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남도정자기행] 김성원의 서하당(棲霞堂)과 부용당(芙蓉堂)을 찾아서 6

林 山 2018. 4. 16. 12:20

서하당에는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김성원의 '서하당팔영(棲霞堂八詠)', 정철의 '하당잡영(霞堂雜詠)과 '성산별곡' 편액이 걸려 있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에는 14수가 판각되어 있다. 식영정 4선 가운데 유일하게 고경명의 시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 서하당에서 이것저것 읊다


송창(松窓) - 소나무 그림자 어리는 창 


岑寂空山月(잠적공산월) 적막한 산 봉우리에 달이 뜨자

扶疎影入窓(부소영입창) 솔 그림자가 창으로 따라 드네

濤聲撼幽夢(도성감유몽) 파도 소리가 깊은 꿈을 깨우니

風雨浪飜江(풍우낭번강) 비바람에 이는 물결 강 뒤집네


월호(月戶) - 달창


山翁淸小睡(산옹청소수) 산옹이 선잠을 달게 자다가 깨어

長嘯鶴未應(장소학미응) 긴 휘파람을 불어도 학은 모른체

對影人何在(대영인하재) 그림자를 보고 사람 어디 있는지

看天一問僧(간천일문승) 하늘 보며 스님에게 슬쩍 묻노라


금헌(琴軒) - 거문고 있는 집


我有震焚琴(아유진분금) 나에게 소리 기막힌 거문고 있어

中含鳳鸞音(중함봉란음) 봉황과 난새의 소리 머금고 있네

旣令山月白(기령산월백) 산에 떠오른 달은 이미 환해졌고

又使石灘深(우사석탄심) 또 돌여울을 더욱 깊어지게 하네


'금헌(琴軒)'은 거문고가 있는 집, 곧 서하당을 뜻한다. 임억령은 바둑을 잘 두었고, 거문고도 잘 탔다고 한다. 옛 선비들 중에는 거문고의 명인이 많았다. 


서가(書架) - 책장


玉笈三山記(옥급삼산기) 옥장식 책장에 꽂혀 있는 삼산기

靑苔五嶽篇(청태오악편) 푸른 이끼가 낀 오래된 오악편을

高聲讀月夕(고성독월석) 밝은 달밤에 소리 높여서 읽으니

桂子落窓前(계자락창전) 계수나무 씨가 창 앞에 떨어지네


'옥급(玉笈)'은 옥으로 장식한 책상자로 진기한 책들을 모아놓은 상자에 대한 미칭이다. '삼산(三山)'은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 등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삼산기(三山記)'는 '삼신산기(三神山)'를 가리킨다. 필사본 '옥급삼산기(玉笈三山記, 임형택 교수 및 동아대 소장)'라는 책이 실제로 있다. '오악(五嶽)'은 중국의 태산(泰山, 東岳), 화산(華山, 西岳), 형산(衡山, 南岳), (恒山, 北岳), 숭산(嵩山, 中岳)을 가리킨다. '오악편(五嶽篇)'이라는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약포(藥圃) - 약초밭


瀟灑書窓畔(소쇄서창반) 기운이 맑고 깨끗한 서재 창가에

栽培細雨餘(재배세우여) 가랑비 지나간 뒤 약초를 심고서

病身須藥物(병신수약물) 병약한 몸을 위해 약재를 달이며

閒坐閱方書(한좌열방서) 한가로이 앉아 한의학 책을 보네


연지(蓮池) - 연꽃 연못


山雨無端打(산우무단타) 끝없이 퍼붓는 산중에 내리는 비

空堂皆夜喧(공당개야훤) 빈 집을 밤새도록 시끄럽게 하네

猶嫌俗客到(유혐속객도) 만약 속세의 객이 올까 저어하여

葉漸遮門(신엽점차문) 새로 자라난 잎이 문을 가리누나


연지(蓮池)는 곧 부용당(芙蓉塘)임을 알 수 있다. 부용(芙蓉)은 연(蓮)이니 연지(蓮池)는 곧 부용당(芙蓉塘)이다. 당(塘)=지(池)=연못이다. 소(沼)도 비슷한 뜻이다.  


가산(假山) - 정원의 돌산


方丈三韓外(방장삼한외) 방장산은 삼한 나라의 밖에 있고

奇峰千萬重(기봉천만중) 기이한 봉우린 수없이 겹쳐 있네

波衝餘瘦骨(파충여수골) 물결에 부딪치고 깎여 호리한 몸

來對古仙翁(래대고선옹) 와서 보니 옛날의 신선 노인이네


소계도화(小溪桃花) - 시내의 복사꽃


上長長柳(긍상장장류) 언덕 위엔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

巖邊短短桃(암변단단도) 바위 벼랑엔 키 작은 복사꽃나무

近來人不到(근래인부도) 하지만 요즘 사람도 오지 않나니

水沒武陵橋(수몰무릉교) 무릉원 건너는 다리 물에 잠겼네


장정류서(長汀柳絮) - 길게 뻗친 바닷가 버들개지


沙岸微風日(사안미풍일) 모래 언덕에 산들바람이 부는 날

山陰暮雪天(산음모설천) 산 그늘에 저녁 눈이 내리는도다

荷翁與不淺(하옹여불천) 연잎옷 입은 노인과 깊게 사귀니

直欲近漁船(직욕근어선) 곧 고기잡이 배로 다가서려 하네


산들바람에 날리는 버들솜을 눈이 내린다고 표현했다. '하옹(荷翁)'은 연잎 옷을 입은 노인이라는 뜻으로, 신선을 가리킨다. 


