에 띄게 많이 감소한 것 같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진 탓이다. 난 자연주의자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생태환경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운데 식물을 훼손하거나 변형하고, 심지어 뽑아서 옮겨 놓는 경우도 종종 본다. 꽃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환경도 좀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한번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변산아씨를 만났으니 이젠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내년에도 변산아씨를 만나러 올 것이다. 변산아씨를 두고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벌써 내년이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2016.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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