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루이지 케루비니(Maria Luigi Cherubini)-Mé dée(메데이아)

林 山 2017. 8. 4. 10:20
루이지 케루비니(Maria Luigi Cherubini)-Mé dée(메데이아)

루이지 케루비니(Maria Luigi Cherubini)-Mé dée(메데이아)


루이지 케루비니(Maria Luigi Cherubini)-Mé dée(메데이아)


루이지 케루비니(Maria Luigi Cherubini 1740~1842)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나 반평생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오페라 작곡가이다. 체루비니는 특히 오페라와 종교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메데이아 Médée》(1797), 《2일간 Les Deux Journées》(1800), 《아나크레옹 Anakreon》(1803) 등의 일련의 오페라는 L.H.베를리오즈와 베토벤의 오페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베토벤은 그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서 평가했다.


<메데이아(Médée)>는 루이지 케루비니가 1797년에 완성한 오페라이다.  케루비니는 1789년~1842년까지 파리음악계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관현악, 합창과 실내악 그 어떤 곡도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그를 존경했던 동시대인의 베토벤과 슈베르트, 후대의 바그너와 브람스 등은 그런 평가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1795년부터 파리 음악원에서 교수를 하다가 훗날 교장이 되어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때 나폴레옹과의 불화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1790년대 초기에 드높았던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빛을 잃은 것은 그런 상황도 한몫을 했다.


대신 케루비니는 실내악과 합창곡의 걸작들을 작곡했다. 베를리오즈는 케루비니의 C단조 레퀴엠이 ‘엄숙한 스타일이 한결같다’며 극찬했다. 세기 말의 신고전주의 경향이 집대성된 케루비니의 작품에 대해 엄격하고 건조하며 심지어 차갑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고전주의의 매혹적인 비극인 《메데이아》를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과 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오페라는 프랑스 밖에서는 많이 각색되었다. 특히 많은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프란츠 라흐니의 레치타티보를 삽입한 이탈리아 버전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이 버전의 주인공은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한데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적격이다.


1953년에 레너드 번스타인과 협연한 칼라스의 황홀한 라디오 실황 음반을 듣는다면 이 오페라의 우수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무대에 올려진 《메데이아》의 원전 공연은 칼라스와 번스타인 등의 거장들 덕을 보는 것을 떠나 작품 자체가 지닌 웅장함을 재발견하는 데 한몫을 했다.(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베스트 아리아는 '아, 우리의 고통은 서로 나누리(Ah! nos peines seront communes)'(Ms), '당신의 아들들의 불행한 어머니를 보도다(Vous voyez de vos fils la mère infortunee)'(S), '무엇이라고? 내가 메데이아로다(Eh quoi! je suis Médée)'(S) 등이다. 



아, 우리의 고통은 서로 나누리(Ah! nos peines seront communes)



당신의 아들들의 불행한 어머니를 보도다(Vous voyez de vos fils la mère infortunee)



무엇이라고? 내가 메데이아로다(Eh quoi! je suis Médée)


2017.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