촌휴만도(村畦晩稻) - 시골 들녘의 늦은 벼


秋天零白露(추천영백로) 가을 하늘에서 하얀 서리 내리자

平野滿黃雲(평야만황운) 너른 들녘엔 황금 물결 가득하네

日夕西風起(일석서풍기) 해 저무니 서쪽에서 바람이 일고

微香路上聞(미향로상문) 길 위에는 은은한 향내음 풍기네


절산장추(節山長湫) - 절산의 긴 웅덩이


流水匯成潭(유수회성담) 흐르는 물 돌아들어 못을 이루니

夕陽明似鏡(석양명사경) 저녁 해 비치자 거울처럼 밝구나

游魚出復潛(유어출부잠) 나왔다 또 숨고 노니는 물고기는

應駭行人影(응해행인영) 아마 행인의 그림자에 놀랐을 걸


단애자미(丹崖紫薇) -붉은 벼랑의 배롱꽃


幽花何窈窕(유화하요조) 그윽한 꽃 저리도 곱고도 이쁠까

國色淡臙脂(국색담연지) 연한 연지색 꽃 천하의 국색일세

照水如臨鏡(조수여림경) 물에 비치니 거울을 보는 듯하고

偎林似隔帷(외림사격유) 숲에 가까우니 장막을 친 듯하네


죽오청풍(竹塢淸風) - 대나무 언덕의 시원한 바람


松竹本同族(송죽본동족) 소나무와 대나무는 본래 한 무리

松間又種竹(송간우종죽) 소나무 사이에 또 대나무를 심네

誰云夷叔枯(수운이숙고) 백이 숙제 굶어 죽었다고 했는가

萬古風生谷(만고풍생곡) 먼 옛부터 바람 이는 골짝이라네


'죽오청풍(竹塢淸風)'은 '면앙정삼십영'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 '이숙(夷叔)'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한다. 임억령의 시에는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이 시적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그가 중국 고대사와 문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정영원(石井靈源) - 돌우물의 신령한 샘


半畝方塘水(반묘방당수) 네모지게 생긴 조그만 연못의 물

連筒玉井分(연통옥정분) 대나무 홈통 따라 물길 갈라지네

猶嫌南澗達(유혐남간달) 혹시 또 남간에 이를까 저어하여

別向柳邊聞(별향류변문) 따로 버드나무 옆에서 듣네 그려


'방당(方塘)'은 네모진 연못, '연통(連筒)'은 대나무를 이어 만든 홈통이다. '남간(南澗)'은 주자(朱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온 말로, '양지쪽 산골짜기 개울물' 또는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이란 뜻이다. '南澗'과 '南磵'은 서로 뜻이 서로 통한다. '남간(南磵)'은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남간중제(南磵中題)'라는 시의 제목에 딸린 주()에 '영주(永州)의 조양암(朝陽巖)에서 동남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면 원가갈(袁家渴)에 이르고원가갈에서 서남쪽으로 가면 채 100가 못 되는 곳에 돌개천이 있고 돌개천이 다하면 돌시내가 남쪽에 있으니이것이 바로 남간이다.'라고 하였다.


김성원의 '서하당팔영' 편액에는 8수만 판각되어 있는데, 원래 몇 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차운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억령의 원운시와 같은 14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원의 '서하당팔영' 편액


송창(松窓) - 소나무 그림자 어리는 창


最愛蒼髥叟(최애창염수) 가장 사랑하느니 푸른 솔인데

長身俯松窓(장신부송창) 커다란 소나무 창을 굽어보네

風來送天籟(풍래송천뢰) 바람이 불면 천뢰가 들려오고

濤起殷秋江(도기은추강) 물결 일면 추강이 일렁이누나


'염수(髥叟)'는 오래된 소나무를 가리킨다. '천뢰(天籟)'는 바람 소리나 빗소리와 같이 자연 현상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소리를 말한다. '은(殷)'은 '흔들다, 진동하다'의 뜻이다.  


월호(月戶) - 달창


桂子低堪摘(계자저감적) 손에 닿을 듯 낮은 달님이여

姮娥喚欲應(항아환욕응) 부르면 항아가 대답도 할 듯

仙蹤來幾許(선종래기허) 신선의 자취 이른 게 얼만데

俗跡到何曾(속적도하증) 속인의 발길 그 어디 있는가


'계자(桂子)'는 계수나무 열매이지만, 여기서는 달을 뜻하는 말이다. '항아(姮娥)'는 중국 고대 신화에서 달 속에 있다는 선녀이다. 원래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궁수 예(羿)의 아내였지만, 그와 함께 천신에서 쫓겨나 인간이 되었다.


금헌(琴軒) -거문고 있는 집


良宵撫古琴(양소무고금) 환한 밤 옛 거문고 어루만지니

松月是知音(송월시지음) 소나무에 뜬 달이 내 벗이로세

長嘯悄終曲(장소초종곡) 거나하게 한 곡조 마치고 나니

雲林深復深(운림심부심) 구름 걸친 숲이 깊고도 깊어라


'금헌(琴軒)'은 여기서 서하당을 가리킨다. 김성원은 거문고의 대가였다고 알려져 있다. 금헌은 수령의 정사당(政事堂)을 말하기도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제현(察賢)>에 공자(孔子)의 제자인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단지 비파(琴)를 타고 노래만 부를 뿐 공당(公堂)에 내려간 적이 없는데도 고을이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금(古琴)'을 칠현금(七弦琴)이라고 한다. '지음(知音)'은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에서 유래했다. 


서가(書架) - 책장


室中無長物(실중무장물) 방안에 쓸모 있는 것이 없으나

架上有殘編(가상유잔편) 서가엔 묵은 책이 얹혀 있다네

卷裏對賢聖(권리대현성) 책 속에서 옛 성현을 뵈옵나니

嚴師長在前(엄사장재전) 스승님이 언제나 앞에 계신 듯


약포(藥圃) - 약초밭


辛苦十年疾(신고십년질) 오래 묵은 고질을 앓아 오면서

栽培一畝餘(재배일묘여) 한 이랑쯤 약초를 심어 두었지

自能知對病(자능지대병) 스스로 병을 치료할 줄 아느니

何必對方書(하필대방서) 어찌 꼭 양생서를 찾을 것인가


연소(蓮沼) - 연꽃 연못


丁寧茂叔說(정녕무숙설) 정녕 송나라 주무숙의 그 애련설을

千載口徒喧(천재구도훤) 오랜 세월 입으로만 떠들어 왔다네

欲得無窮意(욕득무궁의) 이제서야 무궁한 뜻을 알고 싶어서

空山獨閉門(공산독폐문) 빈 산에서 외로이 문을 닫았네그려


여기서 '연소(蓮沼)'도 부용당을 말한다. '무숙(茂叔)'은 중국 북송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자다. 그는 거의 1,000년 동안 중국의 국가 이념으로 자리잡았던 성리학(性理學)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설(說)'은 주돈이의 저 유명한 '애련(愛蓮說)'을 말한다.  


가산(假山) - 정원의 돌산


片石當階立(편석당계립) 섬돌 마주하여 조각돌로 산을 쌓으니

層巒翠幾重(층만취기중) 층계 마루 겹겹이 푸른 봉우리들이여

深思夢爲鶴(심사몽위학) 생각에 잠겼다가 꿈속에서 학이 되어

飛入訪仙翁(비입방선옹) 선인을 찾아 날아서 선계로 들어가네


'편석(片石)'은 인공산을 만들기 위한 조각돌을 말한다. 가산(假山)은 정원에 산악을 본따서 돌과 흙을 쌓아 만든 조경물을 말한다. 중국 강남(江南)의 원림(園林) 중에서 돌을 쌓아 올려서 만든 가산은 쑤저우(蘇州)의 환수산장(環秀山莊)과 양저우(揚州)의 편석산방(片石山房)이 가장 유명하다. 


석정(石井) - 돌우물


山下有源泉(산하유원천) 산 아래에 샘의 근원이 있어

分流開小井(분류개소정) 갈라져 흘러 작은 샘 되었네

淸明徹玉壺(청명철옥호) 맑고 밝은 물 옥병에 비치니

作我照心鏡(작아조심경) 내 마음 비추는 거울 삼으리


정철의 '하당잡영' 편액에는 '송창', '서가', '금헌', '약포' 등 4수가 판각되어 있다. 정철의 '하당잡영'도 원래는 임억령의 원운시와 같은 14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철의 '하당잡영' 편액


송창(松窓) - 소나무 그림자 어리는 창


倦客初驚睡(권객초경수) 나른한 나그네 막 잠에서 깨어

中宵獨停窓(중소독정창) 깊은 밤 홀로 창가를 서성이네

無端萬壑雨(무단만학우) 온 산에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

十里度前江(십리도전강) 십리 넘게 앞에 강을 이루었네


정철이 창평에 내려와 서하당에서 하루 묵었는데, 그날 밤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던 모양이다. 지친 나그네 '권객(倦客)'은 정철 자신을 가리킨다.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하느라 지친 것일 수도 있겠고, 한양에서 내려오느라 피곤한 것일 수도 있겠다. '권(倦)'을 '게으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서하당에 손님으로 와 있으니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원시에는 '정(停)'이 '의(倚)'로 되어 있다. 뜻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서가(書架) - 책장


仙家靑玉案(선가청옥안) 선인의 집 청옥으로 만든 책상

案上白編(안상백운편) 책상 위엔 백운편이 놓여 있네

盥手焚香讀(관수분향독) 세수하고 향 사른 뒤 읽노라니

松陰竹影前(송음죽영전) 솔 대나무 그늘 앞에 이르렀네


'청옥안(靑玉案)'은 고시(古詩)의 시어(詩語)이다. 한(漢)나라 장형(張衡)이 지은 '사수시(四愁詩)'의 '何以報之靑玉案(나는 어찌해야 청옥소반으로 보답하리오)'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도 '試吟靑玉案 莫羨紫羅囊('청옥안'이란 싯구를 읊조려 보되, 자색 비단 주머니를 부러워하지 말지어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案’은 옛 ‘椀'이다. 판액에는 '백설편(白雪編)'으로 되어 있는데, '백운편(白篇)'이 맞다. '백운편'은 두보(杜甫)의 증헌납사기거전사인징시(贈獻納使起居田舍人澄詩)에 '개인 창 아래서 백운편을 점검하도다.(晴窓點檢白雲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좋은 시를 뜻한 듯하나 제가의 설이 분분하다. 


금헌(琴軒) -거문고 있는 집


君有一張琴(군유일장금) 그대에게 거문고 한장 있어

聲希是大音(성희시대음) 소리 세상에 드문 대음일세

大音知者少(대음지자소) 대음을 알아주는 이 적어서

彈向白雲深(탄향백운심) 하얀 구름 들으라고 타는가


김성원은 정철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학문과 문학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 궁벽한 시골에 김성원의 거문고 연주를 알아들을 이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김성원이 거문고의 대가임을 알아준 사람도 정철뿐이었다. 그래서 흰 구름 깊은 곳을 향해서 거문고를 타는 것이다. 정철은 이때 한양에 올라가 있었을까?  


'군(君)'은 김성원을 가리킨다. '대음(大音)'은 천지간에 진동하지만 귀로 듣고자 하여도 그 울림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말한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이란 말이 있다.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뛰어난 음악은 소리가 없는 듯하다.'는 뜻이다. '백운(白雲)'은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상징한다. 신선들만이 김성원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약포(藥圃) - 약초밭


造化生生意(조화생생의)우주의 조화로 생기 가득하고

春天一雨餘(춘천일우여) 한 줄기 봄비조차 여유로와라

從來有道骨(종래유도골) 예로부터 도인은 타고 나느니

不必養生書(불필양생서) 굳이 양생서가 뭐가 필요할까


대자연의 조화로 인한 봄의 생기 자체가 보약이니 도인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양생서가 필요없다고 노래한 시다. 옛날의 선비들은 의서(醫書)를 익히고 약초를 길러 자신의 가문은 물론 마을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그래서 선비가에는 약포(藥圃)를 갖추는 것이 필수였다. 서하당에도 딸린 약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철은 서하당에서 동갑내기 벗 약포(藥圃) 이해수(李海壽)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정철은 이해수에 대한 시를 여러 수 지었다. 이해수는 정철과 같은 서인당(西人黨)이었다. 1587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던 이해수는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으나 동인당(東人黨)에 밀려 여주 목사로 좌천되었다. 그해 건저(建儲) 문제로 정철이 평안도 강계(江界)로 유배되자 이해수도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다.  


'조화(造化)'는 '우주 자연'을 말한다. '생의(生意)'는 '생기(生氣), 생명력'의 뜻이다. '춘천(春天)'은 '봄 하늘'이 아니라 '봄'으로 풀이한다. '도골(道骨)'은 '선인(仙人)이나 도사(道士)의 골격(骨格) 또는 기질'이라는 뜻이다.


지(蓮池) -연꽃 연못


山中畏逢雨(산중외봉우) 산중에서 비를 만날까 두려워

淨友也能喧(정우야능훤) 맑은 벗들도 소란 부리겠기에

漏泄仙家景(루설선가경) 신선 집의 경치를 누설하고파

淸香滿洞門(청향만동문) 청향이 마을 어귀에 가득하네


부용당 연못에 핀 연꽃의 정취를 노래한 시다. 연꽃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겠기에 비를 만날까 두렵다. 연꽃들이 비를 맞는 모습을 시끄럽게 지껄인다고 표현했다. 정철은 직설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연꽃의 맑은 향기 가득한 서하당의 선경 같은 경치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연꽃은 정우(淨友) 또는 화중군자(花中君子)라 하여 사군자(四君子)에 넣기도 한다. '연지' 이하는 정철의 편액에 판각되지 않은 한시들이다.


월호(月戶) - 달창


野鶴招常至(야학초상지) 들의 학은 부르면 항상 오는데

山精喚不應(산정환불응) 산 정기는 불러도 응하지 않네

停杯一問月(정배일문월) 술잔 놓고 달에게 물어 보노라

豈獨古人曾(기독고인증) 어찌 홀로 옛사람만 거듭할까


불러도 대답 없는 산 정기에 대해 안타까와하는 시다. 학은 여기서 처외재당숙이자 선배이자 절친한 벗처럼 교유한 김성원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정철은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정치적으로 패배했을 때 창평으로 내려왔기에 산 정기는 자신을 내친 임금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달과 회포를 풀고 있는 것이다. 


가산(假山) - 정원의 돌산


巧削神應助(교삭신응조) 교묘한 솜씨는 신이 감응한 도움이라

深藏海幾重(심장해기중) 바다에 몇 겹이나 깊이 감춰두었을까

候門歌吹地(후문가취지) 문에서 맞이하여 노래하고 피리 부니

爭似此山翁(쟁사차산옹) 어찌 이 산 늙은이만큼이나 좋겠는가


서하당 연꽃 연못 정원에 조성한 멋진 돌산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시다. 신이 감응하고 바다신이 돕지 않았다면 가히 만들 수 조차 없는 가산이다. 그러기에 신을 문에서 맞이하여 노래하고 피리 불어서 기린다. 이런 즐거움은 이 늙은이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 


'후문(候門)은 '문가에 서서 문안 인사를 드리다, 문에서 맞이하다'의 뜻이다. '쟁사(爭似)'는 ' 어찌 ~와 같으랴, 어찌 ~만 하겠는가'의 뜻이다. 'A爭似B'는 'A가 어찌 B만큼 좋겠는가'의 뜻이다.


석정(石井) - 돌우물


天雲何處看(천운하처간) 하늘 구름 어디서 찾아볼까나

活水方澄井(활수방징정) 물 솟아나는 네모진 우물이지

終日自無風(종일자무풍) 하루종일 부는 바람이 없다면

一塵寧到鏡(일진녕도경) 한 티끌인들 거울에 닿으리요


돌우물에 비친 구름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먼지 하나라도 거울에 닿을 수 없다고 노래한 시다. 우물에 비친 구름은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면 구름이 수면에 어지럽게 비칠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란다. 


정철이 서인의 행동대장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시는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바람', '티끌'은 동인들의 정치적 공세, '거울'은 평화로운 세상으로 볼 수도 있다.    


1560(명종 15) 25세의 정철은 창평(昌平) 지곡리(芝谷里) 성산(星山, 별뫼)에 머물면서 스승 임억령을 위해 송순의 '면앙정가(免仰亭歌)' 형식을 차용하고, 도연명(陶淵明)의'도화원시(桃花源詩)'에서 착안하여 가사(歌辭) '성산별곡'을 지었다. 


정철의 '성산별곡' 편액


엇던 디날 손이 星山(성산)의 머믈며셔 棲霞堂(서하당) 息影亭(식영정) 主人(주인)아 내 말 듯소. 人生(인생) 世間(세간)의 됴흔 일 하건마ᄂᆞᆫ 엇디ᄒᆞᆫ 江山(강산)을 가디록 나이 너겨 寂寞(적막) 山中(산중)의 들고 아니 나시ᄂᆞᆫ고. 松根(송근)을 다시 쓸고 竹床(죽상)의 자리 보아 져근덧 올라안자 덧던고 다시 보니 天邊(천변)의 ᄯᅵᆺᄂᆞᆫ 구름 瑞石(서석)을 집을 사마 나ᄂᆞᆫ ᄃᆞᆺ 드ᄂᆞᆫ 양이 主人(주인)과 엇더ᄒᆞᆫ고. 滄溪(창계) 흰 물결이 亭子(정자) 알ᄑᆡ 둘러시니 天孫雲錦(천손운금)을 뉘라셔 버혀 내여 닛ᄂᆞᆫ ᄃᆞᆺ 펴디ᄂᆞᆫ ᄃᆞᆺ 헌ᄉᆞ토 헌ᄉᆞ할샤. 山中(산중)의 冊曆(책력) 업서 四時(사시)를 모ᄅᆞ더니 ᄂᆞᆫ 아래 헤틴 景(경)이 쳘쳘이 절로 나니 듯거니 보거니 일마다 仙間(선간)이라.(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고 아니 나오시는가. 솔뿌리를 다시 쓸고 대나무 침대에 자리를 보아, 잠시 올라앉아 어떤가 하고 다시 보니,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서석을 집을 삼아. 나가는 듯하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주인과 어떠한가. 시내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 하늘의 은하수를 누가 베어 내어,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 속에 달력이 없어서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 아래 헤친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이 사는 세상이로다.)


梅窓(매창) 아 벼ᄐᆡ 香氣(향기)예 잠을 ᄭᆡ니 山翁(산옹)의 ᄒᆡ욜 일이 곳 업도 아니ᄒᆞ다. 울 밋 陽地(양지) 편의 외씨ᄅᆞᆯ ᄲᅵ허 두고 ᄆᆡ거니 도도거니 빗김의 달화 내니 靑文故事(청문고사)ᄅᆞᆯ ᄇᆡ야 신고 竹杖(죽장)을 흣더디니 桃花(도화)  시내 길히 芳草洲(방초주)의 니어셰라. 닷봇근 明鏡(명경) 中(중) 절로 그린 石屛風(석병풍) 그림재ᄅᆞᆯ 버들 사마 西河(서하)로 ᄒᆞᆷᄭᅴ 가니 桃源(도원)은 어드매오 武陵(무릉)이 여긔로다.(매창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 깨니, 산늙은이의 할 일이 아주 없지도 아니하다. 울타리 밑 양지 편에 오이씨를 뿌려 두고, 김을 매고, 북을 돋우면서 비 온 김에 가꾸어 내니, 짚신을 죄어 신고 대나무 지팡이를 흩어 짚으니,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어졌구나. 잘 닦은 거울 속에 저절로 그린 돌병풍, 그림자를 벗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여기가 바로 그곳이로다.)


南風(남풍)이 건듯 부러 綠陰(녹음)을 헤텨 내니 節(절) 아ᄂᆞᆫ 괴ᄭᅩ리ᄂᆞᆫ 어드러셔 오돗던고. 羲皇(희황) 벼개 우ᄒᆡ 풋ᄌᆞᆷ을 얼픗 ᄭᆡ니 空中(공중) 저즌 欄干(난간) 믈 우ᄒᆡ ᄯᅥ 잇고야. 麻衣(마의)ᄅᆞᆯ 니 ᄎᆞ고 葛巾(갈건)을 기우 쓰고 구브락 비기락 보ᄂᆞᆫ 거시 고기로다. ᄒᆞᄅᆞ밤 업시셔 萬山(만산)이 향긔로다. 廉溪(염계)ᄅᆞᆯ 마조보아 太極(태극)을 믓ᄌᆞᆸᄂᆞᆫ ᄃᆞᆺ 太乙眞人(태을진인)이 玉字(옥자)ᄅᆞᆯ 헤혓ᄂᆞᆫ ᄃᆞᆺ 노자암 건너보며 紫微灘(자미탄) 겨ᄐᆡ 두고 長松(상송)을 遮日(차일)사마 石逕(석경)의 안자ᄒᆞ니 人間(인간) 六月(유월)이 여긔ᄂᆞᆫ 三秋(삼추)로다. 淸江(청강) ᄯᅵᆺᄂᆞᆫ 올히 白沙(백사)의 올마 안자 白鷗(백구)ᄅᆞᆯ 벗을 삼고 ᄌᆞᆷ ᄭᅵᆯ 줄 모ᄅᆞ나니 無心(무심)코 閑暇(한가)ᄒᆞ미 主人(주인)과 엇더ᄒᆞ니.(남풍이 문득 불어 녹음을 헤쳐 내니, 철을 아는 꾀꼬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희황 베개 위에 선잠을 얼핏 깨니, 공중의 젖은 난간이 물 위에 떠 있구나. 삼베옷을 여며 입고 갈건을 비껴 쓰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기대면서 보는 것이 고기로다. 하룻밤 비 온 뒤에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이 섞어 피니, 바람기가 없어서 모든 산이 향기로다. 염계를 마주하여 태극성을 묻는 듯, 노자암을 건너보며 자미탄을 곁에 두고, 큰 소나무를 차일삼아 돌길에 앉으니, 인간 세상의 유월이 여기는 가을이로구나. 청강에 떠 있는 오리가 흰 모래에 옮겨 앉아, 흰 갈매기를 벗삼고 잠깰 줄을 모르나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과 비교하여 어떤가.)


梧桐(오동) 서리ᄃᆞᆯ이 四更(사경)의 도다 오니 千巖萬壑(천암만학)이 나진ᄃᆞᆯ 그러ᄒᆞᆯ가. 湖洲(호주) 水晶宮(수정궁)을 뉘라셔 옴겨 온고. 銀河(은하)ᄅᆞᆯ ᄯᅴ여 건너 廣寒殿(광한전)의 올랏ᄂᆞᆫ ᄃᆞᆺ ᄶᅡᆨ 마ᄌᆞᆫ 늘근 솔란 釣臺(조대)예 셰여 두고 그 아래 ᄇᆞᄅᆞᆯ ᄯᅴ워 갈 대로 더뎌 두니 紅蓼花(홍료화) 白蘋洲(백빈주) 어ᄂᆞ ᄉᆞ이 디나관ᄃᆡ 環碧堂(환벽당) 용(龍)의 소히 뱃머리예 다하셰라.  청강(淸江) 녹초변(綠草邊)의 쇼 머기난 아해들이 석양의 어위 계워 단적(短笛)을 빗기 부니, 믈 아래 잠긴 龍(용)이 ᄌᆞᆷ ᄭᆡ야 니러날 ᄃᆞᆺ ᄂᆡᄭᅴ예 나온 鶴(학)이 제 기ᄉᆞᆯ 더뎌 두고 半空(반공)의 소소 ᄯᅳᆯ ᄃᆞᆺ 蘇仙(소선) 赤壁(적벽)은 秋七月(추칠월)이 됴타 호ᄃᆡ 八月(팔월) 十五夜(십오야)ᄅᆞᆯ 모다 엇디 과ᄒᆞᄂᆞᆫ고. 纖雲(섬운)이 四捲(사권)ᄒᆞ고 믈결이 채 잔 적의 하ᄂᆞᆯ의 도단 ᄃᆞᆯ이 솔 우ᄒᆡ 걸려거ᄃᆞᆫ 잡다가 ᄲᅡ딘 줄이 謫仙(적선)이 헌ᄉᆞᄉᆞᆯ샤.(오동나무 사이로 가을달이 사경에 돋아오니, 천암만학이 낮보다도 더 아름답구나. 호주의 수정궁을 누가 옮겨 왔는가. 은하수를 뛰어 건너 광한전에 올라 있는 듯.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 백빈주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푸른 풀이 우거진 강변에서 소 먹이는 아이들이, 석양의 흥을 못 이겨 피리를 비껴 부니, 물 아래 잠긴 용이 잠을 깨어 일어날 듯, 연기 기운에 나온 학이 제 집을 버려 두고 반공에 솟아 뜰 듯. 소동파의 적벽부에는 가을 칠월이 좋다 하였으되, 팔월 보름밤을 모두 어찌 칭찬하는가. 잔구름이 흩어지고 물결도 잔잔한 때에, 하늘에 돋은 달이 소나무 위에 걸렸으니,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태백의 일이 야단스럽다.)


空山(공산)의 싸힌 닙흘 朔風(삭풍)이 거두 부러 ᄯᅦ구름 거ᄂᆞ리고 ᄂᆞᆫ조차 모라오니 天公(천공)이 호ᄉᆞ로와 玉(옥)으로 고ᄌᆞᆯ 지어 萬樹千林(만수천림)을 ᄭᅮ며곰 낼셰이고. 압 여흘 ᄀᆞ리 어러 獨木橋(독목교) 빗겻ᄂᆞᆫᄃᆡ 막대 멘 늘근 이 아ᄂᆞ 뎔로 간닷 말고. 山翁(산옹)의 이 富貴(부귀)ᄅᆞᆯ ᄂᆞᆷᄃᆞ려 헌ᄉᆞ 마오. 瓊瑤屈(경요굴) 隱世界(은세계)ᄅᆞᆯ ᄎᆞᄌᆞ리 이실셰라.(공산에 쌓인 낙엽을 북풍이 걷으며 불어, 떼구름을 거느리고 눈까지 몰아 오니, 온갖 나무들을 잘도 꾸며 내었구나. 앞 여울물 가리워 얼고 외나무 다리 걸려 있는데, 막대를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늙은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소문내지 마오. 경요굴 은밀한 세계를 찾을 이가 있을까 두렵도다.)


山中(산중)의 벗이 업서 漢紀(한기)ᄅᆞᆯ ᄲᅡ하 두고 萬古(만고) 人物(인물)을 거ᄉᆞ리 헤여ᄒᆞ니 聖賢(성현)도 만커니와 豪傑(호걸)도 하도 할샤. 하ᄂᆞᆯ 삼기실 제 곳 無心(무심)ᄒᆞᆯ가마ᄂᆞᆫ 엇다ᄒᆞᆫ 時運(시운)이 일락배락 ᄒᆞ얏ᄂᆞᆫ고. 모ᄅᆞᆯ 일도 하거니와 애ᄃᆞᆯ옴도 그지업다. 箕山(기산)의 늘근 고불 귀ᄂᆞᆫ 엇디 싯돗던고. 박소ᄅᆡ 핀계ᄒᆞ고 조장이 ᄀᆞ장 놉다. 人心(인심)이 ᄂᆞᆺ ᄀᆞᆺᄐᆞ야 보도록 새롭거ᄂᆞᆯ 世事(세사)ᄂᆞᆫ 구롬이라 머흐도 머흘시고. 엇그제 비ᄌᆞᆫ 술이 어도록 니건ᄂᆞ니 잡거니 밀거니 슬ᄏᆞ장 거후로니 ᄆᆞᄋᆞᆷ의 ᄆᆞ친 시ᄅᆞᆷ 져그나 ᄒᆞ리ᄂᆞ다. 거믄고 시욹 언저 風入松(풍입송) 이야고야. 손인동 主人(주인)인동 다 니져 ᄇᆞ려셔라. 長空(장공)의 ᄯᅵᆺ는 鶴(학)이 이 골의 眞仙(진선)이라. 瑤臺(요대) 月下(월하)의 ᄒᆡᆼ혀 아니 만나신가. 손이셔 主人(주인)ᄃᆞ려 닐오ᄃᆡ 그ᄃᆡ 귄가 ᄒᆞ노라(산중에 벗이 없어 서책을 쌓아 놓고, 만고의 인물들을 거슬러 세어 보니, 성현도 많거니와 호걸도 많고 많다. 하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어찌 무심하랴마는, 어찌 된 시운이 흥했다 망했다 하였는가. 모를 일도 많거니와 애달픔도 끝이 없다. 기산의 늙은 고불(古佛) 귀는 어찌 씻었던가. 소리가 난다고 핑계하고 표주박을 버린 허유의 조장이 가장 높다. 인심이 얼굴 같아서 볼수록 새롭거늘,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높고 먼 공중에 떠 있는 학이 이골의 진선이라. 이전에 달 아래서 혹시 만나지 아니하였는가? 손님이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곧 진선인가 하노라.)


'성산별곡'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서하당과 식영정, 그리고 그 주변의 선경 같은 풍취와 임억령의 풍류를 예찬한 가사이다. '성산별곡'에는 별뫼와 식영정, 서하당, 환벽당, 무등산, 증암천(甑巖川. 자미탄, 창계천), 조대, 쌍송, 용추, 노자암, 방초주 등 식영정 이십경이 거의 다 등장하고 있다. 정철이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등 식영정 4선이 지은 '식영정이십영' 20수를 바탕으로 이를 부연, 설명하고 탈태(奪胎)시켜 만들었기 때문이다. 탈태란 고시(古詩)의 뜻을 본떠서 원시(原詩)와 다소 다른 뜻을 가지게 짓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산별곡'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철의 순수한 창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성산별곡'은 총 84절(행), 168구이며 3·4조의 음수율이 주조를 이룬다. 4·4조, 3·3조, 2·4조 혹은 2·3조, 4·3조 등도 더러 있다. 구성은 서사(詞), 춘사(春詞), 하사(夏詞), 추사(秋詞), 동사(冬詞), 결사(結詞)로 되어 있다. 서사는 식영정에 머물며 세상에 나가지 않는 임억령의 풍류와 서하당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읊었다. 춘사는 성산의 봄 풍경(春景)과 임억령의 삶의 모습, 하사는 성산의 시원하고 한가한 여름 풍경(夏景), 추사는 성산의 가을 달밤 풍경(秋景), 동사는 성산의 눈 내린 겨울 풍경(冬景)과 성산에 은거하는 노인의 부귀를 노래하고 있다. 결사는 전원 생활의 멋과 풍류를 읊고 있다. 특히 결사는 산중에 벗이 없어 독서를 통하여 고금의 성현과 호걸들을 생각하고 그 흥망과 지조를 느끼며, 뜬구름 같은 세상에 술 마시고 거문고나 타는 신선 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성산별곡'에는 한자 어구(漢字語句)와 전고(典故)가 많이 등장하여 한시 분위기가 매우 짙은 점도 하나의 특징이다. 


'성산별곡'은 정철이 처외재당숙인 김성원을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식영정 주인', '산늙은이', '신선', '대나무 지팡이' 등의 가사와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면 김성원보다는 스승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성산의 사계를 노래한 '성산별곡'은 한국 고전문학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뛰어난 가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산별곡'은 송순의 '면앙정가'를 본받았지만 계절에 따른 새로운 경치 묘사와 자연에 대한 흥취의 표현에서는 더 뛰어난 면이 있다. '성산별곡'은 '송강가사(松江歌辭)', '송강별집추록유사(松江別集追錄遺詞)',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등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생겨난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양반, 평민, 부녀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지어 불렀다. 평민, 부녀자들의 가사 중에는 정철의 작품 못지 않은 가사도 많이 있다. 가사문학은 특히 면앙정, 식영정 등 정자원림이 많은 담양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


서하당을 떠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식영정과 서하당은 현재 정철 후손의 소유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환벽당도 정철 후손의 소유로 되어 있다. 식영정과 환벽당, 사하당이 정철 후손의 소유가 된 이면에는 김덕령 의병장이 역모로 몰려 광산 김씨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 서하당에 이어 임억령의 사후 식영정까지도 물려받은 김성원은 광산 김씨 김덕령 가문의 일원이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역모로 몰리면 그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덕령을 비롯한 광산 김씨 가문이 몰락한 반면에 정철의 후손들은 높은 관직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식영정에는 대단히 큰 정철의 '성산별곡' 시비가 세워져 있고, 정자 안에는 이상하게도 정철 후손들의 편액이 많이 걸려 있다. 정철 후손들의 편액이 걸려 있던 자리에는 원래 임억령과 교유했던 기라성 같은 시인, 문사들의 편액이 걸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하당에 앞에도 '송강정철가사의터'라는 커다란 기둥형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식영정과 서하당이 마치 정철과 그 후손들의 유적처럼 변질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역사 왜곡의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식영정과 서하당은 임억령과 김성원의 유적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2018. 4. 10.